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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아나셨느니라 (누가복음 24:1-7)
미국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향해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분은 누구세요? 지금 살아있는 분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을 말씀해 보세요.’, ‘카터예요.’, ‘클린턴이예요.’, ‘부시예요.’ 여러 학생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린학생 한 명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이예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훌륭하세요.’ 선생님은 ‘아니, 살아계신 분만 하는 거예요. 돌아가신 분 말고 살아계신 분 가운데 훌륭한 분을 말해보세요.’, ‘선생님! 예수님은 살아 계세요. 영원히 살아 계세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고 앞으로도 살아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왕의 왕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요한계시록 1장 8절, 17절, 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 있었던 분은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 있는 분은 앞으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권력은 하루아침의 이슬과 같고 하루 꽃과 같이 피었다가 지는 것입니다. 권력을 따라갔던 많은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내 장래에 나를 인도할 자가 누구냐?’ 당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권력 아래서 온갖 부귀영광을 누리다가 얼마 앞에 두고 다 배반합니다. 욕합니다. 비난하고 떠나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장차 내 앞날을 책임질 새로운 물주, 새로운 길을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앞날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다스리던 주님이 오늘도 다스리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를 다스리시며,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며,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친구 되시며 우리의 사랑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다시 살려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가 더 귀하냐, 부활이 더 귀하냐, 예수님 탄생이 귀하냐, 이 세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귀한 줄 모르겠다.’ 이런 분이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길을 가는데 어떤 어린아이가 새장에 있는 새를 자꾸 괴롭힙니다. 막 공격을 하고 뜯고 계속 그럽니다. 그래서 ‘얘야! 그 새가 불쌍하지 않니? 왜 그러니? 너 새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냐?’ 하니까 ‘나 이렇게 해가지고 죽일거예요.’, ‘야~ 그러지마 새를 내가 살 수 없어?’, ‘안 팔아요. 죽일거예요.’, ‘나한테 팔아라. 내가 돈 줄께. 나를 달라.’하고 사정을 해서 이 새를 2파운드에 사가지고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살려주었습니다. 제 갈 곳으로 보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죄에 매여 있고 갇혀있는 우리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에서 건지시고, 죄와 함께 무덤에 영원한 죽음과 사망의 권세아래 지배를 받아 우리 죄인을 가두어 놓을 뿐 만 아니라 계속해서 고통을 주어서 죽게 하는, 마침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가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영생의 나라로 우리를 올려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하나입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한 분은 늘 방송에서 그런 말을 합니다. ‘이단 옆차기’다 그럽니다. 예수님은 이단 옆차기로 우리의 죄를 다 십자가로 멸하시고 무덤에 내려가셔서 모두 사망권세 멸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무덤에서 살아나오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무덤에 가셔서 우리 문제를 모두 해결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되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두고는 다 있어도 없는 것이고, 다 해결되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인이 다른 문제가 무엇이 있습니까? 해결된들 죄의 짐을 짊어지고 죄의 저주아래 있는 우리가 무슨 복을 받은들 그게 축복입니까? 출세, 행복 다 없어도 죄사함 받고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은 자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찬양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절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4절에서 57절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과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현대인들의 최고의 목표는 오래 사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과 능력은 좋은 약을 조금이라도 더 개발해서 우리를 이 지상에서 더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살아봐야 이 세상에 얼마 더 살겠습니까? 아브라함은 175세, 이삭은 180세, 야곱은 147세, 모세는 120세를 살다가 이 땅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과학이 발달해도 이 이상을 넘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창세기에 있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175세가 아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천국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가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의 무덤은 이제는 죽는 무덤이 아니라 우리의 무덤도 빈 무덤, 그리스도의 무덤도 빈 무덤, 나는 주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낙원에 들어간 줄로 믿습니다. 외국에 가서 무덤을 가보면 언제나 ‘여기 누가 잠들다.’라며 무덤이 없습니다. 그냥 다 평지입니다. 그러나 동양 사람들은 무덤을 크게 합니다. 우리 종착역이 무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사는 분은 무덤에 가서 먹고 살라고 그릇, 항아리, 밥솥, 숟가락도 다 갖다 주고 하는데 그 안에서 먹어봐야 어떻겠습니까? 그 안에서 살림 차려봐야 얼마나 한심한 일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무덤이 종착역이 아닙니다. 무덤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에게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참으로 기쁘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된 사람은 이 세상을 특별하게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래서 교인은 얼굴을 보면 다 압니다. 스데반은 순교하는 순간에도 얼굴이 천사같이 빛났습니다. 우리의 얼굴에서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빼앗아 갈 세력은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없습니다. 죽어도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와 함께 하는 삶, 오늘 찬송했지 않습니까?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늘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왜 기쁩니까? 바로 주 예수님이 주신 기쁨, 주님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그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염려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모리슨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킨 능력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늘 활동한다.’ 라고 했습니다. 부활은 오늘도 계속되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나와 항상 같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1999년 4월 1일 국민일보 겨자씨란에 나오는 글입니다. 꽃을 파는 어떤 허름한 노인이 항상 웃습니다. 생활이 어렵고 옷은 남루하며 꽃 팔면서 힘들고 피곤한대도 늘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 할머니를 행복한 할머니, 웃음의 할머니, 늘 기쁨의 할머니로 모두 다 불렀습니다.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항상 그렇게 기쁘십니까?’, ‘아니예요. 저도 어려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지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과정을 생각하면 항상 기쁩니다.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삼 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나도 오늘 있는 이 어려움이 바로 며칠 지나면 부활될 줄로 믿고 좋아질 줄로 믿으며, 좋은 날이 올 줄로 믿고 이 시험이 해결되고 이 짐을 벗고 이 어려움이 다 해결될 것을 믿으니 항상 기쁩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모든 문제를 해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우리는 봄이 올 것을 알듯이 우리의 삶속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오지만 우리는 봄이 올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계신 것을 늘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오늘 춥습니까? 며칠만 기다려 보십시오. 이 할머니처럼 기다려 보십시오.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서 기다려보십시오. 여러분의 가정, 앞날, 기업, 건강에 봄이 올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봄은 옵니다.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어제나 오늘도 언제든지 변찮고 보호해 주시네♬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지금 좋은 집이 있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더 좋은 집이 나옵니다. 지금 좋은 차 좋지만 앞으로 이 차보다 훨씬 더 좋은 차가 나옵니다. 지금 냉장고보다 앞으로 2년 지나면 훨씬 더 좋은 것이 나옵니다. 지금 핸드폰보다 훨씬 더 좋은 핸드폰이 나옵니다. 지금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세월이 여러분에게 오는 걸 믿으셔야 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바로 빈 무덤입니다. 무덤 권세, 무덤을 차시고 무덤을 깨뜨리시며 일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이요 소망이요 우리의 자랑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힘입니다. 우리는 힘써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덤 문을 박차고 나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일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 말씀했습니다. 믿는 것이 최고입니다. 윤리 도덕이 있습니다. 도덕보다 더 높은 것은 믿음입니다. 지식이 있습니다. 과학이 있습니다. 과학보다 더 높은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수준에 머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주님으로 믿는 최고의 자리에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식으로 과학적으로는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지고 우리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위에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무기는, 최고의 승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다가 너무 무지하게 살다가 우리나라에 교회가 들어오면서 서양의 지식, 과학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무지할 때, 서당에 가서 한문공부하고 있을 때 선교사가 와서 제일 처음으로 세운 것이 연세대학, 배재학당, 이화학당, 숭실대학 이것 다 선교사들이 일찍이 와서 세운 것입니다. 눈을 뜬 것입니다. 과학의 눈을 뜬 것입니다. 과학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게 해 준 것입니다. 과학이 최고가 아닙니다. 신앙이 최고입니다. 똑똑하고 지식이 있어도 거기에 머무르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최고의 능력, 최고의 힘, 최고의 기쁨, 최고의 부요함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 지상에 최고로 축복받은 나라들은 과학이 발달한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잘 믿은 나라가 과학도 발달하고 경제도 발달하며, 지식도 발달하고 교육도 발달하는 것이지 예수님을 제해놓은 민족은 과학도 뒤떨어지고 지식도 뒤떨어지며, 경제도 뒤떨어지고 모든 삶이 뒤 떨어 집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싸워서 한 순간에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을 제가 역사를 보니까 남해안으로 쳐들어온 일본이 한양까지 불과 몇 달 만에 바로 다 들어왔습니다. 그 많은 성들이 한 순간에 다 무너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본사람들은 총을 들고 왔고 우리는 죽창가지고 나서니까 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을 그냥 며칠 만에 다 점령합니다. 그냥 죽죽 올라오면 다 됐었습니다. 일본이 미국에 패한 것은 바로 무기가 미국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원자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은 비행기만 가지고 있다 보니 일본 천황이 미국 앞에 무릎을 꿇고 맥아더 앞에 무릎을 꿇으며 항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일본 천황이 그 말을 했습니다. ‘일본이 진작 과학에 눈을 떠서 우리도 지식을 더 발달시켰더라면 우리가 미국과 싸워서 지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가 과학에 뒤떨어져서 바로 미국에게 망했다.’고 작년에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영국은 바다만 정복하면 세계를 정복하는 줄 알고 계속 바다에 투자해서 바다만을 바라보고 나갔습니다. 드디어 20세기 들어와서 미국은 바다를 포기하고 라이트라고 하는 목사님 아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해 공중을 점령하면서 3백 년 동안 세계를 잡고 있던 영국은 미국으로 완전히 힘이 넘어가서 오늘 세계를 잡고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하늘만 정복하면 안 된다 해서 우주까지 다 정복하므로 말미암아 지금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있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가장 큰 무기를 가져야 됩니다.
남미에 잉카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잉카제국은 남미 안데스산맥을 중심해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굉장한 힘을 가지고 남미 전체를 통치했던 민족입니다. 그러나 1532년 스페인 피사로의 군대 180명이 27마리의 말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잉카제국은 무너졌습니다. 이 180명이 우호관계를 맺자고 황제하고 이렇게 서로 협약을 하자고 하니까 180명 얼마 안 되니까 그냥 연회에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이미 그때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몇 만 명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가장 강한 힘 있는 무기를 가진 자가 세계를 지배하고 그 다음에는 더 큰 무기를 가진 자에게 또 굴복당하고, 삼국지나 중국역사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더 강한 자에게 항상 점령당합니다. 세계의 질서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강한 무기는 무엇입니까? 사망권세 이기신 십자가의 무기보다 더 큰 무기가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로 무장하는 사람은 개인이나 민족이나 가정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무장하는 사람은 영원히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승리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해칠 자가 없습니다. 영원히 여러분의 가정을 주님이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떠나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못할 일이 없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우리나라 인천에 왔습니다. 모든 국제기구가 한국은 안 된다고 하고 선교기구도 여기만은 안 된다는 버려진 땅, 절망의 땅, 소망이 없는 땅이었지만 이 두 청년이 소망을 가지고 인천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보낸 편지가 뭔지 아십니까? ‘부활절에 이곳에 왔습니다. 사망의 철장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절망의 땅이지만 가난과 비극의 이 불쌍한 민족이지만 부활의 주님이 비추어 주시면 어두움의 세력은 물러가고 오늘 백 년 만에 이 놀라운 축복이 이 땅위에 부활절과 함께 주어진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아침빛이 여러분을 주장해서 여러분의 가정이 아직까지 죄악의 무덤 속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세상 정욕을 따라가는, 무덤을 좇아 나아가는 이 불행한 삶이 있습니까? 이제는 그곳에서 나오셔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승리하는 삶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신앙만이 승리합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주님을 저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에 것만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낙심하고 조그만 일에도 절망해서 자살해버립니다. 우리가 죽을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속상할 일도 없습니다. 다 주님이 알아서 해주시고 맡아주시며 도와주시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어려움도 안 오는 것보다 오는 게 더 좋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 이 지상에 어려움이란 어려움을 정말 저같이 많이 당한 분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놓고 보면 그 어려움 때문에 다 제가 잘된 것입니다. 어려움 때문에 손해 본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어려움도 좋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주셔서 내 죄를 사해주신 사랑의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부활의 아침과 함께 여러분의 가정이 부활의 가정이 되고 여러분의 삶이 부활의 삶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미국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향해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분은 누구세요? 지금 살아있는 분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을 말씀해 보세요.’, ‘카터예요.’, ‘클린턴이예요.’, ‘부시예요.’ 여러 학생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린학생 한 명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이예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훌륭하세요.’ 선생님은 ‘아니, 살아계신 분만 하는 거예요. 돌아가신 분 말고 살아계신 분 가운데 훌륭한 분을 말해보세요.’, ‘선생님! 예수님은 살아 계세요. 영원히 살아 계세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고 앞으로도 살아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왕의 왕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요한계시록 1장 8절, 17절, 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 있었던 분은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 있는 분은 앞으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권력은 하루아침의 이슬과 같고 하루 꽃과 같이 피었다가 지는 것입니다. 권력을 따라갔던 많은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내 장래에 나를 인도할 자가 누구냐?’ 당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권력 아래서 온갖 부귀영광을 누리다가 얼마 앞에 두고 다 배반합니다. 욕합니다. 비난하고 떠나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장차 내 앞날을 책임질 새로운 물주, 새로운 길을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앞날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다스리던 주님이 오늘도 다스리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를 다스리시며,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며,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친구 되시며 우리의 사랑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다시 살려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가 더 귀하냐, 부활이 더 귀하냐, 예수님 탄생이 귀하냐, 이 세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귀한 줄 모르겠다.’ 이런 분이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길을 가는데 어떤 어린아이가 새장에 있는 새를 자꾸 괴롭힙니다. 막 공격을 하고 뜯고 계속 그럽니다. 그래서 ‘얘야! 그 새가 불쌍하지 않니? 왜 그러니? 너 새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냐?’ 하니까 ‘나 이렇게 해가지고 죽일거예요.’, ‘야~ 그러지마 새를 내가 살 수 없어?’, ‘안 팔아요. 죽일거예요.’, ‘나한테 팔아라. 내가 돈 줄께. 나를 달라.’하고 사정을 해서 이 새를 2파운드에 사가지고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살려주었습니다. 제 갈 곳으로 보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죄에 매여 있고 갇혀있는 우리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에서 건지시고, 죄와 함께 무덤에 영원한 죽음과 사망의 권세아래 지배를 받아 우리 죄인을 가두어 놓을 뿐 만 아니라 계속해서 고통을 주어서 죽게 하는, 마침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가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영생의 나라로 우리를 올려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하나입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한 분은 늘 방송에서 그런 말을 합니다. ‘이단 옆차기’다 그럽니다. 예수님은 이단 옆차기로 우리의 죄를 다 십자가로 멸하시고 무덤에 내려가셔서 모두 사망권세 멸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무덤에서 살아나오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무덤에 가셔서 우리 문제를 모두 해결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되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두고는 다 있어도 없는 것이고, 다 해결되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인이 다른 문제가 무엇이 있습니까? 해결된들 죄의 짐을 짊어지고 죄의 저주아래 있는 우리가 무슨 복을 받은들 그게 축복입니까? 출세, 행복 다 없어도 죄사함 받고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은 자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찬양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절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4절에서 57절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과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현대인들의 최고의 목표는 오래 사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과 능력은 좋은 약을 조금이라도 더 개발해서 우리를 이 지상에서 더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살아봐야 이 세상에 얼마 더 살겠습니까? 아브라함은 175세, 이삭은 180세, 야곱은 147세, 모세는 120세를 살다가 이 땅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과학이 발달해도 이 이상을 넘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창세기에 있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175세가 아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천국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가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의 무덤은 이제는 죽는 무덤이 아니라 우리의 무덤도 빈 무덤, 그리스도의 무덤도 빈 무덤, 나는 주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낙원에 들어간 줄로 믿습니다. 외국에 가서 무덤을 가보면 언제나 ‘여기 누가 잠들다.’라며 무덤이 없습니다. 그냥 다 평지입니다. 그러나 동양 사람들은 무덤을 크게 합니다. 우리 종착역이 무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사는 분은 무덤에 가서 먹고 살라고 그릇, 항아리, 밥솥, 숟가락도 다 갖다 주고 하는데 그 안에서 먹어봐야 어떻겠습니까? 그 안에서 살림 차려봐야 얼마나 한심한 일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무덤이 종착역이 아닙니다. 무덤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에게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참으로 기쁘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된 사람은 이 세상을 특별하게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래서 교인은 얼굴을 보면 다 압니다. 스데반은 순교하는 순간에도 얼굴이 천사같이 빛났습니다. 우리의 얼굴에서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빼앗아 갈 세력은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없습니다. 죽어도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와 함께 하는 삶, 오늘 찬송했지 않습니까?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늘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왜 기쁩니까? 바로 주 예수님이 주신 기쁨, 주님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그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염려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모리슨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킨 능력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늘 활동한다.’ 라고 했습니다. 부활은 오늘도 계속되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나와 항상 같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1999년 4월 1일 국민일보 겨자씨란에 나오는 글입니다. 꽃을 파는 어떤 허름한 노인이 항상 웃습니다. 생활이 어렵고 옷은 남루하며 꽃 팔면서 힘들고 피곤한대도 늘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 할머니를 행복한 할머니, 웃음의 할머니, 늘 기쁨의 할머니로 모두 다 불렀습니다.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항상 그렇게 기쁘십니까?’, ‘아니예요. 저도 어려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지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과정을 생각하면 항상 기쁩니다.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삼 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나도 오늘 있는 이 어려움이 바로 며칠 지나면 부활될 줄로 믿고 좋아질 줄로 믿으며, 좋은 날이 올 줄로 믿고 이 시험이 해결되고 이 짐을 벗고 이 어려움이 다 해결될 것을 믿으니 항상 기쁩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모든 문제를 해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우리는 봄이 올 것을 알듯이 우리의 삶속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오지만 우리는 봄이 올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계신 것을 늘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오늘 춥습니까? 며칠만 기다려 보십시오. 이 할머니처럼 기다려 보십시오.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서 기다려보십시오. 여러분의 가정, 앞날, 기업, 건강에 봄이 올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봄은 옵니다.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어제나 오늘도 언제든지 변찮고 보호해 주시네♬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지금 좋은 집이 있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더 좋은 집이 나옵니다. 지금 좋은 차 좋지만 앞으로 이 차보다 훨씬 더 좋은 차가 나옵니다. 지금 냉장고보다 앞으로 2년 지나면 훨씬 더 좋은 것이 나옵니다. 지금 핸드폰보다 훨씬 더 좋은 핸드폰이 나옵니다. 지금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세월이 여러분에게 오는 걸 믿으셔야 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바로 빈 무덤입니다. 무덤 권세, 무덤을 차시고 무덤을 깨뜨리시며 일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이요 소망이요 우리의 자랑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힘입니다. 우리는 힘써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덤 문을 박차고 나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일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 말씀했습니다. 믿는 것이 최고입니다. 윤리 도덕이 있습니다. 도덕보다 더 높은 것은 믿음입니다. 지식이 있습니다. 과학이 있습니다. 과학보다 더 높은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수준에 머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주님으로 믿는 최고의 자리에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식으로 과학적으로는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지고 우리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위에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무기는, 최고의 승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다가 너무 무지하게 살다가 우리나라에 교회가 들어오면서 서양의 지식, 과학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무지할 때, 서당에 가서 한문공부하고 있을 때 선교사가 와서 제일 처음으로 세운 것이 연세대학, 배재학당, 이화학당, 숭실대학 이것 다 선교사들이 일찍이 와서 세운 것입니다. 눈을 뜬 것입니다. 과학의 눈을 뜬 것입니다. 과학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게 해 준 것입니다. 과학이 최고가 아닙니다. 신앙이 최고입니다. 똑똑하고 지식이 있어도 거기에 머무르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최고의 능력, 최고의 힘, 최고의 기쁨, 최고의 부요함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 지상에 최고로 축복받은 나라들은 과학이 발달한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잘 믿은 나라가 과학도 발달하고 경제도 발달하며, 지식도 발달하고 교육도 발달하는 것이지 예수님을 제해놓은 민족은 과학도 뒤떨어지고 지식도 뒤떨어지며, 경제도 뒤떨어지고 모든 삶이 뒤 떨어 집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싸워서 한 순간에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을 제가 역사를 보니까 남해안으로 쳐들어온 일본이 한양까지 불과 몇 달 만에 바로 다 들어왔습니다. 그 많은 성들이 한 순간에 다 무너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본사람들은 총을 들고 왔고 우리는 죽창가지고 나서니까 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을 그냥 며칠 만에 다 점령합니다. 그냥 죽죽 올라오면 다 됐었습니다. 일본이 미국에 패한 것은 바로 무기가 미국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원자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은 비행기만 가지고 있다 보니 일본 천황이 미국 앞에 무릎을 꿇고 맥아더 앞에 무릎을 꿇으며 항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일본 천황이 그 말을 했습니다. ‘일본이 진작 과학에 눈을 떠서 우리도 지식을 더 발달시켰더라면 우리가 미국과 싸워서 지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가 과학에 뒤떨어져서 바로 미국에게 망했다.’고 작년에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영국은 바다만 정복하면 세계를 정복하는 줄 알고 계속 바다에 투자해서 바다만을 바라보고 나갔습니다. 드디어 20세기 들어와서 미국은 바다를 포기하고 라이트라고 하는 목사님 아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해 공중을 점령하면서 3백 년 동안 세계를 잡고 있던 영국은 미국으로 완전히 힘이 넘어가서 오늘 세계를 잡고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하늘만 정복하면 안 된다 해서 우주까지 다 정복하므로 말미암아 지금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있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가장 큰 무기를 가져야 됩니다.
남미에 잉카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잉카제국은 남미 안데스산맥을 중심해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굉장한 힘을 가지고 남미 전체를 통치했던 민족입니다. 그러나 1532년 스페인 피사로의 군대 180명이 27마리의 말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잉카제국은 무너졌습니다. 이 180명이 우호관계를 맺자고 황제하고 이렇게 서로 협약을 하자고 하니까 180명 얼마 안 되니까 그냥 연회에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이미 그때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몇 만 명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가장 강한 힘 있는 무기를 가진 자가 세계를 지배하고 그 다음에는 더 큰 무기를 가진 자에게 또 굴복당하고, 삼국지나 중국역사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더 강한 자에게 항상 점령당합니다. 세계의 질서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강한 무기는 무엇입니까? 사망권세 이기신 십자가의 무기보다 더 큰 무기가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로 무장하는 사람은 개인이나 민족이나 가정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무장하는 사람은 영원히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승리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해칠 자가 없습니다. 영원히 여러분의 가정을 주님이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떠나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못할 일이 없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우리나라 인천에 왔습니다. 모든 국제기구가 한국은 안 된다고 하고 선교기구도 여기만은 안 된다는 버려진 땅, 절망의 땅, 소망이 없는 땅이었지만 이 두 청년이 소망을 가지고 인천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보낸 편지가 뭔지 아십니까? ‘부활절에 이곳에 왔습니다. 사망의 철장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절망의 땅이지만 가난과 비극의 이 불쌍한 민족이지만 부활의 주님이 비추어 주시면 어두움의 세력은 물러가고 오늘 백 년 만에 이 놀라운 축복이 이 땅위에 부활절과 함께 주어진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아침빛이 여러분을 주장해서 여러분의 가정이 아직까지 죄악의 무덤 속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세상 정욕을 따라가는, 무덤을 좇아 나아가는 이 불행한 삶이 있습니까? 이제는 그곳에서 나오셔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승리하는 삶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신앙만이 승리합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주님을 저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에 것만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낙심하고 조그만 일에도 절망해서 자살해버립니다. 우리가 죽을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속상할 일도 없습니다. 다 주님이 알아서 해주시고 맡아주시며 도와주시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어려움도 안 오는 것보다 오는 게 더 좋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 이 지상에 어려움이란 어려움을 정말 저같이 많이 당한 분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놓고 보면 그 어려움 때문에 다 제가 잘된 것입니다. 어려움 때문에 손해 본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어려움도 좋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주셔서 내 죄를 사해주신 사랑의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부활의 아침과 함께 여러분의 가정이 부활의 가정이 되고 여러분의 삶이 부활의 삶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