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모양과 능력   (본문 딤후3:1-7)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저는 제가 삶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다른 피조물에 비교하면 제법 아는 것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습니다. 그런면에서 사실 우리 인간과 비교될 수 있는 피조물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 다음으로 똑똑하고 유능한 피조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르지만 그것이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하여도 우리 인간과는 정말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은 아주 월등한 존재요 탁월한 존재입니다. 우리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 말이 맞습니다.
사람은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동물은 아니지만 자동자라는 것을 만들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날지 못하는 동물이지만 비행기를 만들어 세상의 그 어느새 보다 더 높이 더 멀리 그리고 더 빨리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강과 바다를 헤엄치는데 있어서 강과 바다의 그 어떤 물고기보다 무능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배와 잠수함을 만들어 강과 바다의 그 어떤 물고기 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그리고 더 많은 짐을 싣고 물위와 물속을 다닐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 인간들이 하는 일들과 만들 것들을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에 스스로 놀랄때가 많습니다. 우주를 날아 다니는 위성들. 컴퓨터와 그 컴퓨터가 수행하는 여러 가지 기가막힌 일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전쟁 무기들과 그 무기들의 파괴력과 정확함만 생각하여도 우리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치명적이리만큼 무지하고 무능합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구원이라고 부르는 생명과 그 생명의 질 즉 다시 말해서 행복하고 만족한 삶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능하고 무지한 존재들입니다.
컴퓨터 대단한 물건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엄청난 기능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가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주를 날아 다니는 여러 위성들 참으로 대단한 것들이지만, 그 높은 곳에서 땅에 있는 개미까지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 또한 우리의 생명과 행복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고통을 받으며 불행하게 사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 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격게 되는 이유는 자기만 사랑하여 자기를 사랑하기 위하여 남을 미워하고 훼방하며, 돈을 사랑하여 돈 때문에 나쁜 짓을 하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교만하여 남을 깔보아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며, 자기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에게 까지도 불순종하고 감사할 줄 모름으로 사랑과 희생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며, 거룩하지 못한 것을 좋아하여 스스로의 삶을 돼지 우리의 돼지보다 더 더럽히며, 무정하여 외로운 세상을 만들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여 언제나 지나친 복수로 불안한 세상을 만들며, 절제할 줄 모르는 끝없는 욕심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악한 세상을 만들어 세상과 사람을 악의 노예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그와 같은 문제는 컴퓨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하늘 높은 곳에 떠있는 위성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인간은 생활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능력이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생명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입니다.

욥기 38장에 보면 욥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이 나옵니다. 퍼 부으시듯 여러 가지 질문을 욥에게 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그 준승을 어디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까마귀 새끼가 배가 고파 오락 가락 할 때 네가 그에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이 모든 질문을 요약하면 질문은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네가 할 수 있느냐?'는 유형의 질문이고, 둘째는 '네가 아느냐?'는 유형의 질문입니다. 그와 같으신 질문에 대하여 욥과 우리가 하나님께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무지함과 무능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지함과 무능함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그와 같은 질문을 욥과 우리에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을 하시는 도중 욥기 40장 14절에서 하나님은 "그리하다면 네 오른 손이 너를 구원 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다면'의 뜻이 무엇입니까? 네가 이 모든 것을 알고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다시말해서 네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이라는 뜻입니다. 네가 정말 그렇다면 네가 말하는대로 네 오른 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나도 인정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컴퓨터와 위성과 비행기와 자동차와 같은 것들을 만들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하면서 살아도 우리 인간은 여전히 생명과 그 생명의 구원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입니다. 저는 그것을 인정합니다. 저는 제가 제 삶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능하고 무지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나와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나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사는 축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이 세상이 절대로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살아있는 것들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그리고 진화한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정말 마귀가 들리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억지입니다.
저는 이 세상이 한 분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된 것임을 믿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을,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존재와 생명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세상이 한 분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된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창조주가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로 시작되는 사도신경은 정말 저의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능력이 있으심을 믿습니다.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면 비록 나는 약해도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이 나의 것이 되어 골리앗과 같은 세상도 이겨내며 사망의 움침한 골짜기와 같은 곳에서도 해 받음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푸른 초장의 양과 같이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습니다.
나는 생명이 주께 있음을 믿습니다. 나는 능력이 주께 있음을 믿습니다. 나는 나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세상과 환경을 바꾸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때문에 나는 나의 세상과 나의 삶의 환경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몸이 약할 때 건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치유의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암과 같이 무서운 질병도 하나님이 한 번만 손대 주시면 단번에 나을 줄을 저는 믿습니다. 저는 성경에 예수님께서 귀머거리와 소경과 문둥병자와 그밖의 모든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는 것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때문에 저는 물질이 부족할 때 물질의 넉넉함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저는 저에게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저는 늘 가난하고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마다 시마다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오늘 여기에 까지 이르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세상과 환경을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미신적이라고 생각하실는지 모르나 저는 아이들이 수양회를 할 때 날씨를 위하여 기도하고 길이 막혀서 중요한 약속 시간에 늦게 될 경우는 시간에 늦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세상과 환경 보다 더 중요한 사람을 바꾸시고 변화시키시는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삭개오를 변화 시키시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변화 시키시는 능력이 주께 있음을 믿습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 그리고 밧세바를 변화시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만큼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바로 능력이 나 같은 사람을 목사가 되게하여 하나님의 귀한 사역자가 되게하셨음을 저는 믿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어도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십자가상의 강도를 변하여 새 사람되게 하시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은,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천국의 생활은 환경이 바뀔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이 거듭나고 변화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만 사랑하던 사람이 하나님과 세상과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선하게 세상 욕심으로 무절제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이 하나님께 있으며 그와 같은 변화가 정말 우리의 삶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구원의 능력이 주께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의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재미와 편안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15:1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 믿음의 생활을 오늘 본문은 경건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믿음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경건한 생활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쉽게 기도와 말씀과 찬송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게 찾게 하시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문을 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능력을 간증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도에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세상의 그 어떤 문도 열 수 있습니다. 기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심령 골수를 쪼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우주 만물의 식입니다. 식을 세우면 답은 저절로 나옵니다. 길을 찾으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도를 닦고 철학을 하였던 것입니다. 도를 닦음은 길을 찾음으로 철학을 함은 삶의 식을 찾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찾던 그 식과 길이 바로 말씀안에 있습니다. 말씀이 곧 길이고 말씀이 곧 식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때로는 어렵고 힘들지만 그러나 말씀대로 살면 결국 모든 삶의 문제가 풀립니다. 저는 말씀이 능력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씨름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저는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탄은 말씀대로 살다가믄 밥굶기 딱 좋다고 우리를 속이지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하신다면 말씀에 집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속에서 길을 찾고 말씀속에서 식을 찾을 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읽고 듣고 암송하고 묵상하며 공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에 감동하며 감동할 때 그리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 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줄을 저는 믿습니다.
찬송에 능력이 있습니다. 경건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찬송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찬송을 빼놓고 경건의 능력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뜨겁고 은혜스러운 찬양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한국 교회가 이 찬양을 통하여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찬양이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을 교회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앞으로 전문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내년부터 전문목회가 시작될 것입니다. 저는 목회에 은사가 있는 여러분들과 함께 교회를 목회하고 싶습니다. 제가 함께 동역하려고 하는 목회자는 저에게 없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기도의 은사가 있는 동역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구 관리와 심방에 은사가 있는 동역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제와 봉사에 은사가 있는 동역자도 필요하고 선교에 은사가 있는 동역자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제가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는 동역자중에 하나는 찬양에 은사를 받은 목회자입니다. 찬양만 전문으로 하는 사역자가 능력있는 교회를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우리는 약하지만 그래서 이 강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늘 넘어지고 실패하는 존재들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모든 부족한 것을 채우시고 모든 잃어 버린 것들을 찾게 하시며 모든 닫힌 문들을 열게 하시는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경건한 생활을 통하여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생활을 통하여 말씀의 생활을 통하여 찬양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접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저들이 당하는 고통을 그대로 당하면서 사는 까닭이 무엇인줄 여러분 아십니까? 오늘 본문은 그것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신앙이 너무 형식적이어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너무 건성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다. 하나님만 믿으십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좀더 진지해지고 정직해 지십시다. 그리고 좀더 간절해 지십시다. 좀더 깊은 기도에 들어가십시다. 좀더 깊은 말씀에 들어가십시다. 좀더 깊은 찬송에 들어가십니다. 경건의 모양만 갖추지 말고 경건의 능력을 경험하십시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면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이왕 믿는 하나님께 인생을 걸고, 생명을 걸고 매달리십시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십시다. 사모하십시다. 그리하여 경건의 모양만 있는 교인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소유한 축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다. 그리하여 그 하나님의 능력의 증인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김동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