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 Paul Gauguin(1848~1903)

원시(原始)의 세계를 찾아나선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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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일요화가(日曜畵家)로서 코로나 쿠르베의 영향에 의한 그림을 그리다가 1874년 피사로와 만나 차츰 당시의 파리 화단에 물결치고 있던 인상파(印象派)의 화론(畵論)에 공감하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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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히네 노 테 치아레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하여 얼마간 지난 후에 그린 작품으로, 간혹 그의 오두막집에 찾아오곤 하던 이웃 여인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녀는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는 구라파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 그럴 뿐이다. 어쨌든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그 얼굴 생김새의 어디를 보나 곡선의 매듭 속에 라파엘로적인 조화가 있다. 조각가가 살을 붙인 것 같은 입은 온갖 말을 하고, 즐거움과 괴로움과의 입맞춤을 말하고 있었다. 그 울적한 표정 속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뒤엉켜 의연함 속에 순종(順從)함이 있었다. 미지(未知)한 것에의 두려움이 적당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서 정열을 기울여 일을 했다. 그 초상은 내 마음의 눈이 인정한 것을 그리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면을 그리려고 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노아노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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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50호의 그림을 한 점 그렸다. 노란 날개를 가진 천사 하나가 두 사람의 타히티 여인에게, 타히티 사람인 마리아와 예수를 나타내고 있는 그림이다. 그것은 파레오를 걸친 나체화이다. 파레오라고 하는 것은 꽃모양이 있는 일종의 면포(綿布)인데 말이야,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는지 허리에 감는 거야. 배경은 지극히 어두운 산과 꽃이 피어 있는 나무들, 길은 짙은 보라색으로 전경은 에머랄드 그린, 왼편에는 바나나가 있다. 나는 이 그림이 제법 마음에 든다.'(1892년 3월 11일 몽프레에게) 고갱이 브르타뉴 이후 타히티에서도 화면에 간혹 기독교적인 주제를 취급하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를테면 중경(中景)의 두 여인의 모습이 자바 사원의 대상 부조(帶狀浮彫)에서 가져온 것은 원시의 신성(神性)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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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로 1미터, 가로 1미터 30센티의 그림을 막 끝 낸 찰나다.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초록의 바닥에 나체인 여왕이 비스듬히 기대이고, 시녀가 과일을 따고, 두 노인이 굵은 나무곁에서 지혜의 나무에 대하여 말을 주고 받고 있다. 배경은 해안이다 .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색채의 점에 있어 이렇게도 무게있고 장대한 울림을 가진 것을 그려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개는 당번을 서고, 오른쪽에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울고 있다.' (1896년 4월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 1895년 3월 고갱은 다시 타히티로 갔다. 다시 그곳에서 한 해를 넘긴 그의 희열이 이 장대한 색채와 행복감에 차 있는 이 미묘한 하모니 속에서, 점점의노랑과 빨강을 빛내며 안정감을 전달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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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것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나는 단순한 나체화에 의하여 지금까지 미개인이 가지고 있었던 일종의 호사함을 암시하려고 했던 거야. 전체는 일부러 어두운 색으로 가라앉혔지. 이러한 호사함을 만드는 것은 비단으로도, 빌로도로도, 삼베로도, 금으로도 되는 게 아니고, 화가의 손에 의하여 풍부한 것으로 되는 마티에르, 오직 이것으로만 가능해. 잡다한 것은 필요없고, 단지 인간의 상상력만이 그 환상에 의하여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는 것이지. 제목은 <네바모아>, 에드가 포의 큰 까마귀가 아니라 문지기가 딸린 악마의 새야. 그리는 것은 서툴지만- 지나치게 신경이 쓰여 발작적으로 일을 하고 있음-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 나로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1897년 2월 14일 몽프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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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대지 위에 한 여인은 과일을 들고, 한 여인은 꽃을 들고 서 있다. 두 여인의 보호 아래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는 타히티의 성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의 뒤쪽에는 노란색 하늘, 그 속엔 분홍빛 구름이 걸려 있고, 오른편 하늘로 내려온 나뭇가지에는 꽃이 매달렸다. 대담한 색 배치와 건실한 구도로써 힘찬 교향악을 이루고 있다. 고갱의 어머니 아리느는 고갱이 하급 선원으로 항해 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머니의 눈길은 부드럽고도 위엄이 있으며 맑고 애정이 넘쳤다.'고 말했었다. 그는 그의 딸에게 아리느라는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붙여 사랑했었는데, 1896년 딸이 급사하여 그는 심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이 작품은 항상 그에게 깔려 있던 슬픈 마음의 바탕에서 우러난 행복한 모성에의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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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타 파라리
파리에 돌아온 고갱은 9월에 몽파르나스 가까이에 있는 그랑 쇼미에르 거리에 아틀리에를 빌려 제작을 하다가, 곧 베르생제트리크스 거리의 아틀리에로 옮겼다. 고갱은 이아틀리에에서 자바 태생의 키가 작은 혼혈의 안나와 함께 살면서, 목요일에는 손님들을 초대하여 법석을 떨었다. 아마 그것은 이미 자신의 육체 일부가 되어 버린 타히티를 떠나, 그가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던 괴로운 몸부림 같은 것이었을 게다. 타히티의 풍토적(風土的) 향기(香氣)를 안나로부터 찾으려고 했다. 그가 모래 빛깔에서 자주 보여준 보랏빛이 감도는 분홍색을 배경에 대담하게 밀어붙이듯 평면적으로 칠하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밝고 투명한 푸른 색이, 검은 피부의 안나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그를 파리에 붙들어 놓을 수 없는 불안이 감도는 화면에는 온화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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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꽃과 유방
이 작품은 고갱의 타히티 작품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의식적인 그의 원시주의적(原始主義的) 조형 의지를 담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런 의식을 떠나서 간결한 구도로 인공적(人工的)인 단순화(單純化)나 양식화(樣式化)의 흔적도 없이, 두 여인의 포즈에도 고갱이 가끔 쓰는 자바나 이집트의 그 양식도 볼 수가 없다. 젊고, 그래서 아름다운 매력을 몸 속에 가득히 지니고 자연스럽게 서 있다.
그것은 유럽인이 꿈꾸어 오던 이브(Eve)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반대적 이브도 아니다. 그런 대립을 뛰어넘은, 싱싱한 한 현실로서의 여체(女體)인 것이다. 빨간 꽃과 젖꼭지, 입술 등의 색에서, 오렌지빛, 노랑, 그리고 청록의 밝은 치마에서 차츰 어두운 암록색 검정의 머리칼과 치마색까지 차분한 하모니를 이루고 화면은 풍부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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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쪽의 작품들이 대부분 타히티에서 일상적인 모습들을 그리는 듯하면서도, 상당히 고갱 내면적인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는 상징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본 다면, 이 무렵에 그린 그의 작품들은 그런 그의 강한 의식을 떠난 순수한 일상적인 현실을 그린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타히티 시대의 대표적인 모자상 (母子像)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히바 오아 섬에서 그린 이 작품에는 섬사람들의 일상 생활의 단면을 통한 고갱의 애정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에게도, 그것을 지켜 보고 있는 왼쪽의 여인에게도 양식적(樣式的)인 강조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일상성을 묘사한 풍속화적인 작품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고갱이 인간의 내면을 투시하는 관찰안(觀察眼)과 닦아온 그의 조형적 형식미의 승화와의 사이에 이루어진 균제의 예술적인 격(格)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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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開한 이야기
만년의 고갱은 이 섬의 여러 가지 전설에 귀를 기울이고 흥미를 느낀다. 또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의 이야기로, 때로는 신비하게, 또 때로는 상징적인 성격으로 화면을 이루어 나간 것이 많다. 이 작품에서도 불상(佛像)과 같은 모습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젊은 남자와, 그 한쪽에 가까이 붙어 앉은 젊은 여인, 그들을 둘러싼 나무들과 꽃들, 이것도 고갱이 히바오아 섬에서 듣고, 보고, 느낀 이야기의 한 장면일 것이다. 그 배후의 기이한 인물은 고갱의 퐁 다벵 시대의 야코브 마이 에르 데 항이다. 곱사등이며 조그맣게 생긴 사내로서, 항상 20파운드나 되는 성서를 들고 다니는 이 남자를 여기에 그림으로써 고갱은 스스로의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그리려 했던 것 같다. 그의 과거에 힘들고 괴로웠던 나날이 만년의 그가 본 섬의 일상성에 결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