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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위대한 능력 (사도행전 8; 1∼8)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4∼5절)
미국의 사우스웨스턴 주니어 대학에 앤젤라 마두마세라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 등교해 보니 학교 안이 온통 난리였습니다. 남부의 악명 높은 흑인 단체인 ‘흑표범’ 단원들이 학교에까지 쳐들어와 폭력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앤젤라가 강의실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폭도들 중 한 사람이 그녀의 팔을 낚아채고는 말했습니다. ‘왜 나를 보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들어오는 거지?’ 그런데 그 순간에 그녀의 마음 속에 이 사람을 전도하라는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보고 웃은 게 아닙니다. 내 마음 속에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평안과 기쁨이 있기 때문에 항상 웃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대답 중 ‘평안과 기쁨’이라는 말이 폭도의 마음을 울렸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자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합니다.
복음은 이론이나 철학이 아니고 한 영혼을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내는 능력입니다.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인 애굽을 굴복시키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은 오늘날도 복음의 위대한 능력으로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 10-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상보다도 뛰어납니다. 복음은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만들고 악한 사람을 선하게 합니다. 복음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을 긍적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복음은 육체와 영혼이 병든 사람을 치료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입니다. 복음은 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죄책감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이동식이라는 청년은 기독교인인 친구를 만나면 언제나 “힘이 없으면 내 힘을 의지하라”고 조롱하면서 어깨를 올려 보이며 힘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청년도 다른 청년들처럼 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훈련을 받은 후 전방 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가보니 그 부대에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신병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내무반 한 구석에서 공포에 질려 고민하고 있는 그에게 “왜 걱정되는 것이 있으시오?”하고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옆에 앉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하니 “편히 앉으시오”라고 말하는 그는 바로 그 부대의 군목이었습니다. 처음 군목을 대하게 되어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는 그에게 입대하기 전에 교회 생활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전에 친구를 조롱하던 생각이 떠올라 “아뇨”라고 대답을 하면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목의 친절한 말에 감동되어 전해 주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어 군대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신앙생활이었으나 그의 신앙은 열렬하면서도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군목을 도와 전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청년은 집에 계신 부모님께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편지에 전도지를 넣어 보내면서 부모님께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시라고 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부모는 집에 있을 때 교인을 조롱하던 아들이 군대에 가더니 정신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믿겠으면 너나 믿으라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부모의 답장을 받은 청년은 “내가 일선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아십니까? 부모님이 교회에 나가지 않으시면 저는 전사할지도 모릅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다시 보냈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생명이 걸렸다는 말에 교회에 나가 마침내 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군목이 청년의 부모를 방문했을 때 주님을 믿게 됨을 감사하면서 아들에게 늘 기도를 드리라고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4:2)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큰 핍박을 받았습니다(행 8;1∼4). 박해가 너무 심해서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유다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정든 고향 산천을 두고 뿔뿔이 흩어졌는데도 결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고난 중에서도 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성취되어 갔습니다.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 어려움은 세 가지는 죽음 이별 고독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이별은 큰 고통이고 슬픔입니다. 고독 또한 현대인들의 심각한 질병 중 하나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많은 핍박을 받고 흩어지면서 당한 고통은 바로 죽음 이별 고독 세 가지를 합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핍박을 받고 흩어져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흩어져 복음을 전파한 사람 가운데 빌립 집사가 있습니다(행 8;4∼8).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 내려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입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은 기원전 732년 앗수르(아수르)에 의해 망했습니다. 앗수르는 많은 히브리인을 이주시켜 이방인과 결혼케 했는데 그들의 후예가 사마리아 시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효과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복음 전파에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기사와 표적이 따라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행 8;5∼8). 마술사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9∼13). 빌립은 예수님의 명령(행 1;8)에 순종한 사람으로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사이에 복음의 다리를 놓은 하나님의 귀한 일꾼입니다.
미국의 메사추세츠주에 있는 깡통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있는 청년이 교회에 출석한 지 몇 주일이 지나서 목사님은 공장의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그가 전에 매우 방탕했었던 사실을 기억하며 '그가 교회에 나간 후로 어떤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벽에 걸린 쇠사슬을 가리키며 '저것이 그 녀석을 묶어 놓고 일을 시키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심할 수가 없을 만큼 고약한 놈이었지요. 정말이지 전혀 가망성이 없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견습공 중 제일 신뢰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답니다. 그의 변한 모습은 아주 감동적입니다'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오늘날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도 대부분은 큰 변화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의 능력이 세월이 가면서 그 효력이 적어져서 그런가요? 아니면 우리가 가짜 복음을 전해서 일까 아니면 온전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숫자로 교회에 채우기 위해 복음을 많이 가공해서 일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1:27)
십자가는 정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심의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이제 우리를 의롭게 보신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나는 우리 교회의 어떤 여성으로부터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 성적 학대, 약물, 태만, 이혼, 가정 폭력, 자살 미수 등과 같은 죄와 고통으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단기 성경공부과정을 수료한 누군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찾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정말 더럽고 부끄러웠던, 죄의식과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서도 용서받기를 간절히 원했던 세월은 곧 끝났습니다. 저는 어두운 구덩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제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을 때 저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짐은 제 어깨에서 벗어졌으며, 저는 희망과 기쁨과 흥분과 사랑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오직 제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분야에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한 사람뿐 아니라 교회 부흥의 중심 메시지는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교회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한 나라까지도 변화하고 발전시킵니다.
한국 기독교인은 해방당시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1955년 60만, 1965년 120만, 1975년 350만, 1985년 800만, 1995년 1000만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우리 기독교는 한국 땅에 많은 사회적 기여를 했습니다.
일제시대 수난시대 때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민족 지도자가 되어 신사참배 거부하고,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워 민족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정신적 근대화와 윤리 가치 고양하고 인권과 민주적 가치 고양하였습니다. 기독교인 가운데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나왔습니다. 장로였던 이승만, 승동교회 전도사였던 여운영, 김구 등 당시 이름 있는 민족 지도자들이 기독교인이었고 건국 준비위원 지방 위원장들이 대부분이 목사 아니면 장로였습니다.
선교사 1만 3000명을 해외에 파송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선교 대국이 되었습니다. 1955년 4월 최찬영 김광명 선교사 태국에 파송하였습니다. 1961년에는 이화여대 조성자 전재옥 김인자 파키스탄 파송하였습니다. 1988년 10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교단체 130개 넘고 선교 대상국 163개국을 넘어섰습니다. 2004년도까지 1만 3000명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이 아무리 탁하다 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으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하나님 손에 붙들려 쓰임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가치가 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목동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하나님께 쓰임받으면 홍해를 가르는 도구가 되고 다윗의 물매 짐승을 쫓기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께 쓰이면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이 지시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 19∼20) 이 말씀은 반드시 지키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여기에서 “복음을 전파하라”라는 말씀은 지상에서 가장 늦게 말씀하신 주님의 유언입니다.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길이 전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또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셨다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길은 바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가장 크게 영광 돌리는 길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가장 크게 기뻐하십니다.
네 번째는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장 큰 상급을 쌓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상급을 쌓고 하늘에 예금하는 길,그게 바로 전도입니다. 가장 큰 영광의 상급입니다.
다섯 번째는 불신자의 영혼이 애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시아에 가려고 할 때 성령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디로 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마케도니아 사람이 와서 환상 중에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줄 알고 마케도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것이 유럽에 복음을 전파한 최초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유럽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섯 번째 이유는 지옥에 간 영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함께 죽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너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낙원에 보니까 나사로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애원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내 혓바닥에 갖다 달라” 그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여기에는 구렁이 있어서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내 고향에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저 죽은 나사로를 보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도 듣지 아니할 것이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음부에서 울부짖는 부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더둘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 복음은 마치 전염병처럼 맹열한 속도로 퍼지고 지배력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염병은 사람을 죽이지만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장악하고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보잘것 없는 작은 시골 동내 나사렛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는 그 발생지역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불교와 유교는 동양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회교는 중동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지역에 묶어 놓았던 기독교는 세계인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로마와 예루살렘의 권력이 합한 막강한 세력도 지배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복음의 능력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만듭니다. 고난 중에서도 할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하고 복음의 능력,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하여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출처/한태완목사 설교 중에서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4∼5절)
미국의 사우스웨스턴 주니어 대학에 앤젤라 마두마세라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 등교해 보니 학교 안이 온통 난리였습니다. 남부의 악명 높은 흑인 단체인 ‘흑표범’ 단원들이 학교에까지 쳐들어와 폭력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앤젤라가 강의실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폭도들 중 한 사람이 그녀의 팔을 낚아채고는 말했습니다. ‘왜 나를 보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들어오는 거지?’ 그런데 그 순간에 그녀의 마음 속에 이 사람을 전도하라는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보고 웃은 게 아닙니다. 내 마음 속에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평안과 기쁨이 있기 때문에 항상 웃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대답 중 ‘평안과 기쁨’이라는 말이 폭도의 마음을 울렸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자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합니다.
복음은 이론이나 철학이 아니고 한 영혼을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내는 능력입니다.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인 애굽을 굴복시키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은 오늘날도 복음의 위대한 능력으로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 10-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상보다도 뛰어납니다. 복음은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만들고 악한 사람을 선하게 합니다. 복음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을 긍적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복음은 육체와 영혼이 병든 사람을 치료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입니다. 복음은 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죄책감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이동식이라는 청년은 기독교인인 친구를 만나면 언제나 “힘이 없으면 내 힘을 의지하라”고 조롱하면서 어깨를 올려 보이며 힘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청년도 다른 청년들처럼 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훈련을 받은 후 전방 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가보니 그 부대에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신병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내무반 한 구석에서 공포에 질려 고민하고 있는 그에게 “왜 걱정되는 것이 있으시오?”하고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옆에 앉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하니 “편히 앉으시오”라고 말하는 그는 바로 그 부대의 군목이었습니다. 처음 군목을 대하게 되어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는 그에게 입대하기 전에 교회 생활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전에 친구를 조롱하던 생각이 떠올라 “아뇨”라고 대답을 하면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목의 친절한 말에 감동되어 전해 주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어 군대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신앙생활이었으나 그의 신앙은 열렬하면서도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군목을 도와 전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청년은 집에 계신 부모님께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편지에 전도지를 넣어 보내면서 부모님께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시라고 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부모는 집에 있을 때 교인을 조롱하던 아들이 군대에 가더니 정신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믿겠으면 너나 믿으라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부모의 답장을 받은 청년은 “내가 일선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아십니까? 부모님이 교회에 나가지 않으시면 저는 전사할지도 모릅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다시 보냈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생명이 걸렸다는 말에 교회에 나가 마침내 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군목이 청년의 부모를 방문했을 때 주님을 믿게 됨을 감사하면서 아들에게 늘 기도를 드리라고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4:2)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큰 핍박을 받았습니다(행 8;1∼4). 박해가 너무 심해서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유다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정든 고향 산천을 두고 뿔뿔이 흩어졌는데도 결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고난 중에서도 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성취되어 갔습니다.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 어려움은 세 가지는 죽음 이별 고독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이별은 큰 고통이고 슬픔입니다. 고독 또한 현대인들의 심각한 질병 중 하나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많은 핍박을 받고 흩어지면서 당한 고통은 바로 죽음 이별 고독 세 가지를 합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핍박을 받고 흩어져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흩어져 복음을 전파한 사람 가운데 빌립 집사가 있습니다(행 8;4∼8).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 내려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입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은 기원전 732년 앗수르(아수르)에 의해 망했습니다. 앗수르는 많은 히브리인을 이주시켜 이방인과 결혼케 했는데 그들의 후예가 사마리아 시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효과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복음 전파에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기사와 표적이 따라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행 8;5∼8). 마술사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9∼13). 빌립은 예수님의 명령(행 1;8)에 순종한 사람으로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사이에 복음의 다리를 놓은 하나님의 귀한 일꾼입니다.
미국의 메사추세츠주에 있는 깡통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있는 청년이 교회에 출석한 지 몇 주일이 지나서 목사님은 공장의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그가 전에 매우 방탕했었던 사실을 기억하며 '그가 교회에 나간 후로 어떤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벽에 걸린 쇠사슬을 가리키며 '저것이 그 녀석을 묶어 놓고 일을 시키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심할 수가 없을 만큼 고약한 놈이었지요. 정말이지 전혀 가망성이 없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견습공 중 제일 신뢰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답니다. 그의 변한 모습은 아주 감동적입니다'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오늘날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도 대부분은 큰 변화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의 능력이 세월이 가면서 그 효력이 적어져서 그런가요? 아니면 우리가 가짜 복음을 전해서 일까 아니면 온전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숫자로 교회에 채우기 위해 복음을 많이 가공해서 일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1:27)
십자가는 정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심의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이제 우리를 의롭게 보신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나는 우리 교회의 어떤 여성으로부터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 성적 학대, 약물, 태만, 이혼, 가정 폭력, 자살 미수 등과 같은 죄와 고통으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단기 성경공부과정을 수료한 누군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찾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정말 더럽고 부끄러웠던, 죄의식과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서도 용서받기를 간절히 원했던 세월은 곧 끝났습니다. 저는 어두운 구덩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제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을 때 저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짐은 제 어깨에서 벗어졌으며, 저는 희망과 기쁨과 흥분과 사랑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오직 제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분야에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한 사람뿐 아니라 교회 부흥의 중심 메시지는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교회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한 나라까지도 변화하고 발전시킵니다.
한국 기독교인은 해방당시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1955년 60만, 1965년 120만, 1975년 350만, 1985년 800만, 1995년 1000만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우리 기독교는 한국 땅에 많은 사회적 기여를 했습니다.
일제시대 수난시대 때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민족 지도자가 되어 신사참배 거부하고,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워 민족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정신적 근대화와 윤리 가치 고양하고 인권과 민주적 가치 고양하였습니다. 기독교인 가운데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나왔습니다. 장로였던 이승만, 승동교회 전도사였던 여운영, 김구 등 당시 이름 있는 민족 지도자들이 기독교인이었고 건국 준비위원 지방 위원장들이 대부분이 목사 아니면 장로였습니다.
선교사 1만 3000명을 해외에 파송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선교 대국이 되었습니다. 1955년 4월 최찬영 김광명 선교사 태국에 파송하였습니다. 1961년에는 이화여대 조성자 전재옥 김인자 파키스탄 파송하였습니다. 1988년 10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교단체 130개 넘고 선교 대상국 163개국을 넘어섰습니다. 2004년도까지 1만 3000명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이 아무리 탁하다 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으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하나님 손에 붙들려 쓰임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가치가 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목동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하나님께 쓰임받으면 홍해를 가르는 도구가 되고 다윗의 물매 짐승을 쫓기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께 쓰이면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이 지시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 19∼20) 이 말씀은 반드시 지키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여기에서 “복음을 전파하라”라는 말씀은 지상에서 가장 늦게 말씀하신 주님의 유언입니다.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길이 전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또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셨다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길은 바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가장 크게 영광 돌리는 길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가장 크게 기뻐하십니다.
네 번째는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장 큰 상급을 쌓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상급을 쌓고 하늘에 예금하는 길,그게 바로 전도입니다. 가장 큰 영광의 상급입니다.
다섯 번째는 불신자의 영혼이 애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시아에 가려고 할 때 성령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디로 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마케도니아 사람이 와서 환상 중에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줄 알고 마케도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것이 유럽에 복음을 전파한 최초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유럽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섯 번째 이유는 지옥에 간 영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함께 죽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너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낙원에 보니까 나사로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애원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내 혓바닥에 갖다 달라” 그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여기에는 구렁이 있어서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내 고향에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저 죽은 나사로를 보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도 듣지 아니할 것이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음부에서 울부짖는 부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더둘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 복음은 마치 전염병처럼 맹열한 속도로 퍼지고 지배력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염병은 사람을 죽이지만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장악하고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보잘것 없는 작은 시골 동내 나사렛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는 그 발생지역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불교와 유교는 동양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회교는 중동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지역에 묶어 놓았던 기독교는 세계인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로마와 예루살렘의 권력이 합한 막강한 세력도 지배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복음의 능력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만듭니다. 고난 중에서도 할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하고 복음의 능력,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하여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출처/한태완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