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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하자 (시105:3)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시편 105 : 3
흔히 '하나님이 좋다'고 말합니다. 하루 종일 하나님이 좋다고 말을 해도 이것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아버지가 좋다고 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기뻐할 만한 좋은 일을 해야만 기뻐하는 것이지 기뻐할 일은 하지 않고 입으로 떠드는 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 : 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욕을 보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은 하나님을 자랑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불신자들은 바로 그런 사람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을 자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에게 유익이 옵니다. 또한 축복이 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상을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이 땅위에 사는 동안 축복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까?
1.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세상에 자랑거리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건강을 자랑하겠습니까? 물질을 자랑하겠습니까? 아니면 명예나 권세를 자랑하겠습니까? 학벌이나 지식을 자랑하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자랑거리가 된다 하더라도 일시적이고 순간적입니다. 이것들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꺾이게 되고 시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땅의 것은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실망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이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알면 알수록 실망하게 됩니다. 사람은 필요할 때는 이용하고 쓸모 없을 때는 배신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알면 알수록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밀을 지키고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자가 얼마나 됩니까? 지나고 나면 믿고 말한 사람에 의해서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변하는것이 세상입니다. 사랑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가면 갈수록 삭막한 것이 세상입니다. 어디 가면 반겨 맞아 줄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박절한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안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 변함없으신 하나님, 언제나 사랑과 긍휼로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받은 사랑, 받은 은혜,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말로 자랑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집니다. 특히 자기가 받은 바 은혜에 대해서 말을 하면 불신자들도 하나님을 믿어 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는 중에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간증을 통해서 전도를 하게 되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입으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저 항상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땅에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말년에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전도서 2 : 1에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 : 2에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귀하게 깨달은 것이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12장은 전도서의 결론입니다. 13절에서 말하기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귀하고 큰 복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 세상을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 : 15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 다릅니다. 요한복음 14 : 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으면 근심도 두려움도 물러갑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으면 세상을 이깁니다. 요한복음 16 : 33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평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두려워하셨다면 그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담대함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 평강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도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 : 5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드려도 억지로나 마지못해서 드리는 찬송이 아니라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히브리서 13 : 15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찬양하는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입니다.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감사와 은혜만 있습니다.
저는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여덟 시간 동안 기도한 적이 잇습니다. 그 기도 시간에 찬양을 많이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 불렀던 찬송이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찬송가 82장)라는 찬송입니다. 어떻게 불렀는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한없이 불렀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찬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찬송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찬송입니다. 죄와 허물에서 구원해 주시고 영생을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하는 찬송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 구원의 기쁨으로 부르는 찬송이 바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찬송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갈 때에 불평도 원망도 많았습니다. 홍해가 앞을 가로막을 때는 절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가르고 건넌 다음에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서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출 15 : 1-18). 미리암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출 15 : 21). 바로 이런 찬송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은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들은 억울하게 매를 맞고 옥에 갇혔지만 누구를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밤중에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25절). 날이 밝으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일이 전개될지 모르는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찬양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지진이 나서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묶였던 것이 풀렸습니다(26절). 뿐만 아닙니다. 이 일을 보고 있던 간수가 깜짝 놀라 옥안을 들여다보니 바울과 실라는 그대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간수는 여기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자랑할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서 불신자를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상황과 환경을 초월해서 늘 은혜 충만하여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고, 우리는 문제 해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구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요청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요, 하나님께 간구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보다도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섬겨 왔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창 12 : 1-4).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느브갓네살보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단 3 : 16-18). 이들이 하나님을 선택했다는 것은 삶을 포기한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선택한 것은 곧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영원한 삶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그는 지위나 명예보다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일시적인 부귀영화보다도 영원한 하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사자굴에 갇히게 됩니다.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구하면 즐거움을 얻습니다(시 105 : 3). 우리는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마 6 : 24). 여기서 '겸하여'라는 말은 '동등한 위치'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오직 여호와만을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수 24 : 14). 바로 이것이 여호와를 구하는 것이고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구하되 여호와의 능력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4절). 능력은 방언이나 예언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곧 능력입니다. 소년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을 들고 나아가 장군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삼상 17 : 45). 다윗의 힘이나 능력으로 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여호와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를 구하되 여호와의 얼굴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이란 여호와의 자비, 여호와의 사랑, 여호와의 용서를 말합니다. 죄를 지은 자식이 아버지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듯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얼굴을 들 때 하나님은 자비와 용서의 얼굴로 대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놓이게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랑할 것이 있다면 사도 바울처럼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해야 할 줄 믿습니다(고전 3 : 21).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갈 6 : 14).
출처/김충기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