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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도우시리라 (시46:1∼7)
유다왕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군사를 이끌고 유다 나라에 쳐들어 왔습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내며 항복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때에 히스기야왕은 전국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요구하며,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군대 18만 오천명을 몰살하시고, 그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하심에 감사하며, 레위 자손 고라로 하여금 하나님께 찬양토록한 것이 시편 46편의 배경입니다. 이 시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1.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46:1-3).
하나님의 도우심은 두려움을 없이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북 이스라엘을 단숨에 삼키고 남왕국 유다에 노도같이 밀려오는 앗수르 군대를 심히 두렵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물리치시고 두려움을 없이하셨습니다. 본문 1절의 말씀대로 땅과 하늘, 그리고 산과 바다가 요동하고 무너지는 일이 문자 그대로는 없을지 모르나,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길에는 이같이 두려운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같은 두려움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것을 두려워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고 하십니다. 모세는 홍해 바닷가에서 두려워 떨고 원망하는 백성에게 "두려워 말고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출14:13)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무서운 질병보다 지금의 주사바늘을 두려워하듯이, 참으로 두려워할 것은 두려워 아니하고, 지금 보이는 것에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사 두려움을 없이 하시는 능력이시요, 피난처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출14:15)고 하셨습니다. 다윗왕이 불레셋의 침공을 받았을 때도 하나님은 하늘의 군사를 보내사 뽕 나무 위에 발걸음 소리로 싸우게 하셨습니다(대상 14:13-17). 성도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파도를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자들아 두려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고 기도하는 자는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실망하고 방황합니까?
2.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시편 46:4-7)
하나님의 도우심은 기쁨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희락의 영양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성소의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앗수르를 두려워하는 히스기야왕이 하루아침에 적군이 물러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큰 기쁨은 슬픔처럼 말이 없다"고 하였는데 밀려오는 은혜의 기쁨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본문은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5절)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친척 한 분이 심한 병에 결려 죽게 되었습니다. 전 가족이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도우사 병이 낫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건강을 회복하여 사업도 하고, 나라의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가정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가족 전체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아들 둘은 장로님으로, 손자 둘은 목사님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전적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쁨은 영원 할 수가 없습니다. "전대에 돈이 쌓이면 도둑이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돈이 쌓이는 것은 기쁨이나, 또한 도둑의 두려움이 동반하는 법입니다. 애기를 낳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러나 거기는 산모가 위태로운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절대적이요, 영원하고, 쇠하지 않는 기쁨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임과 동시에 기쁨의 종교입니다. 예수님도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한다"(요17:13)라고 하였습니다. 기쁨이라는 헬라 말 "카라(chara)"는 성경에 132회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기쁨은 환경과 처지와 조건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3. 여호와의 행적을 보라(시편 46:8).
하나님은 전쟁의 무기를 없이하고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시46:9). 하나님은 평화와 구원을 주시고 열방 중에서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도우시는가에 있습니다. 히스기야를 도우신 하나님은 오늘도 히스기야 같은 이들을 도와주십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왕하18:3). 그는 "그 주상을 깨뜨리고 모든 우상을 헐어 버렸습니다"(왕하18:4). 그는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습니다"(왕하18:5).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습니다"(왕하18:6).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왕하19:35). 하나님은 이같이 우상을 버리고 정직하고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현대의 우상은 문자 그대로의 우상일수도 있지만, 기독교 인본주의 우상은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기독교 인본주의란 아담 때부터 인간 이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때 범하는 죄이며,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를 이용하여 자기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삶이 더욱 풍성하게, 더 길게, 더 화려하게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돕기를 기뻐하십니다. 두려움이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쁨과 구원의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