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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부모 (창9:20-27)
여러분 주변에 누가 있습니까?
지난해 12월 저는 청송보호감호소에 방문하여 수감 중인 신창원씨를 30분간 면담한 적이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4년째 독방에 있는 그였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였습니다. 4년째 독방입니다. 혼자 지내고 식사하고 잠을 청하는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밖에 나가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 할 사람이 제 곁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때리고 할퀴고 욕해도 제 옆에 사람 좀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곁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아십니까?
저는 부모님의 얼굴을 잘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일찍 하늘로 가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내게도 엄마가 계셨다면 아빠가 계셨다면 지금 계시면 잘 해드렸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가슴에 안고 있습니다. 제대로 엄마 아빠 한번 부를 기회도 주지 않고 가버리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에 계십니까 자식을 키우면서 느끼는 마음은 우리 엄마 아빠 참 애쓰셨겠구나 합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혹 하늘에 일찍 가신 분이 있습니까? 언제나 우리곁에 계신 것은 아닙니다. 병들고 늙어 이제는 껍데기만 남지는 않았습니까? 사실 부모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저리지 않습니까? 자식밖에 없으셨던 부모님 자식염려만 있으셨던 부모님 이시간 우리모두 일어서서 어버이 은혜 노래하고 말씀을 계속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한 가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버지는 노아이고 아들들은 셈 함 야벳입니다.
배경은 노아홍수 후에 시간이 흘러 많은 것들이 정리되고 사람들도 늘어났을 무렵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입니다. 오늘 말씀에 무엇이 여러분에게 보입니까?
본문에 수고하는 아버지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농사하는 아버지 모습 말입니다.
자식들 가슴에 안고 그 자식들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수고하는 모습 이것이 부모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수고를 아십니까? 특별히 홀로 가정을 책임지셔야 하는 홀어미의 수고를 아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모습안에는 인정하든 하지 않든지 부모의 수고가 배여있고 부모의 땀이 부모의 피와 눈물이 베여있습니다. 저절로 된 자식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 아십니까 한 부모는 열 자식을 키워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모시기 힘들다고 말입니다. 왜입니까? 부모도 자식을 사랑으로 열자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자식은요 부모를 사랑보다는 돈으로 계산으로 하려니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짐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마음을 아시는지요?
어떤 여자 분이 자기 아버지와 관련된 여고시절의 이야기를 적어 라디오 프로그램에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시절 학교에서 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있어 돌아보니 버스 운전을 아시는 아버지가 정류장에 서 있는 딸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딸을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딸은 순간 창피한 마음이 들어 못들은 척하고 친구들과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계속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또 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친구들과 버스를 탔는데 타고 보니 자신의 아버지가 운전하는 것을 보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아버지가 버스운전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해서 내릴 수도 없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 있는데 그때 아버지가 말하는 것입니다. “어이 학생 거기 서 있으면 위험합니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세요” 하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모르는 척하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이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일찍 자는 척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오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나즈막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자랑스런 아빠가 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그러나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단다 너만 괜찮다면 모르는 체 해도 된다.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하시며 방을 나가시는 것입니다. 나가시는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딸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마음을 아십니까?
부모는 절대로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시는 분은 없습니다.
부모는 절대로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더 좋은 것 주시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나 자식위해 수고해 주시는 부모님 혹시 나는 부모님이 많은 것을 주시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분 있습니까? 그러나 나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어도 마음껏 주실 수 없으셨던 부모의 마음을 아십니까? 혹 부모의 직업이 부모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셨던 분 있습니까?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모님이 어떤 분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실력으로도 우리들을 길러주신 분입니다. 또 병들어 날마다 소화제 진통제 잡수시며 수고의 땀을 흘리시던 분입니다. 날마다 팔다리 쑤셔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언제나 먼저 일어나 자식의 먹을 밥을 준비하시는 분이 어머니 아닙니까? 부모에게 자식은 효도를 해서가 아닙니다. 더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냥 사랑합니다. 사랑하기에 그 짐을 다 지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무엇을 해 주시어서가 아니라 그냥 날 있게 하신 것 하나만으로도 마땅히 부모인 것입니다.
혹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원망하는 분계십니까? 지금 예수 믿는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본문에서 한없이 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그 부모의 행동이 자식에게 근심이요 멸시를 당할 정도로 말입니다. 노아는 술에 취해 하체를 들어내고 누워 자고 있습니다. 노아는 누구입니까? 당대의 의인이요 방주를 120년간 지었던 충성된 자요 하나님이 말세에 인정한 사람입니다. 그 대단했던 노아가 세상을 향해 당당했던 노아가 나이 많아 지내면서 자기하나 감당할 수 없고 조절 할 수 없는 약해질 때로 약해져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는 없습니다. 자식이 크는 만큼 부모는 늙는 것입니다. 자식이 힘이 있어지는 만큼 부모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것입니다. 독약 먹고는 살아도 나이 먹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는 언제나 당당하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 약해진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느 순간 약해진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느 순간 자식 눈에 염려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어느날부터인가 자식눈에 실수하고 가볍게 보이는 부모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젊은 날 대단해도 인간은 결국 약해집니다. 부산 영락교회의 고현봉목사님이 계십니다. 온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목사님인데 북한에 처자식을 두고 왔다해서 90이 되도록 혼인도 않으시고 그 대교회를 섬겨오신 분이셨습니다. 저를 너무나 아껴주신 분이시기에 한번 인사를 드리고자 방문할려 했더니 치매에 걸리셨다는 것입니다. 놀랐습니다. 그 당당하던 분이 그 고결하던 분이 그분은 한없이 약한 노인의 모습에다 급기야 치매에 걸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른은 한번 되고 아이는 두번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큰 것 생각 안합니다. 마음으로 살펴주십시오.
노인이 되면 그 아름답던 이전 자신의 모습은 흉하게 변할 것입니다. 노인이 되면 늘 움츠러듭니다. 노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노년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입니다. 부모의 약해진 모습 우리 책임이라 느껴지지 않습니까?
부모의 허물 앞에 우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 자식인가
술에 취해 하체를 드러내고 잠을 자고 있는 노아 그 대단했던 노아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이때 함이 고합니다. 아비의 허물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뒷걸음쳐서 겉옷으로 아버지를 덮어줍니다. 이런 일이 한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늘 아비의 허물 앞에 그렇게 반응했던 자식들의 모습니다.
똑 같은 아비의 자식인데 저들은 달랐던 것입니다. 부모가 약해질 때는 약해진 모습 앞에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생각할 때 그 부모가 우습게 보여도 아니 우습게 보일정도로 여러분이 대단해도 여러분을 있게 한 장본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허물은 여러분이 강해지는 것만큼 부모의 허물은 많아지고 약해지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슈퍼맨이 아닙니다. 그 배우지도 못하고 없는 재산 속에서 여러분을 길러내신 분들입니다.
언제인가부터 우리의 부모는 모든 것에 조절능력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생각도 조절이 안 되고 몸도 조절이 안 되고 소변도 흘리고 입도 조절이 안 되고 실수가 많아질 것입니다. 그 부모의 약함 앞에 함은 부모의 허물을 드러내는 자로 멸시하는 자였지만 셈, 함 야벳은 가서 허물을 덮어주신 분입니다. 그 부모 허물을 볼 수 없어 뒤 돌아서서 말입니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부모가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큰 축복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똑똑한 함보다는 셈 야벳을 축복하셨습니다. 엡6: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합니다. 성경은 부모공경을 순종하라 공경하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순종하였으면 좋겠다 권유형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것이 좋을 터인데 하는 선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순종하라 공경하라 명령형입니다.
골3:23절에 주께 하듯 부모님을 대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함을 보십시오. 부모를 거역하면서 저주의 모자를 스스로 쓰고 있습니다. 딤후 3:1-2절에 말세의 징조 중 하나를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며 에 두고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 종말의 징조가 될 것임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롬1장에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고 있는 이방인들의 죄악리스트중에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는 자 입니다.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라 왜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드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골3:20절에 자녀들아 모든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잘 섬겨야 되는 이유는 인간으로서 자녀의 질성 순응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노인이 곧 될 것입니다. 가정은 자식을 잘 지켜야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부모로 인정될때 세워지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잘 하기보다는 부모에게 잘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공경에 축복을 약속한 것입니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합니다. 자식 잘 키우면 복 준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것은 복준다 안 해도 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무거운 일입니다.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부모야말로 나의 나 되게 한 절대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아니 보상을 넘어 순종하고 잘 섬기는 것은 기본입니다. 오늘말씀은 감히 여러분들에게 도전합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출처/유재명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