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이 지킨 추수감사절   (신명기16:12-17)


  먼저 금년도 추수감사절을 거룩한 교회에서 보낼  수 있도록 은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추수감사절은 1620년  4월 5일 102명의 청교도(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자들)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나는데서부터  그 기원을 찾게  됩니다. 그들은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망망한 대해를 항해하다가  도중에 51명이 죽었고 장장 3,400마일(5440Km)을 항해하여 뉴잉글랜드 "프리마우스"라는  곳에 정박하게 되었습니다. 1년을 지내는  동안 맹수의 위협과 원주민들의 살상공격,  그리고 질병과 싸우고 굶주림과 싸우다가  남은 사람의 반수가 죽고 49명이 생존한  가운데 땅을 개간하여 옥수수를 심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울창한 숲속에  들어가 짐승들을 사냥하여 일용할 양식을 삼으며 보내었습니다. 그러다 1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그들은  처음으로 거둬들인 얼마 안되는 곡식을 모아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이 때가  늦은 가을이었습니다. 이 예배가 바로  첫번째 추수감사절예배였습니다. 그들의 추수감사절예배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가운데서 지극히 원시적인 여건과 가난한 사람들의  손길에 의하여 드려진 예배였습니다.

  그들은 때로 인디언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고 질병으로 쓰러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드린 추수감사절의 예배는 동료를 절반이나  잃어버린 예배로서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동료들의 묘지 곁에서 드린 예배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함께 쓰던 공동변소도 불이 나서  타 버린 상태에서 얼어붙은 땅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예배였던 것입니다.

  그렇치만 추수감사절예배는 미국 대륙을 발견한  1623년경 청교도인들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지만 1789년 11월 26일 워싱턴대통령에  의하여 미국 국경일로 채택되면서 추수감사절은 더욱 아름다운 믿음의 본이 되는 축제의 날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더 오랜 기원은 성경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기원이 바로 본문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이미 3대  절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23:14에  보면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첫째는   유월절(무교절)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신16:1-18) 이 절기는 출애굽하게  될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고 쓴 나물과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먹으며 출애굽을 준비하는 절기였습니다.        

  둘째는 오순절(맥추절)로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과  첫번째 수확하는 곡식인 보리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셋째는 초막절(수장절,칠칠절)로서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들과 포도와 무화과 추수를 감사하며 또 출애굽하여 가나안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지내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킬 때에는  광야로 나아가 초막을 짓거나 탠트를 치고 한 주 동안 그 안에서 조상들이  겪은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서 보내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세 절기의 특징과 공통점은 모두  감사하는 절기라는 사실입니다축복을 받았다는 생각이전에 우리는 나그네  인생들로 초막집에

거하며 사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같은 인생들을 하나님께서는 1년 동안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는 지금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내려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감사는 지나간 1년을 뒤돌아 보면서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을 깊게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년을 살아오는 동안 너무 바빠서 지난날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얻은 구원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생각해 보실 여유가 없었습니까? 지금  생각하면서 감사해 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삶의 고비를 넘겨왔는지 어떻게 오늘에까지 이르렀눗이 한 자리에 모여서 잔치로 연락하며 지냈습니다.(14)


  ①자신과 자녀와 함께 초막절을 지키며 함께 떡을 나누며 감사하라고 합니다. ②노비는 자기 재산이나 재물이 없는 불쌍한 자이니 함께 나누라.

  ③레위인은 자기기업이 없이 성전에서 봉사하니 함께 나누라.

  ④객은 자기집을 나와 여행하는 중에 있는 자이므로 함께 나누며 먹으라.

  ⑤과부는 남편이 없이 가정을 책임진 가장이요,소외된 자이므로 함께 돌보라.

  ⑥고아는 부모가 없이 자력으로 살아가는 자로서 위로와 소망을 주라.

  ⑦위와같은 사람들은 자기를 인정해 주고 대접받는데서 사랑을 느끼는 자이다.

  추수 때에 고아나  과부를 위하여 곡식을 남겨 두었는데 룻기에  나오는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룻이라는 여인이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는 생활의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때 그는 보아스의 밭에  나가 보리이1년 동안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는 절

기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길에 있어서 하나님이 과거에  베푸신 축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즐거워하는 날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15上) 우리를 택하신  곳은 하나님의 성전  이 성산순복음교회입니다. 이 곳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②추수감사절을 반드시 여호와  앞에서 지켜야 했습니다.(15中) 추수감사절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추수감사절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하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명령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잘하고 있는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면서 성도들에게는 술  담배를 끊으라고 설교한다면 권위없는 말이 될 뿐아니라 그래서도 안될 것입니다. ③추수감사절은 우리 자신의 모든 소산물에 복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 해야 합니다.(15中) 지나간 일년 동안  소산물에 복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또 복을 주실 것을 믿으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하는  가운 손을 보이지 말되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리라고 했습니다.(17) 하나

님이 복을 얼마나 주셨는가는 자신이 압니다. 자신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인정하고 느끼는만큼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회자가 물질드리는 설교를  제일로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물론 헌금설교는 하기 어려운 설교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헌금설교가 하기 어려운 설교라고 하여  목회자가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일 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없는 목자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고후9:6,10-11)

  다시 말하면 축복받는  비결을 성도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목회자로서 성도들의 축복을 가로막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축복받은대로 힘껏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힘껏 드린다는 말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범위 안에서 드린다는 뜻입니다. 더  쉬운 표현을 한다면 고구마를  수확한 농부 성도가  하나님의 교회에 고구마를 드리기를 원하여 지게에 짊어지고 교회에  나온다면 자기가 짊어지고 나올 수 있는 정도 가지고 나와야지 짊어질 교인들이 다 밖으로 나오자 예배당이 무너졌습니다.  이 때 많

은 사람들이 목사님과  악수를 하면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지만 예배당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도 은혜를 받았습니다."고 했습니다.  "아니 예배당이 무너졌는데도 은혜를  받았단 말이오"라고 어느 누군가 퉁명  스럽게 말하였습니다. "그래요,마치 예배당이  눈이 있는 것처럼 사람이 다 나온  것을 알고 무너져 사람이 한 명도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눈이 달려 있어서 사람이 다 나온  거둠을 축하하는 것은 더욱  무의미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뿐만 아니라  평상생활 속에서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