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04
부모를 공경하라 (엡 6:1-3(출 20: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일년사철 어느 때라고, 우리가 부모 공경하는 일을 게을리 하겠습니까?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교회력에 따라서 어버이 주일을 지키므로, "우리가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 그리고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축복을 받는지?"를 성경 말씀에 따라 생각해 볼까 합니다. 특별히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부모를 공경하는 정신이 바닥에 떨어졌다고 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일년에 단 한번이라도 부모 공경의 정신을 배우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시는 분들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走馬加鞭)는 옛말처럼 "부모를 더욱 잘 공경하시라"는 뜻으로, 그리고 혹시 부모를 잘 공경하시지 못하는 분들은 "반성하시라"는 뜻으로 오늘의 말씀을 잘 들으시고 그대로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첫째로 만물과 모든 생명의 어버이가 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유일한 창조자와 통치자가 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부모 공경을 명령하셨습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살이로부터 해방되어 광야를 거쳐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에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은 십계명 돌판에 새겨졌으며, 성경 안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부모 공경의 계명은 십계명 중에서 사람에 관한 계명 중에 제일 먼저 나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이 부모 공경을 인간의 도리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도리로 생각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말한 뜻도 바로 이런 뜻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째 계명을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로 바꾸긴 했지만, 근본 정신은 똑같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당연히 부모에게 순종할 것이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는 당연히 부모를 공경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부모 공경은 주의 명령이다"는 뜻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으니, "나는 하나님을 안 믿으니까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좋다"거나 "부모가 하나님을 안 믿으니, 나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부모가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라는 말 앞에 어떤 조건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 다른 이유와 핑계를 둘러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순종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면서도 정든 고향 땅을 떠났듯이,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외아들을 아무런 불평도 없이 바쳤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피조물과 하나님의 자녀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명령하시기 때문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데도 다른 핑계가 통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명령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히 순종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마당에 무슨 거창한 이유, 무슨 구차한 핑계가 필요합니까?
만약 부모 공경을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부모였다면, 자식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무슨 큰 보답이나 대가를 요구한다"고 불평할 지도 모릅니다. 만약 부모 공경을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선생이었다면, 제자들은 "선생이니까 당연히 교과서대로 가르친다"고 투덜댈 지도 모릅니다. 만약 부모 공경을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목사였다면, 성도들은 "목사니까 으레 그렇게 설교한다"고 쑥덕댈 지도 모릅니다. 만약 부모 공경을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형제들과 자매들이었다면, 자식들은 "너나 부모 공경을 잘 하라. 나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거나, "형편이 더 나은 네가 더 잘 해라"고 서로 책임을 떠맡길 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부모 공경의 정신이 형편없이 바닥에 떨어진 것도 아마도 이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성정(性情)은 그야말로 밴댕이 속과 같아서, 사람끼리는 고마운 것은 금방 다 잊어버리고 서운하고 아픈 것은 오래오래 간직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무리 잘 해 줘도, 감사보다는 원망이 더 큽니다. 그러다 보니 고마움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심이 쉬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동물도 아비와 어미를 공경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부모를 공경하는 당연한 일이니, 인간들이 알아서 잘 할 거야!"라고 생각하시면서, 부모 공경의 도리를 인간에게 맡겨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종종 얼마나 동물보다 못한지를 잘 아시므로, 부모공경의 계명을 가장 먼저 강조하시기로 작정하셨던 같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옳다'(디카이온)는 말은 '당연하다'는 뜻을 넘어서 '의롭다'는 뜻입니다. "부모 공경이 자식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이다"는 뜻을 넘어서 "부모 공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의로운 것, 옳은 것, 바른 것이다"는 뜻입니다. 사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이 명령하실 것조차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이 아니므로 단지 자연스러운 것만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서 의로운 것을 행해야 합니다. 동물이 제 에비와 어미를 공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서 칭찬을 받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은 부모 공경이 자연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칭찬을 받을 만한 의로운 일임을 잘 압니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보다 더욱 정성껏 부모를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둘째로 성경에는 직접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제가 미루어 보건대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보이지 않은 하나님은 보이는 부모를 통해 당신의 거룩하고 지극한 사랑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땅의 부모는 하늘의 부모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부모가 없었다면, 하늘의 부모를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거룩한 사랑을 통해 하늘 아버지의 거룩한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희생적인 출산과 양육을 통해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켜 주시는 하늘 아버지의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곳곳에 계실 수 없으므로 그 대신에 어머니를 보내 주셨다." 이 말은 단지 어머니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도 하늘 아버지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는 하늘 아버지를 대신하는 얼굴과 손발입니다. 이 땅의 어머니는 하늘 어머니를 대신하는 자궁과 가슴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이 땅에서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하면, 하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잘 만날 수 없습니다. 특히 어리거나 자라날 때에 부모와 맺은 관계는 평생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가족에 대해 무책임하거나 폭행을 일삼는다면, 자녀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인정하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가족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면, 자녀들은 장차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버이 주일은 단지 자식들이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뜻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가 된 자들도 좋은 어버이가 되라는 뜻에서도 존재합니다. 좋은 부모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리하여 생명을 낳고 사랑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은 부모를 하나님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하나님처럼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불신앙을 핑계로 부모에 대한 도리를 못해서도 안 되지만, 신앙을 핑계로 부모에 대한 도리를 못해도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 중에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는 핑계로 부모 공경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드려야 할 재정적 지원을 하나님에게 드렸기 때문에 자기 부모님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통을 따랐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고르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행위를 이렇게 나무라셨습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 '어미나 아비를 우습게 여기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너희는 부모에게 '미안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하고 말하면서, 진정으로 부모에게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 이것이 바로 너희 인간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냐?"(7:10-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소홀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보이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예수님도 일평생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집안 일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 못 하셨지만,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살아가는 어머니에 대한 효도의 마음만은 일평생 소중히 간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천대받고 무시당하던 여자였던 어머니를 공동체의 떳떳한 일원으로 받아들이셨고, 돌아가실 때에도 그의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할 정도로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셋째 이유는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약속이 주어진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는 "잘 되리라"는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장수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물론 우리가 "잘 되기 위해, 그리고 오래 살기 위해" 부모를 공경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부모 공경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의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 무슨 조건을 붙이거나 대가를 바랄 순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에게 복을 내려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모 공경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듯이, 축복도 분명히 하나님의 절대적인 약속입니다. "잘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명령이 주어진 까마득한 그 옛날로 돌아가서 생각한다면, 그 당시에 "잘 된다"는 것은 가축과 자식들을 많이 얻고 번영한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당연히 부모는 자식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그처럼 땅의 부모를 잘 섬기는 자식들에게 하늘의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도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오늘날에는 "잘 된다"는 것이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이 시대를 초월하여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잘 되게 하신다는 사실만은 반드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장수한다"는 말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말입니다. 물론 장수가 반드시 축복은 아닙니다. 가난하고 병든 채 오래 산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부족함이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요즘 말로 하면 웰빙(Well-Being)일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이지만, 이 말은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남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몸에는 엔돌핀과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예화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며느리가 미운 늙은 시어머니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사를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의사는 하얀 가루를 주면서, 이것을 반죽하여 알갱이를 만들어 죽에 넣어, 매일 식사 때마다 시어머니에게 갖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시어머니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빨리 죽도록 한끼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죽을 쑤어 시어머니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며느리의 밥상을 받아먹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미운 짓만 골라 하던 며느리가 한 끼도 거르지 않고 자신을 정성껏 공양하는 것에 감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칭찬하고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어느 덧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며느리도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말로는 시어머니가 서서히 죽을 것이라는데, 큰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다시 의사를 찾아가, 이제는 시어머니를 낳게 하는 약을 달라고 했더니, 의사는 빙긋이 웃으면서 똑같은 하얀 가루를 주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이 하얀 가루는 찹쌀 가루입니다. 계속해서 시어머니를 잘 공양하세요!" 옛날에는 찹쌀 가루가 귀한 영양소가 아니었습니까? 저희들도 어릴 때에는 오직 명절 때에만 찹쌀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습니다.
모든 생명이 푸릇푸릇 자라나는 신록의 계절 5월입니다. 온갖 고초와 고생을 마다하며 우리를 낳으시고 보살피시는 부모에 대한 여러분의 효심도 더욱 푸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 첫 계명,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가장 중요한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잘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축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가 되신 분도 죽기까지 자식을 향한 거룩한 의무를 성심껏 다함으로써, 이 땅에 사시는 날 동안 부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이신건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