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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을 가지라 2 (여호수아 1:9)
<本文>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1:9)
<序言>
정서가 불안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종이를 찢었습니다. 어떤 병원에 갔는데 그 병원에서는 과거의 상처 문제로 접근했습니다. "혹시 어렸을 때 종이 뭉치를 맞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른 병원에 갔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환경문제로 접근했습니다. "혹시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종이 공장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특별한 방도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신병원을 찾았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저는 정서가 불안 해서 앉기만 하면 종이를 찢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종이 찢지마!" 그는 종이를 찢지 않았습니다. 목회 선상에서 교인들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해 주다 보면 교인들이 분석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분석만 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말거리만 만들어 내고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분석한다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분석만 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됩니다.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철저한 분석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분석만 하다가 자신감을 잃고 시작을 하지 못한다면 안 됩니다. 그냥 쉽게 의지적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本論>
1. 결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학생들 가운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특징이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집중력이 있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집중력이 없고 산만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이 있자면 잘하는 학생은 결단력이 있고 못하는 학생은 결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못하는 학생은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지 실제로 시작하지를 못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실제로 공부를 하는 데만도 여러 시간이 걸립니다. 자신의 결심을 부모에게 알립니다. 방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친구에게 문자 날립니다. 비장하게 커피한잔 마시고 책상에 앉습니다. 책상에 앉으면 계획표 짜고 책꽂이 정리하고 책 껍질 입히고 필통 정리하고 연필 깎고 있습니다. 그러다 텔레비젼에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그 프로만 보고 공부하겠다고 하면서 본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피곤하고 졸려서 내일을 기약하고 잔다.
어른들도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특징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잘하는 사람은 준비와 분석에 따라 결단력을 가지고 적시에 시작합니다. 그러나 못하는 사람은 준비와 분석만하고 계속 미룬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한 말 가운데 '손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눈이 게으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는 항상 계획만 짜게 하고 분석만 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주저하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합니다. 환경의 어려움을 불평하게 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하여 시작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옳은 일에는 고민하지 않고 그냥 시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에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이방인도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므로 이방인들이 할례받기를 꺼려한 나머지 이방인 전도가 잘 안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공회에 가서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 사도들과 논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탈진할만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15:36에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라고 했습니다. 수일 후라면 기껏해야 4~5일 정도 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미루지 않고 그냥 시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옳은 일에는 쉽게 시작하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뜻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뜻입니다. 선교도 하나님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옳은 일에 대해 주저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냥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잘 안 된다고 상담을 해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담으로 되는 일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상담해 주어도 기도 안 합니다. 그냥 자기가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 일에 원인을 분석하는 데 생각을 할애하는 것보다 옳기 때문에 그냥 의지적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2.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을 쉽게 하려면 확신이 필요합니다. 일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판단이 잘못되면 실패하고 실패하면 고통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실패와 고통이 두려워서 못합니다. 한마디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확신을 가지려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사물도 다 눈에 보이는 것만은 아닙니다. 빛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95%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빛인 가시광선은 5%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거기에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은 5%도 못 보는 셈입니다. 적외선은 눈에 안보입니다. 자외선도 눈에 안 보입니다. 그렇지만 존재하는 광선입니다. 소리도 다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진동수 16~20,000Hz를 듣는다고 합니다. 개는 38,000Hz까지 듣는다고 합니다. 박쥐는 98,000Hz까지 듣고 돌고래는 200,000Hz까지 듣는다고 합니다. 듣는 것으로만 본다면 인간은 짐승만도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짐승보다 나은 것은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이 나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듣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각의 차이입니다.
고린도후서5:7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물리적인 성공과 실패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옳으냐 그르냐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3.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연주자나 지휘자를 보면 이상하리만큼 머리와 몸을 흔들어 댑니다. 얼른 보면 이해가 안가는 부분입니다. 피아노 건반 누르는데 손의 낙차를 이용하여야 할 만큼 힘이 듭니까? 바이올린 현을 켜는 활하나 움직이는 데 그렇게 힘듭니까? 지휘봉 하나 움직이는데 그렇게도 힘이 들어갑니까? 피아노나 바이올린 연주는 손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로 하는 것 아닙니다. 지휘도 손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와 몸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연주와 지휘에 열정을 가지면 그렇게 됩니다. 그 열정있는 에너지가 연주되는 곡을 무게있게 합니다.
어떤 일이든 열정이 없으면 에너지 분출이 안되므로 자신감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기, 질투, 미움, 원망, 불평, 분노, 공포 등의 감정이 나쁜 것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열정있는 에너지를 다 빼앗아 가 버립니다. 자기도 열정을 잃게 되고 다른 사람의 열정까지도 빼앗아 갑니다. 사울왕은 왕의 직무를 평범하게만 해도 이스라엘을 잘 인도할 수 있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므로 승전하게 되었을 때 여인들의 당시 빌보드 챠트 1위 곡인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를 듣고 분노와 시기가 들어와 악신이 다스려 다윗을 죽이는데만 혈안이었습니다 (삼상18:7-10). 그가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이 제로로 내리막 친 것입니다 .
그러므로 열정을 잃지 않아야 옳은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열정을 재점화 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눅24:49, 16:25-26). 기도하므로 사명을 깨달을 때 예레미야와 같은 열정을 가집니다. 예레미야20:9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옳은 일은 기도하면서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結言>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 앞에 옳은 일에 결단력을 가지십시오. 믿음시각으로 확신을 가지십시오. 기도로 열정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본문 여호수아1:9에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수1:9).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피난처가 되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신32:10, 시91:1-3). 두려워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출처/차용철 목사 설교 중에서
<本文>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1:9)
<序言>
정서가 불안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종이를 찢었습니다. 어떤 병원에 갔는데 그 병원에서는 과거의 상처 문제로 접근했습니다. "혹시 어렸을 때 종이 뭉치를 맞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른 병원에 갔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환경문제로 접근했습니다. "혹시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종이 공장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특별한 방도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신병원을 찾았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저는 정서가 불안 해서 앉기만 하면 종이를 찢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종이 찢지마!" 그는 종이를 찢지 않았습니다. 목회 선상에서 교인들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해 주다 보면 교인들이 분석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분석만 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말거리만 만들어 내고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분석한다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분석만 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됩니다.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철저한 분석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분석만 하다가 자신감을 잃고 시작을 하지 못한다면 안 됩니다. 그냥 쉽게 의지적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本論>
1. 결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학생들 가운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특징이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집중력이 있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집중력이 없고 산만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이 있자면 잘하는 학생은 결단력이 있고 못하는 학생은 결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못하는 학생은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지 실제로 시작하지를 못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실제로 공부를 하는 데만도 여러 시간이 걸립니다. 자신의 결심을 부모에게 알립니다. 방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친구에게 문자 날립니다. 비장하게 커피한잔 마시고 책상에 앉습니다. 책상에 앉으면 계획표 짜고 책꽂이 정리하고 책 껍질 입히고 필통 정리하고 연필 깎고 있습니다. 그러다 텔레비젼에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그 프로만 보고 공부하겠다고 하면서 본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피곤하고 졸려서 내일을 기약하고 잔다.
어른들도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특징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잘하는 사람은 준비와 분석에 따라 결단력을 가지고 적시에 시작합니다. 그러나 못하는 사람은 준비와 분석만하고 계속 미룬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한 말 가운데 '손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눈이 게으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는 항상 계획만 짜게 하고 분석만 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주저하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합니다. 환경의 어려움을 불평하게 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하여 시작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옳은 일에는 고민하지 않고 그냥 시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에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이방인도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므로 이방인들이 할례받기를 꺼려한 나머지 이방인 전도가 잘 안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공회에 가서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 사도들과 논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탈진할만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15:36에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라고 했습니다. 수일 후라면 기껏해야 4~5일 정도 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미루지 않고 그냥 시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옳은 일에는 쉽게 시작하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뜻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뜻입니다. 선교도 하나님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옳은 일에 대해 주저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냥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잘 안 된다고 상담을 해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담으로 되는 일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상담해 주어도 기도 안 합니다. 그냥 자기가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 일에 원인을 분석하는 데 생각을 할애하는 것보다 옳기 때문에 그냥 의지적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2.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을 쉽게 하려면 확신이 필요합니다. 일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판단이 잘못되면 실패하고 실패하면 고통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실패와 고통이 두려워서 못합니다. 한마디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확신을 가지려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사물도 다 눈에 보이는 것만은 아닙니다. 빛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95%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빛인 가시광선은 5%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거기에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은 5%도 못 보는 셈입니다. 적외선은 눈에 안보입니다. 자외선도 눈에 안 보입니다. 그렇지만 존재하는 광선입니다. 소리도 다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진동수 16~20,000Hz를 듣는다고 합니다. 개는 38,000Hz까지 듣는다고 합니다. 박쥐는 98,000Hz까지 듣고 돌고래는 200,000Hz까지 듣는다고 합니다. 듣는 것으로만 본다면 인간은 짐승만도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짐승보다 나은 것은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이 나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듣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각의 차이입니다.
고린도후서5:7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물리적인 성공과 실패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옳으냐 그르냐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3.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연주자나 지휘자를 보면 이상하리만큼 머리와 몸을 흔들어 댑니다. 얼른 보면 이해가 안가는 부분입니다. 피아노 건반 누르는데 손의 낙차를 이용하여야 할 만큼 힘이 듭니까? 바이올린 현을 켜는 활하나 움직이는 데 그렇게 힘듭니까? 지휘봉 하나 움직이는데 그렇게도 힘이 들어갑니까? 피아노나 바이올린 연주는 손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로 하는 것 아닙니다. 지휘도 손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와 몸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연주와 지휘에 열정을 가지면 그렇게 됩니다. 그 열정있는 에너지가 연주되는 곡을 무게있게 합니다.
어떤 일이든 열정이 없으면 에너지 분출이 안되므로 자신감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기, 질투, 미움, 원망, 불평, 분노, 공포 등의 감정이 나쁜 것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열정있는 에너지를 다 빼앗아 가 버립니다. 자기도 열정을 잃게 되고 다른 사람의 열정까지도 빼앗아 갑니다. 사울왕은 왕의 직무를 평범하게만 해도 이스라엘을 잘 인도할 수 있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므로 승전하게 되었을 때 여인들의 당시 빌보드 챠트 1위 곡인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를 듣고 분노와 시기가 들어와 악신이 다스려 다윗을 죽이는데만 혈안이었습니다 (삼상18:7-10). 그가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이 제로로 내리막 친 것입니다 .
그러므로 열정을 잃지 않아야 옳은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열정을 재점화 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눅24:49, 16:25-26). 기도하므로 사명을 깨달을 때 예레미야와 같은 열정을 가집니다. 예레미야20:9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옳은 일은 기도하면서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結言>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 앞에 옳은 일에 결단력을 가지십시오. 믿음시각으로 확신을 가지십시오. 기도로 열정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본문 여호수아1:9에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수1:9).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피난처가 되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신32:10, 시91:1-3). 두려워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출처/차용철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