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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은혜의 바다 (누가복음 5 : 4 - 11)
그 전날 밤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고 그물을 내렸으나 허탕이었습니
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
으되 얻은 것이 없었다』고(눅5:5) 고백했습니다. 지칠대로 지치고 피곤
하고 낙심되고 실의에 빠지고 절망 상태에 떨어졌을 때 다시 말하면
내 힘과 내 재간과 내 기술로는 할 수 없다고 통감했을 때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
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일단 지난 밤의 상황과 경험과 기술을
다 젖혀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
니다. 그러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입니다.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두 배가 바다에 잠길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히게 됐습니다.
1. 깊은 바다에 대하여(4절)
깊은 바다에는 해초류 조개류가 많이 서식하고 물고기가 많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가 하면 대양에는 상어, 고래 등 큰 물고기들이 살
고 있습니다. 깊은 바다 밑에는 산호, 진주, 조개 또는 상선, 해적선의
침몰 등으로 예술품, 골동품, 금은 보화가 깔려 있기도 합니다.
현대의 경제개발의 방향은 깊은 바다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또한 그
곳에는 무진장의 자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이 바다 위해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나니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하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바다로 가서 그물을 던지고 그 많은 고기를
잡게 되어 즐거운 비명을 올리게 되었고 어제밤의 실망이 변하여 오늘
의 기쁨의 개가를 부르게 됐습니다.
2. 베드로의 더 큰 소득(8-11)
처음 베드로는 예수님을 5절에 『선생』이라 불렀는데 고기 잡은 후
에는 8절에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기적적 풍어보다 더 중요
한 것을 얻었는데 그것은 예수를 더 잘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처음에는 사람처럼 보였으나 그 행적을 보니 신성을 지닌 존
재이심을 터득하게 됐습니다. 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도 큰 소
득인 것입니다. 세계에 아니 우주의 유일한 생명과 행복의 열쇠를 잡은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인 예수 앞에 베드로 자신은 죄인 됨과 상종할
자격이 없는 누추한 존재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즉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예수를 좇기로 했
습니다. 자기 일생을 걸었던 그물도, 그렇게 잡기를 원했던 물고기도,
사랑하던 가족까지도 내버려두고 예수를 좇기로 했습니다(눅5:11-). 뿐
만 아니라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함
과 같이 베드로도 정든 게네사렛 호수를 떠나 세계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인 그리스도를 위한 능욕을 받을 각오를 하고 주의 종의 사
명을 다하고자 궐기하고 예수를 좇게 됐습니다.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말했거니와 베드로
는 그 귀한 자유까지도 주께 바치기를 원하여 주님께 복종하고 충성하
고 주님의 노예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에 보면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기록했습니다.
3. 깊은 은혜의 바다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보면 깊은 바다는 깊은 은혜의 바다임을 깨닫
게 됩니다.
은혜는 댓가없이 공로없이 주는 선물인 것입니다. 표창패나 공로상과
는 취향을 다르게 합니다. 물, 공기 같은 값없이 받는 것들이 값비싼
요리보다 생명을 위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도 돈주
고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귀
한 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값없이 최대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
입니다. 그 은혜의 넓이와 깊이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고통의 십자가의 깊이는 한량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피로 이룬 샘물 깊고도
넓도다!』라고 찬송가를 감격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
에서 지극히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십자가입니다.
최대의 고통 중 하나님의 뜻을 이룩한 희생의 십자가입니다.
어떠한 흉악한 죄라도 이 십자가의 깊은 은혜의 바다에 던지면 다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미7:19에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라고 말씀
했습니다. 게네사렛 호수보다 사해가 더 깊고, 사해보다 지중해, 지중해
보다 태평양은 아주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태평양의 『필리핀』 가까운 깊은 곳 비트엘즈 해연의 깊이
는 11,034미터라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산은 산봉우리
가 8,882미터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비트엘즈 해연을 우리 주님의 십
자가의 은혜로 비유한다면 우리 인생의 많은 죄가 에베레스트산과 같
이 높다 할지라도 그 깊은 해연 바다에다 던져 버리면 바다 속으로 쑥
들어가서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아무리 크고 높아도 주님
의 은혜 바다로 다 용서함 받고도 남음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름에 수영 못하는 사람들은 해수욕한다는 것이 얕은 해변에서 놀
다가 오는데 그칩니다. 그러나 수영 잘하는 사람은 깊은 데로 가서 시
원하고 상쾌하게 자유롭게 수영하는데 그 맛은 체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말씀과 은혜가 풍성한 자
리까지 나아가 깊은 체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
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5:4)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베드로나 교역자에게는 천하보다 귀한 영
혼이 즉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라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대단지 아파트, 군대, 학교, 공장 등은 복음을 잘 전해야 할 곳입니
다. 인구가 많은 인도에 백여개의 교회가 있으며 아세아 복음화는 우리
들의 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100주년을 맞이하여 더욱 선교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습니다. 부활과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우리가 따르므로 은혜와 능
력이 풍성하고 다시금 1907년에 불어왔던 성령의 뜨거운 바람이 불어
와서 놀라운 질적 부흥과 양적 부흥이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꾸준한
교육적 선교를 잘하며 영성운동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4. 은혜의 원천인 사랑(엡3:19)
나일강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어디서 흘러내려 오는지 그 고마운
강의 샘, 근원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은혜의 바다도 그 근원의 샘을
찾아올라 간다고 하면 결국은 갈보리 산 십자가에서 그 원천을 찾게
됩니다. 십자가의 쇠못을 받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우리를 구원하는
깊은 은혜의 바다를 이룩해 놓은 것입니다.
엡3:18-19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
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
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록했습니다.
어찌하여 아버지 하나님은 값없이 은혜로 독생자를 대속의 제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이 질의에 대한 답변은 바로 하나님의 그 크고
깊으신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샘이 있을 뿐입니다.
엡2:8에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기록했는데 여
기 『은혜를 인하여』 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좇아가 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좇아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을 얻었나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는 말
씀과 잘 맞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 한 이상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집에 부부가 살고 있
었는데 아내가 비참하게도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남편과 시아버지는 문
둥병자는 곰의 쓸개나 사람의 간을 먹어야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그 부자는 곰사냥을 갔습니다. 큰 반달곰을 만났는데 아버지
가 칼을 가지고 싸우다가 아버지는 곰에게 물려 죽었고 곰은 상처를
입고 달아났습니다. 이 아들은 곰 쓸개는 못 얻게 됐지만 부친의 돌아
가신 몸에서 간을 도려내고 그 시체를 산에다 매장하고 내려옵니다. 그
런데 들고 내려오는 부친의 간 속에서 소리가 나는데 『얘 발걸음을
조심해라 산길이 험하니 넘어 지지 않게 잘 내려가라』하는 아버지의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고 합니다.
아무튼 아버지의 사랑은 자기는 희생되고 아들과 자부가 잘 살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뜨거웠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독생자를 희생케 하는 열성으로 십자가에
못박기 까지 하게 해서 인류의 죄값을 담당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피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됐습니다. 요6:55에
『내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깊은 바다로 가라 했습니다. 바다는 인류의 미래의 무대요,
생명을 위한 공급과 무진장의 보고로써 개발할 넓은 목표입니다. 석유
를 얻으려고 바다 밑을 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바다의 고기들과 보화보다 더 값진, 생명의 창조주 예수님
을 좇아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입니다. 철저한 각오를 가지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
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는 깊은 바다와 같습니다. 이 바다 같은 은혜에 들어
가 구원받게 하십니다.
이 은혜의 원천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의 양이 아니고 주님의 양들을 생명의 꼴로 잘 먹이며 깊
은 은혜의 바다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따라 삽시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6)
그 전날 밤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고 그물을 내렸으나 허탕이었습니
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
으되 얻은 것이 없었다』고(눅5:5) 고백했습니다. 지칠대로 지치고 피곤
하고 낙심되고 실의에 빠지고 절망 상태에 떨어졌을 때 다시 말하면
내 힘과 내 재간과 내 기술로는 할 수 없다고 통감했을 때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
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일단 지난 밤의 상황과 경험과 기술을
다 젖혀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
니다. 그러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입니다.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두 배가 바다에 잠길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히게 됐습니다.
1. 깊은 바다에 대하여(4절)
깊은 바다에는 해초류 조개류가 많이 서식하고 물고기가 많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가 하면 대양에는 상어, 고래 등 큰 물고기들이 살
고 있습니다. 깊은 바다 밑에는 산호, 진주, 조개 또는 상선, 해적선의
침몰 등으로 예술품, 골동품, 금은 보화가 깔려 있기도 합니다.
현대의 경제개발의 방향은 깊은 바다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또한 그
곳에는 무진장의 자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이 바다 위해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나니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하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바다로 가서 그물을 던지고 그 많은 고기를
잡게 되어 즐거운 비명을 올리게 되었고 어제밤의 실망이 변하여 오늘
의 기쁨의 개가를 부르게 됐습니다.
2. 베드로의 더 큰 소득(8-11)
처음 베드로는 예수님을 5절에 『선생』이라 불렀는데 고기 잡은 후
에는 8절에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기적적 풍어보다 더 중요
한 것을 얻었는데 그것은 예수를 더 잘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처음에는 사람처럼 보였으나 그 행적을 보니 신성을 지닌 존
재이심을 터득하게 됐습니다. 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도 큰 소
득인 것입니다. 세계에 아니 우주의 유일한 생명과 행복의 열쇠를 잡은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인 예수 앞에 베드로 자신은 죄인 됨과 상종할
자격이 없는 누추한 존재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즉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예수를 좇기로 했
습니다. 자기 일생을 걸었던 그물도, 그렇게 잡기를 원했던 물고기도,
사랑하던 가족까지도 내버려두고 예수를 좇기로 했습니다(눅5:11-). 뿐
만 아니라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함
과 같이 베드로도 정든 게네사렛 호수를 떠나 세계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인 그리스도를 위한 능욕을 받을 각오를 하고 주의 종의 사
명을 다하고자 궐기하고 예수를 좇게 됐습니다.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말했거니와 베드로
는 그 귀한 자유까지도 주께 바치기를 원하여 주님께 복종하고 충성하
고 주님의 노예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에 보면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기록했습니다.
3. 깊은 은혜의 바다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보면 깊은 바다는 깊은 은혜의 바다임을 깨닫
게 됩니다.
은혜는 댓가없이 공로없이 주는 선물인 것입니다. 표창패나 공로상과
는 취향을 다르게 합니다. 물, 공기 같은 값없이 받는 것들이 값비싼
요리보다 생명을 위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도 돈주
고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귀
한 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값없이 최대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
입니다. 그 은혜의 넓이와 깊이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고통의 십자가의 깊이는 한량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피로 이룬 샘물 깊고도
넓도다!』라고 찬송가를 감격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
에서 지극히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십자가입니다.
최대의 고통 중 하나님의 뜻을 이룩한 희생의 십자가입니다.
어떠한 흉악한 죄라도 이 십자가의 깊은 은혜의 바다에 던지면 다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미7:19에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라고 말씀
했습니다. 게네사렛 호수보다 사해가 더 깊고, 사해보다 지중해, 지중해
보다 태평양은 아주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태평양의 『필리핀』 가까운 깊은 곳 비트엘즈 해연의 깊이
는 11,034미터라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산은 산봉우리
가 8,882미터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비트엘즈 해연을 우리 주님의 십
자가의 은혜로 비유한다면 우리 인생의 많은 죄가 에베레스트산과 같
이 높다 할지라도 그 깊은 해연 바다에다 던져 버리면 바다 속으로 쑥
들어가서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아무리 크고 높아도 주님
의 은혜 바다로 다 용서함 받고도 남음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름에 수영 못하는 사람들은 해수욕한다는 것이 얕은 해변에서 놀
다가 오는데 그칩니다. 그러나 수영 잘하는 사람은 깊은 데로 가서 시
원하고 상쾌하게 자유롭게 수영하는데 그 맛은 체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말씀과 은혜가 풍성한 자
리까지 나아가 깊은 체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
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5:4)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베드로나 교역자에게는 천하보다 귀한 영
혼이 즉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라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대단지 아파트, 군대, 학교, 공장 등은 복음을 잘 전해야 할 곳입니
다. 인구가 많은 인도에 백여개의 교회가 있으며 아세아 복음화는 우리
들의 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100주년을 맞이하여 더욱 선교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습니다. 부활과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우리가 따르므로 은혜와 능
력이 풍성하고 다시금 1907년에 불어왔던 성령의 뜨거운 바람이 불어
와서 놀라운 질적 부흥과 양적 부흥이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꾸준한
교육적 선교를 잘하며 영성운동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4. 은혜의 원천인 사랑(엡3:19)
나일강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어디서 흘러내려 오는지 그 고마운
강의 샘, 근원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은혜의 바다도 그 근원의 샘을
찾아올라 간다고 하면 결국은 갈보리 산 십자가에서 그 원천을 찾게
됩니다. 십자가의 쇠못을 받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우리를 구원하는
깊은 은혜의 바다를 이룩해 놓은 것입니다.
엡3:18-19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
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
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록했습니다.
어찌하여 아버지 하나님은 값없이 은혜로 독생자를 대속의 제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이 질의에 대한 답변은 바로 하나님의 그 크고
깊으신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샘이 있을 뿐입니다.
엡2:8에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기록했는데 여
기 『은혜를 인하여』 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좇아가 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좇아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을 얻었나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는 말
씀과 잘 맞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 한 이상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집에 부부가 살고 있
었는데 아내가 비참하게도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남편과 시아버지는 문
둥병자는 곰의 쓸개나 사람의 간을 먹어야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그 부자는 곰사냥을 갔습니다. 큰 반달곰을 만났는데 아버지
가 칼을 가지고 싸우다가 아버지는 곰에게 물려 죽었고 곰은 상처를
입고 달아났습니다. 이 아들은 곰 쓸개는 못 얻게 됐지만 부친의 돌아
가신 몸에서 간을 도려내고 그 시체를 산에다 매장하고 내려옵니다. 그
런데 들고 내려오는 부친의 간 속에서 소리가 나는데 『얘 발걸음을
조심해라 산길이 험하니 넘어 지지 않게 잘 내려가라』하는 아버지의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고 합니다.
아무튼 아버지의 사랑은 자기는 희생되고 아들과 자부가 잘 살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뜨거웠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독생자를 희생케 하는 열성으로 십자가에
못박기 까지 하게 해서 인류의 죄값을 담당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피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됐습니다. 요6:55에
『내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깊은 바다로 가라 했습니다. 바다는 인류의 미래의 무대요,
생명을 위한 공급과 무진장의 보고로써 개발할 넓은 목표입니다. 석유
를 얻으려고 바다 밑을 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바다의 고기들과 보화보다 더 값진, 생명의 창조주 예수님
을 좇아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입니다. 철저한 각오를 가지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
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는 깊은 바다와 같습니다. 이 바다 같은 은혜에 들어
가 구원받게 하십니다.
이 은혜의 원천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의 양이 아니고 주님의 양들을 생명의 꼴로 잘 먹이며 깊
은 은혜의 바다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따라 삽시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