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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4:16-21
홍근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이 설교문은 홍 목사가 강남향린교회와 함께 남한산성에서 가졌던 3.1절 산상예배에서 행한 설교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3.1절 제 81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이 어디 있으며 민족 문제와 정치 문제 등에 관련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문제를 조명 하기 위해 81년 전에 조선 기독교인들이 민족해방 문제에 대하여 어떤 관심을 가졌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시는 물론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였고 교리나 신학이 초보 단계에 있었고 조선 사회에서 소수자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3.1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한 민족의 지도자 33인 중에 기독교인 수가 16명 정도였고 이 중에는 유명한 목사님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기독교인이 그리 많지 않은 점에서 보면 상당히 높은 숫자입니다. 우리 한국의 인구는 1천 6백만 명 정도였고, 이 중 기독교인들은 불과 20만 명 정도로 한국인구의 약 1.3 내지 1.5% 정도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민족지도자들 중에 기독교인이 많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이 사실은 기독교인 선각자들, 지도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현상이고 그 이면을 좀 생각해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지적할 것은 소위 민족지도자라는 33인들이 대부분이 그러했지만, 이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은 민족독립 만세 운동에 대하여 그리 심각한 관심을 가지지는 않은 듯 합니다. 이들 중 어떤 목사는 집회를 인도하러 지방에 가서 서울에 부재중이었고 서울에 있는 사람들도 다른 지도자와 같이 태화관에 모여서 일본 경찰을 불러 그 운동을 통고하였을 정도이지 실제로 파고다 공원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당시 목회자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목회자들 가운데 외국 선교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연히 자국 정부의 정책과 지시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조선보다는 일본 편을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듯이 1905년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소위 '테프트-카츠라 협약'이란 것이 체결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간단히 한 마디로 말하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각각 식민지로 삼는다는 것을 양해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해외에 있는 관리들은 물론 선교사들에게 알리고 이에 순응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당시 조선에 선교사로 나와 일하고 있던 미국 목사들은 자국의 정책과 훈령에 따라서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일본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일선 교회를 목회하던 그들 선교사들은 사실 일본의 조선식민지 정책을 지지하고 있었고 독립운동을 하지 말도록 설교했습니다.
그래서겠지만, 교회 내에 모여든 이들이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서 일하던 피끓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심지어 어떤 목사는 이들 젊은이들이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러한 일에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독교적이 아니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로가 말했던 대로 그러한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은 '우리가 전해준 복음과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까지 비난했습니다. 어떤 미국 목사는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전 교인들이 예배 후에 집단적으로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한 일 때문에 일본인 경찰서에 가서 사과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달랐습니다. 우선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 주동세력은 약 30% 이상이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체포. 투옥된 사람들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 그렇게 추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는 더 높을 수 있습니다. 어쨌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교회뿐이었다고 할 때 전국적인 만세운동이었던 3.1 기미년 독립만세 운동에 기독교인들이 전국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지 않았다면 이 운동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기독교인들은 민족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분은 당시 3.1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국민들의 태도를 선도와 참여, 지지와 비지지 등 네 가지 계층으로 나누고 이 중에 기독교인들은 주로 선도적인 계층에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교회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독립 운동 같은 정치-민족운동을 금지 내지는 하지 말도록 권유한 그런 상황에서 한국기독교인들이 민족 독립운동에 선도적으로 나섰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이한 일입니다. 또 당시에는 해방신학은 물론 민중신학이란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정치신학이나 혁명의 신학이란 말은 더더욱 들어 본 일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이 그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민족적인 기독교, 정치적인 기독교를 믿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고 또 기이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서 당시 조선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민족-정치 운동에 참여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히 제기됩니다. 이에 대하여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는 "민족이란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하느님이 인생을 내시면서 같은 언어와 문화, 전통과 혈연 속에서 살도록 한 은총이다. 그러므로 민족을 보존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와 섭리의 질서에 순응. 동참하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제대로 된 신학이라는 것이 당시에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더욱 이들 조선 기독교인들의 민족해방운동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한국에 선교사로 온 대부분의 미국 선교사들이 평양신학교의 교수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선교에 대한 열성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으나 학문적인 능력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이 신학교 교수가 될 자격들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당시 신학교 교수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신학교육이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도 당시 말은 신학교였지만, 실상은 고등성경학교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정치신학도 없었지만, 신학교에서도 비정치적인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던 때였고 일선 교회의 목사들이 비정치적인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당시 조선 기독교인들의 정치-민족해방운동에의 참여는 정말 불가사이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관헌에서 불온 문서로 규정, 금서목록에 넣은 것 중에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와 신약성서의 묵시록 책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조선기독교인들은 목회자들의 가르침과 설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서를 정치적으로 읽어 특히 출애굽서와 묵시록서가 민족해방의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성서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당국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책들을 금서목록에 넣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요즘 해방신학, 민중신학, 정치신학, 혁명신학 등이 외쳐지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또 실제로 오늘의 한국 사회가 기독교인들의 책임 있는 정치참여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와 이기심, 사적이 된 기독교 신앙, 기복신앙, 내세주의, 등 비정치적인 복음이라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우 대조적인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시 조선 기독교인들이 옳았는가, 오늘날의 한국기독교인들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3.1 정신이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 우리가 함께 드린 공동기도문에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마음이 되었으며, 양반과 평민의 구분 없이 모두 어우러져 만세를 외쳤던 그 훌륭한 삼일정신...." 우리는 소위 좌우합작이란 말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민족의 해방과 독립이란 공통된 목적을 위해서라면 좌우 이념의 불일치도, 종교와 지역과 노선 등의 차이도 접어두고 하나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과거 삼일독립운동 때 가능했던 것이 지금 민족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엔시시가 중심이 되어 3.1 정신을 오늘에 살려 기리기 위해서 겨레 손잡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대회는 기독교 외에도 6개 종교와 함께 시민단체, 학생 등이 주축이 되어 벌이는 화해와 평화를 향한 온 겨레 손잡기 운동입니다. 100여만 정도의 사람들이 범국민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간, 동서간, 보수-진보간, 세대. 계층간 등의 차이를 뛰어 넘고 대화합을 이루어낸다는 취지로 이런 행사가 계획,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삼일독립운동 정신을 오늘 우리 민족의 상황에 그대로 계승하자는 뜻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기총이란 보수적인 교단의 연합체에서는 3.1절을 맞아 특별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그 메시지는 "81년 전 망국의 치욕 속에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며 외쳤던 만세소리는 방방곡곡에 우리 민족의 존재를 알렸는데 이제는 그때의 자주독립 정신으로 국민화합과 남북통일, 그리고 세계평화를 이루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81년 전의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의 훌륭한 모범을 본 받을 때입니다.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하여 분단된 채 반세기가 넘도록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그나마도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에서 또 지역차이, 인맥차이, 노선차이, 종교차이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갈등한 데서야 어디 말이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총선연대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공천하지 말아달라고 했으나 여당을 포함하여 중요한 정당들이 시민들의 요청을 비웃듯이 대부분을 공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정치불신의 원인이 되는 이러한 불행한 현실을 보면서 민족을 염려하고 신앙을 관심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1정신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3.1운동을 선도했던 당시 조선기독교인들의 발자취를 뒤따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