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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5:11-20
본문은 유대교의 잘못된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이 소개되고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두 가지 율법이 있는데, 하나는 '모세의 기록된 율법'이고 다른 하나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유전이다. 유전은 모세의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아주 자세한 시행세칙들로 ‘장로들의 유전’이라 불리운다. '장로들의 유전'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식사를 할 때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다. 이것은 성막에 들어가기 전 물두멍에 손 씻는 규레가 세월 속에서 보편화된 중요한 예식이 되었다. 물이 부족한 유대땅에서 대부분의 서민 유대인들은 손을 씻는 것이 불가능했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손을 씻지 않는 서민들을 죄인들이라고 배척한 것이다. 그러나 손을 씻지 않는다 해서 영혼이 부정해지는 신앙의 문제는 아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평소대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강하게 항의하게 된 것이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프로 크루스 테스'라는 악당은 자기 침대에 행인을 눕혀 작으면 늘려죽이고 크면 잘라서 죽였다. 여주관적인 잣대에 맞추어 재단하려는 이런 경향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한다. 신앙에도 이런 것이 있다. 나의 생각과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강대상에서 신을 벗는 것이나 담배를 피는 문제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을지 말지이 대한 논쟁이 있었다. 먹는 경우 먹지 말아야한다고 하는 경우 둘 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먹지 않는 경우가 순수한 믿음이라고 한다면 먹어도 된다는 경우는 성숙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한다. 누구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냐, 아니면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한 것이냐를 분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4-6절에서 당시 장로들의 유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장로들의 유전에는 거기에 하나를 덧붙였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양할 재물이 있는데, 부모님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헌금을 했다면 부모님에게는 재물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7:11절에서는 그것을 가리켜서 "고르반"이라고 했다. 이것이 얼마나 교활한 것인지 모른다. 겉으로 보면 굉장히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핑계이며 이것은 믿음을 배반한 것이다.(딤전5:8)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하나를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그 어떤 이유로도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리화 시킬 수 없는데
유대인들은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악용해 무서운 죄를 저질렀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직선적으로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책망하셨다. 우리는 이런 잘못을 저지를 때가 없는가?
교회를 섬기실 때, 또 신앙생활하시면서 결코 제도와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지 마라. 왜 신앙생활 하는데도 기쁨이 없고, 왜 자유가 없는가? 전통과 습관의 노예가 되기 때문은 아닌가? 형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형식을 통해서 본질이 잘 드러날 수만 있다면 대단히 좋은 것이다. 그러나 형식에 치우쳐서 본질이 훼손된다면 잘못된 형식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을 향하여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혁명적 선언이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야 소화되고 찌꺼기가 출구로 배설되면 그만이다. 더러울 게 없다. 그러나 마음속에 고여 있는 것들은 썩은 것들이다. 사탄이 뿌려놓은 악한 것들은 그냥 마음속에서 썩어서 악취가 진동한다.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속에 더럽고 악하고 추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진정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인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하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신다고 볼 수 없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고 하셨다.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갈5:22-23)
이제 말씀을 맺자
신앙생활에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있다. 본질적인 것이라 함은 성경 말씀이고 비본질적인 것이라 함은 성경의 이해를 돕는 모든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절대로 더하거나 뺄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은 그 시대, 환경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비본질적인 것으로 본질적인 것을 버릴 때에 예수님은 책망하신다.
출처/이상민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4)
본문은 유대교의 잘못된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이 소개되고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두 가지 율법이 있는데, 하나는 '모세의 기록된 율법'이고 다른 하나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유전이다. 유전은 모세의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아주 자세한 시행세칙들로 ‘장로들의 유전’이라 불리운다. '장로들의 유전'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식사를 할 때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다. 이것은 성막에 들어가기 전 물두멍에 손 씻는 규레가 세월 속에서 보편화된 중요한 예식이 되었다. 물이 부족한 유대땅에서 대부분의 서민 유대인들은 손을 씻는 것이 불가능했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손을 씻지 않는 서민들을 죄인들이라고 배척한 것이다. 그러나 손을 씻지 않는다 해서 영혼이 부정해지는 신앙의 문제는 아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평소대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강하게 항의하게 된 것이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프로 크루스 테스'라는 악당은 자기 침대에 행인을 눕혀 작으면 늘려죽이고 크면 잘라서 죽였다. 여주관적인 잣대에 맞추어 재단하려는 이런 경향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한다. 신앙에도 이런 것이 있다. 나의 생각과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강대상에서 신을 벗는 것이나 담배를 피는 문제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을지 말지이 대한 논쟁이 있었다. 먹는 경우 먹지 말아야한다고 하는 경우 둘 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먹지 않는 경우가 순수한 믿음이라고 한다면 먹어도 된다는 경우는 성숙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한다. 누구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냐, 아니면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한 것이냐를 분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4-6절에서 당시 장로들의 유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책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장로들의 유전에는 거기에 하나를 덧붙였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양할 재물이 있는데, 부모님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헌금을 했다면 부모님에게는 재물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7:11절에서는 그것을 가리켜서 "고르반"이라고 했다. 이것이 얼마나 교활한 것인지 모른다. 겉으로 보면 굉장히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핑계이며 이것은 믿음을 배반한 것이다.(딤전5:8)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하나를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그 어떤 이유로도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리화 시킬 수 없는데
유대인들은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악용해 무서운 죄를 저질렀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직선적으로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책망하셨다. 우리는 이런 잘못을 저지를 때가 없는가?
교회를 섬기실 때, 또 신앙생활하시면서 결코 제도와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지 마라. 왜 신앙생활 하는데도 기쁨이 없고, 왜 자유가 없는가? 전통과 습관의 노예가 되기 때문은 아닌가? 형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형식을 통해서 본질이 잘 드러날 수만 있다면 대단히 좋은 것이다. 그러나 형식에 치우쳐서 본질이 훼손된다면 잘못된 형식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을 향하여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혁명적 선언이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야 소화되고 찌꺼기가 출구로 배설되면 그만이다. 더러울 게 없다. 그러나 마음속에 고여 있는 것들은 썩은 것들이다. 사탄이 뿌려놓은 악한 것들은 그냥 마음속에서 썩어서 악취가 진동한다.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속에 더럽고 악하고 추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진정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인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하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신다고 볼 수 없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고 하셨다.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갈5:22-23)
이제 말씀을 맺자
신앙생활에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있다. 본질적인 것이라 함은 성경 말씀이고 비본질적인 것이라 함은 성경의 이해를 돕는 모든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절대로 더하거나 뺄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은 그 시대, 환경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비본질적인 것으로 본질적인 것을 버릴 때에 예수님은 책망하신다.
출처/이상민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