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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6)
매력적인 그리스도인
세상에서도 외모나 인격이나 삶에서 매력적인 사람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이목과 관심을 끄는 것처럼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끌만한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레이 스테드먼의 히브리서 강해에 보면“왜 세상은 우리의 말하는 바를 믿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은“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저들이 믿는 바대로 행동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 믿음이 매력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바클레이라는 주석가는 은혜를‘매력'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은혜는 사람을 매력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아름다워지고 매력적이게 됩니다. 외모도 그렇게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봅니다. 은혜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고, 아무리 많아도 부작용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과 삶은 황폐해집니다. 그리고 은혜를 떠나서는 도저히 우리는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한 가지는 아름답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 의미는 용서입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 앞에서 아름다운 자태, 천사의 얼굴과 같은 모습을 했다고 했습니다. 말 없고 선전하지 않아도 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저절로 있는 그 매력, 성령 충만하면 그 아름다움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매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서 그런 광채가 나고 진한 향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강하다
천성적인 장애를 안고 나온 자녀를 가진 부모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 이 아이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복을 받고 가정이 얼마나 화목한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 때문에 남편이 예수 믿고 돌아왔는데 아마 아이가 저러지 않았으면 그이가 예수 안 믿었을 거예요. 우리 아이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아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아이 때문에 세상에서 천대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복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도 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 좋아지고 더 행복해 지고 세상사람 앞에 매력적인 존재가 되고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지금까지 불평하고 원망하던 것과 만족하지 못한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감사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어떤 형편이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할 것들을 찾아 하나님 앞에 감사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의 믿음이 좋아지고 우리가 행복해지고 우리가 강해지고 우리가 세상 사람에게 매력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얻고자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이 외부의 사물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깊이 할수록 우리의 꿈이 죽음을 맞을 것인지 아닌지 결정된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 열쇠가 거기 있다는 생각에 온 신경을 그곳에 씁니다. 마치 로또 복권을 산 것처럼…
그러나 우리의 행복을 사물에 대한 기대나 다른 사람의 손 안에 두는 한 우리에게는 어김없이 좌절이 올 것입니다. 행복에 대한 책임을 사물이나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지 마십시오. 행복은 사물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행복하게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행복은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에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주님을 깊이 생각하는 믿음의 시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을 상실하고 퇴보하기 시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그대로 믿게 하느냐? 에 대한 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답은 한마디로 먼저“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배경은 당시 유대인들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이 저들의 전통 즉 천사를 통한 기적 또한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확실한 신앙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배교하는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바로 알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분명한 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은 예수를 아는 체 하지만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예수는 어떤 예수입니까? 1절“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합니다. 여기에 믿는 도리란 말은 우리의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고백하는 바로 그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모일 때마다 신앙고백을 하지만 고백적인 삶은 따르지 못할 때가 많고, 베드로처럼 신앙고백 잘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생각이 툭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왜 그럴까요?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를 잘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풍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기독교 신앙이 당장 내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복음이 내게 얼마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느냐? 예수가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신앙생활을 통해 내가 어떤 유익을 얻느냐?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나의 관심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대부분의 교인들 특히 예수를 오래 믿다보면 신앙의 전통 습관 그리고 제도는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자신 속에 예수님의 생명, 복음의 감격은 잃어버리고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한번 예수를 깊이 생각해 보세요. 나도 지금 유대인들같이 전통의 껍데기만 남아있지 아니하는지?
히브리서 기자가 염려하는 것은 외부적 모습과 종교적 의식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신앙을 가진 일이 결코 없는 교인들에게 깨우쳐 주는 권고입니다. 혹 나는 지금 교회생활 잘 하고 있다고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믿고 형편이 나아졌다고 신앙생활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신앙을 확실히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랑은 바로 신앙의 내용을 말하며 긍지를 말합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단순한 묵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형식보다 신앙의 내용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아야 될 예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사역을 모세의 사역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지상최대의 사람으로 여기고 존경하면서도 예수님은 선지자 중에 한 사람 정도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역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아야 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셨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도로서 충성하셨습니다. 모세도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도였고, 제사장이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모세의 사역은 제사장직 사역으로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로서의 모세의 탁월성은 모세가 하나님의 다른 대변인들보다 더 직접적인 계시를 받아 전했다는 데 있습니다. 모세는“하나님의 온 집(이스라엘 백성)”의 청지기로서 충성의 화신이었습니다(고전 4:2). 성령의 감동을 받은 히브리서 기자는 충성의 주제로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한 다음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보다 우월하시므로 더욱 영광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는 피조물로서 충성했고,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3-4절에“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그가 아무리 탁월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다 하더라도 그 집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은 그 집을 자신의 피로 세우신 분입니다(행 20:28). 그러므로 그 집에 속해 있는 피조물 된 모세보다 그 집을 지으신 창조주 되신 예수님께서 모세보다 더 큰 영광과 존귀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본채의 형상입니다. 그는 만유를 창조하셨고, 소유하시며, 보존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만유 속에 속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아야 합니다.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했고, 예수님은 아들로서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을 찬송할 재료로 바꾼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스코트 백이라는 사람이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에서 정신병이 들었다가 낳는 사람들의 과정을 기록을 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모든 문제가 내 속에 있다고 느끼기만 하면 정신병의 50%가 낳는다고 합니다. 왜냐면 대부분 다 핑계를 대기 때문입니다. 환경 때문에 사람 때문에 그렇게 핑계를 댑니다. 나아가서 "그 고통은 반드시 나에게 필요한 고통이다" 라고 깨닫게 되면 100%로 낳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오면 이것과 비슷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가 아니며 내게 둘러 서 있는 어떤 조건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오면 그 사람을 용납할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고 어떤 극한 환경에 들어가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며 감사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이 우리 속에 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장애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그 어떤 장애까지도 하나님의 찬송할 재료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바로 고난과 환경과 어려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에 허락하신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귀한 결과를 나타나게 됨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내가 은혜를 받으면 문제를 극복하게 됩니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이 있어도 내가 변하고 은혜 받으면 그런 사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반드시 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고난으로 순종을 배울 수 있도록 사람을 주셨고 환경을 주셨습니다.
은혜 받으면 그 모든 것이 새롭게 해석되어서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고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순종해야 할 상황에서 억지로 순종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기쁨으로 기꺼이 순종하게 됩니다. 예배를 드려도 그냥 예배드리지 않고 감동하며 감격하며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며 하나님 앞에 봉사를 하게 되도 기쁨으로 능동적으로 감격하면서 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심령에 담아야 한다.
제사장들이 흔들고 가던 향로에서 향기가 난 이유는 그 안에 향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그리스도로 채워있으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옵니다. 외국의 한 동시가 생각이 납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는데 그 진흙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니 지나가는 나그네가“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하고 물었더니 진흙이 아니라고 대답합니다.“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그것도 아닙니다.”“그럼 너는 무엇이냐?”“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입니다.”“그런데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그 비결을 말해 드릴까요?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진흙에 향기가 난 것은 백합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게 하려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묵상하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고, 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하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만 우리의 심령이 세상에 빠져있으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 수가 없습니다. 세상 정욕에 집착하고, 세상 욕망에 사로잡혀있고, 세상살이에 몰두하다보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에 그리스도를 채우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 그리스도를 잃어버리지 마시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출처/서정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