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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6:1-4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서로 상반된 교리와 생활자세로 인하여 적대적 관계였다. 이렇게 상반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예수님을 배척하기 위해서 네가 진짜 메시야라면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다그쳤다. 그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고서도 다른 하늘의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하였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겹칠 때 신앙적이었다가도, 회복되면 우연의 일치로 생각해버리는 현대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일 수 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자들을 향해 천기는 분별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책망하셨다.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되어진 일에 대해서 상당한 분별력이 있다. 농부는 기상에 정치가는 여론과 대중의 감정에 주식투자자는 주식흐름과 장세에 학부모는 대학진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하나님은 이런 반응과 모든 영역에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책망하지 않는다.
문제는 세상에 대해서는 분별하면서도 시대적 표적과 영적인 일에 분별력이 없는 것에 것에 책망하는 것이다.
2004년 3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잃은 쓰나미를 기억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동물들은 별 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동물들은 뭔가를 감지하고 다 대피했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리석게도 엄청나게 죽었다.
지금이 어느 때일까? 성경 말씀에 예언된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진 그 때에 살고 있다. 벧전4:7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고 명한다. 왜냐하면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속히 너희를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다. 주님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운 때이다.
로마서12:2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
오늘 이 시대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세상 일에는 민감하면서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거나 신경을 쓰려하지 않는 사람들 일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 "과연 나는 영적인 일에 관심이 있는가?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는 통찰력이 있는가?"물어 봐야한다.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이 말씀의 또 다른 의미는 너희들이 표적인 나를 보고서 표적을 보여 달라는 말을 하느냐! 는 뜻이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고 한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흠 잡을 것이 없지만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하다'고 했다. 그들의 영적인 음란을 지적하신 것이다.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다면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적으로 수많은 이적을 체험하고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에 취해 배은망덕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고사는 영적으로 음란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수 없다.
그렇다면 요나의 표적은 무엇인가?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표적은 장차 우리 인생들의 죄악과 질고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과 사흘 만에 죽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것을 의미하는 십자가이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표적은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없는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한 사건이 십자가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들이 구한 표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놀라운 표적이었다. 십자가는 온 인류를 구원하는 표적이다.
우리는 십자가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십자가 이 외에는 다른 표적이 없다. 십자가를 사랑하자! 십자가를 붙들자!
출처/이상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