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칭찬 받는 믿음  (마태복음 16:13-19)

신앙의 토대가 중요한 이유

무릇 건물을 세우려면 토대가 견고해야 합니다. 똑같은 설계와 재료를 사용해서 집을 짓더라도 기초를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는 법이 없지만, 기반이 무른 곳에 세운 집은 언젠가는 한쪽으로 기울거나 벽에 금이 가거나 해서 결국은 사람이 살 수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요즘은 고층 건물을 지을 때 기반이 반석이 아닐 경우에는 먼저 땅속 깊이 파일을 박아서 기반을 견고하게 만든 다음에 집을 짓습니다. 이는 비단 건물을 짓는 데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견고한 토대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종교인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종교를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하신 대로, 모든 종교가 다 구원의 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구원의 종교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종교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신구약 성경 66권에다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계시로 끝납니다. 그리고 성경의 핵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각 책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성경을 올바르게 읽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계시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북부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을 때, 하루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세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어서 물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다고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주님께 대한 사람들의 칭송을 듣고자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통해서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하시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얼마 후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유대 종교가들에게 붙잡혀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남아서 복음을 전할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말해 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대답하기를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생각에는 어떻게 예수님을 선지자 중 하나에 비길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평가한 것은 그들로서는 예수님을 대단히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금 언급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지내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잉태하고 있을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했던 아주 특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지극히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유다 백성들에게 임박한 메시아의 시대를 준비하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물로 세례를 주었으며, 백성들 앞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눅 7:28)고 하셨습니다. 그가 비록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백성들은 그가 죽음에서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고 다시 살아난 세례 요한이라고 생각했으니 대단한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북왕국 아합 왕 시대에 그가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갈멜산에서 대결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하루 종일 바알의 이름을 불렀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지만, 엘리야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자 단번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제단을 살랐습니다. 그러자 이를 본 모든 백성이 엎드려 외치기를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바알 숭배로 기울었던 백성들의 마음이 그들 조상의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그 날, 엘리야는 백성들과 함께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서 기손 시내에서 처단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하자 하늘이 닫혀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또 그가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었습니다. 그 후에 엘리야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불 말이 끄는 불 수레를 타고 승천했습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엘리야를 메시아의 선구자로 믿고 있었습니다. 말라기서에 이르기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 4:5-6)고 했는데, 유대인들은 이 예언과 같이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올 것을 기대했습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기념할 때에 엘리야를 위하여 빈 의자 하나를 남겨 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했으니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레미야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도 유대인들이 다시 오기를 대망하는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특히, 그들은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생활이 시작되기 직전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놓여 있던 향단과 법궤를 취하여 모세가 죽은 느보 산의 어느 동굴에 숨겨 놓았으며, 장차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가 와서 이것들을 내어 놓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백성들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예레미야 역시 메시아의 선구자 중 하나요 조국의 구원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예레미야로 생각한 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후한 평가를 내렸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예수님을 존경하며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교에서는 예수님을 부처와 같은 반열에 두며, 회교에서는 노아, 아브라함, 예수님을 마호멧과 같은 선지자 중 하나로 여깁니다. 인도의 독립을 쟁취한 간디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무저항주의를 배웠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완전성에 가장 가까이 도달한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찬사를 바치는 것과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는 것’은 전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지만 칭송하고 그의 윤리적인 가르침을 좇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공자를 믿지는 않지만 논어에 기록된 그의 가르침을 훌륭한 도덕규범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는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자,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전하는 세인들의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그러한 평가에 대하여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인들의 평가를 합당하지 않게 여기지 않으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삼년 반 동안 주님과 동고동락해온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올바로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과연 예수님의 이 기대는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함으로 적중했습니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 시몬의 대답에 흡족해 하시는 주님의 표정을 보는 듯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신앙고백이 그처럼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까닭이 무엇일까요? 이 답변은 매우 간결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진술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히브리어의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메시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서는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을 세울 때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께로부터 그 직책을 부여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메시아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 이 세 직분을 한꺼번에 갖고 죄와 죽음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분을 말합니다.

먼저, 성경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다윗의 왕위에 앉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를 찾아와서 이르기를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0-33)고 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네가 왕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 18:3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능으로써 자신이 왕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왕은 지배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중에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하도 풍랑이 거센지라 제자들은 이제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향하여 “고요하라, 잠잠하라” 명하시자 즉시로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이 광경을 곁에서 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기를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명하시니 귀신들이 쫓겨나갔습니다. 어떤 중병에 걸린 자라도 예수님께서 한 번 손을 대시면 즉시로 나았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명하시니 즉시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살아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선지자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상세하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의 자비로우신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제사장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9장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11)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지금까지 말씀한 내용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이심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실 뿐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전 약 750년 전 사람인데, 이사야서 9장 6절에서 예언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오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나 실제로 그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요한복음 1장에 보면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언급한 “말씀”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1장 15절로 17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와 같이 성경은 일관되게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것은 그를 하나님으로 믿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신적 본질이 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구원을 얻는 진실한 신앙이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되 시몬 베드로와 같이 믿을 때 그 사람은 견고한 반석 위에 신앙의 집을 짓는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하고 하신대로,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다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우리 자신의 지혜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듣게 하신 결과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은 견고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들과 같습니다. 이 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어떠한 시험의 풍랑이 불어와도 결코 흔들림 없는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은 영생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교회의 토대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와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라고 하신 것은,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해 줍니다.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는데, 이 반석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교회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가 하면, 이 반석은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하신 에베소서 2장 20절 말씀과 같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다 교회의 터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릿돌이 되실 때 비로소 교회의 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어떠한 시험의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음부 곧 지옥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마귀와 그에게 속한 악령들이 교회를 파괴하려고 도전해 오지만 결코 그리스도께 대한 바른 신앙의 터 위에 세운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나가서 전도하였더니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이는 삼천 명에게 천국 문을 열어준 것과 같습니다. 또 그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이방인들에게도 천국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웃과 온 세계만방에 복음을 전함으로써 천국의 문을 열어주는 권세를 행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기도를 통해서 매고 푸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3)고 하셨는가 하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권세입니까?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들은 몸의 지체들입니다. 머리와 몸과 지체는 완전무결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와 성도들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하고 유기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님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주님께서 물으실 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실 수 있으면 “아멘”으로 화답하십시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바른 신앙을 고백한 성도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의 믿음이 진실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지,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 되고 맙니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날이 매우 가까웠습니다. 그 날이 되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바른 신앙을 갖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심으로 그 날, 영광중에 강림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칭찬과 함께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양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