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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모세 되기까지 (출2:1-10)
한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정입니다.
가정이 모여서 사회가 되고 사회가 모여 한 나라를 이룹니다. 그런 면에서 한 나라의 이전
에 한 사회의 이전에 한 가정은 참으로 중요한 기본단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세상을 창조
하실 때 사람에게 가장 먼저 가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힘든 이유는 가정에서부터 민주주의가 무너져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공권력이나
뒷골목 조직폭력단체에서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힘의 논리가 지
배한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힘, 부모의 힘, 남편의 힘, 아내의 힘 등등 어디에 기울어져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게 되면 나타나는 특징 중
에 하나는 사상의 결핍 곧 정신문화의 실종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정신문화가 있습니까.
내세울만한 정신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돈이 있느냐가 출세는 했느냐 묻지 않았
습니다. 정신을 물었습니다. 땅속 깊이 도도하게 흐르는 샘물처럼 한 가정에 보이지 않는 정
신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정신 중에,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살아있는 가정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입니다. 둘만 좋아서가 아니
라 하나님이 기뻐야 기뻐할 수 있는 가정입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는가는 가정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가정은 그 만큼
행복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매력은 그 말씀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
상은 갈 바를 몰라도 말씀을 좇아갔다 말씀합니다. 두 번째는 권위가 살아있는 가정인가입
니다. 가정에는 반드시 부모의 권위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교회에서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순종하는 자녀
를 기르는 것 또한 상당히 중요합니다. 순종하는 좋은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
을 받게 하는 원리입니다. 엡6: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
으니라” 하였습니다. 부모의 권위 못지않게 가정에서는 남편의 권위 또한 살아있어야 합니
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질서입니다. 엡5: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
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니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
이니라” 복종하기를 이라는 말은 이를 악물고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녀들 앞에서 남편의 권위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에게 있어서도 남편
의 권위를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특히 주부들이 모이면 남편의 흉보는 것을 낙이라 생각하
시는데 아닙니다.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가정을 세우는 일이라면 남편의 권위를 인
정하는 것은 나를 높이는 것입니다. 권위는 자격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입니다. 세 번
째로는 섬김이 있는 가정인가입니다. 부부를 돕는 자로 인식하는 것은 성경적이자 섬김의
정신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신다면 대접만 받는 아이들로 성장시키지 말고 섬기는 아이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은 내가 보기에도 귀하고 남이 보기에도 귀한 자식이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약한 부분을 돕고 아내는 남편의 부족함을 채우는 섬기는 자들로 가
정의 정신을 세워야 합니다.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
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네 번째로 가정의 정신은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한
다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한
목적에 맞는 분명한 목표가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의 가정의 정신은 희망을
말하는 가정인가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희망을 심어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심고 희망을 보여주는 그러한 가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어 소중한 정신은 ‘부모를 공경함’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입니다. 물론 부부가 한 몸이긴 하
지만 남남이 하나를 이룬 것이기에 환경이나 감정에 의해 멀어 질수도 있는 것이 부부관계
의 한계입니다. 형제들 또한 피를 나눈 관계이지만 그 피를 묶어준 부모가 안 계시면 형제
관계 또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다릅니다. 이 관계는 생명을
주고받은 관계입니다. 생명을 나눈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나인 자식이기에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는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가 없는 멀어질
래야 멀어질 수가 없습니다. 자식의 가슴속에는 몰라도 부모의 가슴속에는 자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다운 이름은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이름입니다. 그 중에도 어머니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소중한 이름입니다. 머리가 히끗한 흰머리가 생길정도
의 나이가 되었어도 어머니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정겨운 이름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를 잘 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보다 더 좋은 부모가 되어 있습니까? 좋은 자
녀를 원하는 것은 이상으로 좋은 부모가 되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부부의 만남은 레위족속의 남자와 여자의 만남
으로 한 가정을 시작하셨고 아론과 미리암 그리고 모세 순으로 출산하게 하십니다. 이런 면
에서 보면 한 가정의 시작도 하나님이 그리고 그 가정의 구성원을 이루심도 하나님이 하신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시작이자 섭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어쩌다 태
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족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택이 아닙니다. 한 가정을
이루게 하시더니 그 가정의 구성원을 이루시고 마지막으로 모세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
러나 열악한 환경이자 한 낮 노예의 자식일 뿐이었습니다. 급기야 죽음의 위기 마져 시시각
각 조여져오는 환경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부모는 자녀인 모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
니다. 부모는 자식을 죽을 각오하고 낳고 죽을 각오하고 기르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
가 뭐라 해도 죽음 마져 불사했던 포기하지 않은 부모의 사랑으로 지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세의 부모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갈 상자에 담아 나일 강에 보
냅니다. 단순히 나일 강에 띄운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에게 맡긴 것입니다.
부모세대여, 한계를 인정하십시오.
한계를 인정하십시오. 자녀에게 못해주는 것이 미안해 무엇인가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이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식에게도 도움을 구하셔야 합니다. 모세의 부모가 감당
할 수 없는 환경 앞에서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아이를 던진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들의 자녀들을 그리해야 합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자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서 자녀들에게 철저히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성
장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모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난 받기를 애굽의 금은보
화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로 성장했습니다. 말보다는 삶의 영
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늙어가는 것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안 늙으려고 나이가
안 드신 것처럼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잠16:31절에 말씀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
라고 말입니다. 노년에 자녀에게나 세상 앞에서 초라하지 않을려면 단하나입니다.
그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바로 하늘입니다. 물거품 같은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추함이
나 늙음을 감추려하지 말고 하늘을 품고 사십시오. 그러면 하늘이 우리 모두를 위로할 것입
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하늘이 있기에 늙어서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5월
한달 우리 모두나 우리들의 가정에 하늘이 풍성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유재명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