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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남은 기회 (눅 13:6-9)
텔레비전을 켜면 한일 월드컵 개막일이 앞으로 며칠 남았다는 자막이 뜨곤합니다. 다음달 1일에는 본선 조 추첨이 있고 이때부터 사실상의 월드컵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축구 열기가 아주 뜨겁게 달아오를 것 같습니다. 축구중계방송을 듣다보면 해설자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경기 시작해서 5분, 끝나기 전 5분을 잘 해야 한다.” 이 말이 우리나라 대표팀의 중요한 경기에 어쩌면 그렇게도 잘 들어맞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시작하자마자 너무 쉽게 골을 허용하는 바람에 경기 내내 끌려 다닙니다. 어떤 때는 모처럼 이기는가 했는데 종료 5분도 남기지 않고 동점골이나 역전골을 허용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어찌 축구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인생살이가 그렇고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가룟 유다 같은 사람, 제자로 부름받아 좋은 출발을 했는데 막판에 인생을 완전히 망치고 말았습니다. 어찌 유다만 그렇습니까?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이 벌써 1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금년을 한 달 남겨두었으니 축구로 치면 마지막 5분이 남은 셈입니다. 오늘은 지난 11개월을 돌아보고 남은 한 달을 알차게 마무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말씀 속에서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때가 되어 열매를 얻을까 해서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주인은 과원지기를 불러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과원지기는 “금년에도 그냥 두소서” 하면서 자기가 한 해 동안 부지런히 가꾸어 볼 테니 그 후에도 열매가 없으면 그때 찍어버리라고 애원했다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오늘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1. 우리의 존재 이유를 묻고 계십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주 친근한 나무입니다. 우리에게 소나무가 남다른 느낌을 주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화과나무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 땅에 잘 자라는 생명력이 아주 강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포도원에 포도를 심고 그 사이에 빈땅을 놀리지 않고 무화과나무를 심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회 졸업생입니다. 퇴계원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도제원초등학교가 새로 생겼듯이 제가 졸업한 학교가 그랬습니다. 신설학교이다 보니 학교를 가꾸는데 어린 학생들의 손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6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 나무를 심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는 나무마다 자기 이름표를 달아주고 물을 주어 가꾸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제가 그때 심고 물을 주던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휴가 때 부모님을 찾아뵙자면 반드시 제가 다니던 학교 운동장 앞으로 난 도로를 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 많은 나무들 중에 유독 제가 심은 나무를 보곤 합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봅시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영어성경에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로 나옵니다. 많은 포도나무들이 있는 포도원에 한 그루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두 그루도 아닌 딱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종을 시켜 심지 않고 주인이 손수 심었습니다. 왜요? 그만큼 애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에 대한 깊은 관심입니다. 그러니 주인의 눈에 얼마나 잘 띄었겠습니까?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얼마나 관심 있게 지켜보았을까요?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주인이 무화과나무에게서 얻고자 한 것이 무엇입니까? 열매입니다. 그게 무화과나무를 심은 이유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관상용이 아닙니다. 이름대로 꽃도 없고 향기도 없습니다. 아름답게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습니다. 오직 기대할 것은 열매밖에 없습니다. 무화과나무에게 열매가 없으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무화과나무는 생산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열매가 아주 많이 맺힙니다. 1년에 세 차례나 수확을 할 수 있는데 1년 열 두 달 중 4~5월에만 열매가 없고 10개월은 언제나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를 심는 주인은 오직 열매를 얻고자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무화과나무의 존재 이유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보고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해 보세요. 사람들의 대답이 대충 이렇습니다.
“그저 그렇지요 뭐. 사는 게 뭐 별 수 있나요?”
“그럭저럭 삽니다.”
“죽지 못해서 살지요. 뭐”
성경은 우리 인간의 존재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2. 주인은 열매를 찾았습니다.
오늘 주인이 무화과나무에게 바라는 것은 열매입니다. ‘내가 심은 나무가 그 동안 얼마나 멋있어졌나?’ ‘잎은 또 얼마나 무성해졌나?’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오직 열매만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이 11월 마지막주일입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서 무엇을 찾고 싶어하십니까? 열매입니다. 열 한달 동안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보고싶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1월에 가지고 있던 열매와 11월까지 맺은 열매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재산이 얼마나 늘어났습니까? 몸은 좀 건강해졌습니까? 자녀들 학교 성적이 올랐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재산이 늘어나고 건강을 되찾고 공부 잘하는 것 기분 좋은 일입니다. 더구나 정당하게 일해서 재산이 늘어났다면 기뻐할 일입니다. 운동하고 치료받아서 건강하게 되었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녀들의 성적이 올랐다면 자랑할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좋은 일이고 기쁜 일일 수는 있어도 열매는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열매입니까? 좋은 일 기쁜 일이 주님과 상관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맺었다고 생각하는 열매가 주님과 상관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늘어난 재산이 주님과 상관이 있습니까? 되찾은 건강이 주님과 상관 있습니까? 실적을 많이 올린 것이 주님과 상관 있습니까? 늘어난 재산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까? 늘어난 재산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다면 그 재산은 재물은 될 수 있어도 열매는 아닙니다. 건강 되찾은 것이 주님과 상관이 없다면 그 건강해진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열매는 아닙니다. 건강 얻은 것이 열매가 아니라 되찾은 건강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한 것이 열매입니다.
그렇다고 늘어난 것만 열매로 생각하지 맙시다. 지난 열 한달 동안 재산은 잃었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섰다면 그게 열매입니다. 건강을 잃었지만 기도를 되찾았다면 그 기도가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남은 한 달 하나님 앞에서 이런 열매 맺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며칠 전에 책을 읽다가 아주 인상 깊은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할 것은 사용하고, 사용해야 할 것은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할 것은 사용하고, 사용해야 할 것은 사랑하고 있다.”
돈은 사용해야할 것이지 사랑할 것은 못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했습니다. 돈을 사용하지 못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온갖 부패와 비리가 생깁니다. 요즘은 왜 그리 게이트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용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 또 어떤 게이트가 더 생길지 모릅니다. 아니 이미 여러 개의 또 다른 게이트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모두 사용할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랑해야 할 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사용할 대상이 아닙니다. 한 때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뜻입니다. 필요할 때는 쓰고 더 이상 필요 없으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키워주기 보다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뒷골목의 보스는 될 수 있어도 지도자는 돨 수 없습니다.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으면 부려먹다가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버립니다. 참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사용해야 할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용하기 때문에 문젭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용만 하는 사람은 결국 불행해 집니다.
사울을 보세요. 다윗을 사용할 줄은 알았지만 사랑할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는 사용할 줄도 몰랐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길보아산에서 비참하게 죽지않았습니까?
반면 요한복음 13장 1절에 나타난 우리 주님을 보세요.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을 계속 읽어가노라면 예수님은 세족식을 하시고 성만찬을 집례하시면서 유독 한 사람에게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다름아닌 가룟 유다입니다. 당신을 사용하다가 이제는 사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자 은 30에 팔아버리고 배신하는 유다까지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이것이 사랑입니다.
열매 중에 가장 큰 열매가 사랑입니다. 지난 1월에는 미워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사라졌다면 그게 열매입니다. 증오하고 저주했던 사람을 이제는 용서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열매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합시다. 주인은 오직 열매만 찾았습니다. 지난 열 한 달 동안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찾으십니다. 주님이 이 시간 이 강단에 서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내셔서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박목사! 너는 목사라면서 뭘 했지?’
‘이 집사! 너는 집사로 임명받고 지난 11개월간 뭘 했지? 내가 그 열매를 보고 싶다’
어찌 올해만 열매를 찾으셨겠습니까? 작년에도 찾으셨을 테고 재작년에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7 절을 보세요.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지난 3년간 열매가 달렸을까 하고 해마다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생명력이 강하고 생산력이 높은 무화과나무입니다. 당연히 많은 열매를 맺었어야 했는데 아무 것도 맺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성미가 급한 분이라면 우리는 벌써 밑둥이 잘려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충성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 때문인 줄 믿습니다.
3. 무화과나무는 때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게 정해진 때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때가 있습니다. 3년을 기다린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무화과나무를 심는 목적은 열매를 얻기 위함인데 열매가 없으니 이 무화과나무는 손해만 끼친 셈입니다. 얼핏 생각해도 몇 가지 손해를 끼쳤습니다. ① 다른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습니다. ② 땅의 영양분을 빨아먹었으니 곁에 있는 포도나무에게 돌아갈 영양분을 가로챘습니다. ③ 과원지기의 수고와 땀을 헛되게 만들었습니다. 3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했습니다. ④ 무엇보다 주인의 기대와 관심을 여지없이 짓밟아버렸습니다. 그러니 이 무화과나무에게 열매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신앙의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내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직분을 맡아놓고 방치한다면 직분을 맡지 못한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집사도 저렇게 하는데, 내가 할 필요가 뭐 있어’
‘안수 받은 분들도 저 정도밖에 안 하는데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 있어?’
이런 분위기가 교회에 한 번 침투하면 고치기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교회에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른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방해합니다. 다른 교우에게 돌아갈 은혜를 가로채는 셈이 됩니다. 다른 성도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못하게 막는 꼴이 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그 직분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면 다른 성도들이 받을 직분까지 내가 못 받게 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3년 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인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에 대한 당연한 심판입니다.
마침내 주인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찍어버리라” 아주 단호한 명령입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일할 기회를 주시고 땀흘릴 기회를 주십니다. 봉사할 기회를 주시고 충성할 기회를 주십니다. 모든 일에 때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와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살리지 못하면 후회가 뒤따릅니다.
6,7 년 전의 일입니다. 은퇴를 앞두신 어느 권사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젊었을 때는 뭘 배우면 그게 그렇게 머리에 쏙쏙 들어왔는데 이제는 말씀을 배워도 들을 때는 알겠는데 공부가 끝나기가 무섭게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목사님, 제발 젊은 사람들보고 ‘늙기 전에 성경공부 많이 해 두라’고 말씀해 달라”는 겁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힘이 있을 때는 교회에서 일곱 구역을 책임지는 지역장이 되라 하셔도 더 안 맡겨주나 해서 섭섭하셨답니다. 그런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이 차니까 두 구역을 맡고도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분 안계십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권사님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기회를 대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① 기회를 악용하는 사람, ② 기회를 놓치는 사람, ③ 그리고 기회를 선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부탁드립니다.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을 때 성경 부지런히 읽으시고 성경공부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힘이 있을 때 힘쓰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있을 때 시간을 내시기 바랍니다. 돈이 있을 때 베푸시기 바랍니다. ‘나도 봉사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몇 주전부터 봉사지원서와 제직서약서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해 동안 일꾼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기회를 악용하는 분들이야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기회를 놓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4.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찍어버리라”는 주인의 명령에 과원지기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과원지기의 말 속에서 우리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열매가 없을 때 누구보다 우리 주님이 마음 아파하십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교회마다 연말이 되면 일꾼 임명을 합니다. 그런데 임명을 하고 나면 시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를 왜 하필이면 그 자리에 앉혔느냐?’
‘나보다 저 사람이 늦는데 벌써 저 자리에 임명했느냐?’
‘누구는 목사님한테 잘 보여서 그렇지 뭐’
이런 말도 우리교회에서는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고등부 교사로 있던 분이 회사 사정 때문에 자주 지각 결석을 해서 교육 담당하는 목사님이 상담을 하고는 시간대가 적당한 아동부 교사로 임명했습니다. 임명 발표가 나자마자 그 교사 부친이 교역자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 내용인즉 ‘어떻게 고등부 교사를 아동부로 내려보낼 수 있느냐?’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고등부에서 아동부로 간 것을 강등으로 받아들인 겁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고둥부는 높은 부서고 아동부는 낮은 부서입니까? 고등부 교사가 아동부로 간 것이 내려간 것입니까? 설사 내려가면 또 어떻습니까? 내려가는 것이 그토록 치욕이라면 우리 주님은 어떻게 저 높은 하늘보좌에서 이 땅에까지 내려오실 수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이런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과원지기를 보세요. 무화과나무가 도끼에 찍히는 것을 마치 자기 목숨 찍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누구 마음입니까?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죄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할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열매 맺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나무의 책임이련만 과원지기는 자기 탓으로 돌립니다. 분명 내 탓인데 주님은 주님 탓이랍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합니다. 열매맺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련만 주님은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끌어안아 주십니다. 우리가 이걸 믿고 살아갑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열 한 달 동안 무슨 열매를 맺었습니까? 아직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의 자비로우심으로 부탁드립니디. 아직도 한 달 남았습니다. 포도원에 있는 무화과나무는 1년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한 달이면 충분한 기간입니다. 더 늦기 전에 주님께 드릴 열매를 맺읍시다.
벌써 열매를 맺은 분들이 있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 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들어갔더니 이 부서가 이만큼 부흥했네’
‘내가 구역장했더니 구역 모임이 잘돼’
‘내가 임원을 맡았더니 우리 남선교회가, 우리 여전도회가 이렇게 잘 모여’
설령 그렇더라도 그렇게 말하지 맙시다. 누가 봐도 인정할만하더라도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맙시다. 우리 주님이 두루 파고 거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께 영광 돌리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요한복음 15장 8절 말씀처럼 이번 연말에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최삼경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
텔레비전을 켜면 한일 월드컵 개막일이 앞으로 며칠 남았다는 자막이 뜨곤합니다. 다음달 1일에는 본선 조 추첨이 있고 이때부터 사실상의 월드컵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축구 열기가 아주 뜨겁게 달아오를 것 같습니다. 축구중계방송을 듣다보면 해설자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경기 시작해서 5분, 끝나기 전 5분을 잘 해야 한다.” 이 말이 우리나라 대표팀의 중요한 경기에 어쩌면 그렇게도 잘 들어맞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시작하자마자 너무 쉽게 골을 허용하는 바람에 경기 내내 끌려 다닙니다. 어떤 때는 모처럼 이기는가 했는데 종료 5분도 남기지 않고 동점골이나 역전골을 허용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어찌 축구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인생살이가 그렇고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가룟 유다 같은 사람, 제자로 부름받아 좋은 출발을 했는데 막판에 인생을 완전히 망치고 말았습니다. 어찌 유다만 그렇습니까?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이 벌써 1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금년을 한 달 남겨두었으니 축구로 치면 마지막 5분이 남은 셈입니다. 오늘은 지난 11개월을 돌아보고 남은 한 달을 알차게 마무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말씀 속에서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때가 되어 열매를 얻을까 해서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주인은 과원지기를 불러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과원지기는 “금년에도 그냥 두소서” 하면서 자기가 한 해 동안 부지런히 가꾸어 볼 테니 그 후에도 열매가 없으면 그때 찍어버리라고 애원했다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오늘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1. 우리의 존재 이유를 묻고 계십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주 친근한 나무입니다. 우리에게 소나무가 남다른 느낌을 주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화과나무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 땅에 잘 자라는 생명력이 아주 강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포도원에 포도를 심고 그 사이에 빈땅을 놀리지 않고 무화과나무를 심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회 졸업생입니다. 퇴계원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도제원초등학교가 새로 생겼듯이 제가 졸업한 학교가 그랬습니다. 신설학교이다 보니 학교를 가꾸는데 어린 학생들의 손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6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 나무를 심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는 나무마다 자기 이름표를 달아주고 물을 주어 가꾸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제가 그때 심고 물을 주던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휴가 때 부모님을 찾아뵙자면 반드시 제가 다니던 학교 운동장 앞으로 난 도로를 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 많은 나무들 중에 유독 제가 심은 나무를 보곤 합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봅시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영어성경에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로 나옵니다. 많은 포도나무들이 있는 포도원에 한 그루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두 그루도 아닌 딱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종을 시켜 심지 않고 주인이 손수 심었습니다. 왜요? 그만큼 애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에 대한 깊은 관심입니다. 그러니 주인의 눈에 얼마나 잘 띄었겠습니까?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얼마나 관심 있게 지켜보았을까요?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주인이 무화과나무에게서 얻고자 한 것이 무엇입니까? 열매입니다. 그게 무화과나무를 심은 이유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관상용이 아닙니다. 이름대로 꽃도 없고 향기도 없습니다. 아름답게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습니다. 오직 기대할 것은 열매밖에 없습니다. 무화과나무에게 열매가 없으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무화과나무는 생산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열매가 아주 많이 맺힙니다. 1년에 세 차례나 수확을 할 수 있는데 1년 열 두 달 중 4~5월에만 열매가 없고 10개월은 언제나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를 심는 주인은 오직 열매를 얻고자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무화과나무의 존재 이유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보고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해 보세요. 사람들의 대답이 대충 이렇습니다.
“그저 그렇지요 뭐. 사는 게 뭐 별 수 있나요?”
“그럭저럭 삽니다.”
“죽지 못해서 살지요. 뭐”
성경은 우리 인간의 존재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2. 주인은 열매를 찾았습니다.
오늘 주인이 무화과나무에게 바라는 것은 열매입니다. ‘내가 심은 나무가 그 동안 얼마나 멋있어졌나?’ ‘잎은 또 얼마나 무성해졌나?’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오직 열매만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이 11월 마지막주일입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서 무엇을 찾고 싶어하십니까? 열매입니다. 열 한달 동안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보고싶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1월에 가지고 있던 열매와 11월까지 맺은 열매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재산이 얼마나 늘어났습니까? 몸은 좀 건강해졌습니까? 자녀들 학교 성적이 올랐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재산이 늘어나고 건강을 되찾고 공부 잘하는 것 기분 좋은 일입니다. 더구나 정당하게 일해서 재산이 늘어났다면 기뻐할 일입니다. 운동하고 치료받아서 건강하게 되었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녀들의 성적이 올랐다면 자랑할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좋은 일이고 기쁜 일일 수는 있어도 열매는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열매입니까? 좋은 일 기쁜 일이 주님과 상관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맺었다고 생각하는 열매가 주님과 상관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늘어난 재산이 주님과 상관이 있습니까? 되찾은 건강이 주님과 상관 있습니까? 실적을 많이 올린 것이 주님과 상관 있습니까? 늘어난 재산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까? 늘어난 재산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다면 그 재산은 재물은 될 수 있어도 열매는 아닙니다. 건강 되찾은 것이 주님과 상관이 없다면 그 건강해진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열매는 아닙니다. 건강 얻은 것이 열매가 아니라 되찾은 건강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한 것이 열매입니다.
그렇다고 늘어난 것만 열매로 생각하지 맙시다. 지난 열 한달 동안 재산은 잃었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섰다면 그게 열매입니다. 건강을 잃었지만 기도를 되찾았다면 그 기도가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남은 한 달 하나님 앞에서 이런 열매 맺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며칠 전에 책을 읽다가 아주 인상 깊은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할 것은 사용하고, 사용해야 할 것은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할 것은 사용하고, 사용해야 할 것은 사랑하고 있다.”
돈은 사용해야할 것이지 사랑할 것은 못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했습니다. 돈을 사용하지 못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온갖 부패와 비리가 생깁니다. 요즘은 왜 그리 게이트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용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 또 어떤 게이트가 더 생길지 모릅니다. 아니 이미 여러 개의 또 다른 게이트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모두 사용할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랑해야 할 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사용할 대상이 아닙니다. 한 때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뜻입니다. 필요할 때는 쓰고 더 이상 필요 없으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키워주기 보다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뒷골목의 보스는 될 수 있어도 지도자는 돨 수 없습니다.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으면 부려먹다가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버립니다. 참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사용해야 할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용하기 때문에 문젭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용만 하는 사람은 결국 불행해 집니다.
사울을 보세요. 다윗을 사용할 줄은 알았지만 사랑할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는 사용할 줄도 몰랐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길보아산에서 비참하게 죽지않았습니까?
반면 요한복음 13장 1절에 나타난 우리 주님을 보세요.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을 계속 읽어가노라면 예수님은 세족식을 하시고 성만찬을 집례하시면서 유독 한 사람에게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다름아닌 가룟 유다입니다. 당신을 사용하다가 이제는 사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자 은 30에 팔아버리고 배신하는 유다까지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이것이 사랑입니다.
열매 중에 가장 큰 열매가 사랑입니다. 지난 1월에는 미워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사라졌다면 그게 열매입니다. 증오하고 저주했던 사람을 이제는 용서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열매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합시다. 주인은 오직 열매만 찾았습니다. 지난 열 한 달 동안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찾으십니다. 주님이 이 시간 이 강단에 서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내셔서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박목사! 너는 목사라면서 뭘 했지?’
‘이 집사! 너는 집사로 임명받고 지난 11개월간 뭘 했지? 내가 그 열매를 보고 싶다’
어찌 올해만 열매를 찾으셨겠습니까? 작년에도 찾으셨을 테고 재작년에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7 절을 보세요.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지난 3년간 열매가 달렸을까 하고 해마다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생명력이 강하고 생산력이 높은 무화과나무입니다. 당연히 많은 열매를 맺었어야 했는데 아무 것도 맺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성미가 급한 분이라면 우리는 벌써 밑둥이 잘려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충성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 때문인 줄 믿습니다.
3. 무화과나무는 때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게 정해진 때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때가 있습니다. 3년을 기다린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무화과나무를 심는 목적은 열매를 얻기 위함인데 열매가 없으니 이 무화과나무는 손해만 끼친 셈입니다. 얼핏 생각해도 몇 가지 손해를 끼쳤습니다. ① 다른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습니다. ② 땅의 영양분을 빨아먹었으니 곁에 있는 포도나무에게 돌아갈 영양분을 가로챘습니다. ③ 과원지기의 수고와 땀을 헛되게 만들었습니다. 3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했습니다. ④ 무엇보다 주인의 기대와 관심을 여지없이 짓밟아버렸습니다. 그러니 이 무화과나무에게 열매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신앙의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내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직분을 맡아놓고 방치한다면 직분을 맡지 못한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집사도 저렇게 하는데, 내가 할 필요가 뭐 있어’
‘안수 받은 분들도 저 정도밖에 안 하는데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 있어?’
이런 분위기가 교회에 한 번 침투하면 고치기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교회에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른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방해합니다. 다른 교우에게 돌아갈 은혜를 가로채는 셈이 됩니다. 다른 성도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못하게 막는 꼴이 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그 직분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면 다른 성도들이 받을 직분까지 내가 못 받게 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3년 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인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에 대한 당연한 심판입니다.
마침내 주인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찍어버리라” 아주 단호한 명령입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일할 기회를 주시고 땀흘릴 기회를 주십니다. 봉사할 기회를 주시고 충성할 기회를 주십니다. 모든 일에 때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와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살리지 못하면 후회가 뒤따릅니다.
6,7 년 전의 일입니다. 은퇴를 앞두신 어느 권사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젊었을 때는 뭘 배우면 그게 그렇게 머리에 쏙쏙 들어왔는데 이제는 말씀을 배워도 들을 때는 알겠는데 공부가 끝나기가 무섭게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목사님, 제발 젊은 사람들보고 ‘늙기 전에 성경공부 많이 해 두라’고 말씀해 달라”는 겁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힘이 있을 때는 교회에서 일곱 구역을 책임지는 지역장이 되라 하셔도 더 안 맡겨주나 해서 섭섭하셨답니다. 그런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이 차니까 두 구역을 맡고도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분 안계십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권사님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기회를 대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① 기회를 악용하는 사람, ② 기회를 놓치는 사람, ③ 그리고 기회를 선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부탁드립니다.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을 때 성경 부지런히 읽으시고 성경공부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힘이 있을 때 힘쓰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있을 때 시간을 내시기 바랍니다. 돈이 있을 때 베푸시기 바랍니다. ‘나도 봉사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몇 주전부터 봉사지원서와 제직서약서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해 동안 일꾼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기회를 악용하는 분들이야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기회를 놓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4.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찍어버리라”는 주인의 명령에 과원지기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과원지기의 말 속에서 우리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열매가 없을 때 누구보다 우리 주님이 마음 아파하십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교회마다 연말이 되면 일꾼 임명을 합니다. 그런데 임명을 하고 나면 시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를 왜 하필이면 그 자리에 앉혔느냐?’
‘나보다 저 사람이 늦는데 벌써 저 자리에 임명했느냐?’
‘누구는 목사님한테 잘 보여서 그렇지 뭐’
이런 말도 우리교회에서는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고등부 교사로 있던 분이 회사 사정 때문에 자주 지각 결석을 해서 교육 담당하는 목사님이 상담을 하고는 시간대가 적당한 아동부 교사로 임명했습니다. 임명 발표가 나자마자 그 교사 부친이 교역자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 내용인즉 ‘어떻게 고등부 교사를 아동부로 내려보낼 수 있느냐?’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고등부에서 아동부로 간 것을 강등으로 받아들인 겁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고둥부는 높은 부서고 아동부는 낮은 부서입니까? 고등부 교사가 아동부로 간 것이 내려간 것입니까? 설사 내려가면 또 어떻습니까? 내려가는 것이 그토록 치욕이라면 우리 주님은 어떻게 저 높은 하늘보좌에서 이 땅에까지 내려오실 수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이런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과원지기를 보세요. 무화과나무가 도끼에 찍히는 것을 마치 자기 목숨 찍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누구 마음입니까?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죄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할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열매 맺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나무의 책임이련만 과원지기는 자기 탓으로 돌립니다. 분명 내 탓인데 주님은 주님 탓이랍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합니다. 열매맺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련만 주님은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끌어안아 주십니다. 우리가 이걸 믿고 살아갑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열 한 달 동안 무슨 열매를 맺었습니까? 아직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의 자비로우심으로 부탁드립니디. 아직도 한 달 남았습니다. 포도원에 있는 무화과나무는 1년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한 달이면 충분한 기간입니다. 더 늦기 전에 주님께 드릴 열매를 맺읍시다.
벌써 열매를 맺은 분들이 있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 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들어갔더니 이 부서가 이만큼 부흥했네’
‘내가 구역장했더니 구역 모임이 잘돼’
‘내가 임원을 맡았더니 우리 남선교회가, 우리 여전도회가 이렇게 잘 모여’
설령 그렇더라도 그렇게 말하지 맙시다. 누가 봐도 인정할만하더라도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맙시다. 우리 주님이 두루 파고 거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께 영광 돌리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요한복음 15장 8절 말씀처럼 이번 연말에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최삼경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