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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오신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내일부터 세이레 특별기도회를 앞두고 오늘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첫 번째 간구를 살필 차례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간구를 살피기 전에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특징을 먼저 기억해봅시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는 부름말과 여섯 개의 기도의 제목과 ‘대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를 바라는 송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섯 개의 기도제목을 분석해 보면 처음 세 가지는 하나님께 아뢰는 간구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들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의 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서는 우리의 관심을 먼저 하나님께로 향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야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급해야 하나님께 나아가고 나아가서는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아뢰고 간곡한 부탁을 드리고 돌아서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기도문의 간구의 순서는 결코 그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의 필요에 대해서 아뢰는 것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른 순서에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급할 때 나아가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면 눈을 감자마자 당장 딱한 사정을 아뢰고 급한 요청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선 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생각이 우리 자신에게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본질은 자기 중심적인 것이 제본질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회심하는 것은 그 시선을 자기에게로만 향하게 하던 것을 이제는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께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 바로 회심 아니겠습니까? 기도도 하나님께로 마음이 향하는 것이 먼저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 무릎을 꿇을 때마다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계획과 뜻을 제일 먼저 아뢰어야 바른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가 됩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 세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이름, 우리 아버지의 나라, 우리 아버지의 뜻은 우리가 땅에 살면서 구할 삼대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눈을 감았다하면 순전히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런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답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 중심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언제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만 염려해서 아뢰는 것으로 우리의 기도가 채워진다면 기도의 시간이 아무리 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성숙한 자녀의 기도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당에 발을 디디기 전에도 그런 기도를 드린적 있지 않습니까? 물을 떠 놓고 빌때부터, 성황당 앞에 가서 손 비빌 때부터, 꼭 우리의 필요에 대해서 아뢰는 것들은 언제나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우리의 생각이 전적으로 전환시킨 다음 부터는 기도조차도 순서가 바뀌어 져야 합니다. 먼저 아버지 하나님을 찾고 그 다음에 우리 자신의 것을 아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악한 아버지도 자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아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우리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기도문의 간구의 순서를 따라 기도의 바른 순서를 배워야 합니다. 오해하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기도에는 우선 순위가 바로 잡혀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먼저 와야 할 것이 먼저 와야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우리는 필요한 것이 있어서 무릎을 꿇습니다. 염려되는 것이 있어서 하늘 아버지의 보좌 앞에 나옵니다. 그러나 바른 기도의 순서는 우리의 염려를 쏟아놓고 우리의 필요를 통고하고 끝나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3:6). 모든 필요한 것들을 낱낱이 아뢰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 일입니다. 다만 염려 대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까지 우리를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며, 이 탁한 상황 속에서도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 이제 오늘 우리의 주제인 하나님을 위한 기도 가운데 가장 첫째 기도 제목을 살펴봅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선 하나님의 이름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는 이름이란 단지 부르는 이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름이란 그 사람의 전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으로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셨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 9편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려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말입니다.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기꺼이 하나님을 의지하려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시편 20편 7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병거와 말을 그들의 강력한 무기와 재산으로 여기지만 성도인 우리에게서 가장 소중하고 우리가 가장 신뢰할 말한 것은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 그 분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즉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니 보여주었다는 말씀입니다. -3년이 지나갔는데도 도마가 여러 말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리 한테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족하겠습니다. 예수님 한테 도마가 답답해서 요청을 했습니다. -사실 서로 답답한 것입니다. 도마가 예수님이 가르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을때는 예수님도 도마를 보면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3년이나 내가 너와 같이 지냈는데 아직도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느냐?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렇게 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그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란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본성, 특성, 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란 뜻은 무엇일까요? 결코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점점 거룩해질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거룩해질 필요성이 전혀 없는 완전한 거룩 그 자체이십니다. 또 다른 오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오 하나님이여 당신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교만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모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편에서 자기 이름이 더럽혀 질까봐 조바심을 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과 영광이 함부로 짓밟히게 내버려두지도 않으실 뿐 아니라 그 문제를 불안해 할만큼 불완전한 분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계시는 절대 능력자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을 “하나님께서 받아 마땅한 그 자신의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는 뜻으로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합니까? 특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서 언제나 생각하십시오. 경배와 찬양하는 마음으로 그 분에 대한 이야기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본성, 특성, 인격에 합당한 최고의 경배를 받으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분이시기에 우리는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찬양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찬양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기도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돌리므로 주의 이름이 온 땅에서 높임을 받으시길 원한다는 우리의 소원을 나타내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구약 사건 하나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친 사건을 기억하면 됩니다. 홍해를 가르고 추격하는 그 애굽의 기마병들의 손아귀에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 했지만 사실 홍해를 갈라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에게서도 정말 신경쓰셔야 할 부분은 홍해를 잠깐 갈라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 백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그 노예 근성을 일순간에 제할 수는 없습니다. 지배하는 애굽사람의 손에서부터는 한순간 구원하셨지만 430년 동안 노예 살이하면서 아주 찌들어 있는 그 노예 근성을 벗겨 내기란 세월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무슨 일만 있어도 불평합니다. 삐긋하면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예 생활하면서 거기에서 감사하며, 주도적이 되고, 창조적이 되고 거기서 무슨 건설적이 되고, 그런 일들을 해 왔겠습니까? 날마다 아침에 나가보면 만나가 내려져 있었고 그 만나를 거두어 들여 먹으면서도 불구하고 조금만 흡족하지 못하면 그들은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들어보면 모세가 어떻게 그런 소리를 듣고 살았는지 신기하기도 합니다. 백성들이 심한 갈증 때문에 거의 기진하여 죽을 지경이 되자 급기야는 모세를 향해서 갖은 욕설과 원망을 쏟아 놓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모세가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저는 우리 박목사님께서 기도의 사람이 왜 되셨나 생각하니 그렇더라구요 도리가 없으니 무릎 끓지 어떻게 합니까? 저도 여러분과 함께 목회를 하면서 점점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아마 들리도록 하셨는지 마음에 확신을 주셨는지 모르지만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민 20:8).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반석 앞으로 가서 말로 명령하지 않고 지팡이를 가지고 마치 자기 능력을 과시하듯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물을 주랴?” 그러면서요. 마침내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 모세의 인내가 바닥이 났던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고 수많은 기적을 통해서 인도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불평하고 대드는 백성들에 대하여 모세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처럼 위대한 종이라고 할지라도 감정이 폭발하면 실수는 하나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모세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데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물을 백성에게 공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요 모세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데 모세는 마치 자기가 물을 내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감정을 앞세운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고를 들어보십시오. 모세와 아론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라는 구절은 “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혹은 “내게 마땅한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너희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일 수 없다. 그렇게 하나님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불신앙을 나타내는 불경이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왠만큼 불평하고 원망하고 돌을 들어 치려고 하니깐 감당이 안되어서 그렇게 했겠지만 어쨌든 그 순간 조차도 모세의 의무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 백성에게 나타내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할까요? 그 뜻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뜻은 하나님 자신만이 그 이름을 거룩히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는 것은 내가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겠으니 그것을 허락해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그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는 겸비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인간은 감히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도 없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를 원한다는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해 달라는 소극적인 의미도 있지만 이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겠다는 약속과 결단을 우리는 합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을 때에만 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고 기도하고 나서 눈뜨고는 그 기도와 아무런 관계없는 생활을 하면 우리의 기도는 거짓말이요 우리의 행위는 위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라고 기도했으면 눈 뜨고 행동할 때도 그 기도한 사람 처럼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약해서 눈 감고 기도 할 때 보면 은혜가 됩니다. 그런데 눈 떠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이 조금전 기도하던 그 사람이 맞을까? 연결이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기도했으면 그 기도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기도는 진실한 기도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소원했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도록 우리가 살겠다는 약속과 결단이 그 기도에 함께 포함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약속과 결단을 해야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과 결단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을 자랑하거나 높일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사람을 칭송하려면 그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하길 소원하면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칭송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한다면 그 분이 어떤 분인가를 매일 말씀을 통하여 배우고 깨달아서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생각할 때 자기는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원한다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는데 교회 갔다 와서는 완전히 구역예배 갈 때까지 성경책을 밀쳐 놓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밀쳐 놓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혹시 찔림이 있는 사람은 아! 목사님이 어떻게 꼬집나 생각하지 말고 오늘부터 가까이 놓고 한 장씩이라도 본다고 생각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잘 읽지 않다가 읽으려고 하니 하루 열장씩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흘도 안 가서 그만 두게 되더라구요. 조금씩이라도 한번 시작해 보십시오. 매일 말씀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만나 뵙고 그 분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좋으면 하나님을 칭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기도로 통해 하나님을 매일 만나기로 결심하십시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살기로 작정하십시오. 매일 기도를 통해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기도도 아주 습관적이 될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숟가락을 잡는 것만큼이 우리는 음식만 있으면 저절로 됩니다. 어린 아이들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훈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습관적이 될 수 있습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제일 첫 자리는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소원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 먼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시 16:8, 9)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약속과 결단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기 원하시는 일은 순종하도록 온 힘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바울은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책망하며 탄식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생활을 하면 불신자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도록 살아야 합니다. 비록 시장에서 장사를 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물건을 팔아보십시오. 사업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택시를 몰고 다녀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친절하게 성실하게 하면 잔돈과 함께 나눠 주는 전도지를 받고 ‘아!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친절한지 이제 알겠구나. 하나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구나’라고 인정하게 되면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직업을 가지고 살아도 교사를 한다든지 존경받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뒷돈이나 밝히고 한다면 ‘아! 저 사람이 무슨교회 집사래’이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우리의 그 욕심 때문에 사람들의 의해서 짓밟히겠습니까? 고상한 생활을 하고 선한 일에 봉사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십시오.
넷째로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생활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약속하고 결단하십시오. 왜냐하면 성도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서 찬송하고 하나님의 크신 이름 앞에 모든 것을 아뢰고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함께 경배하니까 이 자리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여러분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성도들과 함께 예배 드리는 시간을 무엇보다 귀중하게 여기십시오.
다섯째로 전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결단을 합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하나님이요 전 인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을 통해서만 그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라는 기도는 입술공양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금 정리합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 라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존귀와 경배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새롭게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구체적인 약속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둘째, 하나님과 깊은 기도를 통해 영적인 교제를 하겠습니다. 셋째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넷째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생활을 최우선에 두고 살겠습니다. 다섯째 전도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함께 영광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약속과 결단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려면 우리가 다짐하고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우리 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마음만 먹는다고, 결심만 한다고 세상이 돌아가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은혜 받고 집에 가서 뭔가를 해 보려고 하면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세상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상만 만만치 않는 것이 아니라 새결심을 하는 여러분도 소원을 가진다고 행동이 꼭 뒤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네게 원함은 있으나 행함은 없도다 하고 탄식하는 것이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죄악 가운데 태어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부르짖는 호소가 있어야만 합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기도의 능력을 주셔야만 합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성령의 부어주셔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눈을 열어주셔야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자리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살리는 말씀이 되기도 하고 죽이는 말씀이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셔야 개선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구도자 여러분, 우리 모두 주기도문을 배우면서 내일부터 기도하기로 결심합시다. 혼자서 기도하고 함께 모여 기도하기로 결단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데 내 생애가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짓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같이 눈감고 하나님 앞에 서원하겠습니다. 기도할 때에 새벽에 주께 헌신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은 일어서셔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내일새벽부터 내가 일어나서 내가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결심은 연약하지만 주께서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라고 생각하면 여러분 자리에서 눈감고 모두 조용히 일어나십시오. 지금 이 시간 일어서시면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여러분을 세이레 기간동안 붙드실 것입니다. 여기서 주저하면 우리는 계속 실패할지 모릅니다. 너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갈 필요가 없다고 새벽마다 우리를 주저앉게 만들지 모릅니다. 주님을 부르면서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우리의 연약한 의지를 붙들어 주시도록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전심으로 소원합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이 없습니다. 소원은 있지만 감당해 낼 힘이 부족합니다. 은혜를 주시옵소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떨면서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여,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기를 사모하게 하옵시며 이웃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며 살게 하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귀하신 주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내일부터 우리 모두 나와서 기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일어선 분들에게 아버지의 영광의 힘을 공급하셔서 새벽을 깨우는 귀막힌 즐거움을 맛보게 하여 주옵소서. 아직도 일어서지 못한 분들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새벽을 사는 그리스도의 대열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생명을 붓는 그리스도의 대열에 함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비젼을 이루어 내는 주님이 사랑하는 울산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정근두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