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부족한 탓으로 어떤이는 벽에 기댄 채,
어떤이는 바닥에 앉아서는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몇 마디 영어로, 혹은 더듬거리는 독일어로
손짓발짓을 섞어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성탄절 전야의 만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칠면조 고기 한 점 없고 달콤한 와인 한 잔 없는
그저 구운 감자와 따뜻한 물이 전부지만,
병사들의 성탄절 추억과 전쟁 전의 고향 이야기가
그 소박한 오두막집의 성탄 전야를 한층 평화롭게 해주었다.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땅ㆍ날씨와 수확 이야기며,
학교ㆍ공장과 병원의 이야기도 했다.
그들은 단지 성실한 농민이며 노동자이고 학교 선생님, 화가였다.
그들 서로간에 어떤 미워해야 할 그 무엇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는
그냥 평범한 이웃사람과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화기애애한 얘기 중에서 그들은 문득 의문이 일었다.
왜 우리는 서로 죽여야 하는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데,
그들도 부모형제가 있고 그들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랑하는 친구가 있는데.
다음날 아침 그들은 각자의 총을 챙겨서는 자기 부대로 돌아갔다.
그들 각각은 서로가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과연 다음 전쟁터에서 적이라고 하는 저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