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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마음 (사무엘하 18:31~33)
지난 주간에 저는 원로 목사님을 모시고 일본 선교사들을 위한 세미나 강사로 다녀왔
습니다. 일본에서 선교하고 있는 157명의 선교사님들이 모여 은혜롭게 잘 마쳤습니
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저녁 예배는 원로 목사님과 제가 각각 다른 일본교회의 요청
으로 일본인들을 위한 설교를 하고 왔습니다. 현지의 선교사들은 매우 메말라있
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일 수 있는 영적 분위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일본에는 일 년에 한 번씩 가는데 두 번씩 해달라고 간절히 요
청하는데 또 다른 나라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매우 좋은 소식
을 일본에 가서 들었습니다. 한국이 일본에게 독도는 절대로 안 빼앗길 거라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하면 일본 여자들이 전부 한국 편을 든다고 합니다. 욘사마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안 빼앗길 거라고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교회가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둘째주일은 옛날에
어머니주일이라고 했는데, 요새는 아버지까지 포함시켜 어버이주일이라고 해서
함께 지키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날을 어머니 찬양 주일로 보냈습니다. 어머
니에 대한 찬양을 목사들마다 설교했었는데 아버지들이 요즘에 너무 불쌍해 져서
아버지까지 포함시켜주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뿐만 아니고 세계
여러 나라에 한 편의 영화가 뜨거운 감자같이 사람들의 기대와 비판의 대상이 되
고 있습니다. '다빈치코드'라고 하는 영화인데 우리나라에 지금 들어와 있는데
아직 상영을 안했습니다. 교황청을 비롯한 세계 모든 기독교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왜 반발을 하는가? 아직 내용은 제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가 서울 지방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상태인데 영화적으로 보면
잘못된 것이 없다고 해서 아마 상영이 곧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미국에서 'Last temptation(마지막 유혹)'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영화를 상
영했을 때도 사회에서 찬반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다빈치코드'는 내용을 아직 못
봐서 평가할 수가 없지만 이러한 영화들의 초점이 무엇인가 하면 만약 예수께서
평범한 인간들과 같이 결혼 생활을 하셨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 이런
것을 상상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지고 보면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되는데, 종교적으로 민감한 화면들이 나오면 그것이 예수의 거룩성과 신성에
대한 침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이런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
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버지가 되셨다면 육신적으로 자녀들에 대해 어떤 관
심과 교육을 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아버
지라고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가깝게 나타낼 수 있
는 그림자적 대상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도 포함합니다. 만약 아버
지나 어머니보다도 더 훌륭한 하나님의 그림자가 이 땅에 있다면 그것을 조명해
서 반영시킬 텐데 그것보다도 더 훌륭한 것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라든가 하는 것이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훌
륭하게 나타낸다고 본 것입니다.
먼저 오늘 성경말씀의 배경 설명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
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해서 하신 말씀 중에 제일 좋
은 말이 무엇입니까?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제가 다
윗의 무덤을 찾아갔더니 20대 청년들 수십 명이 새까만 양복을 입고 새까만 모자
를 쓰고 구약 성경인 듯한 책들을 펴들고 고개를 쉴 새 없이 끄덕이면서 한 시간
동안 큰소리로 합창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들의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영광스
러운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그런데 어떤 회복을 원하는가? 다윗, 솔로몬 시대
같은 회복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 승천 장소에서도 제자들이 예수님께 마지막
질문한 내용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다윗 통치
40년, 솔로몬 통치 40년이 아브라함 후손의 빛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다는 것입니
다. 유대백성은 나라의 이름과 국기가 개인적인 것으로 정해진 특이한 나라입니
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국가명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개인의 이름이 영원한 국가 이름이 되었고,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하얀 바탕에 파란 색깔로 삼각형 두개를 합쳐놓은 별 모양이 이
스라엘의 국기인데 그것이 본래 다윗의 별입니다. 개인적인 것이 국가 것이 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나라는 신정 통치 시대가 끝나고 왕정 통치 시대로
전환됩니다. 이때부터 영적인 일은 사무엘이 주관하고 국가 통치적인 일은 사울
왕이 하게 되는 정치와 신앙을 분리하는 시대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
된 후에 마음이 교만해져서 영적 지도자 사무엘을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사무엘
이 해야 될 일을 자신이 해버립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사무엘이 시킨 일을 사울
왕이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버린 결과가 왕가의 비참한 몰락으로 성경에 나
타나 있고, 사울을 대신할 수 있는 왕을 선택하게 되는데 바로 이새의 여덟째 아
들인 소년 다윗을 사무엘이 기름 부어 안수 기도를 해줌으로 이스라엘의 2대 왕
으로 택함을 받게 됩니다. 그는 목동의 마을인 베들레헴에서 출생했고 왕이 되기
전까지 목동 생활을 했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 시절부터 목동 마을로 예수님 탄
생하실 때에도 탄생 소식이 제일 먼저 알려지게 된 것이 베들레헴 목자들을 통해
서인 것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 때부터 국왕 제도가 세속화 되었
습니다. 그래서 아들인 솔로몬이 다윗의 대를 이어서 3대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
다. 이 40년 통치 기간에 나라는 매우 부강해 졌고 오랜 역사의 시달림을 받던
이스라엘에서 주변의 모든 부족 국가들이 두려워하는 가장 큰 나라로 발전했습니
다. 다윗은 신앙인이면서 음악인이요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문인이면서 무인으로
전쟁 영웅이었습니다. 탁월한 통치 능력의 행정가요 카리스마적 지도자였음이 나
타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의 용모는 얼마나 준수했는지 세계 어디를 가든지 기
독교 국가에는 다윗 동상이 흔하게 서있는데 인간의 육체 가운데 가장 멋있고 균
형 잡힌 모습으로 세계 어디를 가나 다윗 동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다윗을 두고 흠을 하나 잡는다면 사생활이 너무나 복잡했습니다. 우선 너무 많은
여인을 두고 살았던 것이 불행을 가져옵니다. 공적인 부인만 10명이었습니다. 그
부인들이 낳은 자식들이 성장하면서 큰 문제로 나타나는 것이 어느 부인이 낳은
아들이 왕위를 계승할 것인가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도 수없이 있었던 일
입니다. 제가 네팔에 갔을 때 만난 네팔 목사들이 하는 말이 얼마 전에 왕의 가
족 8명이 전부 암살당했는데 누가 죽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 된
왕이 죽였을 것이라고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왕이라고 하는 자리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다윗은 아들이 하도 많아서 성경에 나오는 것만도 정신 차리고 세어 보아야
할 정도로 많습니다. 18~19명의 이름이 성경에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
오는 아들은 압살롬이라고 셋째 아들입니다. 아주 야심이 많고 추진력이 강한 인
물입니다. 그는 기회를 보면서 준비합니다. 최악의 경우 아버지를 죽이고라도 왕
권을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느 날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아버지
다윗을 치러 온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다윗은 아들 손에 죽을 것 같아서 급하게
감람산으로 도망을 가는데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남이 얼굴을 알아볼까봐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산속으로 도망가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압
살롬은 아버지의 궁을 점령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사무엘하 16장에 나옵니다.
자기 아버지와 살던 여인들을 자기가 데리고 농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마음에 최대한의 고통을 주려 파렴치한 행동을 일부러 한 것입니다. 아버
지가 자살해서 죽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에게 절대적 힘의 역할을
해왔던 아히도벨 장군도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에 협조합니다. 이로부터 다윗을
지키려는 백성과 압살롬을 지지하는 백성들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그
런데 하나님은 이때 다윗을 보호합니다. 압살롬의 군대는 패하게 되었고 다윗의
군대가 승리합니다. 성경에 보면 압살롬의 군대 2만 명이 그 날에 죽었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에 압살롬은 나귀를 타고 도망을 가지 않습니까? 상수리나
무 밑을 급하게 달리다가 나뭇가지에 상투가 걸려서 노새는 그냥 빠져나가고 압
살롬은 나무에 걸려서 대롱대롱 매여 달린 것을 보고 다윗 편의 요압 장군이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머리숱이 많으신 분들은 나무 밑을 지나갈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아들 압살롬이 그렇게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버지
다윗의 반응입니다. 이 정도의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나타날 것 같습니
까? 아버지가 데리고 살던 여인들을 대낮에 일부러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성폭행
하고 아버지 궁에 들어가 왕이라고 하며 아버지가 비참한 현실을 깨달아 자살했
으면 했던 그 아들이 죽었다고 했을 때 오늘 말씀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
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
더라." 이것이 아버지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 아버지 개념을 몇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의 아버지입니다. 그 가족의 행복입니다. 저는 세계를 다 돌아다녀 봤지만
조금씩 차이는 있어도 세상에서 제일 행운아가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잘
둔 사람입니다. 이것은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아버지, 어머니를 잘 둔 사람은
최고 행운아입니다. 국가 공동체는 아버지 역할이 통치자입니다. 이 통치자 한
사람이 잘하고 잘못함에 따라서 국가 운명이 달렸습니다. 여러분, 옛날에 필리핀
은 아시아의 흑진주라고 불리었습니다. 통치자가 잘해서 그랬는데 마르코스 때
와서 빈민국이 되었습니다. 통치자 한 사람이 잘하느냐 못하느냐 따라서 그렇습
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신부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영적
인 일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아버지 개념은 우주적 아버지, 하나님이
십니다. 이러한 아버지 개념의 존재는 인간 행복의 기본입니다. 아버지가 잘 하
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됩니다. 가정도, 국민도, 이 세상일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릴 적 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돌아가신지 40년
이 가까웠지만 존경을 해야 될는지 반감을 가져야 하는지 갈등이 남아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선비 사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붓글씨를 참 잘 쓰셨습니다. 제 기
억에 동네 사람들이 글 쓰는 일은 다 아버지한테 와서 부탁했습니다. 무엇을 잘
못해서 관청에 시말서 쓰는 사람들은 날마다 아버지가 써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경찰관들은 글씨에 탄복해서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야! 이거 누가 써주셨습니
까?" "예, 아무개 씨가 써주셨습니다." "와! 그 어른 글씨구나!" 집안의 족보를
포함해 붓글씨는 모두 쓰셔서 가문에 돌려주고 하셨습니다. 한시(漢詩)를 쓰기
좋아하셨는데 이런 붓글씨를 쓸 때는 제가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새까만 먹을
갈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 그것도 정성스럽게 갈아야지 막
갈면 안 됩니다. "그게 뭐냐? 오른쪽으로 돌려라!" 저는 다른 집 아이들이 누리
는 좋은 것을 어린 시절에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아버지가 선비 사상을 가
지고 계셔서 돈버는 노력을 안 하시니까 집안이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저를 옆
에 앉혀놓으시고 백지 한 장을 갖다가 "잘 봐라!" 하시면서 붓만 대면 척척 멋지
게 쓰셨습니다. 무슨 성령 받은 사람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한테 설명하시는 겁
니다. "청금성 청기성이 호야나 불여 가중아 독서성이요" 이게 무슨 소리냐? "가
야금 소리 거문고 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집안에서 어린아이가 글 읽는
소리만 못하며" 얼마나 멋있습니까? "관월색 관화색이 호야나 불여 가중화 안색
이라" "달빛을 보고 꽃을 보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집안이 화목한 것을 보는 것
만 못하니라." 얼마나 로맨틱합니까? "이게 선비다." 그러시면서 글씨 쓰신 것을
나한테 설명해 주시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혹시 배가 고프면 죽
한 그릇을 주면 먹고 안주면 안 먹고 이게 선비다." 그때 저는 속으로 무슨 생각
이 났는지 아십니까? '아니, 자기만 안 먹으면 되나? 그러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
란 말이냐?' 이분의 선비 사상을 존경해야 되는지 무능한 아버지를 원망해야 하
는지 제가 어린 시절을 이렇게 보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신 일의 특성을 우리가 성경
에서 보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그가 마지막 선택하신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
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십자가 죽음은 인간의 손에 죽으신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들께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이 지금 죽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구원하는 방법은 하나가 있습니다. 내가 대신 죽는 길입니다. 하시겠
습니까?" 하실 분이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지금 그렇게 하셨다
는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조명해 볼 수 있는 아버지, 어머니이시기에 이런 날이 있는 겁니
다. 워싱턴에서 군중집회 광고를 했습니다. 제목이 "아버지 대회"입니다. "오늘
이 사회가 이렇게 어지러워졌던 것은 아버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아버지의 자리로 성실하게 돌아가서 존경받는 아버지가 됩시다. 이 결
의대회에 오시는 아버지는 이 결의에 양심적 동의를 하시는 분들만 오십시오."
100만 명이 모였습니다. 양심은 살아있는 겁니다.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아버지들
이여! 다른 것을 하기 전에 가정에서 아버지 자리를 지킵시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들의 모든 죄가 사하여진 진리를 우리 생활 가운데서 작은 실천
으로 옮길 때 거기에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역사가 창조되고 행복한 관계가 생기
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시원치 않은 아버지, 어머니도 자녀들을 위한 희
생에는 누구나 다 용기 있게 나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992년도 올림픽 경기 때 있었던 일입니다. 400미터 준결승시합이 벌어졌는데
전 세계에 중계방송이 되었습니다. '데릭 레드몬드(Derek Redmond)?'라고 하는
영국 대표선수가 우승후보입니다. 결승지점까지 거의 달려가다가 다리 근육에 쥐
가 나서 그만 운동장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육상선수에게 1초라는 시간은 너
무나도 귀중합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그토록 피나는 노력의 훈련을 해온 것이 그
몇 초 동안의 판가름 나기 때문입니다. 우승후보가 골인지점을 얼마 남겨놓지 않
은 상태에서 쓰러졌다는 것은 그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많은 관중
들도 쓰러진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TV 중계 화면도 그를 집중적으로 비춰줍니
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과 실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고통을 무릅쓰고 일어
났습니다. 그 아픈 다리를 끌면서 울면서 골인 지점을 향해 다리를 끌고 걸어갑
니다. 꿈이 깨진 슬픔, 다리의 고통,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
이 관중석에서 황급히 뛰어나와서 그 선수에게 갔습니다. 그의 아버지 '짐 레드
몬드(Jim Redmond)'였습니다.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너 지금 어떻게 하고 싶으
냐?" "아버지, 골인지점까지 가고 싶어요." "나와 함께 가자." 아들은 울면서 아
버지 몸에 의지했고 아버지는 그 육중한 아들을 휘어잡고 골인지점까지 같이 갔
습니다. 물론 꼴찌였습니다. 우리가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생의 경주장을 달리다
가 어느 때 넘어져 고통스러울 때 다른 사람은 구경만 하여도 아버지, 어머니는
달려 나와서 도와줍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겁니다. 쓰러진 나의 몸을
모든 사람들은 구경만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끌어안고 인생의 골인지점까
지 함께 가주겠다고 하십니다. "나를 의지해라." 이것이 아버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입니다. 성군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 왕이 되려던 아들을 아버지의 여인들
을 일부러 성폭행하여 아버지를 괴롭히던 파렴치한 아들 압살롬! 그러나 그가 죽
었다는 소식에 그는 왕의 체면도 잊은 채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연속해 부르면
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죽어야지 왜 네가 죽느
냐?"
우리나라 전통의 효 사상과 기독교의 효사상은 같은 맥락입니다. 구약 성경에
는 아비나 어미를 학대하는 자를 죽이라는 징계 율법이 나타나 있는데 우리나라
효 사상은 칠거지악(七去之惡) 중에 제일이 불효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장례 문화가 변해서 옛날 같은 장례식은 볼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상주들은 굴건제복(屈巾祭服)이라는 제복을 입었습니다. 그 복장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머리에 건을 만들어 쓰는데 가운데 또 하나의 건을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뾰족하게 나온 건 속에는 싸리가지를 잘 다듬어서 빳
빳하게 풀을 매겨서 모자를 만듭니다. 그래서 그 건을 쓰고 있으면 그 모습이 딱
어떻게 보이느냐 하면 한문으로 '사(四)'입니다. 그리고 베옷을 장황하게 입고
무릎아래 양다리는 홀쭉하게 싸맵니다. 그리고 다리 양쪽에다 세 개씩 하얀 댕기
를 붙들어 맵니다. 그래서 두 다리의 하얀 댕기 세 개를 보면 한문으로 '비(非)'
입니다. 그러면 '사(四)' 밑에 '비(非)'가 있으면 무슨 자가 됩니까? '죄(罪)'입
니다. "부모님 앞에 저는 죄인입니다." 그런 뜻의 복장입니다.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는 하나님의 그림자 역할이기 때문에 어버이 주일입니다. 자녀를 보는 마
음으로 하나님의 생각하고,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섬기라는 뜻입니
다. 오늘 어버이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재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같은 날 우리가 하나님을 대한 생각을 부모님을 통해
서 할 수 있는 지혜가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고 계신가
를 우리 관계에서 발견하는 영적 능력이 주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
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출처/이필재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