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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3:1~6)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우내 잠을 자던 만물이 이제 새 봄을 맞이하여 기지개를 펴고 꿈틀 꿈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었던 땅들이 녹기 시작했고, 교회 주변 화단에는 벌써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나고, 온 천지가 푸른 옷으로 갈아입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옷도 이제 무거운 겨울옷을 벗고, 한결 가벼운 차림으로, 어두운 색상에서 밝은 색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2일에는 학교마다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새내기들이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생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지난 주간 우리교회 이지혜 양이 서울여대에 수석입학을 하고, 2,000명 학생을 대표해서 선서를 한다기에 입학식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지혜의 손을 꼭 붙잡고, 4년 동안의 대학생활을 통해 좋은 교수님과의 만남, 좋은 책과의 만남, 좋은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내 인생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기게 되기를 기도해 주었습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군대든 어디든지 처음 들어가게 되면 낯설고, 불편하고, 서먹서먹합니다. 그런가하면 뭔가 마음이 들뜨고, 흥분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일찍이 홍해를 건너 40년 광야 생활 끝에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해 요단강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도 바로 그런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홍해를 건넌 사건이라고 본다면, 이제 우리가 교회에 나와 믿음생활한다는 것은 바로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고속도로를 준비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요단강이라는 장애물을 주셨습니다. 이 강을 건너야, 이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은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늘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아직 애굽에 갇혀 있는지 아니면 내가 홍해를 건너고 있는지 아니면,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요단강을 건너고 있는지 늘 우리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무장하고, 가나안 땅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믿음생활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믿음 생활해야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듣고자 합니다.
1.내가 있던 곳을 떠나라(1절)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믿음생활은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요셉도 사랑하는 부모 곁을 떠났습니다. 다니엘도 자신의 조국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고 자기들의 생업을 떠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집을 떠나 교회로 나오셨습니다. 이렇게 믿음생활은 내가 머물러 있던 곳, 죄가 관영한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집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붙잡고 의지하던 사람을 떠나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믿고 의지하던, 지식과 명예와 물질과 쾌락 등 세상에 좋던 모든 것을 떠나 교회로 올인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부모를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모든 모습을 떠나 이제 사랑하는 자기 짝과 함께 독립적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결혼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학교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치원을 떠나야 합니다. 유치원 때 생각을 떠나야 진정한 초등학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도 중고등학교 때 모습을 떠나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이 챙겨주고, 학교에서 강요하고 해서 공부합니다. 그러나 대학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공부할 과목도 자기가 선택해서 하고, 선생님도 자기가 선택해서 강의를 듣습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세상에서 살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불평의 습관, 짜증의 습관, 원망의 습관, 염려의 습관, 두려움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감사의 습관 기쁨의 습관, 믿음의 습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떠나지 않고, 내가 좋아하던 세상의 가치를 떠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의 동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캐논이라는 선교사가 선교여행을 하는데 하늘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더니 땅을 향하여 곤두박질 치고 땅에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하늘의 왕자 독수리가 어떻게 해서 꼼짝 못하고 하늘에서 저렇게 떨어지나, 가까이 가서 봤더니 독수리가 먹을 것을 찾아 빙글빙글 돌다가 땅에 족제비 한 마리가 지나 가길래 쏜살같이 족제비를 낚아 챘지요. 그런데 족제비란 놈이 독수리의 가슴팍에 탁 달라붙었습니다. 이것을 털어내야 하는데 털어내지 못했지요. 그러니까 족제비란 놈이 독수리의 가슴팍을 다 갉아 먹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견딜 수 없어 독수리는 빙글빙글 하늘을 날다가 가슴팍이 다 헤어진 다음에야 땅을 향하여 곤두박질하며 떨어졌던 것입니다.
창공을 솟아올라야 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광활한 새 세계를 향하여 달려가야 될 거룩한 성민들이, 축복의 세계를 만끽하고 살아가야 될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땅을 향하여 곤두박질하고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까? 털어내야 될 족제비 한 마리를 털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짜를 것을 짜르고 버릴 것을 버려야 하늘 나는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싯딤에서 떠나야 됩니다. 여러분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죄 짓고 살아가던 어제의 모든 허울들을 벗어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실패의 흔적들을 벗어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불평과 원망과 악담하는 입술의 모든 죄를 벗어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 2장 1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사람을 가만히 정탐하러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3장 1절에서는 "싯딤에서 떠나라"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정탐하는 신앙 버리라는 것입니다. 구경꾼 신앙생활 벗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고 주저 앉아있던 신앙생활 벗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입니다. 내가 은혜 받아야 합니다. 내가 헌신해야 합니다. 내가 섬기고 봉사할 곳입니다. 내가 충성해야 할 교회입니다.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오지 않아야 할 곳을 온 것처럼 있으면 안됩니다. 마음껏 기도하고, 찬양하고, 마음껏 모든 것을 다해 예배하고, 마음껏 충성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일찌기 패턴 장군은 전역하는 부하 장병들을 훈시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먼 훗날 그대들의 후손들이 그토록 처절했던 전쟁 때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물을 때 그대들은 자랑스럽게 그렇게 대답해라. 나는 대 패턴 전차군단의 일원이었다고.” - 그렇습니다.「나는 주님이 그토록 아름답게 쓰시던 한 교회의 일원이었다. 그 교회의 일꾼이었다고, 그 교회에서 젊음을 다 바쳤고, 죽도록 충성했다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랑스런 고백을 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엘리야가 바알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 머뭇 머뭇 하겠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 것이요 바알이 너희의 하나님이면 바알을 따를 것이니라" 세상도 좋고 천국도 좋고, 세상의 쾌락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천국의 복락도 누리고 싶고....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고...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 하겠습니까? 백성들 앞에서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선포했던 여호수아와 같이 여러분 모두 세상에 매여 있던 끈을 자르고 정탐만 하고 구경만 하던 신앙생활을 벗어 던지고 오직 하나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최고의 인생으로 재창조하여 주실 것입니다.
2.말씀 중심으로 살아라(3절)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떠난 이후에는 새로운 목표가 정해집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방향없이 그냥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언약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의 대표가 되는 십계명이 들어있던 법궤이기에 언약궤 라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요, 하나님이 영감을 준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최고의 은혜요, 최고의 축복이요, 최고의 말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이 말씀을 앞세우고, 늘 이 말씀을 중심으로,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생활의 성장은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얼마나 잘 깨닫느냐? 은혜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살아가느냐에 우리 믿음의 성장이 달려 있습니다. 잘 깨닫고, 은혜받고, 실천하는 사람은 믿음이 성장하지만, 잘 듣지고,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가지도 못한다면 결코 우리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늘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두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해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이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말씀, 절대 명령으로 받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바른 길 가는 방법이요, 죄를 이기는 방법이요, 모든 복을 누리며 사는 비결입니다.
특별히 언약궤와 백성들 사이의 거리를 2000규빗 정도되게 하라 하였습니다. 1규빗은 손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거리를 말합니다. 보통 45센치 정도로 보니까 2000규빗은 약 900티터 정도 되는 짧지 않은 거리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생각하면 당시 200만명 정도가 요단강을 건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언약궤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너무 가깝다 보면 뒤에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우리의 초점을 집중시킵시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달려 가십시다. 하나님 말씀보다 앞장서지 마십시다. 조그만한 구멍가게를 열어도 기도보다 더 앞장서지 마십시다. 늘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변두리로 취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 인생을 변두리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장세우고 달려가는 사람에게 하나님도 그 인생을 앞장세워 주시기 위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산불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두 길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나는 맞불을 지르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갈 때 유혹의 불길들이 얼마나 크게 타오르고 있습니까? 사탄이 우리를 삼키기 위해서 얼마나 큰불을 일으키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정욕의 불이 얼마나 뜨겁게 타오르는지 모릅니다. 이때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은 성령의 불을 지피는 길밖에 없습니다. 기도의 불을 키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능력의 불을 피우고 달려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골짜기로 내려가면 어디에서 불이 오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에 타 죽는다고 합니다.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겁니다. 정상에 올라가는 겁니다. 정상에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불이 지금 어디서 타오르고 있고 어디에 길이 있고 어디로 내려가면 되겠다 하는 것이 한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높은 곳에 오르는 사람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는 높이 올라가고, 하나님의 안목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교육을 하더라도, 사업을 하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마인드로 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일하여 주실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어느 날 아침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강아지가 자기 손에 있는 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손이 입으로 가면 입을 쳐다보고 손이 내려와 빵을 뜯으면 빵 뜯는 손을 쳐다보다가 또 올라가면 그 입을 쳐다 봅니다. 할 수 없이 빵을 뜯어서 강아지에게 주었습니다. 그걸 바라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하나님, 나는 세상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나를 바라봐 달라고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눈이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빵만 바라보는 이 철없는 강아지 한 마리만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보고 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앞장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면 우리의 믿음생활은 평안하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3.나 자신을 성결케 하고, 하나님을 기대하라.(5절)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할 수 있도록 바로 왕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애굽군대가 추격해 올 때 홍해를 갈라 주시고, 다 건넌 후에는 모든 따라오던 모든 애굽 군대를 물에 수장시키셨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아침 저녁으로 내려 주셨습니다. 목이 말라 물을 찾을 때 반석을 치게하시고, 샘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이 기적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성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200만 행진의 대열 속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다. 넘실거리는 요단강의 물을 바라보며 한결같이 마음을 조리며 "하나님 이 강을 어떻게 건널까요?" 저들이 안타깝게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있는데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해라!" 이 얼마나 엉뚱한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이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사업이 어려워요. 내가 하던 일들이 잘 번창할 것인지 아니면 하던 일들마저 어려움을 겪을 것인지 앞길이 보이지 않아요. 방황하고 비틀거리는 내 자식을 바라 볼 때마다 이 자식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 아이를 어떻게 권면해야 됩니까?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해야 된단 말입니까? 우리 가정이 어렵습니다. 우리 교회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렵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스스로 성결케 해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전략이나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네게 중요한 것은 거룩이니라. 내가 너희를 쓰기에 합당한 사람인지 너희를 살펴 볼지니라. 나는 준비된 그릇대로 쓴다.>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신앙이었습니다.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성결의 문제였습니다. 거룩의 문제였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군대의 문제가 아니요, 물질의 문제가 아니요, 신앙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문을 수축하는데 양문을 제일 먼저 수축했습니다.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문을 제일 먼저 수축했습니다. 무너진 곳이 사방팔방 많지요. 그러나 제일먼저 예배를 수축해라. 기도를 수축해라. 너희 제단을 수축해라. 너희 영혼을 거룩하게 해라. 그 얘기입니다. 하나님은 못생긴 그릇도 씁니다. 작은 그릇도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절대로 쓰지 못하는 그릇이 있습니다. 더러운 그릇은 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원하면 여러분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입술을 쓰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입술을 성결하게 하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손발을 쓰기 원하십니다. 손발을 거룩하게 하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심장을 쓰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심령을 깨끗하게 하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비전을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그 비전을 거룩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쓰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정을 거룩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교회를 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쓰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를 거룩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결한 사람으로 준비하는 것과 함께 가져야 할 마음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시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리라.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리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9절에서,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믿음생활 할 것인가? 믿음 생활은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죄악된 세상을 떠나고, 잘못된 모든 습관을 떠나고, 세상에서 믿고 의지하던 것을 떠나고, 구경꾼 신앙을 떠나고, 오직 이젠 하나님만 바라보고, 오직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몸과 영혼을 성결하게 하고, 늘 내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크게 하시고, 큰 일을 위해 예비된 자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광열 목사 설교 중에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우내 잠을 자던 만물이 이제 새 봄을 맞이하여 기지개를 펴고 꿈틀 꿈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었던 땅들이 녹기 시작했고, 교회 주변 화단에는 벌써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나고, 온 천지가 푸른 옷으로 갈아입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옷도 이제 무거운 겨울옷을 벗고, 한결 가벼운 차림으로, 어두운 색상에서 밝은 색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2일에는 학교마다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새내기들이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생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지난 주간 우리교회 이지혜 양이 서울여대에 수석입학을 하고, 2,000명 학생을 대표해서 선서를 한다기에 입학식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지혜의 손을 꼭 붙잡고, 4년 동안의 대학생활을 통해 좋은 교수님과의 만남, 좋은 책과의 만남, 좋은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내 인생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기게 되기를 기도해 주었습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군대든 어디든지 처음 들어가게 되면 낯설고, 불편하고, 서먹서먹합니다. 그런가하면 뭔가 마음이 들뜨고, 흥분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일찍이 홍해를 건너 40년 광야 생활 끝에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해 요단강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도 바로 그런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홍해를 건넌 사건이라고 본다면, 이제 우리가 교회에 나와 믿음생활한다는 것은 바로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고속도로를 준비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요단강이라는 장애물을 주셨습니다. 이 강을 건너야, 이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은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늘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아직 애굽에 갇혀 있는지 아니면 내가 홍해를 건너고 있는지 아니면,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요단강을 건너고 있는지 늘 우리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무장하고, 가나안 땅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믿음생활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믿음 생활해야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듣고자 합니다.
1.내가 있던 곳을 떠나라(1절)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믿음생활은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요셉도 사랑하는 부모 곁을 떠났습니다. 다니엘도 자신의 조국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고 자기들의 생업을 떠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집을 떠나 교회로 나오셨습니다. 이렇게 믿음생활은 내가 머물러 있던 곳, 죄가 관영한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집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붙잡고 의지하던 사람을 떠나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믿고 의지하던, 지식과 명예와 물질과 쾌락 등 세상에 좋던 모든 것을 떠나 교회로 올인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부모를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모든 모습을 떠나 이제 사랑하는 자기 짝과 함께 독립적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결혼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학교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치원을 떠나야 합니다. 유치원 때 생각을 떠나야 진정한 초등학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도 중고등학교 때 모습을 떠나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이 챙겨주고, 학교에서 강요하고 해서 공부합니다. 그러나 대학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공부할 과목도 자기가 선택해서 하고, 선생님도 자기가 선택해서 강의를 듣습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세상에서 살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불평의 습관, 짜증의 습관, 원망의 습관, 염려의 습관, 두려움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감사의 습관 기쁨의 습관, 믿음의 습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떠나지 않고, 내가 좋아하던 세상의 가치를 떠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의 동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캐논이라는 선교사가 선교여행을 하는데 하늘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더니 땅을 향하여 곤두박질 치고 땅에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하늘의 왕자 독수리가 어떻게 해서 꼼짝 못하고 하늘에서 저렇게 떨어지나, 가까이 가서 봤더니 독수리가 먹을 것을 찾아 빙글빙글 돌다가 땅에 족제비 한 마리가 지나 가길래 쏜살같이 족제비를 낚아 챘지요. 그런데 족제비란 놈이 독수리의 가슴팍에 탁 달라붙었습니다. 이것을 털어내야 하는데 털어내지 못했지요. 그러니까 족제비란 놈이 독수리의 가슴팍을 다 갉아 먹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견딜 수 없어 독수리는 빙글빙글 하늘을 날다가 가슴팍이 다 헤어진 다음에야 땅을 향하여 곤두박질하며 떨어졌던 것입니다.
창공을 솟아올라야 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광활한 새 세계를 향하여 달려가야 될 거룩한 성민들이, 축복의 세계를 만끽하고 살아가야 될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땅을 향하여 곤두박질하고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까? 털어내야 될 족제비 한 마리를 털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짜를 것을 짜르고 버릴 것을 버려야 하늘 나는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싯딤에서 떠나야 됩니다. 여러분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죄 짓고 살아가던 어제의 모든 허울들을 벗어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실패의 흔적들을 벗어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불평과 원망과 악담하는 입술의 모든 죄를 벗어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 2장 1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사람을 가만히 정탐하러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3장 1절에서는 "싯딤에서 떠나라"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정탐하는 신앙 버리라는 것입니다. 구경꾼 신앙생활 벗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고 주저 앉아있던 신앙생활 벗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입니다. 내가 은혜 받아야 합니다. 내가 헌신해야 합니다. 내가 섬기고 봉사할 곳입니다. 내가 충성해야 할 교회입니다.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오지 않아야 할 곳을 온 것처럼 있으면 안됩니다. 마음껏 기도하고, 찬양하고, 마음껏 모든 것을 다해 예배하고, 마음껏 충성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일찌기 패턴 장군은 전역하는 부하 장병들을 훈시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먼 훗날 그대들의 후손들이 그토록 처절했던 전쟁 때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물을 때 그대들은 자랑스럽게 그렇게 대답해라. 나는 대 패턴 전차군단의 일원이었다고.” - 그렇습니다.「나는 주님이 그토록 아름답게 쓰시던 한 교회의 일원이었다. 그 교회의 일꾼이었다고, 그 교회에서 젊음을 다 바쳤고, 죽도록 충성했다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랑스런 고백을 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엘리야가 바알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 머뭇 머뭇 하겠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 것이요 바알이 너희의 하나님이면 바알을 따를 것이니라" 세상도 좋고 천국도 좋고, 세상의 쾌락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천국의 복락도 누리고 싶고....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고...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 하겠습니까? 백성들 앞에서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선포했던 여호수아와 같이 여러분 모두 세상에 매여 있던 끈을 자르고 정탐만 하고 구경만 하던 신앙생활을 벗어 던지고 오직 하나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최고의 인생으로 재창조하여 주실 것입니다.
2.말씀 중심으로 살아라(3절)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떠난 이후에는 새로운 목표가 정해집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방향없이 그냥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언약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의 대표가 되는 십계명이 들어있던 법궤이기에 언약궤 라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요, 하나님이 영감을 준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최고의 은혜요, 최고의 축복이요, 최고의 말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이 말씀을 앞세우고, 늘 이 말씀을 중심으로,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생활의 성장은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얼마나 잘 깨닫느냐? 은혜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살아가느냐에 우리 믿음의 성장이 달려 있습니다. 잘 깨닫고, 은혜받고, 실천하는 사람은 믿음이 성장하지만, 잘 듣지고,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가지도 못한다면 결코 우리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늘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두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해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이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말씀, 절대 명령으로 받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바른 길 가는 방법이요, 죄를 이기는 방법이요, 모든 복을 누리며 사는 비결입니다.
특별히 언약궤와 백성들 사이의 거리를 2000규빗 정도되게 하라 하였습니다. 1규빗은 손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거리를 말합니다. 보통 45센치 정도로 보니까 2000규빗은 약 900티터 정도 되는 짧지 않은 거리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생각하면 당시 200만명 정도가 요단강을 건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언약궤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너무 가깝다 보면 뒤에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우리의 초점을 집중시킵시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달려 가십시다. 하나님 말씀보다 앞장서지 마십시다. 조그만한 구멍가게를 열어도 기도보다 더 앞장서지 마십시다. 늘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변두리로 취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 인생을 변두리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장세우고 달려가는 사람에게 하나님도 그 인생을 앞장세워 주시기 위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산불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두 길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나는 맞불을 지르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갈 때 유혹의 불길들이 얼마나 크게 타오르고 있습니까? 사탄이 우리를 삼키기 위해서 얼마나 큰불을 일으키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정욕의 불이 얼마나 뜨겁게 타오르는지 모릅니다. 이때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은 성령의 불을 지피는 길밖에 없습니다. 기도의 불을 키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능력의 불을 피우고 달려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골짜기로 내려가면 어디에서 불이 오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에 타 죽는다고 합니다.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겁니다. 정상에 올라가는 겁니다. 정상에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불이 지금 어디서 타오르고 있고 어디에 길이 있고 어디로 내려가면 되겠다 하는 것이 한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높은 곳에 오르는 사람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는 높이 올라가고, 하나님의 안목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교육을 하더라도, 사업을 하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마인드로 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일하여 주실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어느 날 아침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강아지가 자기 손에 있는 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손이 입으로 가면 입을 쳐다보고 손이 내려와 빵을 뜯으면 빵 뜯는 손을 쳐다보다가 또 올라가면 그 입을 쳐다 봅니다. 할 수 없이 빵을 뜯어서 강아지에게 주었습니다. 그걸 바라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하나님, 나는 세상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나를 바라봐 달라고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눈이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빵만 바라보는 이 철없는 강아지 한 마리만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보고 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앞장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면 우리의 믿음생활은 평안하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3.나 자신을 성결케 하고, 하나님을 기대하라.(5절)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할 수 있도록 바로 왕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애굽군대가 추격해 올 때 홍해를 갈라 주시고, 다 건넌 후에는 모든 따라오던 모든 애굽 군대를 물에 수장시키셨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아침 저녁으로 내려 주셨습니다. 목이 말라 물을 찾을 때 반석을 치게하시고, 샘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이 기적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성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200만 행진의 대열 속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다. 넘실거리는 요단강의 물을 바라보며 한결같이 마음을 조리며 "하나님 이 강을 어떻게 건널까요?" 저들이 안타깝게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있는데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해라!" 이 얼마나 엉뚱한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이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사업이 어려워요. 내가 하던 일들이 잘 번창할 것인지 아니면 하던 일들마저 어려움을 겪을 것인지 앞길이 보이지 않아요. 방황하고 비틀거리는 내 자식을 바라 볼 때마다 이 자식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 아이를 어떻게 권면해야 됩니까?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해야 된단 말입니까? 우리 가정이 어렵습니다. 우리 교회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렵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스스로 성결케 해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전략이나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네게 중요한 것은 거룩이니라. 내가 너희를 쓰기에 합당한 사람인지 너희를 살펴 볼지니라. 나는 준비된 그릇대로 쓴다.>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신앙이었습니다.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성결의 문제였습니다. 거룩의 문제였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군대의 문제가 아니요, 물질의 문제가 아니요, 신앙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문을 수축하는데 양문을 제일 먼저 수축했습니다.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문을 제일 먼저 수축했습니다. 무너진 곳이 사방팔방 많지요. 그러나 제일먼저 예배를 수축해라. 기도를 수축해라. 너희 제단을 수축해라. 너희 영혼을 거룩하게 해라. 그 얘기입니다. 하나님은 못생긴 그릇도 씁니다. 작은 그릇도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절대로 쓰지 못하는 그릇이 있습니다. 더러운 그릇은 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원하면 여러분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입술을 쓰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입술을 성결하게 하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손발을 쓰기 원하십니다. 손발을 거룩하게 하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심장을 쓰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심령을 깨끗하게 하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비전을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그 비전을 거룩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쓰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정을 거룩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교회를 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쓰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를 거룩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결한 사람으로 준비하는 것과 함께 가져야 할 마음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시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리라.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리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9절에서,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믿음생활 할 것인가? 믿음 생활은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죄악된 세상을 떠나고, 잘못된 모든 습관을 떠나고, 세상에서 믿고 의지하던 것을 떠나고, 구경꾼 신앙을 떠나고, 오직 이젠 하나님만 바라보고, 오직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몸과 영혼을 성결하게 하고, 늘 내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크게 하시고, 큰 일을 위해 예비된 자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광열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