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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에 복음이 전해진 이야기 (행16:6-15)
구원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북쪽으로 즉 가이사랴와 안디옥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구원의 복음이 안디옥으로부터 서쪽으로 즉 소 아시아로 전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구원의 복음이 소 아시아로부터 보다 더 서쪽으로 즉 마게도냐와 유럽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시면서 어떻게 하면 구원의 복음을 저 멀리 어두움의 땅끝까지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계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받을 수 있는 쓸만한 도구들을 찾고 계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시다가 도르가를 발견하셨고 고넬료를 발견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피난민들과 바나바와 사울을 복음 전파의 도구들로 사용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구원의 복음이 어떻게 소 아시아로부터 서쪽으로 즉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전해졌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빌립보 교회를 제일 좋아하고 제일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이 제일 좋아하고 제일 사랑하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는 유럽 복음화의 출발점과 기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를 세울 때 교회 이름을 강변교회라고 한 것은 강변에 세워졌던 빌립보 교회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빌립보서를 제일 좋아하고 제일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의 가슴과 심장에서 뛰던 사랑과 기쁨의 맥박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를 읽으면 우리들의 가슴과 심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1974년 귀국한 후 후암교회에서 청년들과 함께 빌립보서를 공부했는데 빌립보서를 함께 공부하는 동안 저와 청년들의 가슴과 심장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빌립보를 두 번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빌립보를 방문할 때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숨결을 느끼면서 가슴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떻게 유럽 마게도냐의 첫 도시였던 빌립보에 복음이 전해졌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졌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행16:6).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16:7).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10). 제2차 선교 여행을 떠난 사도 바울의 일행이 소 아시아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부 성자 성령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이를 허락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밤에 사도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마게도냐로 갈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복음을 받아드릴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들을 빌립보에서 발견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천 장사를 하던 소 아시아 출신의 이방인 여인 루디아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빌립보의 강변에 가서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조만간 귀신에서 놓임을 받게 될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조만간 예수님을 믿고 온 가족과 함께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내다 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 성에 살던 많은 이방 사람들이 조만간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도들로 나타날 것을 미리 내다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사도 바울 일행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과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 일행을 소 아시아의 비두니아로 가는 대신 마게도냐로 가라고 두 번 세 번 지시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나타났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구원의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지게 된 것은 철두철미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둘째,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졌습니다.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행16:11,12).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 일행은 본래의 계획을 포기하고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지만 누가는 소 아시아의 비두니아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습니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비두니아는 산들이 아름답고 땅이 비옥한 곳이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누가는 나중에 비두니아로 가서 거기서 살다가 거기서 죽었다고 합니다. 하여튼 바울 일행은 비두니아에 대한 멋진 선교의 비전과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네압볼리 항구에 착륙했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에 순종을 했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고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와 첩경이 됩니다.
저는 7년 전인 1999년 4월 10일 네압볼리 항구에 서서 사도 바울이 어느 곳으로 상륙했을까를 생각하며 이곳 저곳으로 발을 옮겨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상륙했을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저의 집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식당 벽에 걸려 있습니다. 네압볼리 항구에는 바울의 일행을 맞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울의 일행은 거기서 몇 시간을 걸어서 빌립보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도 그들을 맞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의 회당도 없었습니다. 로마의 문화가 지배하는 그리스 땅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거기서 며칠을 더 기다렸습니다.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모릅니다. 저는 7년 전에 네압볼리 항구의 좋은 호텔에 머물면서 염소 고기를 먹었고 버스를 타고 아주 편하게 빌립보를 왕래했는데 2천 년 전에 사도 바울은 내가 누렸던 편안함과 사치를 전혀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에 순종하며 아무도 맞아주지도 않는 곳으로 가서 며칠을 머물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선교사들도 그와 같은 답답한 경험들을 많이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며칠을 그곳에서 머물다가 안식일이 되어서 기도처를 찾아 강가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몇몇 여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자주 천 장사를 하던 루디아 라는 이방 여자였는데 그의 기도하는 모습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한 영혼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유럽 복음화의 도구로 쓰실 한 사람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루디아와 루디아의 온 집에 구원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유럽 복음화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의 복음 전파 사역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귀신에게서 놓아준 일로 인해 바울과 실라는 그곳 관원들에게 붙잡혀 가서 매를 많이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깊은 옥에 던져져서 발이 든든하게 착고에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 앞에는 언제나 핍박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핍박과 고난의 흔적을 몸에 지닌 사도 바울은 핍박과 고난을 당했을 때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조금도 낙심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지녔던 사도 바울이 얼마든지 억울한 대우에 대해서 항의를 할 수도 있었으나 바울과 실라는 항의나 데모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소 아시아의 루스드라와 더베에서처럼,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내다 보면서 오히려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매"(행16:24,25). 복음 전도자가 환난 중에서도 지닐 수 있는 담력과 용기와 여유와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었습니다. 빌립보에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고 뿌리 내린 것은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셋째, 루디아와 간수의 열린 마음과 손을 통해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졌습니다.
빌립보에 구원의 복음이 전해진 것은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복음 전파는 삼 박자가 맞아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 그리고 루디아와 빌립보 간수의 열린 마음과 손을 통해서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졌습니다.
루디아는 열린 영혼과 열린 마음과 열린 손을 지니고 있던 착하고 너그러운 여인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사업에 성공했고 어느 정도의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크고 좋은 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죽었지만 자녀들을 거느리고 여유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그러나 루디아는 공허했습니다. 영혼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디아는 유대인들이 모이는 기도 처소에 가보곤 했습니다. 빌립보에 와서 살던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빌립보 강변에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루디아도 안식일마다 강변에 가서 영혼을 열고 하늘을 향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안식일이었습니다. 그곳에 특별한 사람들 몇 명이 왔습니다. 소 아시아에서 온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 일행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이 공허한 루디아가, 주님이 필요한 루디아가, 자기를 찾아온 바울 일행을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낸 천사들이 아닌가 하는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영혼이 열린 두 종류의 사람들이 빌립보 강변에서 만났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는 한 사람이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두 종류의 사람들의 만남을 내려다 보시면서 만족의 웃음을 웃으셨을 것입니다.
바울이 여인들을 향해서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이 말하는 말을 듣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게 했지만 루디아는 자기의 의지로 자기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께서 마음을 열도록 감동을 하지만 끝까지 마음을 굳게 닫습니다. 루디아는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루디아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강변에서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마음을 연 사람은 손을 열게 됩니다. 손을 연다는 것은 도움의 손을 편다는 말입니다. 루디아는 사도 바울 일행에게 도움의 손을 폈고 지갑을 열었고 집을 열었습니다.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15). 루디아는 사도 바울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들어와 유하게 했습니다. 루디아의 손이 열리되 인색하게 조금 열린 것이 아니라 크게 넓게 활짝 열렸습니다. 루디아는 자기 집을 열고 자기 집을 교회로 삼았습니다. 빌립보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교회의 기초가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빌립보에 복음이 보다 넓게 전해지는 데는 또 한 사람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감옥을 지키던 간수의 역할이었습니다. 관원들에게 잡혀서 매를 많이 맞은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들의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스데반을 돌로 칠 때 거기 가담했던 사울과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직접 때렸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두 사람을 옥에 가두고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루디아처럼 너그럽고 착한 사람들만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창기도 세리도 들어올 수 있고 사도들과 교회를 핍박하던 나쁜 사람들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입니다.
자기가 손으로 든든히 착고에 채워서 깊은 옥에 가둔 바울과 실라가 밤 중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소리를 듣고 잠을 자던 간수의 마음에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잠결이었지만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다른 세계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지진이 나더니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일어나서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로 생각을 하고 칼을 빼어서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바울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가 그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떨었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보통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보였고 천사들로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자기를 도와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 간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직업상 간수의 일을 했고 두 사도들을 옥에 가두는 일을 했지만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손길이 닫는 순간 활짝 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을 때 영혼이 활짝 열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간수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간수는 주님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간수는 무릎을 꿇고 떨면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마치 마포 삼열 선교사의 턱을 돌로 쳤던 이기풍이 마포 삼열 선교사 앞에 무릎을 꾼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곳곳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을 심어 놓으시는데 간수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 간수가 바로 주님이 필요한 사람이고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떠는 간수를 향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전도의 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저도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 그리고 대학생때 길 거리에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외치면서 노방전도를 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간수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간수는 자기의 손으로 바울과 실라의 매 맞은 곳을 씻어주었습니다. 간수와 온 가족이 모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아직 밤이었지만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빌립보에 복음이 널리 전파된 것이었습니다.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된 복음 운동이 이제 간수의 집에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관원들과 그들의 집들에서 이어졌습니다. 얼마되지 않아서 빌립보에 수 백 명 아니 일 이 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1 제2 제3 빌립보 교회당의 유적을 바라보았을 때, 일 이 천명의 신자들이 빌립보에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자라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교회에게 써서 보낸 편지에 의하면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고 사랑하던 교회였고 사도 바울의 기쁨과 면류관이 된 교회였습니다. 그들을 위하는 길이라면 사도 바울이 자기의 피를 쏟아 제물로 드려도 자기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다고 고백한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마게도냐와 유롭 복음화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비롯해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어디에 가든지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구제와 선교 사역에 참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구제와 선교와 복음 사역에 참여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어떻게 빌립보에 복음이 전해졌고 교회가 세워졌습니까?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리 영생을 주시기로 심어 놓으셨던 루디아와 간수의 열린 마음과 열린 손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전파의 일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의 땅끝은 북한과 모슬렘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복음 전파의 일은 꼭 같은 방식으로 즉 삼박자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바울과 실라와 같이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에 이끌려 핍박과 고난과 수고를 온 몸에 채우기를 기뻐하는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 구원 얻도록 준비된 영혼들이, 주님이 필요한 영혼들이, 세계 곳곳에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루어가시는 복음 전파와 구원 사역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이 필요한 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곳으로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일에는 복음이 어떻게 반 기독교 세력의 중심부였던 로마에 전해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반 기독교 세력의 중심부에까지 달려갈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필요한 우리들과 저들을 모두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김혜은이 나와서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라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출처/김명혁목사 설교 중에서
구원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북쪽으로 즉 가이사랴와 안디옥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구원의 복음이 안디옥으로부터 서쪽으로 즉 소 아시아로 전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구원의 복음이 소 아시아로부터 보다 더 서쪽으로 즉 마게도냐와 유럽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시면서 어떻게 하면 구원의 복음을 저 멀리 어두움의 땅끝까지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계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받을 수 있는 쓸만한 도구들을 찾고 계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시다가 도르가를 발견하셨고 고넬료를 발견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피난민들과 바나바와 사울을 복음 전파의 도구들로 사용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구원의 복음이 어떻게 소 아시아로부터 서쪽으로 즉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전해졌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빌립보 교회를 제일 좋아하고 제일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이 제일 좋아하고 제일 사랑하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는 유럽 복음화의 출발점과 기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를 세울 때 교회 이름을 강변교회라고 한 것은 강변에 세워졌던 빌립보 교회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빌립보서를 제일 좋아하고 제일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의 가슴과 심장에서 뛰던 사랑과 기쁨의 맥박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를 읽으면 우리들의 가슴과 심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1974년 귀국한 후 후암교회에서 청년들과 함께 빌립보서를 공부했는데 빌립보서를 함께 공부하는 동안 저와 청년들의 가슴과 심장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빌립보를 두 번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빌립보를 방문할 때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숨결을 느끼면서 가슴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떻게 유럽 마게도냐의 첫 도시였던 빌립보에 복음이 전해졌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졌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행16:6).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16:7).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10). 제2차 선교 여행을 떠난 사도 바울의 일행이 소 아시아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부 성자 성령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이를 허락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밤에 사도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마게도냐로 갈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복음을 받아드릴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들을 빌립보에서 발견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천 장사를 하던 소 아시아 출신의 이방인 여인 루디아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빌립보의 강변에 가서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조만간 귀신에서 놓임을 받게 될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조만간 예수님을 믿고 온 가족과 함께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내다 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 성에 살던 많은 이방 사람들이 조만간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도들로 나타날 것을 미리 내다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사도 바울 일행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과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 일행을 소 아시아의 비두니아로 가는 대신 마게도냐로 가라고 두 번 세 번 지시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나타났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구원의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지게 된 것은 철두철미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둘째,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졌습니다.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행16:11,12).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 일행은 본래의 계획을 포기하고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지만 누가는 소 아시아의 비두니아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습니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비두니아는 산들이 아름답고 땅이 비옥한 곳이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누가는 나중에 비두니아로 가서 거기서 살다가 거기서 죽었다고 합니다. 하여튼 바울 일행은 비두니아에 대한 멋진 선교의 비전과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네압볼리 항구에 착륙했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에 순종을 했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고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와 첩경이 됩니다.
저는 7년 전인 1999년 4월 10일 네압볼리 항구에 서서 사도 바울이 어느 곳으로 상륙했을까를 생각하며 이곳 저곳으로 발을 옮겨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상륙했을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저의 집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식당 벽에 걸려 있습니다. 네압볼리 항구에는 바울의 일행을 맞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울의 일행은 거기서 몇 시간을 걸어서 빌립보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도 그들을 맞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의 회당도 없었습니다. 로마의 문화가 지배하는 그리스 땅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거기서 며칠을 더 기다렸습니다.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모릅니다. 저는 7년 전에 네압볼리 항구의 좋은 호텔에 머물면서 염소 고기를 먹었고 버스를 타고 아주 편하게 빌립보를 왕래했는데 2천 년 전에 사도 바울은 내가 누렸던 편안함과 사치를 전혀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에 순종하며 아무도 맞아주지도 않는 곳으로 가서 며칠을 머물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선교사들도 그와 같은 답답한 경험들을 많이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며칠을 그곳에서 머물다가 안식일이 되어서 기도처를 찾아 강가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몇몇 여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자주 천 장사를 하던 루디아 라는 이방 여자였는데 그의 기도하는 모습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한 영혼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유럽 복음화의 도구로 쓰실 한 사람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루디아와 루디아의 온 집에 구원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유럽 복음화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의 복음 전파 사역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귀신에게서 놓아준 일로 인해 바울과 실라는 그곳 관원들에게 붙잡혀 가서 매를 많이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깊은 옥에 던져져서 발이 든든하게 착고에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 앞에는 언제나 핍박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핍박과 고난의 흔적을 몸에 지닌 사도 바울은 핍박과 고난을 당했을 때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조금도 낙심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지녔던 사도 바울이 얼마든지 억울한 대우에 대해서 항의를 할 수도 있었으나 바울과 실라는 항의나 데모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소 아시아의 루스드라와 더베에서처럼,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내다 보면서 오히려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매"(행16:24,25). 복음 전도자가 환난 중에서도 지닐 수 있는 담력과 용기와 여유와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었습니다. 빌립보에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고 뿌리 내린 것은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셋째, 루디아와 간수의 열린 마음과 손을 통해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졌습니다.
빌립보에 구원의 복음이 전해진 것은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복음 전파는 삼 박자가 맞아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 그리고 루디아와 빌립보 간수의 열린 마음과 손을 통해서 복음이 빌립보에 전해졌습니다.
루디아는 열린 영혼과 열린 마음과 열린 손을 지니고 있던 착하고 너그러운 여인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사업에 성공했고 어느 정도의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크고 좋은 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죽었지만 자녀들을 거느리고 여유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그러나 루디아는 공허했습니다. 영혼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디아는 유대인들이 모이는 기도 처소에 가보곤 했습니다. 빌립보에 와서 살던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빌립보 강변에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루디아도 안식일마다 강변에 가서 영혼을 열고 하늘을 향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안식일이었습니다. 그곳에 특별한 사람들 몇 명이 왔습니다. 소 아시아에서 온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 일행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이 공허한 루디아가, 주님이 필요한 루디아가, 자기를 찾아온 바울 일행을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낸 천사들이 아닌가 하는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영혼이 열린 두 종류의 사람들이 빌립보 강변에서 만났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는 한 사람이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두 종류의 사람들의 만남을 내려다 보시면서 만족의 웃음을 웃으셨을 것입니다.
바울이 여인들을 향해서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이 말하는 말을 듣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게 했지만 루디아는 자기의 의지로 자기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께서 마음을 열도록 감동을 하지만 끝까지 마음을 굳게 닫습니다. 루디아는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루디아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강변에서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마음을 연 사람은 손을 열게 됩니다. 손을 연다는 것은 도움의 손을 편다는 말입니다. 루디아는 사도 바울 일행에게 도움의 손을 폈고 지갑을 열었고 집을 열었습니다.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15). 루디아는 사도 바울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들어와 유하게 했습니다. 루디아의 손이 열리되 인색하게 조금 열린 것이 아니라 크게 넓게 활짝 열렸습니다. 루디아는 자기 집을 열고 자기 집을 교회로 삼았습니다. 빌립보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교회의 기초가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빌립보에 복음이 보다 넓게 전해지는 데는 또 한 사람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감옥을 지키던 간수의 역할이었습니다. 관원들에게 잡혀서 매를 많이 맞은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들의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스데반을 돌로 칠 때 거기 가담했던 사울과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직접 때렸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두 사람을 옥에 가두고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루디아처럼 너그럽고 착한 사람들만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창기도 세리도 들어올 수 있고 사도들과 교회를 핍박하던 나쁜 사람들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입니다.
자기가 손으로 든든히 착고에 채워서 깊은 옥에 가둔 바울과 실라가 밤 중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소리를 듣고 잠을 자던 간수의 마음에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잠결이었지만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다른 세계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지진이 나더니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일어나서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로 생각을 하고 칼을 빼어서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바울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가 그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떨었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보통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보였고 천사들로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자기를 도와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 간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직업상 간수의 일을 했고 두 사도들을 옥에 가두는 일을 했지만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손길이 닫는 순간 활짝 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을 때 영혼이 활짝 열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간수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간수는 주님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간수는 무릎을 꿇고 떨면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마치 마포 삼열 선교사의 턱을 돌로 쳤던 이기풍이 마포 삼열 선교사 앞에 무릎을 꾼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곳곳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을 심어 놓으시는데 간수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 간수가 바로 주님이 필요한 사람이고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떠는 간수를 향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전도의 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저도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 그리고 대학생때 길 거리에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외치면서 노방전도를 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간수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간수는 자기의 손으로 바울과 실라의 매 맞은 곳을 씻어주었습니다. 간수와 온 가족이 모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아직 밤이었지만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빌립보에 복음이 널리 전파된 것이었습니다.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된 복음 운동이 이제 간수의 집에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관원들과 그들의 집들에서 이어졌습니다. 얼마되지 않아서 빌립보에 수 백 명 아니 일 이 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1 제2 제3 빌립보 교회당의 유적을 바라보았을 때, 일 이 천명의 신자들이 빌립보에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자라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교회에게 써서 보낸 편지에 의하면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고 사랑하던 교회였고 사도 바울의 기쁨과 면류관이 된 교회였습니다. 그들을 위하는 길이라면 사도 바울이 자기의 피를 쏟아 제물로 드려도 자기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다고 고백한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마게도냐와 유롭 복음화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비롯해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어디에 가든지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구제와 선교 사역에 참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구제와 선교와 복음 사역에 참여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어떻게 빌립보에 복음이 전해졌고 교회가 세워졌습니까?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바울과 실라의 순종과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리 영생을 주시기로 심어 놓으셨던 루디아와 간수의 열린 마음과 열린 손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전파의 일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의 땅끝은 북한과 모슬렘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복음 전파의 일은 꼭 같은 방식으로 즉 삼박자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바울과 실라와 같이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에 이끌려 핍박과 고난과 수고를 온 몸에 채우기를 기뻐하는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 구원 얻도록 준비된 영혼들이, 주님이 필요한 영혼들이, 세계 곳곳에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루어가시는 복음 전파와 구원 사역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이 필요한 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곳으로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일에는 복음이 어떻게 반 기독교 세력의 중심부였던 로마에 전해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반 기독교 세력의 중심부에까지 달려갈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필요한 우리들과 저들을 모두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김혜은이 나와서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라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출처/김명혁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