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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신명기 30:9-14)
세계적인 성악가인 파바로티는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과점을 하던 아버지는 생활이 윤택하지 못했지만 아들의 소질을 살려 주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입학할 때 그는 교육학에 관심이 많아 교육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할 때가 가까워 오자 진로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심 성악과 교육을 동시에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방으로 불러 방안의 의자를 멀리 밀어 놓고 말했습니다. “얘야,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의자 위에 네가 동시에 앉으려고 하면 너는 자그마한 바람에도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의자에 앉으려면 반드시 한 의자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반드시 네 스스로 해야 한다.” 결국 파바로티는 심사숙고 끝에 성악을 선택했습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전공도 선택이고 직업도 선택입니다. 더욱이 신앙도 선택입니다. 크리스챤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선택입니다. 주일만 지키는 정도의 신앙 생활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한 크리스챤이 될 것인가 이것도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전반에 걸쳐서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필요할 때만 적용할 것인가 이것도 분명히 선택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40년을 지나고 난 후,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마지막 세 번의 설교를 했는데 그 중에서 맨 마지막 설교에 해당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따른다고 설교했습니다. 축복과 저주는 인간의 운명에 의해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숙원 사업인 새 성전이 거의 완공이 되어 오는 9월 2일이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이전하게 될 것입니다. 화곡동 새 성전에서 우리 성도들이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하여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무한히 축복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모세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 언약을 다시 체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언약을 체결하는 것보다 엄숙하고 감격적인 예식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는 것보다 큰 영광은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악에 빠져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습니다(롬 1:21-25).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기쁨이요 목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축복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만 십자가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인생 최고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께 돌이켜 순종하면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10).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주시되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자녀, 그리고 사업에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 앞에 섰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동행 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의지해 백성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그를 모세와 버금가는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그를 작은 자에서 큰 자로 변화되게 만들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쫓으라”(수 3:3)고 명령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단강은 그때가 1년 중 가장 물이 많아 언덕까지 범람하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하여 죽을 것을 각오하고 물속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물속에 들어가려는 찰나 마치 홍해의 기적과도 같이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들 앞에도 험한 요단강의 물결이 세차게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요단강이 범람하듯이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우리를 좌절하게 만드는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궤을 메고 건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기적과도 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믿고 순종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건만 우리는 그렇게 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뒤로 물러서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재물 많은 청년이 되곤 합니다. 한 청년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예수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영생을 얻으려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거라.” 청년은 한편으로 자랑스러움을 느끼면서 겸손히 말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다 지켰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는지요?” 예수님은 이 청년을 사랑스럽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네가 진실로 온전하게 되려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이 청년의 태도를 취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입장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지 하지 않을지 ‘고민’하는 청년이 되곤 합니다. 그 청년 나름으로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말아야 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사무엘은 힘차게 말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삼상 3: 16)고 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무엇이든지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재물이 많은 청년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고, 사무엘은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고민거리에 불과하지만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또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 있지만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신 30:11). 하나님 말씀은 순종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밀어 붙이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일을 명령하시고 지키지 못하면 징계와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분은 인간이 말씀을 지켜 복을 받고 은혜로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침반이 배의 항해의 운명을 결정짓듯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인생의 화복을 결정짓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마 11:30)하셨습니다.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키는 것은 큰 짐이 아닙니다. 부담이나 시험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쉽고 가볍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능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백 살에 받은 그 아들이 점점 자라 온 마을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여러분은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고 그에게 아들을 풀어주고 하나님이 몸소 준비한 어린양으로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테스트에 통과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는 데서도 없게 하시고, 없는 데서도 있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는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순종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접할 수 없는 먼 곳 하늘에 있거나 바다 건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공부를 가장 많이 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누구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읽거나 들으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씌여진 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심을 구하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으면 성령께서 돌아보셔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 그 누구나가 쉽게 접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학 서적이나 철학 서적은 그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아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나 알 수 있고, 그 말씀을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찿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사 45:19).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만날 수 있고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늘 가까이에 두고 자신의 삶에 믿음을 가지고 적용할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우리의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됩니다(시 1: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시간과 육체와 물질을 봉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의 봉헌은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기도는 시간이 있을 때, 새벽에 일어나서, 직장에 출근해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잠자기 전 등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행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영적인 힘을 주는 에너지와 같습니다. 몸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한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것을 행하여 믿음과 행위가 조화를 이루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질의 봉헌을 드리는 것은 십일조 생활입니다. 십일조 봉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말씀을 지킬 때 핵심적이라 할 사항입니다. 십일조 생활을 성실히 하지 못하면 자신이 가진 재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던 마태복음의 그 청년과 같이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순종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고 따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 있게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하나님 말씀을 항상 숙고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바랍니다.
출처/전병금 목사 설교 중에서
세계적인 성악가인 파바로티는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과점을 하던 아버지는 생활이 윤택하지 못했지만 아들의 소질을 살려 주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입학할 때 그는 교육학에 관심이 많아 교육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할 때가 가까워 오자 진로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심 성악과 교육을 동시에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방으로 불러 방안의 의자를 멀리 밀어 놓고 말했습니다. “얘야,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의자 위에 네가 동시에 앉으려고 하면 너는 자그마한 바람에도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의자에 앉으려면 반드시 한 의자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반드시 네 스스로 해야 한다.” 결국 파바로티는 심사숙고 끝에 성악을 선택했습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전공도 선택이고 직업도 선택입니다. 더욱이 신앙도 선택입니다. 크리스챤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선택입니다. 주일만 지키는 정도의 신앙 생활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한 크리스챤이 될 것인가 이것도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전반에 걸쳐서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필요할 때만 적용할 것인가 이것도 분명히 선택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40년을 지나고 난 후,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마지막 세 번의 설교를 했는데 그 중에서 맨 마지막 설교에 해당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따른다고 설교했습니다. 축복과 저주는 인간의 운명에 의해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숙원 사업인 새 성전이 거의 완공이 되어 오는 9월 2일이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이전하게 될 것입니다. 화곡동 새 성전에서 우리 성도들이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하여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무한히 축복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모세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 언약을 다시 체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언약을 체결하는 것보다 엄숙하고 감격적인 예식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는 것보다 큰 영광은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악에 빠져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습니다(롬 1:21-25).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기쁨이요 목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축복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만 십자가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인생 최고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께 돌이켜 순종하면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10).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주시되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자녀, 그리고 사업에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 앞에 섰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동행 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의지해 백성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그를 모세와 버금가는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그를 작은 자에서 큰 자로 변화되게 만들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쫓으라”(수 3:3)고 명령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단강은 그때가 1년 중 가장 물이 많아 언덕까지 범람하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하여 죽을 것을 각오하고 물속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물속에 들어가려는 찰나 마치 홍해의 기적과도 같이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들 앞에도 험한 요단강의 물결이 세차게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요단강이 범람하듯이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우리를 좌절하게 만드는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궤을 메고 건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기적과도 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믿고 순종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건만 우리는 그렇게 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뒤로 물러서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재물 많은 청년이 되곤 합니다. 한 청년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예수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영생을 얻으려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거라.” 청년은 한편으로 자랑스러움을 느끼면서 겸손히 말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다 지켰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는지요?” 예수님은 이 청년을 사랑스럽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네가 진실로 온전하게 되려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이 청년의 태도를 취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입장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지 하지 않을지 ‘고민’하는 청년이 되곤 합니다. 그 청년 나름으로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말아야 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사무엘은 힘차게 말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삼상 3: 16)고 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무엇이든지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재물이 많은 청년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고, 사무엘은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고민거리에 불과하지만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또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 있지만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신 30:11). 하나님 말씀은 순종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밀어 붙이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일을 명령하시고 지키지 못하면 징계와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분은 인간이 말씀을 지켜 복을 받고 은혜로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침반이 배의 항해의 운명을 결정짓듯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인생의 화복을 결정짓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마 11:30)하셨습니다.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키는 것은 큰 짐이 아닙니다. 부담이나 시험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쉽고 가볍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능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백 살에 받은 그 아들이 점점 자라 온 마을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여러분은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고 그에게 아들을 풀어주고 하나님이 몸소 준비한 어린양으로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테스트에 통과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는 데서도 없게 하시고, 없는 데서도 있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는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순종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접할 수 없는 먼 곳 하늘에 있거나 바다 건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공부를 가장 많이 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누구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읽거나 들으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씌여진 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심을 구하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으면 성령께서 돌아보셔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 그 누구나가 쉽게 접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학 서적이나 철학 서적은 그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아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나 알 수 있고, 그 말씀을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찿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사 45:19).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만날 수 있고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늘 가까이에 두고 자신의 삶에 믿음을 가지고 적용할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우리의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됩니다(시 1: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시간과 육체와 물질을 봉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의 봉헌은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기도는 시간이 있을 때, 새벽에 일어나서, 직장에 출근해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잠자기 전 등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행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영적인 힘을 주는 에너지와 같습니다. 몸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한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것을 행하여 믿음과 행위가 조화를 이루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질의 봉헌을 드리는 것은 십일조 생활입니다. 십일조 봉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말씀을 지킬 때 핵심적이라 할 사항입니다. 십일조 생활을 성실히 하지 못하면 자신이 가진 재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던 마태복음의 그 청년과 같이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순종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고 따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 있게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하나님 말씀을 항상 숙고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바랍니다.
출처/전병금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