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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말하자 (신명기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 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 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행복”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단어로, 모든 이들이 바라는 소망입니다. 모든 부모님의 바램입니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세상은 행복을 상품화하여 팔고 있습니다. 이것을 먹으면 행복하다고 광고합니다. 이 집에 살면 남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이 차를 타면 행복이 보장된다고 말합니다. 고객의 행복이 기업의 목적이라고 광고합니다.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한민국 헌법에까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말을 합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세계 10대 도시 중 서울의 행복지수가 꼴찌였습니다. 그 이유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행복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행복자”라고 말씀합니다(신 33:29). “장차 행복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하게 될 것이다”라는 조건도 아닙니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우리가 행복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행복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한 행복자로서 우리는 행복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에 대해 알아봄으로, 우리 모두 날마다 행복을 말하는 행복자들이 됩시다.
첫째, 아버지가 있어 행복하다
우리에게는 아버지라는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가 계십니다. 나를 교육하는 스승 아버지도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아버지” 해보십시오. 이름만 불러도 힘이 납니다. 이름만 불러도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아버지”라고 불러 보십시오. 앞길이 보입니다. 나를 인도해주십니다. 지혜가 부족할 때, “아버지” 해보십시오.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십니다. 내가 깨달을 때까지 가르쳐주십니다. 두렵고 떨릴 때, “아버지”를 불러 보십시오. 우리를 아버지 뒤에 숨겨주십니다.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영광의 승리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아버지가 계시기에 우리 인생은 희망입니다. 아버지와 함께하기에 우리의 삶은 만사형통입니다. 아버지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마 7:11).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영광을 누리게 하십니다(눅 15:22). 우리만큼 아버지의 사랑을 입은 자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신 33:29).
아버지는 행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런 아버지께 말합시다. 아버지에 대해 말합시다. 아버지와 함께 말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 나를 가르치는 스승 아버지를 기뻐하는 자는 그 마음의 소원이 성취됩니다, 그의 삶이 정오의 빛 같이 빛나게 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하나님 아버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4-6).
둘째, 나라가 있어 행복하다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집이 없는 서러움, 타향살이 하는 서러움, 직장을 잃어버린 서러움. 당사자가 아니면 그 고통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서러운 것이 있습니다. 나라 잃은 서러움입니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도 없듯이 나라를 잃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나라가 행복임을 잊고 있습니다. 나라가 있다는 것은 미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울타리가 있다는 것이고, 내가 있다는 것이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조국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있고, 조국 대한민국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이 두 배가 되는 것입니다.
곶감이 아무리 많아도 먹어야 맛을 알듯이 행복도 말하는 자가 누립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합시다. 하늘의 기업이 우리의 것입니다(벧전 1:3,4). “대한민국은 희망의 나라”라고 말합시다. “나는 애국자”라고 말합시다. 하나님 나라와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면 모든 것이 더하여집니다. 성경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가정이 있어 행복하다
시대가 바뀌면서 급증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집안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입니다. 애완동물을 가족보다 더 소중히 여깁니다. 또 한 가지는 우울증의 급증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증가하는 이유는 ‘고독’입니다. 사람들이 외로워합니다. 소외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독이라는 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정이 시작될 때입니다. 가정에는 최고의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가정은 내가 온전해지는 자리입니다. 가정에는 나의 반쪽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짝 지워준 반쪽입니다. 가정에서 그 반쪽과 하나 됩니다. 가정은 우리의 미래가 있는 자리입니다. 사랑의 걸작품인 자녀가 있습니다. 그 자녀는 나의 미래입니다. 그 자녀를 통해 우리의 꿈과 소망이 계속됩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나와 소통하고, 너와 소통하고, 하나님과 소통합니다. 또한 풍성한 관계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행복입니다. 가족과 많은 말을 합시다. 가정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도 말합시다. 그 안에서 행복이 커져갑니다.
넷째, 사명이 있어 행복하다
사람들은 세상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살기 너무 힘들다고 투덜댑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원망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사명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요 9:4). 사도 바울도 사명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고백합니다. 사명이 있기에 죽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명이 있기에 고난을 통해 오는 영광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사명이 있으면 열정이 생깁니다. 돕는 자가 생기고, 빛을 발하게 됩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빛나는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 될 사명이 있습니다. 일터에서는 성실한 일꾼, 유능한 리더가 될 사명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이룰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마치 외줄타기와 같습니다. 밑을 보면 두려워서 떨어집니다. 내가 도착해야 할 목표지를 보고 가면, 건너갈 수 있습니다. 땅의 것을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말합시다. 나의 사명을 말하고, 우리 가족의 사명을 말합시다. 또한 일터의 사명과 교회의 사명을 말합시다. 사명이 행복이 됩니다.
행운을 좇는 인생이 아니라, 행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행복이고, 나라가 행복이고, 가정이 행복이고, 사명이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인생이 됩시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행복을 알고 말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행복자로서 행복을 말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출처/최성규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