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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병기들 (롬6:12-14)
지난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대포동 2호 등 7발 발사로 세계가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언론은 정작 우리나라는 놀라지 않고 있는 것이 놀랍다고 랍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국민 중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둔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답답할 뿐입니다.
현재 북한의 일반 근로자들이 받는 평균 월급은 북한 돈으로 대략 3,000원 정도입니다. 북한 당국의 공식 환율(150원)로는 20달러이지만, 실제 유통되는 암시장 시세로는 1달러도 안 되는 세계 최하수준이랍니다. 함경북도 김책시의 경우 쌀 1kg의 가격이 900 - 1,200원 정도인데 미국의 대북 제재로 달러는 훨씬 더 올랐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줄줄이 탈북을 꿈꾸고 있습니다. 일부 민간단체들의 추산에 근거하면 탈북자의 수는 10만에서 20만 사이입니다. 이들이 국내에 8,320명, 그 외에는 동남아에서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당국은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중국-북한 국경지역에 대못이 박힌 널판자등 장애물들을 깔아 놨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은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나, 중국에서 그렇게 가슴조이며 사느니 남조선에 가다가 죽고 싶었다’라며 자유를 그리워 하고 있는데 . . . 주민들은 이렇게 어려운데 이번에 쏘아올린 미사엘 비용은 600억이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북한은 정신을 치리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최근 6년간 군사력이 3배나 증강되었다고 합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세계군사력비교(The Mlilitary Balance)’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99년 21억 달러에서 지난해 60억 달러로 6년간 3배가량 늘었다고합니다. 이것은 총 예산의 44.4% 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세계1위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통일의 그날이 머지 않은 듯 싶습니다. 미국의 국방전문가들은 한국의 통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그릇을 준비하고 키워야 합니다.
20여년간 북한선교에 전념해온 모퉁이돌 선교회의 이삭 목사에 의하면 “(북한체제의) 마지막 때가 된 지금, 북한주민의 자유화를 위해 ‘전면적 융단폭격’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방송이나 문서선교, 풍선띄우기 등을 통해 . . . 모퉁이돌선교회는 7월부터 미국의 VOA, RFA 방송을 통해 대북단파방송을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내 ‘지하성도’들의 요청으로 포켓성경 10만 권을 제작해 들여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는 천여개의 지하교회와 숨어 있는 성도를 포함하면 10만명이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의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북한주민의 구원과 신앙자유를 위한 기도를 선포 했습니다. 국제로잔위원회는 6월 25일을 ‘북한주민구원을 위한 기도일’(The Day of Prayer for Save N. Koreans)로 선포했습니다. 당사자인 우리는 무관심하고 있지만 세계는 북한을 염려하고 북한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아시고 기도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지구상에서 하루도 전쟁이 없는 날이 없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바로 전쟁입니다. ‘보이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 ‘영적인 전쟁’, ‘마귀와의 전쟁’입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를 알아야 이깁니다. 디아볼로스(모든 악령들의 우두머리인 마귀)입니다.
이 마귀는 타락한 천사장으로서(사14:12),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마귀는 궤계를 부립니다. 술책, 속임수를 써서 사람으로 마귀의 종이 되게 합니다. 방송국을 통해서 무속신앙을 확산시키고 기독교 죽이기를 합니다. 운세 전화 점들을 통해서 청소년들이 점성술에 빠져들게 합니다. 귀신놀이 관상보기, 손금보기 . . 마귀는 이렇게 교묘하게 위장하여 술책을 부립니다. 문화라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올무에 넣고자 합니다.
마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되고 참되지 않다고 의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마음의 세계에서도 마귀와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세계에서도 늘 싸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죄의 영향력 아래서 언제든지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
모든 사람은 자신을 조정하는 어떤 세력에 의하여 살아갑니다. 우리 속에는 두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세력이, 다른 하나는 죄의 세력이 우리로 갈등을 가지게 합니다. 죄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죄는 아직도 우리 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롬6:12) 죄가 왕 노릇하면 내 주인은 죄가 되고, 죄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언제나 어떤 세력에 의해 사는 약한 존재입니다.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죄는 우리 몸을 통하여 역사 합니다. 몸은 언제나 죄를 짓게 하는 욕구가 생깁니다. 먹고 싶은 욕구, 가지고 싶은 욕구, 쉬고 싶은 욕구, . . . 몸의 욕구를 그대로 허용하면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몸의 욕구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기독교는 감상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소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이란 전쟁과 같은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영적인 싸움의 연속입니다. 죄와 늘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예전에는 죄가 나를 지배하려고 할 때는 그 죄의 지배를 거부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죄가 나를 지배하려 할 때에는 거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성화’라고 하지요. 거룩해져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화’란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아이를 낳을 때 성숙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부흥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성경을 보고, 찬양을 하고, 기도 좀 했다고 해서 순식간에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동경하고,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처럼, 우리도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려는 죄성이 아직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두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1:23) 그러므로 거룩을 위해 영적 전투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공부, 속회예배, 특별기도, 수많은 예배들이 있지만 그런 정도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말씀에 따른 삶이 있지 않으면 그런 신앙은 형식주의로 전락하고, 머리에 든 성경 지식은 우리를 더욱 교만하게 만들고 위선자를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반기독교 정서가 생겨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짠맛을 잃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듣고 끝나 버립니다. 많이 듣기는 하는데 귀는 커져 있는데 읽기는 많이 하는데 생활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몸의 사욕을 죽여야 합니다.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라비아 사람이 어느 추운 날 밤, 천막 속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 낙타가 천막 속에 머리를 들이밀면서 말을 했습니다. “주인님, 날씨가 너무 추워서 . . .미안하지만 머리 좀 넣게 해주세요.” 같이 사는 입장이라 아라비아 사람은 그러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있다가 낙타는 앞다리를 천막에 집어넣으면서, “주인님, 미안합니다. 다리가 아파서 . . . . . . 좀 봐주세요!” 그 정도까지는 어쩔 수 없어 그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금 있다가 낙타는 천막 속으로 쑥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 “주인님, 천막을 들치고 서 있으니까 찬바람이 들어와 안 되겠는데요.” 결국 낙타의 큰 몸집 이 천막 안으로 들어 와 주인은 밖으로 쫓겨나고 그 천막엔 낙타 혼자 들어앉게 되었습니다. 안 되는 일은 처음부터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는 이솝우화의 하나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과정을 곰곰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큰 죄를 계획하고, 저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가 어떤 죄를 저지르기 전에 먼저, 마음이 그 죄를 용인하도록
바뀌어지는 과정이 있고 나서 그러는 것이 대개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이면 처음부터 단호하게 배격하는 건실한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아주 사소한 경우라도 잘못된 것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죄가 마음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욕구를 순종치 말고 당연히 죄와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의 사욕과 싸울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몸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사욕’은 악한 욕망을 가리키는 말인데 음욕(마5:28),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막4:19), 호모섹스(롬1:26-27), 악한 것에 대한 욕구(고전10:6), 원망, 불평, 자랑, 아첨과 같은 욕망 등에 이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에는 ‘몸의 사욕’을 ‘육체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어느 사업을 하는 분이 이중장부를 가지고 사업을 했습니다. 너무 믿을 만한 사람이었고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이후에 회사의 비리를 다 알고 있는 경리는 사장을 위협하고, 협박
죄는 이처럼 처음에는 숙이고 들어오지만 뒤에는 완전히 사람을 지배하고 그 위에서 왕노릇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당당히 맞서서 싸워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의의병기로 쓰임받자.
‘병기’는 전쟁에 쓰는 무기입니다. 로마는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마차나 칼, 방패, 창, 투구 등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칼 하나가 누구의 손에 들려 지느냐에 따라 제각기 기능을 달리합니다. 강도의 손에 칼이 들리면 사람을 해치고 물건을 빼앗는 도구가 될 것이요, 의사에게 들리면 사람을 수술하여 살리는 도구가 될 것이요, 요리사에게 들리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로 누구의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세상은 점점 죄악으로 관영합니다. 그 죄의 이면에는 반드시 사탄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적당히 편리한대로 생활하다가는 사탄의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의의병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인류 역사에 말할 수 없는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고 아무런 유익된 일을 하지 못하여 부끄러운 인생을 보낸 사람들도 있습니다. 철학자 벤담은 인생을 3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거미와 같은 인생으로 남을 해치는 삶, 개미와 같이 남을 해하지도 유익도 주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 벌과 같이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인생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인간은 두 가지 삶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죄가 왕 노릇해서 불의의 병기로 사용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 믿고 죄를 멀리함으로 의의 병기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의의 병기’란 무슨 뜻입니까? 죄가 마음대로 사용하는 도구라는 말입니다. 죄가 우리에게 왕 노릇하도록 내버려둔 상태를 말합니다.
죄가 마음대로 우리를 끌고 다니면서 그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의의 병기’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절대 순종하며 따라가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물건처럼 쓰임을 받습니다.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 . .
영적인 세계에는 중간 상태는 없습니다. 의의 병기가 아니면 불의의 병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갈5:16에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극적으로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장소를 피해야 합니다. 더러운 오물이 있으면 우리가 피해 가듯이 . . 죄의 장소를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나는 괜찮아!’라면서 객기 부리지 마십시오. 죄를 이기려면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는 기회만 있으면 우리에게 접근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들이 일어나는 것은 항상 그 기회를 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열정을 바쳐야 합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 열심히 충성하고 있는 동안에는 불의의 병기가 되지 않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시험에 들거나 탈선의 우려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해야 할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은 돌아다니다가 결국 유혹에 빠질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속담에 “돌아가는 물방아는 얼 새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정신병은 주로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여인들 중에서도 자녀를 다섯 이상 낳은 여인은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로 아이 하나를 둔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고 할 일이 없어지니 서글프게 헤어졌던 옛날 애인 생각이나 하고 있고,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들어 정신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바쁜 사람은 정신병에 걸린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의의 병기로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몰두하고 열정을 바치면 됩니다.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소중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자는 다른 유혹에 빠질 겨를이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자긍심을 가지고 부지런하고 바쁜 사람은 교회든 사회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바쁘게 사람은 무슨 시험을 당하겠습니까?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사람들이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할 일 없어 빈둥거리는 사람에게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람이 나고 탈선을 하고 . . . . 일하지 않고 쉬고 있을 때, 여유가 많을 때 사단의 유혹이 밀려드는 것입니다.
3. 은혜 아래서 사는 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법 아래 있는 자와 은혜 아래 있는 자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는 것이요, 스스로 아무리 교만하고 자신만만해도 율법에 비춰보면 죄인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 살면 양심에 자유가 없고, 억눌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죄책고 가책에 억눌려서 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은 죽이는 것이지만 영은 살리는 것”(고후3:6)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우리를 수 많은 규제와 제한 속에 가둬 두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양심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항상 죄의 문제로 고민에 빠지고 실패와 좌절 속에서 살지만,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은 자신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승리의 삶을 삽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에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은혜아래 있는 사람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심을 날마다 감격하며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늘 찬송합니다. 늘 기쁨으로 봉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자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내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없는 자는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내가 꼭 그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빈둥거리게 마련이다. 빈둥거리다 보니 죄의 유혹의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장이 좋아야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연장입니다. 병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심에 있어서 우리는 쓰임받는 공구들입니다. 좋은 공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는 병기,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고, 섬기고 봉사하는 병기들로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임경택목사 설교 중에서
지난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대포동 2호 등 7발 발사로 세계가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언론은 정작 우리나라는 놀라지 않고 있는 것이 놀랍다고 랍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국민 중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둔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답답할 뿐입니다.
현재 북한의 일반 근로자들이 받는 평균 월급은 북한 돈으로 대략 3,000원 정도입니다. 북한 당국의 공식 환율(150원)로는 20달러이지만, 실제 유통되는 암시장 시세로는 1달러도 안 되는 세계 최하수준이랍니다. 함경북도 김책시의 경우 쌀 1kg의 가격이 900 - 1,200원 정도인데 미국의 대북 제재로 달러는 훨씬 더 올랐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줄줄이 탈북을 꿈꾸고 있습니다. 일부 민간단체들의 추산에 근거하면 탈북자의 수는 10만에서 20만 사이입니다. 이들이 국내에 8,320명, 그 외에는 동남아에서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당국은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중국-북한 국경지역에 대못이 박힌 널판자등 장애물들을 깔아 놨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은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나, 중국에서 그렇게 가슴조이며 사느니 남조선에 가다가 죽고 싶었다’라며 자유를 그리워 하고 있는데 . . . 주민들은 이렇게 어려운데 이번에 쏘아올린 미사엘 비용은 600억이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북한은 정신을 치리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최근 6년간 군사력이 3배나 증강되었다고 합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세계군사력비교(The Mlilitary Balance)’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99년 21억 달러에서 지난해 60억 달러로 6년간 3배가량 늘었다고합니다. 이것은 총 예산의 44.4% 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세계1위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통일의 그날이 머지 않은 듯 싶습니다. 미국의 국방전문가들은 한국의 통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그릇을 준비하고 키워야 합니다.
20여년간 북한선교에 전념해온 모퉁이돌 선교회의 이삭 목사에 의하면 “(북한체제의) 마지막 때가 된 지금, 북한주민의 자유화를 위해 ‘전면적 융단폭격’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방송이나 문서선교, 풍선띄우기 등을 통해 . . . 모퉁이돌선교회는 7월부터 미국의 VOA, RFA 방송을 통해 대북단파방송을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내 ‘지하성도’들의 요청으로 포켓성경 10만 권을 제작해 들여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는 천여개의 지하교회와 숨어 있는 성도를 포함하면 10만명이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의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북한주민의 구원과 신앙자유를 위한 기도를 선포 했습니다. 국제로잔위원회는 6월 25일을 ‘북한주민구원을 위한 기도일’(The Day of Prayer for Save N. Koreans)로 선포했습니다. 당사자인 우리는 무관심하고 있지만 세계는 북한을 염려하고 북한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아시고 기도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지구상에서 하루도 전쟁이 없는 날이 없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바로 전쟁입니다. ‘보이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 ‘영적인 전쟁’, ‘마귀와의 전쟁’입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를 알아야 이깁니다. 디아볼로스(모든 악령들의 우두머리인 마귀)입니다.
이 마귀는 타락한 천사장으로서(사14:12),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마귀는 궤계를 부립니다. 술책, 속임수를 써서 사람으로 마귀의 종이 되게 합니다. 방송국을 통해서 무속신앙을 확산시키고 기독교 죽이기를 합니다. 운세 전화 점들을 통해서 청소년들이 점성술에 빠져들게 합니다. 귀신놀이 관상보기, 손금보기 . . 마귀는 이렇게 교묘하게 위장하여 술책을 부립니다. 문화라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올무에 넣고자 합니다.
마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되고 참되지 않다고 의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마음의 세계에서도 마귀와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세계에서도 늘 싸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죄의 영향력 아래서 언제든지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
모든 사람은 자신을 조정하는 어떤 세력에 의하여 살아갑니다. 우리 속에는 두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세력이, 다른 하나는 죄의 세력이 우리로 갈등을 가지게 합니다. 죄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죄는 아직도 우리 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롬6:12) 죄가 왕 노릇하면 내 주인은 죄가 되고, 죄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언제나 어떤 세력에 의해 사는 약한 존재입니다.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죄는 우리 몸을 통하여 역사 합니다. 몸은 언제나 죄를 짓게 하는 욕구가 생깁니다. 먹고 싶은 욕구, 가지고 싶은 욕구, 쉬고 싶은 욕구, . . . 몸의 욕구를 그대로 허용하면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몸의 욕구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기독교는 감상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소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이란 전쟁과 같은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영적인 싸움의 연속입니다. 죄와 늘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예전에는 죄가 나를 지배하려고 할 때는 그 죄의 지배를 거부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죄가 나를 지배하려 할 때에는 거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성화’라고 하지요. 거룩해져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화’란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아이를 낳을 때 성숙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부흥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성경을 보고, 찬양을 하고, 기도 좀 했다고 해서 순식간에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동경하고,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처럼, 우리도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려는 죄성이 아직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두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1:23) 그러므로 거룩을 위해 영적 전투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공부, 속회예배, 특별기도, 수많은 예배들이 있지만 그런 정도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말씀에 따른 삶이 있지 않으면 그런 신앙은 형식주의로 전락하고, 머리에 든 성경 지식은 우리를 더욱 교만하게 만들고 위선자를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반기독교 정서가 생겨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짠맛을 잃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듣고 끝나 버립니다. 많이 듣기는 하는데 귀는 커져 있는데 읽기는 많이 하는데 생활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몸의 사욕을 죽여야 합니다.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라비아 사람이 어느 추운 날 밤, 천막 속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 낙타가 천막 속에 머리를 들이밀면서 말을 했습니다. “주인님, 날씨가 너무 추워서 . . .미안하지만 머리 좀 넣게 해주세요.” 같이 사는 입장이라 아라비아 사람은 그러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있다가 낙타는 앞다리를 천막에 집어넣으면서, “주인님, 미안합니다. 다리가 아파서 . . . . . . 좀 봐주세요!” 그 정도까지는 어쩔 수 없어 그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금 있다가 낙타는 천막 속으로 쑥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 “주인님, 천막을 들치고 서 있으니까 찬바람이 들어와 안 되겠는데요.” 결국 낙타의 큰 몸집 이 천막 안으로 들어 와 주인은 밖으로 쫓겨나고 그 천막엔 낙타 혼자 들어앉게 되었습니다. 안 되는 일은 처음부터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는 이솝우화의 하나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과정을 곰곰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큰 죄를 계획하고, 저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가 어떤 죄를 저지르기 전에 먼저, 마음이 그 죄를 용인하도록
바뀌어지는 과정이 있고 나서 그러는 것이 대개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이면 처음부터 단호하게 배격하는 건실한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아주 사소한 경우라도 잘못된 것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죄가 마음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욕구를 순종치 말고 당연히 죄와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의 사욕과 싸울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몸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사욕’은 악한 욕망을 가리키는 말인데 음욕(마5:28),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막4:19), 호모섹스(롬1:26-27), 악한 것에 대한 욕구(고전10:6), 원망, 불평, 자랑, 아첨과 같은 욕망 등에 이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에는 ‘몸의 사욕’을 ‘육체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어느 사업을 하는 분이 이중장부를 가지고 사업을 했습니다. 너무 믿을 만한 사람이었고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이후에 회사의 비리를 다 알고 있는 경리는 사장을 위협하고, 협박
죄는 이처럼 처음에는 숙이고 들어오지만 뒤에는 완전히 사람을 지배하고 그 위에서 왕노릇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당당히 맞서서 싸워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의의병기로 쓰임받자.
‘병기’는 전쟁에 쓰는 무기입니다. 로마는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마차나 칼, 방패, 창, 투구 등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칼 하나가 누구의 손에 들려 지느냐에 따라 제각기 기능을 달리합니다. 강도의 손에 칼이 들리면 사람을 해치고 물건을 빼앗는 도구가 될 것이요, 의사에게 들리면 사람을 수술하여 살리는 도구가 될 것이요, 요리사에게 들리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로 누구의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세상은 점점 죄악으로 관영합니다. 그 죄의 이면에는 반드시 사탄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적당히 편리한대로 생활하다가는 사탄의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의의병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인류 역사에 말할 수 없는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고 아무런 유익된 일을 하지 못하여 부끄러운 인생을 보낸 사람들도 있습니다. 철학자 벤담은 인생을 3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거미와 같은 인생으로 남을 해치는 삶, 개미와 같이 남을 해하지도 유익도 주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 벌과 같이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인생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인간은 두 가지 삶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죄가 왕 노릇해서 불의의 병기로 사용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 믿고 죄를 멀리함으로 의의 병기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의의 병기’란 무슨 뜻입니까? 죄가 마음대로 사용하는 도구라는 말입니다. 죄가 우리에게 왕 노릇하도록 내버려둔 상태를 말합니다.
죄가 마음대로 우리를 끌고 다니면서 그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의의 병기’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절대 순종하며 따라가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물건처럼 쓰임을 받습니다.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 . .
영적인 세계에는 중간 상태는 없습니다. 의의 병기가 아니면 불의의 병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갈5:16에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극적으로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장소를 피해야 합니다. 더러운 오물이 있으면 우리가 피해 가듯이 . . 죄의 장소를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나는 괜찮아!’라면서 객기 부리지 마십시오. 죄를 이기려면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는 기회만 있으면 우리에게 접근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들이 일어나는 것은 항상 그 기회를 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열정을 바쳐야 합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 열심히 충성하고 있는 동안에는 불의의 병기가 되지 않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시험에 들거나 탈선의 우려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해야 할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은 돌아다니다가 결국 유혹에 빠질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속담에 “돌아가는 물방아는 얼 새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정신병은 주로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여인들 중에서도 자녀를 다섯 이상 낳은 여인은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로 아이 하나를 둔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고 할 일이 없어지니 서글프게 헤어졌던 옛날 애인 생각이나 하고 있고,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들어 정신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바쁜 사람은 정신병에 걸린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의의 병기로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몰두하고 열정을 바치면 됩니다.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소중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자는 다른 유혹에 빠질 겨를이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자긍심을 가지고 부지런하고 바쁜 사람은 교회든 사회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바쁘게 사람은 무슨 시험을 당하겠습니까?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사람들이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할 일 없어 빈둥거리는 사람에게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람이 나고 탈선을 하고 . . . . 일하지 않고 쉬고 있을 때, 여유가 많을 때 사단의 유혹이 밀려드는 것입니다.
3. 은혜 아래서 사는 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법 아래 있는 자와 은혜 아래 있는 자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는 것이요, 스스로 아무리 교만하고 자신만만해도 율법에 비춰보면 죄인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 살면 양심에 자유가 없고, 억눌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죄책고 가책에 억눌려서 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은 죽이는 것이지만 영은 살리는 것”(고후3:6)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우리를 수 많은 규제와 제한 속에 가둬 두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양심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항상 죄의 문제로 고민에 빠지고 실패와 좌절 속에서 살지만,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은 자신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승리의 삶을 삽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에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은혜아래 있는 사람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심을 날마다 감격하며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늘 찬송합니다. 늘 기쁨으로 봉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자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내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없는 자는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내가 꼭 그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빈둥거리게 마련이다. 빈둥거리다 보니 죄의 유혹의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장이 좋아야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연장입니다. 병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심에 있어서 우리는 쓰임받는 공구들입니다. 좋은 공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는 병기,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고, 섬기고 봉사하는 병기들로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임경택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