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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한 싸움 (디모데전서 6:11~16)
본 서신은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목회할 것인가에 대해서 언급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디모데전서 마지막 부분에서는 교회의 행정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하나님의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일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기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그 사람을 대표합니다. 본명이 있고 가명이 있습니다. 별명이 있는가 하면 호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끔찍이 사랑을 했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바울이 디모데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했습니다. 동역자(롬16:21), 형제(고전1:1), 하나님의 일꾼(살전3:2), 내 아들아(딤전1:2) 부르더니 오늘 본문 11절에는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전쟁이고 싸우는 삶입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외에도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에베소서 6:10-17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전투에 대하여 자세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본문과 에베소서 6장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불의와 부정과 악령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Ⅰ. 피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주신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유혹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고 있는가를 말하면서 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떨어진다,' '빠진다'하는 말은 어떤 잘못된 대상에 완전히 포로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 입니다. 이런 사실을 경고하면서 오늘 주신 말씀에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욕과 돈에 포로가 되기 쉬운 이 유혹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만 포로가 되는 삶을 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과 정욕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까? 이와 같은 세상에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삶의 주인이 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포로가 되어 산다면 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영광입니까!
그래서 돈과 교만을 피하라고 명하였고, 20절에서는 “필요 없는 변론을 피하라” 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피해야 할 것이 매우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 교훈과 모든 불경건한 행위에 대항하여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구별해야 합니다. 무엇을 피해야 합니까?
1. 이단의 가르침을 피하라!(3-4)
이단의 거짓 가르침을 피해야 합니다. 자신의 사욕을 좇는 어리석은 가르침을 배격해야 합니다. 이단은 문 안에도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단은 자신만 지옥자식 될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멸망시키는 영혼의 지옥 사냥꾼들이기 때문입니다.
2. 경건치 못한 죄악을 피하라!(4-5)
교만, 무익한 논쟁, 시기함, 투기함, 훼방, 악한 생각들을 피해야 합니다. 악한 것들을 방치해 두면 자신의 신앙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마침내 구원의 확신마저 사라져 버리게 되는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구별되어 선택받은 무리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라 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건져내어 죄와는 상관이 없이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3. 개인적 편견, 세속적 당파를 피하라!(5-6)
하나님을 섬기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이익을 고려한 행동들은 십자가에 원수로 행하는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끼리끼리 모이고 분당과 파당을 일삼는 것은 주의 몸 된 교회를 갈가리 찢어 놓는 악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성도가 하나의 몸에 붙은 지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4. 돈을 사랑함을 피하라!(10절).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돈속에 일만 가지의 악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악의 근저에는 돈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돈을 악과 관련시키는 것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돈에 대한 사랑과 혼돈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간의 관계까지 파괴해버립니다.
Ⅱ. 좇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좇아야 할 것을 11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좇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좇아야 할 것은 바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입니다.
「의」라는 것은 공의를 뜻합니다. 모든 일을 처리 할 때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구원에 관한 믿음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행하셨던 가장 위대한 일인 사랑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아가페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기적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인내」는 참을성으로서 상황이 어려울 때에 끝까지 분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온유」는 유약함이 아니라, 통제 하에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온유함이 없는 용감한 인내는 압제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님도 온순한 성품을 가지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여섯 가지의 덕목을 잘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 이였습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40에 하나 감하는 매를 다섯 번이나 맞고도 오래 동안 인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선교 여행을 하면서 개척 교회를 설립하고도 온유함으로 가르쳤습니다. 사실 이 여섯 가지의 덕목은 바울이 실천했던 덕목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성품을 닮으려고 많은 고난을 당했고 사실 예수의 성품을 닮아갔습니다. 그래서 젊은 목회자 디모데도 예수의 성품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쫓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Ⅲ. 싸워야 될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싸우라’의 문자적 의미는 ‘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라’인데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이 행하는 싸움은 선한 싸움, 즉 영적 싸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이렇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얻기 위해 디모데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실로 인간의 삶 자체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혈과 육의 싸움을 하며,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 즉 영적 싸움을 경주합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에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 선한 싸움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1.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으며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괴로웠던 싸움은 원수 마귀였거나 가난이나 질병이나 세상권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괴롭히고 가장 고통스러운 투쟁의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절규하듯 한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 지체 속에 한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다고 안타깝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 선한 싸움이란 자신을 죽이며 사는 삶을 뜻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마귀입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인류를 타락 시킨 이래 아직도 타락시킬 대상들을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찾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을 보면 “마귀의 궤계”라고 했고, 12절을 보면 “혈과 육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싸움의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싸움 대상은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이며 세상의 불의한 집권자들과 그들의 악한 꾀인 것입니다. 만일 신자들끼리 서로 으르렁거리고 교회끼리 서로 싸운다면 마귀는 손뼉을 치고 기뻐할 것입니다. 마귀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한국 교회의 힘을 분산시키고 한국 교회가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치명타를 가해서 파괴하려고 온갖 공작을 다 펴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3. 죄입니다.
죄는 멸망성이 있어 하나님의 축복을 방해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예수님의 능력 안에 있어야 합니다.
전투에서 가장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궁극적인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그 선한 증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는데 있어서 생기는 어려움과 고통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움츠러들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전진해 나아가는 계속적인 싸움이 땅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요청되는 것입니다.
그럼 언제까지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까? 14절에서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명령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의 삶은 안락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이 땅은 우리 신앙의 적들이 기다리고 있는 적진입니다. 이 세상을 승리하며 통과하기 위해서는 항상 긴장하고 경계하며 싸우는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영광스러운 호칭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사람 된 자는 그에 합당한 삶이 요구됨을 깨우쳤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썩어질 것, 멸망의 요인을 철저하게 피하여야 하며,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가운데에 영생을 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절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은혜가 임하고 모든 신앙이 제대로 되어지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마11:12)” 이라고 하였습니다.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습니다(딤후4:7). 저와 여러분도 믿음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마칠 때 우리를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쓰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손상률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