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해야 합니다  (신 5:16)  

신 27:16에 보면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효도하셔서 저주가 아니라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머니를 보세요!
그 분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녀들만이 있었습니다.
자녀의 아픔이 당신의 아픔이셨기에 밤잠을 주무시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자녀에게 변함이 없으셨던 어머니,
어버이날 그 흔 하디 흔한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다시고도 어찌할 바랄 몰라 하시면서 기뻐하시던 어머니,
자녀들 때문에 그 엄청난 수치를 당하시면서도...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그러면서도 어머니 최고의 소원은 그저 자식들이 출세하고 잘 되는 것이 제 1위라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어머니의 자녀 사랑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부모님을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효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효도 중에 가장 큰 효도는 무엇일까요?

잠 15:20을 보겠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제일 처음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왜요? 내가 구주 예수님에게 죄 사함을 받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사는 것이 죄 사함으로 인한 기쁨이 아닙니까?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색동저고리를 입고 춤을 주어야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기쁘게 살고 있는 모습 그 자체가 어버이에게는 가장 큰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퇴근 후에 피곤하죠?
그러나 방문 한번 빼꼬머니 열고서는 ‘다녀왔어요’그러고는 그게 답니다.
그러고는 제 방 문을 닫고서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그렇게 보내는 사람들!
한다는 게 텔레비전이나 진을 치고 보고
에이 늙으면 죽어야 돼!
무심결에 내 뱉어버리는 말 한마디,
에이! 자식은 나 밖에 없나? 귀찮아 죽겄네.
그저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묵자!’
하고는 꾸역, 꾸역 밥을 먹는 자녀들,
오늘 뭐 배웠니? 하면 할머니가 뭘 알아요?

여기에 기쁨이 있겠어요?
뭘하든지 간에 오늘 나 때문에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짜 어버이 주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레위기서 19:3을 보겠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부모를 경외하고 주님의 날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경외’는 두려워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부모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언제 부모님께서 겁을 주던가요?
아니잖아요.
부모님께서 맨 날 줘 박든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해야 합니까?

그건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공경이란? 쉽게 말해서 부모를 우숩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기독교가 이렇게 부모님을 공경하고, 기쁘시게 하는 종교인데도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이유는, 그 동안 부모님을 소중하게 여기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결혼식이라도 주일이 겹치면 우리는 포기합니다.
그 외에도 일반 사람들은 뭘 해도 꼭 주일날 합니다.
우리에게나 주일이지 그 사람들에게는 공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석을 못하죠. 그러면 오해 아닌 오해를 많이 받게 됩니다마는, 이럴수록 용서를 해보세요.

저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맞은 적이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라고요?
예 많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딱 두 번 맞았습니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심방 오셨는데 떡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고 울었기에 맞은 적이 있구요.
한번은 중학생 때 수학여생을 보내주지 않는다고 울면서 땅에 뒹굴었다가 종아리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제가 아버지에게는 못된 짓을 많이 저질렀고, 적게 맞은 어머니에게는 예쁜 짓을 많이 하였을까요?
아닙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용서해 주셨습니다.
장난치다가 옷이 찢어져도,
“어디 보자우, 낼래 거둬보라. 다친 데는 없나? 옷이 문제냐 네가 더 소중하디” 하시며 먼지를 털어 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얼굴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그 시절이 이제는 그립습니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용서가 넘치신 것 같아요.

사도바울이 친아들처럼 여겼던 디모데는 어려서 그의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에게 용서를 배웠는데, 바울에게 큰 위대한 지도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오를 수 있는 것도 다 용서해 주신 어머니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용서해 보세요. 절대로 싸움이 일어나지 아니 합니다.
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공경이 무엇입니까? 배로 ‘용서’입니다.
부모님에게 용서를 배우고, 또 내 자녀에게 용서를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창 9:23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매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늙으면 경제력이 없어지기에 자식에게 붙어서 살아야 합니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서 병원에도 자주 가야 합니다.
명예는 내 곁을 떠나 가버립니다.
몸도 균형이 잘 잡히지 아니합니다.
이게 늙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부모를 우숩게 보고, 마구 대하는 것입니다.
이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고로 자녀들은 부모의 나이 들어 노망기가 도졌다고 한탄하지 말고 힘이 되어 드려야 합니다.

젊었을 때에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이유는 우리가 늙어서도 그 자녀를 통해 수치를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든 화살과 같다” 한 것입니다.

부모의 수치를 드러내지 않고 덮어 주니 축복을 누리고, 부모의 수치를 드러내니 그 무서운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효도하는 자에게 복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아멘!

엡 6:2-3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할렐루야!

효도하시다가 이 땅에서 장수하고, 형통의 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박세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