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04
요21:1-14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해줍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우선 주님의 말씀은 참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한 이후부터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마16:21)을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대로 죽임을 당하시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부활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은 비록 그 내용이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아무도 일찍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참되다는 사실을 입증해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또한 하나님께는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리시는 일을 비롯해서 불가능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고 공개적인 처형이었으며 숱한 목격자들이 있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더욱 의심의 여지없이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해 사람들과 이 세상과 그 뒤에 있는 사탄이 제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온갖 힘과 수단을 동원하고 간계를 부려도 다 헛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들이 꾸미는 모든 일은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것같이 보여도 결국은 허사로 돌아가고 만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게 지는 것같이 보여도 그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최후의 승리가 주어짐을 증명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 어떤 일에 있어서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절대적이어야 함을 가르치는 사건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죽은 자까지 살리시는 부활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는 죽음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조차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해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바리새인들은 경비병들과 함께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인봉하고 굳게 지켰습니다(마2:66).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 예수님의 이름과 존재와 그의 삶과 사역을 십자가로 못 박고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잊어지게 하려는 수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을 때 그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마28:1-4). 죽은 이는 살아나고 산 자들은 죽은 것같이 되는 반전의 역사, 그것이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 무덤의 돌을 굴려낸 천사가 거기 와있던 여자들(마28:1)에게 한 첫 말이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마28:5)는 것이었으며,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나 빨리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해 갈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평안하냐?” 물으시며 일러주신 말씀도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마28:8-10).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과 무서움이 기쁨과 평안으로 바뀌는 반전의 역사, 그것이 또한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도마는 처음 예수님께서 문이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봤다고 말할 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했습니다(요20:25). 그로부터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하시며 하신 말씀이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요20:26-27). 사도 요한은 이 기록 후에 쓰기를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를 믿는 모든 이들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얻게 될 것임을 확신하게 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디베랴 호수라고도 하는 갈릴리호수가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갔으나 밤새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 일행을 찾아오셨을 때와 꼭 같은 장소, 꼭 같은 시간, 꼭 같은 상황입니다. 이때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물을 던질 곳을 일러주시고 엄청난 수의 물고기를 잡게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이었지만(요21:4) 비로소 요한이 먼저 알아보고 “주님이시라” 말하게 되었습니다(요21:7). 이렇게 제자들과 다시 만난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차례 물으시고 또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도 반복하셨습니다(요21:15-17).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들에 대한 그 어떤 질책도 유감의 표시도 없으신 주님을 봅니다. 우리는 주님에게서 오직 이들을 처음 만나셔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 말씀과 사실상 같은 뜻의 말씀인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만을 듣습니다. 변심한 제자들에게 한결같은 사랑과 신뢰를 보이시는 주님을 발견합니다. 연약하고 비겁한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며 귀한 사명을 맡기시는 주님을 대하게 됩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렇게 먼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와의 화해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알게 해줍니다. 주님의 부활은 무엇보다도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입니다.
부활 후 사십일 동안(행1: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려지시기(막16:19) 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명령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의 제자를 삼는 선교의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 그것이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선교의 지상명령에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셨습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시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 그것이 또한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던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이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을 때 그들에게 나타나신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눅24:13-16). 그들은 예수님이 당신에 관하여 성경에 씌어진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는 말씀에 취하여 그의 말씀을 계속 듣고자 함께 하루를 묵으시도록 예수님을 강권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주님을 알아보았지만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눅24:27-31). 또 두 차례나 제자들이 집에 모여 있을 때 문을 닫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홀연히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기도 하셨습니다(요20:19, 26). 그리고는 그것이 유령의 출현이나 환상을 보는 것이 아님을 믿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못 자국 난 손과 발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며 손을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눅24:40, 요20:20, 27).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눅24:41) 물으시고는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자 받으시고 그 앞에서 잡수시기도 하셨습니다(눅24:42-43). 오늘 본문 12-13절에서 보듯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갈릴리에서 다시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에도 말씀하시기를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고는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셨습니다. 이 사실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게 합니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성과 비연속성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처럼 행동하시며 그때의 제자들과의 관계도 그대로 유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셨습니다.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시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셨습니다. 문이 닫혔는데도 자유롭게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은 부활 후의 우리들도 그러할 것임을 예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 후에도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과는 일정한 연속성이 유지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서 가졌던 부모자식관계 등이 하늘나라에서는 다 소멸되고 모두가 남남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족관계는 그대로 유지되면서도 제 식구들끼리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다 형제자매처럼 사랑하게 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연속성과 함께 부활 후의 우리 앞에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갖는 온갖 제약이 사라진 놀라운 삶이 또한 전개될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 주님의 부활입니다.
이제 주님의 부활 앞에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의 참됨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이성의 능력으로 이해하거나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갖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부활 앞에서 우리는 죽은 자까지도 살리시며 능치 못할 것이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맞서며 주의 몸 된 교회를 적대시하는 이 세상과 그 뒤에 있는 사탄의 온갖 간계와 장난과 위협에 굴하지 않는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는 항상 하나님과 그 백성에게 있음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난관과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믿음과 의로운 삶을 포기하거나 악한 세력과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진리와 정의가 거짓과 불의를 이기는 반전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남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죽는 이가 살고 거짓과 불의로 사는 자는 망할 수밖에 없음을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이 결국에는 주님에 의해 기쁨과 평안으로 바뀌게 됨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를 믿는 모든 이들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얻게 될 것임을 확신하는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변심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와의 화해를 이루시며 우리에게 하나님나라의 귀한 사명을 맡기시는 하나님에 대해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일생 순종과 충성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고 널리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주님의 부활이 알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땅끝까지 나아가 모든 민족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의 제자를 삼는 선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앞에서 우리는 믿는 이에게 허락된 놀라운 세계와 성령께서 이끄시는 능력의 삶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힘껏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