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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7-13
오늘 본문에 나타나있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 칭찬만을 받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또한 모든 교회가 그 교회처럼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가운데도 책망만 받으며 자라난 아이와 칭찬을 받으며 자라난 아이와의 차이는 매우 큰 것입니다. 성격 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고, 성장 면에서도 큰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현재 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잘못하는 사람은 내일도 잘못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잘하는 사람은 내일도 잘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칭찬 받고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아시아에 일곱 교회가 있었는데 그 중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할 것이 없고 칭찬만 있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이 시간 빌라델비아 교회를 중심해서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지구상에는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칭찬 받는 교회요, 다른 하나는 책망 받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는 우상이 많으므로 작은 아덴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 교회가 강팍한 도성에 위치하였고, 그 교회 자체는 미약하고, 성도의 수도 적고, 부요치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며 그 배운 것을 잘 지키며 그리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충성스러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그렇게 칭찬을 받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7절에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죄가 조금도 없으신 분이요, 숭엄하신 신성과 그리고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성덕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진실’이란 말은 쉽게 말해서 거짓이 없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다 한번 말씀하시고 또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시자로서의 완전 무결하심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죄와 세상과 좀 더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란 무슨 뜻입니까? 바로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생각하는 것이 달라야하고, 말하는 것이 달라야하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난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실한 신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어디까지나 진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32:4절에 보면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진실하시고 정직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실하신 자를 기뻐하시고 그러한 자를 교회의 일군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 또 배웠느냐를 뭇지 아니하십니다. 얼마나 훌륭하고 똑똑하냐를 묻지 아니하십니다. 얼마나 진실하냐를 물으십니다. 주님은 진실한 자를 기뻐하시고 진실하자를 사용하십니다.
출18:21절에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부장을 삼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가리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권세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시는 의 절대주권 그에게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되신 우리 주님을 우리 마음 속에 모신 그리스도인들로서 그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을 때에 우리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려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다스림 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언제나 의와 평강 가운데서 천국의 위로를 받으며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열린 문이 있는 교회입니다.
8절에 보면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노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고하였습니다. 여기서 ‘열린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요10:7,9절에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문으로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문은 구원의 문이요, 생명의 문입니다.
이 문을 드나들며 풍성한 꼴을 얻어 심령이 윤택하여지며 영혼의 참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됩니다. 또한 이 문을 드나드는 사람마다 병든 자가 치료함을 받고, 피곤한 자가 새 힘을 얻으며, 슬픈 자가 위로를 받으며, 우는 자가 웃으며, 탄식하던 자가 노래하며, 만족을 모르던 자가 만족하게 되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문을 막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도 못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거치는 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복된 문으로 인도해 드리는 안내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하나 하나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 해야합니다. 친절과 사랑으로 봉사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자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문에 들어가 참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11:28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누구든지 참 쉬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야말로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고 사랑의 문이 활짝 열려서 이문을 들어오는 자마다 참 자유와 참 평안과 영생의 복을 받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최선을 다한 교회입니다.
8절 하반 절에 보면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적은 것 가지고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것 가지고도 충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세상 우리 함께 주의 일 열심히 해봅시다. 그러면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돈 벌어 가지고 크게 할 랍니다’
이런 사람 치고 주의 일 제대로 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충성은 적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충성은 오늘만 존재하는 것이요, 내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배운 대로, 가진 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중에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열심을 다 하는 교회입니다.
아마 우리 교회가 성도들이 좀 성공하고, 부자가 된 후에 교회를 건축하자고 했다면 아직도 착공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 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이 교회당을 허락해주신 줄로 믿습니다.
주의 일은 돈이 하는 것 아닙니다. 무슨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믿음의 사람과 순종의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내 모습 이대로,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그때그때 적절하게 공급해주실 뿐만 아니라 능력으로 함께 하여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약하거나, 가난하거나, 능력이 적거나 걱정할 것이 없이 있는 그대로 그저 말씀에 순종하며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과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3.이러한 교회에 대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본문 9-12절에 나타나있습니다.
1).‘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리라’고 하였고(9)
2).‘환난 때에 너를 지켜주시겠다’고 하셨고(10)
3).‘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리라’고 하였고(11)
4).‘승리자가 되며 성전에 좋은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고
5).‘천국백성의 이름으로 인쳐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말씀을 바로 지키며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자의 축복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과 함께 걷는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힛토’라고 하는 사람은 주와 같이 걷는 생활을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고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을 거닐고 있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며 온전히 신뢰하고 갑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가는 아들은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길이 험하고 날씨가 사나와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갑니다. 아버지와 걷는 것을 기뻐하며 만족해하는 것이 아들입니다.
어린아이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가장 위대하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힘있는 어른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씀하시고 행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신기하고 감탄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같이 길가는 아들은 아버지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많은 수수께끼들이 해결됩니다.
이와 같이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이런 체험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자연히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같이 걸으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언제나 안전합니다.
아버지 팔에 붙들려 걷는 동안은 어떤 위험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험한 곳을 지날지라도 아버지의 힘있는 팔이 나를 번쩍 들어다 안전한 곳에 내려놓으십니다.
시23:1-4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렇습니다. 열린 문을 들고나며,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양은 조금도 걱정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로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린 교회요, 우리 성도들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은혜와 복을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크게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드나드는 성도들이야말로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에서 참된 만족과 평안과 임마누엘의 은총을 충만히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