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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종 이야기 (창 24:1-9)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할 때는 모두가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지난 한해를 살아오는 동안 별의별 일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보람된 일들도 있었을 것이고 후회되는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발자취에는 의례히 그런 법입니다. 보람된 일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후회되는 일들만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시간이 되면 보람된 일 보다는 후회되고 아쉬운 일들만 생각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후회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나간 시간보다는 새롭게 다가오는 새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의 이야기입니다. 이 종에게서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 가장 충성스럽고 충직하고 진실하고 주인으로부터 신뢰받는 청지기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새해에는 하나님께, 교회 앞에, 내 인생에, 직장인으로서, 사업가로서, 교직자로서, 젊은이로서, 어른으로, 부모로, 자식으로, 신앙인으로 이렇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렇게 살면 한해를 다 살아간 다음 한해를 되돌아 볼 때에도 조금도 후회스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늙은 종 이야기라고 붙였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존재는 참 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말씀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일을 시작하시고 섭리를 이루십니다. 그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127세에 죽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내와 함께 할 일이 아직 남아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곁에는 아들 이삭 한사람뿐입니다. 그 아들의 나이가 40입니다. 이제 결혼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친척들이 살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하란으로 가서 며느리를 골라야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 중요한 일을 위해 자신의 늙은 종을 보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등장합니다. 여기 나오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아주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모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맡아 일하는 청지기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 늙은 종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구나. 이것이 진실한 청지기의 삶이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헌신자들의 정신이구나”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종에게서 몇 가지 모습이 발견됩니다.
주인으로부터 소명을
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종에게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즉 “너는 가서 며느릿감을 택하여 데리고 오라“그 말입니다. 이 종은 주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며느리를 간택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이 종은 주인으로부터 모든 재산을 맡아서 관할하고 있는 청지기입니다. 아마 아브라함이 볼 때 40세 된 아들 이삭보다 이 종이 더 미더웠을 것입니다. 얼마나 믿었으면 며느리 선택권까지 줘서 보냈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삶은 이렇게 인정받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 삶이 복을 받는 인생이고 은혜 입은 삶입니다. 직장에서든지 사회에서든지 어디서든지 인정받고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삶입니다. 이 인정받고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의 일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들은 이루어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데는 반드시 누군가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냐 하면 이 종같은 사람입니다.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고 살아가는 것이 귀한 일인데 주께로부터 인정받고 소중하게 쓰임 받는 일이라면 얼마나 소종한 일입니까.
주인 의중 정확히 이해
무슨 일을 할 때는 뜻을 정확히 알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 종은 늙은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경험이 풍부하고 생각이 깊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지침을 건성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책임감 있게 물었습니다. 5절을 보면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면 내가 이삭을 데리고 가도 됩니까” 그러자 아브라함이 절대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혹시 오고 가는 중에 이방여자들을 보고 현혹될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눈에 좋은 상대가 나타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할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혹시 눈이 돌아가 이방여자에게 빠져버리게 되면 큰일입니다. 우리는 때로 일을 많이 하면 되는 줄 압니다. 주인의 뜻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일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일을 하되 정확하게 알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나 교회의 일은 자기를 위한 일도 아니고 나타내기 위함도 아닙니다. 그래서 정확한 뜻을 알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종의 모습에서 그런 신중한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
마침내 이 종이 주인의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 길은 가나안에서 메소포타미아 까지 가는 길로 거리가 800km 정도 되는 길입니다. 오늘의 이스라엘에서 터키를 거쳐 이라크 땅까지 낙타를 타고 갔을 테니까 3,4개월은 족히 걸렸을 것입니다. 이 종이 그렇게 가서 마침내 목적지인 하란의 근방에 도착해서 마침내 우물가에 앉아 기도했습니다. 어디 가서 처녀를 골라서 데리고 가야 합니까. 그 멀리 그 넓은 땅에서 오늘처럼 도시가 아니고 몇 가족끼리 부족들이 사는 초라한 동네를 찾아 처녀를 구해야 합니다. 아마 그의 마음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이 우물가에 앉아서 기도를 합니다. 그때 이 종이 두 번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한번은 주인에게 복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12절을 보면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며느릿감을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참 신실한 종입니다. 오늘은 주인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는 종들이 없습니다. 오늘은 주인 없는 자리에서 다 주인을 욕합니다. 배반합니다. 노사관계를 보십시오. 자기가 다니는 직장이 망하건 말건 투쟁하고 불 지르고 파괴하고 그럽니다. 기업주가 아무리 악덕 기업주라고 해도 자기가 다니는 직장을 파괴하고 불 지르는 행위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행동입니다. 오늘은 부모가 아무리 유산을 안주었기로서니 부모를 버리고 모른 체하고 거리로 내몰아 얼어 죽게 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러니 그 자손들이 복을 받겠습니까. 그래서 여기 이 종의 모습이 참 신실하게 보입니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이것이 이 종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종이 두 번째 또 기도합니다. 이번에는 며느릿감을 아주 순조롭게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14절을 보면 “이제 여기 우물가로 처녀들이 올 것인데 내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하고 기도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한 소녀가 물을 길으러 오면 내가 물을 좀 달라 할 테니 나만 말고 당신의 낙타에게도 물을 주겠다 하는 소녀가 있으면 그가 하나님이 짝 지으신 규수로 알겠습니다” 그 말입니다. 얼마나 구체적인 기도입니까. 그렇게 기도하고 나니까 한 처녀가 물을 길으려 왔습니다. 그래서 “물 좀 달라“고 했더니 그 처녀가 선뜻 물을 주면서 “당신의 낙타에게도 주겠다”하고 물을 길어 낙타에게 먹여 주었습니다.
그때 그 늙은 종이 너무나 신기해서 무릎을 쳤을 것입니다.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사느냐, 뉘 집 자손이냐, 네 집에 빈방이 있느냐” 그래서 그 소녀를 따라 집에 가 보니까 그 집안이 자기가 찾고 있는 아브라함의 조카 브두엘의 딸 리브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신비하고 반갑고 하나님의 인도가 분명합니까. 이 종이 소녀의 집에 가서 지금까지 된 일을 다 이야기 하니까 모두 그를 환대하고 리브가의 오빠 라반과 그 부친 브두엘이 그 자리에서 데리고 가서 네 주인의 며느리를 삼으라고 말했습니다. 50절을 보면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 로서 말미암았으니 ..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너무나 선명한 하나님의 응답이요 섭리였으니 누가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이 종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개념적인 기도를 합니다. 기도의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특별히 배우자를 위한 기도는 아주 구체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나에게 이런 사람을 주소서” 그렇게 자세한 꿈을 담아 드릴 때 그 기도가 구체적인 기도입니다.
할렐루야 축구단이 있습니다. 처음 이 축구단은 기도하는 젊은 선수들이 모여 결성했습니다. 그 젊은 선수들이 하루는 의논하기를 “이제부터 누구든지 골을 넣으면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자”고 결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신현호 선수가 골을 넣었습니다. 그러자 이 선수가 골을 넣고 보니까 너무 좋아서 뛰어 다니다 보니까 기도한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기도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경기를 하는데 이번에는 이영무 선수가 공을 넣었습니다. 그때 이 선수가 곧 바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 모습은 대단한 용기이고 대단한 신앙의 간증입니다. 그때부터 축구장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그때 기도하지 못한 신현호 선수가 후일에 이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날 기도할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그 후 선수생명이 끝나 버렸고 이영무 선수는 그날 기도한 것 때문에 오늘까지 선수생명이 지속되고 있다“. 기도는 무슨 기도든지 다 소중합니다. 그런데 더 소중한 기도가 있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도이고 자세한 기도입니다. 한 해 동안 이런 기도를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종은 자기의 주인에게 복을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진정 주인의 뜻에 맞는 처녀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이 어찌 외면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이 종이 처녀를 따라 집으로 가서 지금까지 된 일을 다 말하자 그 종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딸을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어느 낮선 사람이 와서 당신의 딸을 데려가겠다고 할 때 누가 선뜻 딸을 데리고 가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그 종의 신실함, 신실한 언행, 진솔한 자세, 그의 신실한 기도내용 등을 들었을 때 온가족들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모습이 중요합니다. 이 신실함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실함이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재산이고 믿음이고 자본입니다.
종의 책임감
이 종이 마침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순전하게 처녀를 만난 후에 처녀를 데리고 곧 바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처녀의 집안에서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그래서 며칠 더 머물다 가라고 애원했습니다. 55절을 보면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가라”고 간구합니다. 며칠 더 묶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융숭한 대접도 받고 그 종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의 마음에는 자신의 평안함이나 좋은 대접을 받는 것 보다 주인이 걱정되었습니다. 자기 주인이 얼마나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56절을 보면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하고 길을 떠납니다. 얼마나 책임 있는 종입니까. 그러니까 한때 이삭을 낳기 전에 아브라함은 이 종을 양자로 삼으려고까지 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이렇게 책임 있게 살면 우선 자기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행복해집니다. 또한 세상이 그런 사람들 때문에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결론
그렇게 종이 며느릿감을 데리고 왔을 때 아브라함도 이삭도 만족해서 기뻐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기뻐한 그 배후에는 이름 없는 아주 충성스러운 종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종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 이름 없는 종의 모습을 장황하게 기록해 놓으신 이유가 바로 이점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청지기의 정신과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시고자 해서 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누구로부터 신뢰받고 살아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행복하고 보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보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이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기적인 부자 카네기가 늙어갈 때 사람들은 누구를 후계자로 선정할까 모두 궁금해 했습니다. 그때 카네기는 아주 과감하게 자신이 데리고 있던 비서를 후계자로 선택하였습니다. 이 비서는 처음에 경비원으로 그 회사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비원이 너무나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카네기는 그를 자신의 수행 비서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를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기용하고 또 마침내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신실함과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양치는 목동에서 백성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농사짓던 엘리사를 불러 예언자로 삼아서 그 어려운 시절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골 청년 요셉을 불러내서 애굽으로 보내 가장 어려울 때 그 나라의 총리로 삼으셨습니다. 들에서 양치 던 그 시대의 가장 뒤떨어진 목자들에게 꿈을 보여주셔서 예수의 나심을 알고 가장 먼저 찾아가 축하하게 하셨습니다. 군대백부장 고넬료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베드로를 청하여 은혜 받으라고 계시를 주심으로 고넬료 가족 모두와 종들까지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었고 또 하나님이 그 모습들을 보시고 기쁘게 여기셨던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고 복을 받는 길은 단 한가지입니다. 그 모습이 이 늙은 종의 모습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향기로운 인생은 하나님도 감동받으십니다. 새해는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한 해 동안 많은 신앙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고 이 종이 인도받은 그 인도를 우리도 받게 될 것입니다.
출처/이정익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