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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목사 (금란교회)
기독교인들에게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금보다 더 귀하고 생명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상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린 사람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제법 있는 것 같다 가다 환난과 고난의 폭풍이 몰아 닥칠 때에는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에 타셨는데도, 폭풍을 만났을 때에 제자들이 무서워 떨며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부르짖을 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고 꾸짖으신 다음에 곧이어 바다 와 바람도 꾸짖어 잠잠케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4장에서도 예수님이 분명히 배를 타고 먼저 건너가라고 말씀하셔서 건 너 가는데도 폭풍을 만나니까 모두 죽는 줄 알고 무서워 벌벌 떨고 예수님이 도와 주시려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데도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났다고 모두 무서워 떨었습니다. 두려움은 영안을 어둡게 해서 볼 것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고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하고 외칠 때에 예수님께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바다 위로 뛰어 내려 걸어가다가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길이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게 될 때 에 두려움이 몰려오면서 바다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외칠 때 주께서 그의 손을 붙잡아 건져 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고 꾸짖었습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에는 제법 믿음이 있는 것 같다가도 환난과 고통의 폭풍이 몰아 닥칠 때에는 그만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의심의 바다에 빠지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1. 왜 의심합니까?
① 예수님이 인도하시는데 왜 의심합니까? 예수님의 탄 배가 뒤집히겠습니까? 예수님이 분명히 "먼저 배를 타고 건너가라"고 해서 건너가는데 그 배가 뒤집히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육지에 있는 것 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폭풍 가운데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인생 항해가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 뜻에 순종해도 폭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② 주님이 기도해 주시는 데 왜 의심합니까? 예수님은 따로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가시고 제자들을 배를 타고 먼저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 하시는데 그 배가 뒤집히겠습니까? 로마서 8장 34절에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탄 배가 결코 뒤집히지 않습니다.
③ 주님이 구하시려 찾아오시는데 왜 의심합니까? 우리가 폭풍을 만날 때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주님이 구원하시려고 찾아오십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에 보면 바울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고난 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아무 데도 없다(God is nowhere)"고 하더니 질병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시다(God is now here)"라고 고백하더랍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④ 믿음이 성장케 하시려 고 폭풍을 보낸 것이므로 의심해선 안됩니다. 이 무서운 폭풍으로 제자들을 연단 시켜서 믿음이 한 단계 더 성장시키려고 하신 것이기 때문에 의심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2. 고난 날에 의심하지 말 것들
성도들에게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어려운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마귀는 조롱하듯이 비웃으며 우리에게 의심을 집어넣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금식하며 고생하실 때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 님의 아들이어든....."하면서 의심부터 주입시켰습니다. 사단이 아담과 이브를 찾아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느라고 "정말 하나님이 이 모든 실과를 다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라고 의심부터 집어넣었습니다.
욥은 인간이 당하는 최고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욥기 13장 15절에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저를 의지하겠노라(Though he slay me, yet will I trust him)"
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선 안됩니다. 환난과 고통의 폭풍이 밀어닥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가 왜 이런 실패와 고통을 당하겠는가? 분명히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봐 예수님이 극심한 고통 중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절규한 것처럼 우리도 그런 절규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지극히 사랑하는 자라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환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하는 자 일수록 더 고난과 환난을 당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날에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정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욥기 5장 17절에 "볼지어다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연단 하시려고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 주시고 치료하십니다.
②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의심해선 안됩니다. 고난의 풍파가 닥쳐올 때, 하나님이 멀리 떠나시고 광야에 혼자 내던져 진 것같이 느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심부터 담대히 물리쳐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도 독차지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물 없는 구덩이에 던지어져 죽을 뻔도 했고, 머슴살이 하다가 오해받아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런 고난의 생활 속에서도 빈번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고난을 당할 때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이 더욱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의심해선 안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도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기도하다가 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면서 "지금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한 증거니라"하시더니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에는 발자국 이 둘이 아니라 하나만 보이더랍니다. "주님 이 어려운 때에는 나를 홀로 가게 하십니까?"했더니 "그것은 네가 홀로 걸어간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안고 갔기 때문에 발자국이 하나만 보인 것이란다."하고 말씀해 주시더랍니다.
③ 하나님의 구원을 의심해선 안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 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어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당해도 반드시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시고 이기게 해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눈으로 환경을 볼 때에는 칠흑같이 캄캄하고 사방이 막히고 도저히 헤어 날 수 없을 것 같아도 반드시 하나 님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확신을 든든히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얼마 안되어서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 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요란하게 말발굽 소리를 내며 추격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왜 이런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모두 다 이제는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치며 울었습니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우리를 여기까지 끌어내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 차라리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것이 여기서 죽는 것보다 났지 아니하냐?"고 하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에 지도자 모세는 믿음에 굳게 서서 외쳐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 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를 들어 홍해 바다를 칠 때에 육지같이 갈라져 모두 무사히 건너갔고 뒤따라 들어온 애굽 군사들은 물이 합치면서 모두 수장 지내고 말았습니다.
절망은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꼭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환난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이 당하는 IMF 경제 위기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가 당하는 IMF와는 다릅니다. 이 나라에는 거듭 난 신자 참된 믿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신자가 1200만 신자 중에 아마도 500만은 넘을 것입니다. 우상의 나라 잡신 섬기는 나라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반드시 합동하여 유익하게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레이놀드 W 그린씨가 말하기를 "인생에 가장 좋은 일들은 흔히 고난과 슬픔이라는 보자기 속에 쌓여서 온다(The very best things that happen in life are often wrapped in packages of difficulty an sorrow)"
④ 기도의 응답을 의심해선 안됩니다. 너무 큰 시험을 만나고 기가 막힌 시험을 당하면 기도도 안되고 기도해 보았자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큰 문제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열 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2-13절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레미야 33장 2-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 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 기도하면 IMF가 문제겠습니까? 하나님께 직장이 없겠습니까? 병 고칠 능력이 없겠습니까? 하나님께 신랑감, 신부감이 없겠습니까? 하나님께는 해결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호텔의 마스터키와 같습니다. 마스터키는 그 호텔의 모든 방을 다 열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바사 나라의 모든 유대인의 하만의 간계로 한 날에 다 살육 당하게 되었을 때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는 각오로 에스더와 온 국민이 금식하며 지도 할 때에 하만이 모르드게를 메어 달아 죽이려던 장대에 자기가 달려 죽고 유대인들은 다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고 그 기도의 위력은 지금도 살아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도 의심하지 말고 어려울수록 더욱 기도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금보다 더 귀하고 생명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상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린 사람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제법 있는 것 같다 가다 환난과 고난의 폭풍이 몰아 닥칠 때에는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에 타셨는데도, 폭풍을 만났을 때에 제자들이 무서워 떨며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부르짖을 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고 꾸짖으신 다음에 곧이어 바다 와 바람도 꾸짖어 잠잠케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4장에서도 예수님이 분명히 배를 타고 먼저 건너가라고 말씀하셔서 건 너 가는데도 폭풍을 만나니까 모두 죽는 줄 알고 무서워 벌벌 떨고 예수님이 도와 주시려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데도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났다고 모두 무서워 떨었습니다. 두려움은 영안을 어둡게 해서 볼 것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고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하고 외칠 때에 예수님께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바다 위로 뛰어 내려 걸어가다가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길이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게 될 때 에 두려움이 몰려오면서 바다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외칠 때 주께서 그의 손을 붙잡아 건져 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고 꾸짖었습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에는 제법 믿음이 있는 것 같다가도 환난과 고통의 폭풍이 몰아 닥칠 때에는 그만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의심의 바다에 빠지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1. 왜 의심합니까?
① 예수님이 인도하시는데 왜 의심합니까? 예수님의 탄 배가 뒤집히겠습니까? 예수님이 분명히 "먼저 배를 타고 건너가라"고 해서 건너가는데 그 배가 뒤집히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육지에 있는 것 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폭풍 가운데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인생 항해가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 뜻에 순종해도 폭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② 주님이 기도해 주시는 데 왜 의심합니까? 예수님은 따로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가시고 제자들을 배를 타고 먼저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 하시는데 그 배가 뒤집히겠습니까? 로마서 8장 34절에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탄 배가 결코 뒤집히지 않습니다.
③ 주님이 구하시려 찾아오시는데 왜 의심합니까? 우리가 폭풍을 만날 때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주님이 구원하시려고 찾아오십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에 보면 바울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고난 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아무 데도 없다(God is nowhere)"고 하더니 질병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시다(God is now here)"라고 고백하더랍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④ 믿음이 성장케 하시려 고 폭풍을 보낸 것이므로 의심해선 안됩니다. 이 무서운 폭풍으로 제자들을 연단 시켜서 믿음이 한 단계 더 성장시키려고 하신 것이기 때문에 의심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2. 고난 날에 의심하지 말 것들
성도들에게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어려운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마귀는 조롱하듯이 비웃으며 우리에게 의심을 집어넣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금식하며 고생하실 때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 님의 아들이어든....."하면서 의심부터 주입시켰습니다. 사단이 아담과 이브를 찾아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느라고 "정말 하나님이 이 모든 실과를 다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라고 의심부터 집어넣었습니다.
욥은 인간이 당하는 최고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욥기 13장 15절에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저를 의지하겠노라(Though he slay me, yet will I trust him)"
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선 안됩니다. 환난과 고통의 폭풍이 밀어닥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가 왜 이런 실패와 고통을 당하겠는가? 분명히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봐 예수님이 극심한 고통 중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절규한 것처럼 우리도 그런 절규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지극히 사랑하는 자라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환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하는 자 일수록 더 고난과 환난을 당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날에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정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욥기 5장 17절에 "볼지어다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연단 하시려고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 주시고 치료하십니다.
②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의심해선 안됩니다. 고난의 풍파가 닥쳐올 때, 하나님이 멀리 떠나시고 광야에 혼자 내던져 진 것같이 느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심부터 담대히 물리쳐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도 독차지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물 없는 구덩이에 던지어져 죽을 뻔도 했고, 머슴살이 하다가 오해받아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런 고난의 생활 속에서도 빈번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고난을 당할 때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이 더욱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의심해선 안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도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기도하다가 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면서 "지금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한 증거니라"하시더니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에는 발자국 이 둘이 아니라 하나만 보이더랍니다. "주님 이 어려운 때에는 나를 홀로 가게 하십니까?"했더니 "그것은 네가 홀로 걸어간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안고 갔기 때문에 발자국이 하나만 보인 것이란다."하고 말씀해 주시더랍니다.
③ 하나님의 구원을 의심해선 안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 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어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당해도 반드시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시고 이기게 해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눈으로 환경을 볼 때에는 칠흑같이 캄캄하고 사방이 막히고 도저히 헤어 날 수 없을 것 같아도 반드시 하나 님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확신을 든든히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얼마 안되어서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 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요란하게 말발굽 소리를 내며 추격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왜 이런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모두 다 이제는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치며 울었습니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우리를 여기까지 끌어내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 차라리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것이 여기서 죽는 것보다 났지 아니하냐?"고 하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에 지도자 모세는 믿음에 굳게 서서 외쳐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 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를 들어 홍해 바다를 칠 때에 육지같이 갈라져 모두 무사히 건너갔고 뒤따라 들어온 애굽 군사들은 물이 합치면서 모두 수장 지내고 말았습니다.
절망은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꼭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환난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이 당하는 IMF 경제 위기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가 당하는 IMF와는 다릅니다. 이 나라에는 거듭 난 신자 참된 믿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신자가 1200만 신자 중에 아마도 500만은 넘을 것입니다. 우상의 나라 잡신 섬기는 나라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반드시 합동하여 유익하게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레이놀드 W 그린씨가 말하기를 "인생에 가장 좋은 일들은 흔히 고난과 슬픔이라는 보자기 속에 쌓여서 온다(The very best things that happen in life are often wrapped in packages of difficulty an sorrow)"
④ 기도의 응답을 의심해선 안됩니다. 너무 큰 시험을 만나고 기가 막힌 시험을 당하면 기도도 안되고 기도해 보았자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큰 문제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열 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2-13절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레미야 33장 2-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 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 기도하면 IMF가 문제겠습니까? 하나님께 직장이 없겠습니까? 병 고칠 능력이 없겠습니까? 하나님께 신랑감, 신부감이 없겠습니까? 하나님께는 해결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호텔의 마스터키와 같습니다. 마스터키는 그 호텔의 모든 방을 다 열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바사 나라의 모든 유대인의 하만의 간계로 한 날에 다 살육 당하게 되었을 때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는 각오로 에스더와 온 국민이 금식하며 지도 할 때에 하만이 모르드게를 메어 달아 죽이려던 장대에 자기가 달려 죽고 유대인들은 다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고 그 기도의 위력은 지금도 살아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도 의심하지 말고 어려울수록 더욱 기도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