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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걸으라 (행 3: 1-10)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와 오늘의 교회는 많은 부분이 같은 공통점도 있지만 신앙의 질적인면과 방법론인 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성장학쪽에서는 많이 발전하여 숫자적인 면에서는 많은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론과 교리적으로 더 이상 발전할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교리와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또한 해석학적으로도 밝히 비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고 신앙의 질적인 면에서는 초대교회와 비교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중세시대의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으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땅, 건물, 사람 즉 은과 금은 우리에게 있으나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은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보고 참된 부흥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역사가 확실한 지금까지 있었던 가장 은혜로웠던 교회 였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은혜가 넘쳤습니다. 말씀을 사모해서 충만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도에 불이붙었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동네사람들에게 칭송을 들었습니다.
이같은 교회앞에 본문에 초대교회 성도들과는 비교되는 가련한 인생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한일이라고는 성전에 나오기는 나오지만 오늘과 같이 구걸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에서 성령의 은혜와 말씀으로 삶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인생의 삶에 대한 소망이 넘쳤습니다. 교회오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행 2:46)"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주일이 기다려지고 하나님을 만나고 성도들과의 교제가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본문의 사람은 성도들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성전에는 같이 오나 다른 목적으로 오는 가련한 인생입니다.
이 사람은 죽지 못해 삽니다. 하루하루를 기쁨이 없이 삽니다. 성전을 행해 오나 전혀 성전과는 상관없이 옵니다.
남이 떠 매어 주면 할수 없이 와서 구걸하며 삽니다.
이것은 신앙의 참 맛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 줍니다.
똑같은 성전이라는 공간에 있지만 이 사람은 내일이 없습니다. 현재의 생활이 불완전 합니다.
성전에 왔으나 성전과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한번도 스스로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하는 구걸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지배했습니다.
성전과 하나님에 대해 들었고 왔지만 하나님과 성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성전에 나온 성도들은 성전에서 말씀을 통해 은혜받습니다. 부르짖습니다.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런데 이 사람은 이런 경험이 없습니다. 한번도 자신의 인생을 진단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할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불쌍히 보일까가 전부입니다.
1.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행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1)육체적으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입니다. --정상인이 아니다. 4: 22절 나이 40여세
2)생활은 그는 성전 미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며 한번도 성전을 열고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3)인생을 포기한 사람
*. 나면서 앉은뱅이 되었다는 말씀은 그 병을 "운명"으로 받아 드렸을 것입니다.
*.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멸시천대 받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나같은 사람은 성전에 들어갈수 없다고 결정한 사람입니다.
*. 모든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포기한 삶이 전부이고 최선의 삶으로 구걸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결정지어놓는 운명론은 지구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입니다.
아프카니스탄. 중동지역, 아프리카같은 곳은 최고로 비옥한땅. 지하자원 풍부한 땅입니다.
그러나 최고로 못사는 나라들입니다. 그들의 종교가 문제입니다. 이스람의 운명론이 문제입니다.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꿀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탄의 역사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의 현주소를 보는 듯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병든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결정지어졌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모든 종교가 다 이렇게 운명론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 드리면서 거기에 적응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본문의 이런 사람이 그대로 체념속에서 시간만 보내는 삶이 행복한 것입까?
메일 메일 어떻게 하면 더 불쌍히 여김을 받고 더 많은 돈을 얻는 것이 행복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사는 인간세상에서 우리가 힘써 노력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 이 사람이 희망이 넘치고, 삶의 기쁨을 회복하고, 가장 행복하게 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행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은보다도 금보다도 이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은 이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고쳐주시고 회복시켜주실수 있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금과 은은 이 사람을 구걸하고 영생과는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게 했지만 예수님은 이사람의 인생을 책임져 주셔서 구걸하는곳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예수의 이름이 이 사람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삶의 기쁨을 주었습니다. 걷기도 하며 뛰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만나야 합니다.
참다운 나의 삶의 지지자를 만나야 합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뛰기도 하며, 걷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이 사람이 행복할수 있는 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복음이 내 인생의 발목인 내가 기대고 희망을 걸고 있는 나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의 힘이 생겨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너무 고마워서 하나님을 찬미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금과 은으로는 앉은뱅이라는 사실만 더 깊이 확인시키고 생존경쟁에서 낙오자로서의 좌절만 격게 했지만
예수님의 이름인 생명의 능력의 말씀은 그를 40년의 불구에서, 죄에서, 세상의 삶을 고쳤습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나라와 다릅니다. 예수안에서 참된 기쁨을 찾으셨습니까? 평강을 찾으셨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힘을 얻어 일어 설수 있는 지지자, 상담자, 언제든지 나를 축복하시는분을 만났습니까?
이분이 예수님이 십니다. "예수앞에 나오면 모든죄 사하고 맘에 기쁨넘치어 편히쉬겠네."
3. 예수님과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져서 일어나 걸을수 있었습니까?
1) 말씀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초대교회 성도와 같은 은혜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생기지 않고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이 나의 삶에 지지자가 아니라면 이제 말씀에 대한 태도를 바꾸서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향하여 "우리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보라는 말씀은 "주목하라"...땅만 보고. 사람만 보고,, 금과 은만 봤지만
우리를 보라...말씀에 주목하라. 이제 말씀에 관심을 가져라.. 말씀에 대해 기대를 가져라입니다. 소원을 가져라입니다.
-. 사실 이 사람은 무엇을 얻을까 조금전까지는 부끄러워서 깡통만 보고, 땅만 보았을 것입니다.
*. 그러나 지금 주목하는 것은 조금 다른 시선입니다. 그는 5절"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바라보거늘"
이제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배드로와 요한을 향해 기대하며 바라보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와 다른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제 까지와 다른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기대감, 교회나오는 기대감,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께 나올 때 마다 이런 기대감으로 충만하여 나와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나에게 축복하신다는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과 역사가 잃어나는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잃으키는 시작이 됩니다.
2) 능력있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행3:6)"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내게 있는 것을 내게 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잡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는 성령의 권능을 말씀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얼마나 중요한지 승천하시면서 위로부터 옷을 입듯이 능력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바울사도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딤후1: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했습니다.
-. 우리가 왜 능력을 받아야 합니까?
*. 말세입니다.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능력을 부인합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하나님의 역사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 믿음의 역사를 일으 킬려면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고전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눅 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막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12년 혈루병으로 고생한 여인 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3) 예수님의 이름이 외쳐져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고쳐주시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사 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 주님의 이름이 그의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벌떡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주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십니다.
-. 예수의 이름이 머무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가는 곳에 사탄이 두려워 쫓겨갑니다.
육의 병든 부분이 고침을 받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가 평안을 얻습니다. 낙심된 자가 소망을 슬픔을 당한 자가 위로를 얻습니다. 천한 자가 귀해지고, 약한 자가 강해지고 ,어두운 곳이 밝아지고, 영원히 죽을 자가 영원히 살게 됩니다.
*. 예수님의 이름인 복음은 돈으로도 해결 하지 못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생각하던 운명과 팔자 타령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님께 주목하고 있습니까? 완벽한 인생을 사십니까?
*>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초대교회와 같은 신앙의 큰 불이 붙었습니까?
*> 어딘가 틀어진 것이 없습니까?
*> 아니면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지금사는 방법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금과 은만 얻으려고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 들어가지도 못하고 미문에 앉아 있는 사람과 같이 교회오는 것이 의미없이 삶의 하나의 수단이 되어있지는 않습니까?
*> 정신적으로 , 생활적으로 , 영적으로 부족함이 없습니까?
나사렛 예수님의 고쳐주시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도 교회올 때 어떤 기대를 하고 왔습니까? 성령의 능력에 붙잡히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들으십시요.
-.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조차도 없었는데 일어날 수 있는자가 되었습니다.
*. 좌절과 절망의 생애였던 그의 생애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 한번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내어본 적이 없었던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흘러나 온 것입니다.
*.그의 생애는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믿음이 그 속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인생의 낙오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 우리는 이스라엘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출 15:26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 온갖 욕망으로 비뚤어진 우리의 마음을 고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근본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 우리가 고침받고 변화되면 우리도 베드로와 요한 같이 우리 주위를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이 병든 사회를 향하여 "우리를 보라"고 자신 있게 외칠수 있는 신앙이 되어야 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낙담하여 있는 이 사회를 향하여 치료의 손길을 뻗쳐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사랑을 들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가의 다락방의 120명 비겁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본문에는 세상에서 낙오자요 버림받은 앉은뱅이도 고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이시간 주께 여러분의 마음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나를 고쳐 주옵소서.
*>우리 가정에 혹은 나의 주변에 앉은뱅이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 또는 나 자신이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면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기적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정신적인 불구, 영적인 앉은뱅이들을 여러분이 고쳐 주어야 합니다.
95년도 지존파두목 김기환씨의 고백입니다.
선생님 받아보세요.
회색빛 하늘 사이로 소리없이 봄비가 내립니다. 어제 넣은 선생님의 정성어린 영치금을 받아 보았습니다.
선생님 지체 건강 하신지요.
오늘 저녁 예배를 드리는 도중 저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 내려서 여러동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하여 참으로 혼이 났습니다. 천하에 제가 눈물을 흘리다니 저 자신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세상 그 어떠한 누구보다도 사악한 악으로 똘똘 뭉쳐 있어서 바늘로 찔러보고 송곳으로 찔러봐도 피 한방울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을 것으로 굳게 믿었는데!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낀게 있다면 그 무엇보다도 오직 눈물이었습니다.언젠가 제 동생들에게도 말을 했습니다만 제가 눈물을 흘리는 일은 세상이 두쪽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는 이상으로 온갖 증오와 악으로 중무장하고 있어서매사에 좋은 일 보다도 악한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덕 일어나서 앞장 섰습니다.얼마전 까지만 하여도 갖은 못된 범죄를 더하지 못하고 구속된 것을 가슴치며 애통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선생님을 알게 되면서 선생님의 끝없는 사랑과 관심으로 사악한악으로 가득찬 제 심성은 차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마음 한편에서는 차츰 변해가는 제 마음을 두려워 했습니다.
고정적인 제 마음은 한번 세상에 악마로 알려졌으니 생을 마감하는 끝까지 영원한 악마이기를 바라는 못되먹은 이중적인 성격이 여러번 반복해서 나타나곤 했습니다.
이제 진심한 마음을 다하고 영원을 다하여 무릅끓고 두손모아 예수님께 낳아가기원합니다. 저의 사악한 마음과 모든 죄를 예수님께 맡기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는것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악마를 진정 주님에게 두손들고 십자가 앞으로 낳아가게 하신분은 그 어떠한 분보다도 이 재명 선생님 이었음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선생님이야말로 예수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도임을 엎드려 머리숙여 사랑이신 예수님에 이름으로 찬양합니다.벌레만도 못한 제 잔이 넘치고 넘치옵니다.지금 생각해도 통곡할일은 제 추진력과, 통솔력을 가지고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발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선택할수도 없는 죄악을 선택하여 광적인열성을 다하였는지 지금껏 어리둥절 하여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지금도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많은 분들에게 저 같은 죄인도 참회하구 회개하여예수님을 구주로 모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십시오.십자가 앞에 엎드려 회개하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겠습니다.그동안 선생님 앞에 보내었던 무례한 글들을 굽어 살펴 주시시오.저를 십자가 앞에 보내었던 무례한 글들을 굽어 살펴 주십시요.저를 십자가 앞에 인도한 선생님이야 말로 진정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모든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모든 성도님과 더불어 선생님 건강하세요. 김 기환 올림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참 소망입니다.
출처/이호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