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마가복음 3:13~19)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스승의 날은 이 땅의 모든 스승들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우리 인생에 첫 번째 스승은 부모입니다. 부모로부터 삶의 기초를 배웁니다. 목회자도 스승입니다. 우리는 목회자를 통해서 영적 진리를 배웁니다. 또한 교회학교 선생님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스승입니다. 학교 선생님보다 더 중요한 분이 교회학교 선생님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역장도, 구역의 총무도, 각 부장들도, 교구장도 스승입니다. 공자는 “셋이 걸어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의 스승이고, 나도 누군가의 스승입니다.

우리는 좋은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성도는 이 땅의 영적인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또 서로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좋은 스승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제자들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스승의 날을 생각하면서 최고의 스승이신 예수님의 훈련법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뭇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이 시대의 좋은 스승이 됩시다.

첫째, 부르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막 3:13)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일일이 찾아다니며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막 1:19,20).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건입니다. 당시에는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과 반대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셨습니다. 학문적으로 우수한 사람이나 남보다 뛰어난 사람을 부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가룟 유다도 부르셨습니다(막 3:19). 예수님이 찾아가셨기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제자들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좋은 스승이 되려면, 제자를 먼저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대접만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름을 부를 때 좋은 스승이 되고, 좋은 제자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이들의 이름, 구역원의 이름, 새가족의 이름을 부릅시다. 그들을 제자의 자리로 초청합시다. 그것이 좋은 스승이 되는 첫 걸음입니다.

둘째, 함께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 1:17)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제자들과 함께 동거하셨습니다(막 3:14).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걷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스승은 지식을 파는 자가 아닙니다. 선생과 스승은 다릅니다. 선생은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아는 것이 많은 사람, 남을 가지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남에게 가르쳐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주는 사람, 자신의 전부를 주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주려면 함께해야 합니다. 함께할 때, 지식과 지혜가 전수됩니다. 바른 삶과 바른 인격이 길러집니다. 친절과 예절을 몸에 익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스승 되시는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도 함께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함으로 삶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셋째, 가능성을 찾아주시고

좋은 스승은 가능성을 찾아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약점을 먼저 보지 않으셨고, 제자들의 실패를 먼저 고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가능성을 먼저 보셨습니다. 제자들의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보셨습니다. 갈대와 같은 시몬을 반석인 베드로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막 3:16). 예수님은 끝까지 베드로의 가능성을 믿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정한 베드로를 직접 찾아가셨지만, 베드로의 실패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바로 설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가능성을 찾아주기보다는 험담하기에 바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고유한 가능성을 주십니다. 그것은 핵폭탄보다 더 큰 힘입니다. 누군가가 자극만 해준다면 무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의 가능성을 발견해주는 사람입니다.

넷째,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공생애 3대 사역 중 하나는 가르치는 것입니다(마 9:35).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었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들었지만 모두가 성경말씀의 ‘비밀’을 배운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만 따로 가르치셨습니다(막 4:10,11). 성경말씀의 비밀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도 제자들에게만 가르쳐주셨습니다(막 8:31). 제자들을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교육훈련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스승이 아니라 돈이 가르칩니다. 지혜는 없고 지식만 늘어갑니다. 엄밀히 말하면 성적 잘 받는 법만 배웁니다. 그 결과, 성적 우수자는 많은데, 인재는 찾기 힘듭니다. 좋은 스승이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법, 사람답게 사는 법, 세상을 바라보는 법,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역사를 이끌고 갈 지도자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물이 길러집니다. 우리 모두 바른 것을 가르치는 바른 스승, 좋은 스승이 됩시다.

다섯 번째, 사명을 주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강하게 키우셨습니다. 부르실 때에도 사명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은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라고 말씀합니다. 실제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눅 9:2). 이 때, 인간적으로 의지할 것은 다 내려놓게 하셨습니다(눅 10:1,3). 예수님이 사명을 주시자, 제자들은 사명자로 거듭났습니다(눅 10:17). 가르침은 목적은 지식이 아니라, 사명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현장에 강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역사를 주도한 사람들은 현장에 있던 사명자들입니다. 오늘날 교육의 문제는 사명자로 키우지 않는 것입니다. 사명자로 키우려면, 사명자로 키우려면, 사명을 주어야 합니다. 스승의 역할은 사명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주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어려워해도 자기 힘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해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그 자리에서 고난을 이기는 인물, 유혹을 뿌리치는 인물, 어떤 역경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물이 나옵니다.

여섯 번째, 능력을 주시고

예수님은 사명과 함께 능력도 주셨습니다(눅 9:1).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5)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더 큰 능력으로 충만했습니다(요 14:12). 제자들은 실제로 큰 능력으로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행 2:41). 그들은 소수였지만, 능력있는 소수였습니다. 예수님은 3년 반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승천하실 때에는 더 강하게 훈련시키셨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기약 없는 기도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놀라운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했습니다. 훈련이 능력입니다. 반복훈련이 능력을 키워줍니다. 우리 모두 훈련의 땀을 흘림으로 최고의 능력자가 됩시다. 훈련의 땀을 흘림으로 최고의 능력자로 키웁시다.


예수님은 좋은 스승이십니다. 예수님은 삶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삶 전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좋은 스승이 됩시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감동이 됩시다. “미숙한 교사는 언어로 가르치고, 말로 가르치고, 보통의 교사는 행동으로 가르치고, 우수한 교사는 감동으로 가르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동이 있는 삶은 상대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 모두 감동을 주는 스승이 됩시다.
  

기 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 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스승이십니다. 우리는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부모만이 아닙니다. 스승도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같은 스승되기 원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최성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