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눅1:26-38)

여자의 유형을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이브형의 여인이 있습니다.
이브형의 여인은 죄의식 속에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죄를 짓고, 죄의 굴레 속에 살아가는 여인상이 이브형의 여인입니다.

둘째, 비너스형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여인입니다. 외형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여인이지요.
몸매를 가꾸고 꾸미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여인입니다.

셋째, 마리아적인 여인입니다.
하늘의 생명을 잉태하고서 온갖 비난과 멸시 천대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묵묵히 순종하는 여인입니다.
하늘의 신비, 하늘의 뜻을 받아 드리고, 그 일로 인해 오해를 받고 숱한 손해를 받지만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하며 걸어간 여인,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기적을 이 땅에 이루게 한 여인 마리아.

성경은 이 마리아를 향하여 "은혜를 입은 자라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복 있는 자라고 크게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26절은 "여섯째 달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 사건과 연결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나이많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에 약속대로 아기가 수태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여섯째 달에 라는 말은 엘리사벳이 수태한 지 여섯째 달에 라는 말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사가랴에게 통고된 말씀이 성취되어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여섯째 되는 때에 천사가 다시 왔다는 것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첫 약속이 이루어진 지 여섯 달 만에 다시 천사를 보내셔서 처음보다 더 놀라운 약속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처음 약속은 나이 많아 이제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아기가 잉태되었고, 그 아이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처녀 마리아에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무나도 뜻밖에 말씀에 마리아는 놀라고 두려워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립니다.
오늘 본문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여기에 누가복음 전체 메시지의 초점이 있습니다.
특히 누가복음 1-2장의 중심 메시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의사 누가는 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1장 제일 첫 절에서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사실을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의 주제는 인간의 역사 속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1장 20절을 보면 믿지 못하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에 그 약속은 분명히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사람을 선택하시고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이 부름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저와 여러분이 복 있는 자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여기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한 비천한 여인, 마리아를 찾아오십니다.
마리아는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 앞에 바르게 응답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그릇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마리아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에 합당한 진정한 겸손의 내면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구세주의 출산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천사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가 다 끝난 다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38절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여기서 계집종이라고 하는 표현은 아주 굉장히 낮은 계급의 여자 하인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천사는 네가 온 인류의 메시야 인 예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여 주었는데, 자신은 단지 주의 계집종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경에 어느 한 번도 자신을 스스로 높이거나, 예수의 모친이라는 사실로 특권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예수의 뒤에서 묵묵히 있으면서 자신의

주님으로서 예수를 섬기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시작도 겸손이고 중간도 변질이 없고, 끝에 가도 겸손하신 그런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은혜와 복이 있는 겸손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겸손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인격은 겸손한 인격입니다.

사울 왕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아주 겸손하였습니다.
처음에 왕으로 기름부으려고 사무엘이 찾아갔을 때 부끄러워 행구 사이에 숨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그의 겸손을 잊어버립니다.
삼상15:12에 보면 자신의 기념비를 갈멜에다 스스로 세웠습니다.

또 블레셋 나라와 전쟁을 할 때도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이 늦게 오자 자기가 팔을 걷고 제사를 진행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잃어 버렸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착각하여서 제사권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겸손이란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은 비천하나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하여 이 세상에 오시게 하는 역할만을 감당하는 여인이었다고 하는 사실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다고 하는 은혜와 행복에 감사할 뿐 조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겸손함이 끝까지 지속된 귀한 여인인 것입니다.

둘째, 마리아는 순종의 여인이었습니다.
정혼한 처녀가 동거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유대의 율법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것

은 돌에 맞아 죽는 죽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던 약혼자와의 파혼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 사회에서는 발붙일 수 없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가운데서도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38절은 37절에 대한 응답입니다.
37절에 가브리엘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했고,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의 본래 뜻은 "샤마"로서 "듣는다", "동의한다"에서 유래했습니다.
또 순종의 다른 말로 "휘파쿠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아래에서 듣는다"입니다.
그러니까 순종한다는 것은 윗사람의 말씀을 아래에서 경청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5장 29절을 보면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영히 복받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복받고 사는 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종 때문이었다고 민수기 32:12이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품 속에 들어있는 사용설명서와 같습니다.
어떤 제품을 사든지 그 속에는 사용 설명서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설명서대로 제품을 사용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 제품에 관해서는 만든 사람이 세상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그가 쓴 설명서대로 사용해야 그 제품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사용 설명서입니다.
믿음은 바로 그 인생 사용설명서인 성경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리아는 자기에게 주어진 이 엄청난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순종합니다.
그리고 이 순종은 마리아의 영혼에 큰 기쁨을 안겨 주었고, 그의 조상 아브라함적부터 약속된 구원의 역사가 실현될 단계에 이르렀음을 깨닫는 놀라운 역사의식을 갖게 됩니다.
눅 1:46 이하에 보면 마리아는 이렇게 찬송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당시 사회관습으로는 가장 저주받은 여자일 수밖에  없는 마리아가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 드렸고, 자기야말로 가장 복이 있는 자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기적을 낳고, 그 기적은 축복을 낳습니다.

셋째, 그는 용기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이 신앙이라면, 내게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지 간에 그 상황에 순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용기를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그리고 영적인 승리를 합니다.
모세가 가는 길에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팡이로 내리치라고 하십니다.
지팡이로 내리 쳤더니 바다가 갈라져서 좌우의 벽으로 섰습니다.
그 속을 지나간다는 것은 용기가 없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속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곳으로 데리고 왔느냐?"고 합니다.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가자고 합니다.
이것은 참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믿음은 용기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믿음의 위인들은 용기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용기있는 한 사람에 의해 역사는 바뀌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채 로마에 가서 토굴 속에 갇혔습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토굴속에서 신약 성경을 썼습니다.
용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에게 용기가 있다고 할 때 그 용기의 출처는 어디일까요?
내 자신일까요?
만약 용기의 출처가 나라고 한다면 그것은 만용입니다.
용기의 출처가 내가 될 때 나는 언제나 이겨야 합니다.
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지지 못합니다.
양보하는 용기를 갖지 못합니다.
포기하는 용기를 갖지 못합니다.
그럼 성도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35절을 보십시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

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능력 /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용기의 출처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용기 있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수 1장 / 두려워 하지 말라. 담대하라. 극히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용기의 출처?  "하나님"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장소로서 가장 높은 곳은 티벳에 있는 '꼴라란둥'이라는 지점인데, 그 곳은 무려 해발 6,300미터로 한라산의 3배가 넘습니다.
그곳이 유명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그 곳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거대한 양쯔 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양쯔강의 발원지인 것입니다.
몇해 전에 KBS 취재팀이 그 꼴라란둥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취재팀이 도착한 날은 기온이 영하 20도였습니다.
취재팀이 촬영을 하려고 꺼낸 카메라가 얼어서 작동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텐트 속에서 함께 식사를 끝마친 뒤 잘 시간이 되자 텐트 주인 까르마 씨가 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모두 여기서 주무십시오,"
그러더니 자기는 모포 한 장만 들고 텐트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어디서 자려고 나가느냐고 묻자 까르마씨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내 양을 지키기 위해서 밖에서 잡니다."
그는자기 말대로 카메라가 얼어붙을 정도의 혹한 속에서 가죽 모포 한 장으로 깔고 덮고 잤습니다.
행여라도 맹수가 나타나서 자기 양떼들을 채어 갈까 봐서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6300미터 고지의 양떼는 영하 20도에도 아랑곳 않고 곁에서 지켜 주는 목자 때문에 밤을 편안히 지새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까르마보다 못합니까?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면 우리는 정말 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용기있게 살아가는 참 신앙인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