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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 (누가복음 5:1~11)
2차 대전 당시 미치광이 같은 히틀러를 암살하여 전쟁을 일찍 끝내려고 했던 독일의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탄로나서 그는 1943년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연합군의 독일 진군을 앞둔 4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 신학자가 바로 디트리히 본회퍼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인 인물이었지만 복음에 있어서는 아주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복음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형제의 입술을 통해서 선포된 복음이 다른 형제의 귀를 통해서 전달될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머리 속에 머물러 있는 한 아무 능력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오직 선포될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허공을 치는 외침이 아니라 전도 대상자의 귀를 때리는 복음 선포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게네사렛 호숫가에 오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주님은 주위를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고 한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 배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주님은 시몬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셔서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주님이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는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전문적으로 고기를 잡는 어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누가복음 4장 3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누가복음 기자가 주님을 소개하고 있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그렇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의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분명히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던 시몬은 주님의 말씀을 듣던 중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단단하기만 했던 그의 마음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으로 작은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육신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삶이 있다는 말씀을 듣고 그 사실을 믿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은 심령에 생명을 불어넣어 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생겨나게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이치에 대해서 분명히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로마서 10장 1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비록 작은 믿음이지만 말씀을 듣는 가운데 생긴 그 믿음이 시몬으로 하여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했습니다. 드디어 시몬에게 새 삶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째서 하필이면 어부들의 상식에 반하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침이니까 호숫가 낮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으면 전혀 망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이 있었습니다. 시몬에게 시작된 새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주님은 분명히 지시하셨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주님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철저히 비울 것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지혜는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말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한 부분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획득한 그 알량한 지식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 믿겠다고 고집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교만한 생각이 여전히 내면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믿음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내려놓아라!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절대적인 진리이다!”
지난 번 우리 교회에서 선물을 드릴 때 가장 많이 드린 것이 바로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려 놓음」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저자인 이용규 박사는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바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안락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몽골 울란바토르에 오병이어 선교회가 설립한 이레 교회를 섬기는 평신도 선교사입니다. 그의 간증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책의 내용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2005년 봄, 몽골 이레 교회에서 개척한 베르흐 지역의 예배 처소를 방문해서 예배드리던 중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벌러르라는 자매가 예배 시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몇 달 전 기도를 통해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자매였습니다. 그런데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소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용규 선교사는 하나님께 그녀가 소가 아닌 예배를 택한 그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 달라고, 그 자매가 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자기 힘을 의지하다가 안 되면 자신의 실패지만, 하나님께 의지하다가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예배를 마치자마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잃어버렸던 소가 집이 아닌 예배 처소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소가 아닌 예배를 선택한 소녀는 예배와 소, 두 가지를 다 얻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믿은 우리 중에는 소 대신 예배를 택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묻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아직까지도 예배를 위해서 소 찾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가 아닙니까? 찬송가 408장 2절과 3절의 노랫말은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아주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왜 너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저 큰 바다 물결 보고 그 밑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번 헤아려 안 보나...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맘이 조려서 못 가네” 그렇습니다! 문제는 내려놓지 못함에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할 것 같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깊은 데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를 보고 겁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거센 풍랑이 이는 캄캄한 바다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노를 저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과연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린 시몬은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가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기를 잡은 시몬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왜냐 하면 상식이나 경험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 앞에서 시몬은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 하는 것을 깊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님은 사람을 쓰실 때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치도록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일꾼은 먼저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해야 합니다. 모세의 경우가 아주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그 화려했던 40년 생활을 다 청산하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떠돌이 목동 생활을 거친 후에 비로소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로 설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거친 광야의 고달픈 시간은 아브라함, 야곱, 요셉의 삶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 없는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에 사도 바울도 역시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렇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때에 주님은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기쁨 보다 두려움이 컸습니다. 바로 그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또한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오늘 우리도 그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충성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그 주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강석공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