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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호 (암3:1-8 눅 12:54-59)
이태리 여행을 가게 되면 화산 폭발로 묻혀버렸다가 발굴된 폼페이를 구경하게 됩니다. 79년 8월 24일 폭발하기 시작한 베스비오 화산 남동쪽에 위치하였던 도시로 화산재와 날아온 돌들과 가스로 도시 전체가 매몰되었습니다. 매몰당시 폼페이의 인구는 2만으로 추정되며, 그 중 약 2000여명이 죽었습니다.
폭발이 갑작스러운 것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전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8월 중순경부터 규모가 작은 지진이 계속하여 일어났으며, 이와 같은 작은 지진이 그전에도 있었으나 폼페이는 발전하고 있었으므로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웃해 있었던 도시인 헤르쿨라네움이 화산 폭발로 땅 위에서 사라진 다음에도 폼페이는 대피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17년 전인 62년에 대지진으로 한 번 혼이 난 적이 있었던 폼페이는 79년 당시에도 계속 재건 중에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 하늘에서 이글거리는 화산재와 경석들이 엄습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하였고, 그 이튿날 아침 최초의 쇄설류(碎屑流)가 북쪽 성벽 앞까지 밀려왔을 때 시민들은 때가 늦었음을 깨닫고 당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집 안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재빨리 재물을 챙겨 집을 나서려던 사람들은 무너지는 건물 더미에 깔려버렸습니다. 그 외의 화산재와 유독 가스에 질식되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곱 시간 동안 계속된 재앙은 폼페이를 완전히 뒤덮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끔찍한 재앙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것이 아니라 10여년 전에 이미 대지진으로 예고가 되었고, 화산이 계속 연기를 뿜어내고 있어서 언젠가는 폭발할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히려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나는 화산은 도시 풍경을 더 낭만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였습니다.
발굴된 폼페이의 모습은 대단히 아름답고 풍요한 도시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집집이 수도가 놓여 있고, 도로도 돌로 잘 포장되어 있었으며 큰 목욕탕도 있어 휴양도시로 인기가 있었던 곳으로 판명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시를 너무 멋지게 가꾸었기 때문에 화산이 폭발하여 위기가 닥쳐오는데도 '설마'하는 생각으로 피하지 않다가 변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자연의 재앙에는 항상 징조가 보이고 미리 대비만 하면 큰 화는 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징조를 무시하거나 요행을 바라다가 결국 죽음을 당하곤 합니다. 요즈음은 측정기기의 발달로 지진이나 기타 천재지변을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아무리 기상청이나 지진관측소가 경고를 발하여도 사람들은 거기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다가 화를 당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계십니다. 예민한 영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 신호의 의미를 알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신호를 올바로 포착만 한다면 환난은 피하고 은총과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자연의 재해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서 만나는 여러 문제들에는 반드시 신호나 징조가 있어 미리 예고를 하여 줍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이 신호를 바르게 읽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세워질 것입니다.
잃어버린 인지 능력
성경에는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뜻함과 동시에 하느님이 가지고 계신 생명의 속성들을 나누어 받았음을 뜻합니다. 우리 인간은 오관과 더불어 영적 감각들을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완전한 영적 감각을 갖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이르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면 우리의 영적 감각은 완전하게 발달되어서 모든 영적인 것들을 인지하게 되고 하느님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다른 동물과 달리 영적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하느님이 지으신 세계 속에서 그 신호를 포착하고 거기에 따라 살 수 있게 창조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에는 영적 감각보다는 육적인 감각이 더 발달하여 많은 정보를 얻어서 자기의 몸을 보호하고 필요한 것을 얻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감각이 발달하여 예민하다는 것은 생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가령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거나 귀가 멀어서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불편한가를 우리가 압니다. 이런 감각의 장애는 생존에 큰 위협이 됩니다. 우리 몸에는 오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생존을 위한 정보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깃들여 있습니다.
비만클리닉 의사의 말에 의하면 우리 몸의 신호를 잘 파악하고 따르면 비만이 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배고플 때 밥을 먹고 필요한 만큼만 먹고 멈추는 일, 배고프지 않을 때는 간식 같은 것을 먹지 않는다든지 하면 비만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몸의 신호를 정확하게 따르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섭취하고 몸이 요구하는 운동을 무시해 버리곤 하기 때문에 비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사람들이 자연의 리듬을 따라서 살다가 문명이 발달하면서 도시가 생겨나고 도시 생활은 자연의 리듬보다는 생활의 편리를 따라 이루어지면서 신체의 리듬이 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의 리듬을 따라 살 때에는 우리의 감각이 자연의 신호를 잘 포착할 수 있었지만, 도시 속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감각들은 퇴화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도시 소음에 길들여진 우리의 귀는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며, 인공감미료로 만들어진 음식들을 먹으면서 우리는 몸의 신호를 놓치고 있습니다. 맨발로 흙바닥을 뛰어다닐 때는 흙으로부터 기(氣)를 얻어 건강하였지만,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두터운 신발을 신고 걸어다니는 현대인들은 자연으로부터 단절되어 시들시들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기를 발명하면서 문명이 발전하였지만, 그만큼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도시에서 기르면서 자연의 소리와 신호를 모두 차단시켜버리고 맙니다. 흙을 만지며 풀밭에서 뒹굴고 개울물에 수영하면서 자라야 할 아이들이 시멘트 방 속에 갇혀 온갖 인공으로 된 음식을 먹으며 자라기 때문에 저들의 감각이 무디어지고 그 몸은 병들게 됩니다.
이렇게 육체적 감각이 무디어지면서 영적 감각은 더더욱 개발되지 못한 채 잠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연의 신호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기에 하느님이 보내신 영적 신호는 더더욱 깨닫지 못한 채 무심하게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결국 인간들은 그들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존재마저 잊어버리게 되면서, 하느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왕국을 건설하여 왔습니다. 하느님의 신호와 자연의 소리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 인간의 왕국은 자연을 개발하면서 파괴하였고,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온갖 비극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인간의 죄악 때문에 하느님이 지으신 생명공동체는 산산조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강력한 신호
하느님께서는 모든 감각이 둔화되어버린 인간을 깨우치시기 위해서 특별한 방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느님께 부름을 받을 때도 불이 붙으면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고, 그에게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다음에야 모세가 비로소 그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만큼 모세의 감각이 무뎌져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하느님의 명령을 전할 때 바로가 듣지 않았고 몇 가지 기적을 행하였으나 바로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한 가지씩 그 땅에 재앙이 닥쳐왔지만, 완악하였던 바로의 마음은 좀처럼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열 번째 재앙으로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처음 새끼들이 몰살당하였을 때 비로소 항복하고 히브리인들을 놓아주었습니다. 견고하게 선 인간의 왕국은 좀처럼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받아드리려 하지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의 선민으로 시내산에서 계약을 맺고 율법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하느님의 신호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홍해의 기적과 반석에서 나오는 물과 만나로 내리는 양식을 먹으면서도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는 강력한 신호인데도 하느님보다는 우상을 더 좋아하였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가나안 점령을 통해서 보여준 놀라운 기적들은 모두가 하느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강력한 신호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 굳어져서 하느님을 인정하고 섬기기보다는 이 땅의 문명에 이끌려 죄악의 길로 나갔습니다.
그 후에 그 백성을 깨우치기 위하여 나타난 사람들이 바로 예언자였습니다. 예언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영적 감각이 예민하여 꿈이나 계시, 혹은 다른 사람들이 무심하게 보아 넘기는 사건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이 보내시는 신호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 뜻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열심히 전달하면서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갈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아모스 말씀에 예언자가 예언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 하느님은 당신의 비밀을 그 종 예언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신다. 사자가 으르렁거리는데 누가 겁내지 않겠느냐? 주 하느님이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느님은 기적을 통해서 보내시는 신호만 가지고는 그 백성들이 좀처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예언자들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그의 뜻과 말씀을 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백성들은 예언자를 믿지 않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 백성들은 무뎌져 있었고, 오늘의 삶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을 보내심
하느님은 마침내 예정하셨던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그의 신호를 인간들이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그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운동 경기 가운데 야구가 아마도 가장 많이 신호를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코치가 운동장에 서서 이상한 손짓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치고 달리기를 하라든지 하는 지시를 손짓으로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자기 선수들에게 필요한 지시를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투수와 포수 사이에도 어떤 공을 던지라는 주문을 손가락으로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가끔 그 신호를 잘못 파악하고 코치의 지시와는 다르게 뛰다가 아웃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수들은 그 신호를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사전에 많은 훈련을 받게 마련입니다. 가끔 그 신호가 통하지 않아서 결국 직접 달려가서 이야기 할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이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내신 하느님의 신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꾸 잘못된 길로만 나가는 인간을 바로 잡기 위하여 마침내 그의 아들을 직접 보내셔서 하느님의 나라가 무엇이며 그의 뜻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그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이 얼마나 무뎌졌는가를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여러 가지 기적과 동시에 하늘 나라의 비밀들을 여러 교훈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 때를 분별하지 못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았던 죄의 담이 허물어지면서 하느님 편에서 우리 가운데로 자유롭게 오실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성령께서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을 비롯한 성도들 가운데 오셔서 그 영적 지각력을 뛰어나게 하시므로 하느님의 신호를 빨리 알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우리가 하느님이 보내시는 신호를 올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영적 감각이 개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감각이 개발되려면 선입견(先入見)을 완전히 버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선입견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 감각들이 그 밑에 깔려 질식되고 있습니다. 우리 오관(五官)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이 날로 발전하면서 우리에게 준 경험들은 거의 절대화되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더욱 발달된 매스컴으로 해서 세계 어디서나 지식이 보편화되고 상식화되어 있기에 오늘 인류의 영적인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기에 처하여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위기를 느끼면서 우리의 두꺼운 인간적인 경험과 지식의 껍데기를 벗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드리면서 성령이 들어오실 수 없도록 두껍게 쓰고 있는 선입견의 껍데기들을 깨쳐 버려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깨어질 때 우리 속에 있는 영적 감각이 되살아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하느님의 신호를 보다 잘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계십니다. 이 신호를 올바로 파악할 때 여러분에게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며, 올바른 삶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감각이 둔하면 실족하기 쉬운 것처럼 하느님의 신호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면 여러분의 삶 자체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이 시대가 특별히 가치관의 혼란으로 인하여 어지럽기 때문에 잘못되기 쉬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 하느님의 신호를 살펴 올바른 선택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영적 감각을 무디게 하였던 모든 이념과 선입견들을 털어 내고 성령 충만함으로 끊임없이 보내시는 하느님의 신호를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몰려가는 넓은 길로 가지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매일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므로 늘 승리하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