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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응답을 받자 (렘 33:2-9)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
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스라엘
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
|항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I.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소원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온갖 노력들을 다합니다.
그러나 소원이 성취되지 못하기에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무당에게 가서 점을 치거나, 부적을 사거나, 산이나 바위 앞에서 빌고 해와 달과 별에게 소원을 빕니다.
그러다가 그것도 안 되면 자포자기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합니다.
이런 일들은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살기에 그분에게 의지하고 항상 기도로 아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당 앞에 큰 글씨로 써 붙인 표어를 보았습니다.
“왜 염려 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라는 표어이었습니다.
음미해 볼수록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말이라고 봅니다.
주님도‘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 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성도(聖徒)라고 합니다.
이 <성도>란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교통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교통의 수단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응답하시고 복을 내리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스스로가 보면 기도를 했는데도 내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마 이런 경우들이 대부분 많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그것을 오늘 우리들이 살펴야 하겠습니다.
II. 기도가 응답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대로 보면 몇 가지 이유들 때문입니다.
① 불순종 때문입니다. (수7:1-)
<아간>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여리고성을 진멸하고 거기에 있는 것은 다 불태워 버리라고 했는데, 그 명령에 불순종하여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 자기 집 앞마당에 묻어둔 일이었습니다.
요즘도 물욕으로 인하여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우리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② 은밀한 죄 때문입니다. (시66: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죄는 토해 내 버려야 합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마음속에 두고서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③ 무관심 때문입니다. (잠1:28)
하나님은 권고와 책망에 무관심하게 지내는 자들의 부르짖음은 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④ 완악함 때문입니다. (말3: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⑤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약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⑥ 정욕으로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해 보면, 지난주일 주님께서 한 말씀을 기억하면 됩니다.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우선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응답하겠다는 뜻입니다.
III.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①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 허물이 있고, 잘못이 있고, 불순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 대표자입니다.
하나님께 다윗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렸더니,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네 자손으로 왕위가 계승될 것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② 전심전력으로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이 있습니다.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약을 달일 때 보면 지성으로 달였습니다.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정성을 다한 음식은 다릅니다.
같은 기도도 전심전력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응답받게 됩니다.
③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들도 아들딸을 그처럼 사랑하는데 하물며 독생자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요즘 아버지들은 옛날 아버지들 보다 더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에게 약속한 것은 부인에게 한 것 보다 더 지키려고 합니다.
어느 곳에 부자(父子)가 있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이 응답 하는지를 보려고 늘 그늘이 져서 텃밭에 채소들이 잘 자라지 못해 앞산의 그림자를 좀 옮겨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면 이루어 준다’고 했으니 아들과 아버지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저 앞산의 그림자를 좀 옮겨 주시옵소서....”
“믿〜습니다”아멘.
기도하고 눈을 떠 보니 앞산도, 그림자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하는 말,“내 그럴 줄 알았어....”
이런 경우가 우리들에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기도가 잘못된 것은 내 뜻이 먼저 앞서 있는 기도입니다.
흔히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표어 들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케 되리라’
‘주의 종의 가정 위에 복에 복을 더 하사 창대케 하옵소서’등....
그것은 우리의 소원이지 기도는 아닙니다.
기도가 되려면, 먼저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내 의지를 쳐서 복종시킴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내 요구사항이라기 보다 주님의 요구사항 입니다.
주님이 고난의 십자가를 메어 주었다면 그것을 지고 가면서 그 분의 뜻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껏 우리는 미신적인 방법으로 기도하였는지 모릅니다.
그저 내 뜻만 이루어 달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나를 통하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는 뜻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감히 간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도하여 내 원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 원대로 되었다면 목사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목사로 세워 주셨고, 결국 당신의 뜻을 따라 순종하게 함으로 나의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40여년의 무거운 목회의 짐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처음 저는 목사보다 다른 호칭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의 그런 요구는 막으시고 결국 목사가 되게 하였고, 그 길로 순종하면서 살아왔더니, 목사 이외의 내가 바라던 호칭을 다 얻게 하였습니다.
박사님, 교수님, 선생님, 교장님, 회장님(당회장) 어느 호칭으로도 다 부를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게 가장 적절한 호칭은 김이봉 목사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불평스러운 마음이 있습니까?
먼저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머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분의 뜻을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껏 불순종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십시오.
그리하면, 예전과 같은 기도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께서 기도해 주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나의 약함도 알고, 나의 실수도 알고, 나의 부족함도 알고 있기에 그분이 내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기도자의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방언으로 기도해야 응답받는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랑으로 그렇게 기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는 듯, 공중들 앞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제일 격멸했습니다.
차라리 금식하려면 금식하는 티를 내지 말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고, 누구를 구제하려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큰 네거리 모퉁이에서 사람 앞에서 오래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성도들이라야 삶 속에 주님을 모신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성도들이 되도록 주님 앞에 응답받는 기도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응답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