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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새 비전 (시편 126:1-6)
미국의 San Francisco 에는 Golden Gate Bridge 라고 하는 유명한 다리가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 나라에서 금으로 만든 문으로 들어가는 다리라고 하여 金門橋 라고 칭하는 다리인데, 제가 공부한 샌프란시스코 신학교가 그 금문교를 건너서 San Anselmo에 있었던 관계로 항상 그 다리를 건너가고 오면서 그 다리에 관한 역사를 생각해 보군 하였습니다.
이 금문교가 세워진 곳은 물이 깊고 상어 떼가 우굴 거리는 지역이라 지금부터 100 년전만 해도 거기에다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 젊은 설계사가 이곳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최신 공법을 설계했지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 지역의 유력한 인사였던 은행장 한 사람이 이 젊은이에게 돈을 대주어 다리를 놓게 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금문교는 영원히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의 공로를 기리는 비문이 있는데, 그 글이 “Men of Vision”입니다.
<꿈의 사람들>, <꿈을 가진 사람들>이란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다리 옆으로 넓은 공원이 있는데, 골든게이트 공원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수목이 울창하여 사슴은 물론 곰까지 출현한다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원 박물관에 가 보면 100 년전만 해도 모래언덕이었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곳을 개척한 사람들의 땀과 노력의 결정으로 사방공사를 하고 있는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공원의 아름다움을 보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했지만, 모래 사막에 나무 한 그루씩 심으며 미래를 심어갔던 것이었습니다. 역시 이것도 비전의 사람들의 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꿈을 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비전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라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참된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막연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를 이미 확신가운데 바라보면서 그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행동 있는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사람들은 미래를 기대하여 맞이합니다.
사람들은 오늘의 불안과 불행스러움을 미래로 떠 넘겨 버리려고 합니다.
“내일은 좀 낳아지겟지...”,
“내년에는 금년보다 행복해 지겠지...”
이렇게 막연히 자기의 소원과 기대를 미래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미래는 그렇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막연하게 맞이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는 비전(Vision)있어야 합니다. 그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사고의 능력 위에 확신이라는 믿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Assurance (보증) 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 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의(義)의 도래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아무리 사회가 죄악으로 혼란스러워도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낙심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인물들에게서 이미 입증된 사실들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이 신앙으로 절망 스러웠던 시대를 이기어 냈습니다.
다리오 왕의 통치기간 우상 앞에 절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그 시대를
이들은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속되는 인생의 내리막길에서도 그는 낙심하지 아니했습니다.
죄 없이 팔려 가는 노예 상에게, 그리고 먼 이국 땅 애굽에서
정처 없이 개인 몸종으로 지나면서도,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서도,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신앙으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이 실현되리라는 비전을 확신하였습니다.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곡식 단을 둘러 절하는 모습!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던 그 꿈!
바로 그 꿈을 바라보면서 극복해 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무겁고, 어두워도, 우리에게는 미래를 확신하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믿고 살아가는 신앙 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피 흘려 복음을 전한 한국을 버리지는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한국교회의 새벽 제단이 있는 한 공산화되지는 않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신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2. 그러기 위해서는 씨를 뿌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울며 씨를 뿌린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현실에 대한 고난의 도전을 극복해 나가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시간을 맞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에 떠밀려 가는 인생이 있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값을 지불하고 자기의 것으로 Purchase 구매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시간을 사 낸다는 것은 시간을 막연하게 흘러보내지 않고,
매일 매일의 시간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똑 같은 하루를 살면서 어떤 사람은 하루가 지겹도록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새 또 하루가 다 같다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만큼 시간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시간을 내 것으로 사낼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각고의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울면서도 씨를 뿌리는 노력이 있는 자에게 기쁨으로 수확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50년 전만 해도 우리 나라는 보릿고개란 말이 있었습니다.
봄을 맞이하여 농부는 파종을 해야 하는데, 가난한 농부에게는 씨앗을 남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씨앗까지 다 먹어 버리는 경우들이 허다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빗을 지게 되고, 그 결과 다시 가난은 반복되게 되었던 것이 우리네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굶어주는 한이 있어도 씨앗만은 남겨 두었다가 봄에 파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이 말씀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굶주린 창자를 움켜쥐는 고통 중에서도 씨앗을 지키고,
엄동설한의 겨울의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결국 기쁨의 수확을 거두어들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처절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다 보니, 너무나 어려움이 많은 세상입니다.
생명의 씨앗인 이 말씀을 세상의 팥죽과 바꾸어 먹어 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울면서도 주린 창자를 거머쥐고도 씨앗을 남겼다가 뿌리면, 그것은 기쁨의 수확으로 거두어지게 되듯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결국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드리게 될 것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씨를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막에 나무를 심고, 상어 떼가 우굴 거리는 바다 위에 다리를 놓겠다는 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80여명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끝내 이루어 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현실의 눈물을 흘리는 고통을 인내해 내야 합니다.
목전에 이익을 바라보면서 안일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미래는 없습니다.
미국의 얘기를 자주 했어 미안하지만, 미국이 오늘날 저렇게 번영한 나라가 되어 전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 풍요한 나라가 된 데는 우연히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뉴욕에는 리버사이드 교회(River Side Church)가 있습니다.
허드슨 강을 굽어보는 강 언덕에 자리잡은 이 교회는 지상 80층이 넘는 높이의 대형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세운 사람은 여러분이 잘 아는 <록펠러>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큰 교회를 지을 수 있었는가 하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그의 회계장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회계 장부의 첫 항목은 1 달러 수입에 이어서 50센트 십일조 헌금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의 회계 장부는 정확하게 십일조를 계산한 장부가 정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신학교를 세워 교회의 지도자들을 배출하게 하였습니다.
그 신학교는 오늘날 유명한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입니다.
그 신학교를 통하여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배출되었고,
유명한 목회자들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작은 욕심 때문에 밤새워 고민하고 염려하지 말고,
큰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3. 그러면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먼저 새해에는 하나님의 의를 먼저 생각하는 비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항상 우리들이 들은 말이지만, 하나님의 의가 생활의 중심으로 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생활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우리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갈등과 싸움과 미움과 테러와 분쟁이 있을뿐, 거기에는 평화는 없습니다.
우리의 사회가 지금 추구해야할 제일 급선무가 무엇입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누구를 위한 헌법의 개정입니까?
오늘 헌법이 잘 못되어 우리의 삶이 이렇게 갈등과 부패로 얼룩졌습니까?
아닙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의(義)가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성도들, 아니 교회의 직분을 맡은 우리들부터 실천해야 할 사항입니다.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말들이 많아져 갑니까?
어느 교회도 그렇게 편한 교회가 없어졌습니다.
모두가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싸우기만 하려는 현상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 상도교회는 얼마나 제 자신부터 이 말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교회들마다 목사와 장로님들의 사이가 그렇게 원만하지 못합니까?
모두가 자기를 죽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는데, 자기 부인이 되지 않은 상태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 없이 따르려고 하기에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요즘 한국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제 자신을 혹독하게 비판해 보군 합니다. 얼마나 초기의 순수했던 사명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느냐? 고.....
때때로 인간적으로 나만 손해인 것을 생각할 때 허무감 마져 느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순간 이것이 사람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생각은 육신의 생각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가 심판을 믿고, 내세를 믿는 신앙 인이라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그 말씀의 본 뜻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까지 두 가지 사실만은 하나님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평생의 목회에서 누굴 끝까지 미워하지는 아니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감정의 동물이기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순간순간 기분 나쁘다는 감정은 가졌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품고 미워하지는 아니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하나님의 성물에 대하여 부끄러운 손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아니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오늘까지 내 자신의 사례비에 대하여 한번도 내 스스로 먼저 말해 본적은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순진성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하는 동역 자들에게 대하여서도 말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면 마치 자기의 것을 빗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오해할까봐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 주례 값이 너무 비싸다고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세상에 주례 값이란 것이 어디 있을 수 있습니까?
자기들의 자녀들의 결혼을 기뻐하면서 감사하는 헌금은 있을 수 있지만, 마치 목사에게 관행으로 주어야 하는 것 같이 생각하는 그것이 잘못된 점이란 것입니다. 더더욱 그런 것을 가지고 입에 구설수에 올리는 사람들의 신앙 상태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지난 IMF 때 어느 제직이 목사님의 생활비도 스스로 반납하면 더욱 존경을 받을 수 있기에 말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나름대로 하나님과 약속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내 자신이 존경을 받을 수 있을 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아니해야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였다고 내가 하나님 앞에 내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게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묵은해의 모든 찌꺼기들을 다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씨앗을 눈물을 흘리면서 뿌리려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수확으로 안겨 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새로운 은총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