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목사 (와싱톤 한인교회)

1.

저는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김영봉 목사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러분이 요한복음 9장의 이야기에서 만난 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옛날, 여러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던 단어 중에 '밴냇 병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 이제, 이런 말은 사전에서조차 없애 버려야 할 말입니다만,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생아들은 모두 맹인인 셈이랍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눈이 점점 밝아져야 정상이었습니다만, 제게는 그런 기본적인 복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의 그 암흑 속에 그대로 남아 그 어둠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여러분 시대의 유명한 맹인 가수 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가 존스 합킨스(John's Hopkins) 대학병원에서 개안 수술에 대한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지요? 그 때, 의사가 "당신의 시신경이 너무 손상되어 수술을 받더라도 15분 정도밖에는 세상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진단을 내렸답니다. 스티비 원더는 "15분이라도 좋습니다. 수술을 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지요. 의사가 "아니, 실패가 분명한 수술을 왜 굳이 하시렵니까?"라고 묻자, 스티비 원더가 "제 딸을 보고 싶어요. 사랑하는 딸의 얼굴을 15분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겁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볼 수 없는 사람의 절박한 심정을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지 못한다는 사실, 언제나 어둠 속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 보지 못함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불편들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문제가 제게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나라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을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해석했고, 인간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치 엄한 감찰관처럼 여겼습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인간의 언행심사를 엄밀하게 검사하여, 벌을 내리기도 하고 상을 내리기도 한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제 문제를 두고 수군거리곤 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것을 보니 분명히 무슨 죄를 범한 것이 사실인데, 그렇다면 누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 부모의 죄가 자식에게 벌로 나타났는가? 하나님은 예언자 에스겔을 통해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다시는 입에 담지 말라(겔 18:1-3)고 명령하지 않으셨던가? 이 말씀이 맞는다면,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물을 하나님은 아니시지 않는가? 그게 아니라면, 그러면, 저 사람이 태중에 있을 때 무슨 큰 죄를 지었는가? 태중에 있는 아이가 저런 참혹한 재앙을 벌로 받을 정도로 심각한 죄를 범할 수 있는가?

제가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동안, 사람들이 이렇게 수군거리면서 지나갈 때, 그러다가 가끔 마음이 동해 동전 몇 푼 던져 주고는 무슨 큰 일이나 한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사라질 때, 제 마음이 어떨지, 아마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맹인됨으로 인해 인간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거지가 되어 살아가는 제가, 하나님에게마져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니, 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해지던지요! 사람들은 저를 '죄덩어리'로 보고 피해 다녔습니다. 아무도 제 마음의 상처에 대해 관심을 보인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저는 사람들의 적선이 가장 너그러운 곳, 성전 문으로 가서 구걸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도,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희망을 둘 수 없다면, 목숨이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덜 고생하고 싶었습니다. 제 민족들 가운데 신심이 두터운 사람들은 거지들에게 적선하는 것을 종교적인 의무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성전 입구는 저희에게 최고로 좋은 목(best location)이었던 셈입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저는 하루 하루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안식일이나 축제 기간에는 수입도 많아져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저와 함께 구걸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집도 사고 땅도 사 둔 부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으고도, 그들은 여전히 변장을 하고 구걸을 합니다. 그들에 의하면, 이것보다 더 좋은 사업이 없답니다. 저는 그 정도로 타락한 거지는 아니었습니다. 구걸한 돈으로 하루 하루 연명해 가는 희망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2.

그러던 어느 날, 초막절 축제 대목으로 인해 모은 돈이 꽤 많았지만, 따로 딱히 할 일도 없고 하여, 늘 있던 곳에 나가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그 날도 제 곁을 지나가면서 저의 고난의 원인에 대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제 앞에 머물러 무릎을 구부려 앉는 기척을 느꼈습니다.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그분의 이름이 예수였습니다. 잠시 동안 흙을 비비는 소리가 나더니, 그 사람이 감겨진 제 눈에 그 흙을 발라 주었습니다. 저는 잠시 멈칫했으나,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에 끌려 그 사람이 하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아, 얼마만이었는지요? 제 눈을, 제 얼굴을 이렇게 사랑스럽게 만져주는 손길을 느낀 것이! 여러분은 모르실 것입니다. 그 순간, 감겨진 제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모두 다 저를 죄덩어리로 알고 피하는데, 이분은 누구신데 저에게 사랑의 손길을 건네 주셨을까요? 저는 그 눈물의 온기 때문에 눈이 타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눈만이 아니라 제 마음도 그렇게 뜨거웠습니다.

잠시 후, 그 사람은 다정한 음성으로 제게 말씀하십니다. "자, 이제 실로암 연못으로 가셔서 눈을 씻으십시오." 왜 이런 명령을 하시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그냥 손으로 비벼버려도 되는데, 왜 굳이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는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지만, 이번에도 저는 뭔가 심상치 않은 힘에 이끌려 실로암으로 갔습니다. 실로암 연못은 예루살렘 성전 바깥에 있던 기혼 샘에서 물길을 내어 성전 안에 물을 항상 저장해 둘 수 있도록 만든 저수조였습니다.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눈에 발랐습니다. 흙은 쉽게 떨어져 나갔습니다. 저는 거푸 물을 떠서 두 번, 세 번 눈을 씻었습니다. 타는 듯이 뜨겁던 눈이 시원해졌습니다. 여러번을 그렇게 하고 나서 일어섰습니다. 전신에 시원한 느낌이 펴졌습니다. 오랜 만에 날아갈듯한 기분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그런데, 아, 그런데 말입니다. 일어서는 순간, 지난 수십년 동안 저를 덮어씌우고 있던 암흑이 걷히고, 대신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찬란한 광채가 저를 덮었습니다.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밝은 빛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저는 왜 갑자기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제 눈이 떠졌고 시력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습니다. 눈을 뜨고 사물을 본다는 것이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서, 그게 그런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서서히 찬란했던 광채가 잦아들고 주변 사물이 하나씩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눈을 비비고 떳다 감았다 하기를 반복하면서 재삼, 재사 확인해 보았습니다. 하, 저 자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눈이 떠진 것입니다!

저는 제가 구걸하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는 저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뛰어오는 것을 보자, 저를 아는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며 의아해 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두고 또 수군거립니다. "저 사람이 구걸하던 그 맹인이 아닌가?" 라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아니야,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달라. 그 사람은 맹인이었잖아?"라고 응수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여기서 수 십년 동안 여러분에게 구걸하던 그 사람입니다."

3.

여러분은 무엇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침으로 개어 눈에 바른 진흙 때문이었을까요? 실로암 연못의 물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제 눈을 치료한 것은 예수라는 분의 사랑의 능력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제 눈을 만져주실 때 느꼈던 그 뜨거운 사랑을! 그 사랑의 능력이 제 눈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저는 나중에서야 깨달아 알았습니다. 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예수라는 분이 제게 어떤 분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실로암'이라는 이름은 '보냄받음'이라는 뜻입니다. 기혼 샘물에서 지하 수로를 통해 물을 보냄으로 만들어진 연못이므로 '실로암'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실로암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보내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눈을 치료받은 것은 실로암 연못물 때문이 아니라, 참된 실로암이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에 제 눈을 씻음으로 제 눈이 회복되었습니다. 육신의 눈만 회복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도 회복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알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알았고, 천국과 영생에 대해서도 알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눈을 떳습니다. 실로암으로 오신 예수님은 저의 모든 것을 구원하시어 새로운 차원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4.

이것이 저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저의 노래요 간증입니다. 이것이 저의 감사의 조건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감사절을 지키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인해 감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저처럼 이렇게 가슴 벅찬 감사의 이야기를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얼마 전 여러분 중의 한 성도님으로부터 제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일단 와 보세요' 초청 만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입니다만, 오늘 감사절에 저의 이야기와 함께 들어보시면 좋을 듯하여 들려 드립니다. 동영상으로 준비되어 있으니, 한 번 직접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최연서 집사 간증)

5.

여러분, 저와 같은 이야기, 최연서 집사님과 같은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는 있습니까? 있다면, 감사하십시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나누십시다. 없는 이야기 만들어 내자는 뜻이 아닙니다. 감동적으로, 멋지게, 눈물나게 각색하고 과장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그대로의 이야기, 신비롭고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보지 못하던 눈을 뜬 것 같은, 혹은 냉소적 무신론자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변한 것 같은 '삶의 변화의 이야기'를 나누십시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진실하고 겸손하게 나누십시다. 우리를 참되게 변화시키는 기적의 연못, 참된 실로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십시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아직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들 가운데 참으로 많은 분들이 뭔가 획기적인 체험과 변화를 기대하고 갈구하는데, 속 시원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답답해 하시는 것을 봅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첫째, 실제로는 여러 가지 체험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 당연시하고 지나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갈라지고 분산되고 찢겨 있어서 도대체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참된 실로암이신 예수님과 거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문득 문득 멈추어 서서 마음의 눈으로 주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보일 것입니다. 그 손길이 보이는 정도 만큼 여러분에게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필경, 여러분에게는 이미 이야기가 많이 있음에 분명합니다. 그것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여러분의 삶의 방식이, 예수님의 사랑의 능력이 활동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욕심을 우선하는 경우, 죄를 탐하고 그것을 끊어버리기를 원치 않는 경우, 예수님의 사랑의 능력이 일상 생활에 침투할 수 없도록 신앙 생활을 주일에만 한정시키는 경우, 혹은 전혀 신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 그런 변화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럴 경우,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귀에 따갑도록 들은 빤한 옛날 이야기'밖에 없을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고장난 녹음기처럼 그것을 되풀이하려 하지만, 아무도 귀담아 들으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 저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 감사절에 가족들과 함께, 교우들과 함께 그리고 이웃과 함께, 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일어나게 하신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기원합니다. 감동스러운 이야기들로 풍성한 이번 감사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의 여러분의 생의 순간 순간들이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저의 이야기가 여러분 각자의 이야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