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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훈목사 (하늘가족교회, 교회학교성장연구소 소장)
본론은 하나님 말씀 듣기가 되어야
본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단계입니다. 예화, 간증을 듣는 시간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린이들의 마음에 고이고이 쌓이는 영적 영양소입니다. 어린이들의 죽은 영혼을 살리는 힘입니다. 기도가 영혼의 호흡이라면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양식을 잘 먹여야 영혼의 쑥쑥 자라게 됩니다.
사실, 한국교회 교회학교의 위기는 설교의 위기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설교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누가 어린이설교를 생각 있게 간절히 준비하여 선포할 수 있습니까?
어떤 교회는 순번제로 이번 주는 담임목사님, 둘째 주는 김 장로님 셋째 주는 이 장로님 넷째 주는 김 부장님 이렇게 매주 각각 다른 설교가가 각각 다른 모양으로 어린이에게 설교를 합니다. 참 어려운 현실 중 하나입니다.
교회학교 어린이 설교 전문가의 시대가 오도록 다같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본론을 전개하는 비밀을 터득해 봅시다.
1) 성경에 기록된 주인공의 이름을 미리 밝히지 말라
본론 서두에서 성경의 주인공의 이름을 말해 버리면 어린이들은 또 들은 이야기로 식상해 버립니다. "요셉이란 소년이 있었어요"라면 어린이들은 "어-또 꿈쟁이 요셉이야기구나"하고 맘을 집중하지 않습니다.
"고기잡이 베드로가 있었어요"하면 다음 얘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고 "으- 수제자 베드로 얘기구나, 뻔하지 뭐" 하며 딴전을 피우게 됩니다.
TV연속극도 너무 실감나게 하니까 시청자들이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하는데 진자를 진짜로 얘기 못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안되겠지요? 예를 들어 설교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 알아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윙- ! 모래
무서운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날씨는 얼마나 무더운지 이 아저씨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먼지 바람에 얼굴은 꼬기꼬기! 더럽기 한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아저씨 앞을 지나가면서 ''쯔쯔'' 혀를 차며 동전을 던져 주었습니다.
아! 그래요 자세히 보니까 이 아저씨는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너무 불쌍해요.
이 아저씨의 재산은 두 가지였지요. 동냥할 때 받는 깡통하나 밥그릇, 겸용이지요.
식사는 그 깡통에 받아먹고 동냥할 때 동전도 그 깡통으로 받으니까요.
아마 재산 1호는 될 거예요.
그 다음엔 ''아휴 냄새, 이 무슨 냄새야''
콜콜 냄새나는 두꺼운 겉옷 하나가 있었어요. 맞아요. 저녁에 잠잘 대 덮고 자는 이불인데 이것도 겸용이에요. 추울 땐 겉옷, 잠잘 땐 이불!
그런데 ''아휴 냄새, 냄새가 너무 많이 나요''
그래요 이 아저씨는 아무 낙도 없이 이렇게 사막 한 가운데서 초라하게 거지차림으로 불쌍하게 살고 있었어요.
다른 이유가 없어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이유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이 거지 아저씨의 귀에 굉장한 소식이 들려 왔어요.
귀가 번쩍 뜨이는 기가 막힌 소리를 들었지 뭐예요.
하마터면 너무 놀래서 깡통을 떨어뜨릴 뻔했어요. 재산 1호를 말예요.
아 글쎄 그 이야기는 엄청난 얘기였는데 어떤 어른이 저 옆 동네에 살고 계시는데 사람들이 그 어른을 만나면 병도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사람도 살아났데요. 그런데 더 놀라운 소식은 바로 그 어른이 어쩌면 우리 마을에도 오실 지 모른다는 오 놀라운 정보였어요.
인터넷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런 기가 막힌 정보는 없지요.
하루 이틀 한달, 두 달 아저씨의 마음속 깊은 곳에 믿음이 생겨났어요. 이 아저씨는 얼른 그 믿음을 꼭 붙들었어요.
"나도 그 어른을 만나면 눈을 뜰꺼야!"
난 꼭 그 어른을 만날 거야 죽어 만나야 돼!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먼 대신 귀가 밝은 이 아저씨의 귀에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아저씨는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어요. 아, 드디어 오늘이구나 그 어른이 우리 마을에 오시나 보다.
마침 누군가 앞을 지나가기에 바지를 사정없이 붙잡고 물었습니다.
"저- 저 아저씨 저기 저곳에 예, 예수님이 오시고 계신가요"
바지가 붙들린 아저씨는 거칠게 발을 뻗어 눈먼 아저씨를 걷어차며 말했어요.
"그래 이 거지야 예수님이 지금 저기 오시고 있어 그런데 더러운 손으로 바지를 잡고 난리야 난리가 넌 만나도 소용없어 거지 주제에 감히 예수님을 만난다고!"
얼마나 세게 발로 거지 아저씨를 찾는지 깡통이 다 일그러졌어요. 가슴도 몹시 아파 왔어요.
그러나 지금 우물쭈물 딴전 피울 시간이 없어요. 거지는 귀를 기울였어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 까짓 아픔쯤이야 아무 문제가 아니었어요.
점점 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드디어 자기 앞에 가까이 들려 왔어요. 때를 놓칠 수 있겠어요.
네 없지요. 아저씨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소리 쳤어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많은 사람들은 꾸짖었어요.
"야 조용히 못해"
바디매오는 더욱 심히 소리 질렀습니다.
(드디어 이즈음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밝힌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이미 모든 어린이들이 말씀에 빨려 들러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어 그거 전에 듣던 내용 아니야''하고 마음을 다른 곳에 넘기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말씀에 집중하게 된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10:48) 예수님은 애절하게 부르짖는 소경 바디매오의 기도에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멈춰 섰습니다.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저를 부르라"(막 10:49)
제자들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거지 바디매오는 일어났습니다. 깡통과 겉옷을 벗어 던지고 뛰어 갔습니다.
예수님이 물으셨어요.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막 10:51)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막 10:51)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매오가 눈을 떴어요.
"아, 보인다 보여 야, 기적이야 기적, 예수님 감사합니다."
어떻습니까? 독자 여러분
스펙터클하고 리얼리티하지 않습니까?
사실을 사실 그대로 얘기하는데 왜 별 감동 없이 전합니까?
설교자 자신이 감동 있게 성경의 인물에 쑥 빠져서 설교한다면 얼마든지 어린이들은 1시간, 2시간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위 사건은 주인공은 예수님과 바디매오였지요.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얼마나 강하게 어린이를 마음속에 예수님이 바로 새겨 지겠습니까. 이제 조금 어린이 설교에 감이 잡히시지요?
* 삭개오도 마찬가지입니다.(눅19-9)
삭개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동네 아저씨 한 분이 있었어요.
뽕나무- 넓적한 나뭇잎으로 사람을 가릴 수 있는 나무에 얼른 올라갔지요.
* 베드로는 이렇게 하십시오.
베드로-저 바닷가에 고기잡이 털보아저씨가 있었어요.
깊은 곳- 바다 한 곳
* 열 두 해를 혈우병으로 앓던 여인(마9:20)
혈우증을 앓던 여인- 무서운 병에 걸린 아줌마가 있었어요.
혈우병 - 이 병은 몸에서 피가 자구 나는 병이에요.
2) 사건을 다루는 것처럼 설교하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관심 있는 일 또는 자기가 전혀 모르던 새로운 사실에 귀를 기울이기 좋아합니다. 남에게 들은 특별한 사건, TV뉴스에 보도된 별난 사건, 알고 싶던 사건들은 한 번 들으면 잘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별로 머리가 좋지 못해도 말이에요.
예를 들면, 옆집 친구가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가 난 이야기를 들으면 단 한번밖에 듣지 않았는데도 머리가 의심스러운 정도로 잘 기억되어 횡단보도만 봐도 교통사고 난 친구 생각이
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그 이야기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건의 홍수 속에 어린이들은 성경에 나타난 사건, 예수 믿고 변화된 사건을 많이 들어야 제대로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사건은 우선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얘기도 아닙니다. 그리고 사건은 갑작스런 일이며,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라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사실 사건 중에 사건은 죄인인 인간이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아 구원받고 죄사함 받아 천국 간다는 일처럼 위대한 사건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늘 보좌를 다 버리고 이 땅에 십자가의 죽음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처럼 기적적인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그릇된 열정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한 바울 이야기처럼 위대한 사건이 또 있습니까
또한 우리 주변에는 사건적인 이야기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이 사건들을 교과서 읽듯이 설교하지 말고 이야기를 하듯 설교 할 때 어린이들 마음에 영적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럼 사건으로 다루는 이야기식 설교를 자세히 살펴봅시다.
3) 사건, 장소, 주인공을 미리 언급하지 말라.
이 말은 앞서 설명한 설교 한 토막에서 충분한 이해를 얻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거기에 첨가된 사항은 사건과 장소까지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출발이 어린이들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얼마 전 ○○교회에서 어린이들에게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천국 갈 수 있는 어린이는 손들어 봐요"
어린이들은 모두 손을 높이 들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목사님 코앞에 한 여자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을 들지 못하고 있었어요.
"다 손 내리세요, 친구는 왜 천국을 못 가지?
예수님을 믿지 않나요?"
여자 아이였어요. 목사님은 계속 물었어요. "어제 다 회개했는데 수아는 숨겨둔 죄가 있나 보군요"(네, 저는 친구가 미워요)
하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것이었어요. 나중에 예배가 끝난 후 조용히 물어 봤어요.
"수아야 왜 친구가 밉지?"
(네, 친구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수아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니"
(친구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거든요. 괜히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난 참 나쁜 아이예요.)
수아는 또 울기 시작했어요.
로마 병정들은 어느 한 제자의 고자질로 예수님을 묶기 시작했어요.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에요.
제자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번개처럼 도망가 버리고 말았지요. 사람들은 가냘픈 예수님을 이리 끌고 다니고 저리 끌고 다니며 재판을 하고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채찍으로 마구 예수님을 때렸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이 채찍을 맞았습니다. 나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십자가 형벌은 총이나 독약처럼 그 자리에서 금방 주지도 못하고 온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아주 몸서리치게 무서운 형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거기 달려 계신 것입니다.
게다가 구경하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으며 마구 조롱합니다.
"성전은 헐고 사흘만에 지을 수 있으며 왜 자기는 구원을 못하는 거야? 해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막 15:15-47) 예수님은 그 목욕을 다 당했어요.
심지어 같이 옆에 매달린 강도조차도 비웃습니다.
오후가 되자 예수님은 그 모욕, 멸시, 조롱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너무너무 고통스러우셨던 거예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드리나이다."
큰 소리를 지르시고 그 자리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목 박힐 이유가 하나도 없으셨고 또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지만 오직 한가지 이유 여러분과 나의 죄, 수아의 죄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건져내시기 위해 그 괴로움을 다 겪으셨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원래 지성소에는 일년에 한 번식 그것도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성소는 온 백성들의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기 위해 동물의 피를 들고 들어가는 곳이었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이제 누구든지 하나님과 직접 기도 할 수 있고 기도할 때 모든 죄를 예수님의 피를 대가로 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옛날에는 대제사장의 중보기도로 죄사함 받았으나 지금은 누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수아는 목사님과 기도했어요.
친구를 미워한 죄, 아빠가 죽었으면 하는 죄를 예수님의 피로 씻었어요.
4) 예화는 설교자 자신이 완전히 소화한 다음에 설교하라.
설교예화는 설교내용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예를 들어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설교를 하시면서 많은 비유와 시청각적인 예증들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한편의 설교에서 예화는 1-2개가 적당합니다. 너무 많은 예화는 오히려 어린이들의 마음을 혼돈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화는 주로 독서, 전파매체를 통한 뉴스나 드라마, 신문, 생활 속에서의 실제로 체험한 이야기가 사용됩니다. 좋은 예화를 얻기 위하여 설교자는 항상 예민한 눈, 귀 그리고 부지런히 메모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내용이 다 예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설교의 주제와 연결되어야 좋은 예화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예화 설정의 원리를 안내합니다.
① 주제와 분명한 관계가 있는 예화
②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연령과 맞는 예화
③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예화
④ 긴 것보다 짧은 예화
⑤ 희망적이고 비전적인 예화
5) 시청각을 적절하게 사용하라.
시청각 자료는 어린이들이 설교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만듭니다. 강사마다 각별한 손재주와 영감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보다 쉽게 감동 있게 마음속 깊이 새겨 지도록 만들어 어린 영혼을 구원하고 양육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A. 다양한 자료
융판자료 .부직포 .그림 .인형
O.H.P .칠판사용 .방송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
B. 시각자료는 크게 만드세요.
큰 믿음을 가지고 일천 여명의 어린이들이 볼 수 있도록 크게 만드십시오.
C. 본인의 몸에 부착할 시청각을 개발하세요.
면류관 같은 경우 강사가 직접 머리에 써 가며 설교하면 더욱 생동감이 넘칩니다.
마음을 상징하는 하트(♡)도 가슴 앞에 붙일 수 있습니다.
D. 입체감 잇는 자료를 만들어 보세요.
시청각 자료의 눈이 껌뻑인다거나 입술이 움직이는 것, 손을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별
동작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의 지대한 관심을 유발합니다.
6) 결론은 감동적으로 어린이 스스로 느끼게
클라이막스가 없는 설교는 감동이 따르지 않고 결심을 촉구하게 할 수 없습니다. 절정은 언덕을 올라가듯 음성과 몸짓과 모든 준비된 것이 불사르듯 공개되어 어린이들의 마음이 불타올라야 합니다.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곧 결정력이 부족하면 승리할 수 없듯이 다양한 이야기 속에 결론에 다다르는 결정적인 언어를 주님께 구하여 받아야 됩니다.
일반적으로 초보(?) 설교자는 주입식 내지 일방통행 식으로 몰아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주입식과 일방통행 식은 그때뿐입니다. 어린이들의 삶 속에 오래도록 간직되고 품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채득 식이라는 겁니다. 깨달음 식이어야 삶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 본론에서 곧바로 초청의 단계를 들어가는 경우
앞장에 설교한 "수아와 예수님의 십자가"설교는 곧 바로 회개의 초청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입니다.
"자!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두 손을 간절하게 모으겠습니다.
(이때 반주자는 144장 찬송가 ‘예수 나를 위하여’를 조용히 연주한다.)
지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통을 어린이들은 느낄 수 있습니까?
내가 손으로 못된 짓 했기에 양손에 큰 대못이 박혔습니다.
내가 발로 지은 죄 때문에 양발에 큰 대못이 박혔습니다.
작은 가시에 찔려도 무척 아픈데 예수님은 한두 군데도 아닌 다섯 군데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뿐인가요 머리엔 가시면류관을 푹 눌러 씌웠어요.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파요.
이 모두가 누구 때문인가요.
우리의 죄 때문이에요.
다같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큰 소리로 외쳐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 얼마나 아프셨어요. 저의 죄 때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다같이 주여! 크게 외치며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왜 그렇게 내 맘대로 살았나요?
(구체적인 어린이들의 죄를 지적한다.)
무슨 고집이 그렇게 세어요.
하란 공부는 안하고 웬 게임은 그렇게 열심이며 성경은 한 장도 안 읽으며 만화책에 빠져 살았나요. 하나님께 드릴 헌금으로 딴 짓을 했나요.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찬양- 예수 나를 위하여)
마음에 감춰 놓은 나만이 알고 있는 죄가 있나요.
오늘 다 씻어 버리세요. 예수님께 모두 털어놓으세요.
다시 한번 큰소리로 주여 외치며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2) 찬양으로 메시지를 마음에 바로 새기고 기도의 문을 열게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느껴 보았나요? (반주가 연주시작)
다함께'' 좋으신 하나님''을 부르며 그분의 사랑을 느껴보세요. 떠들 시간이 없어요. 눈뜰 시간도 없어요. 지금 간절히 찬송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십시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한없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사랑해요 고백해 봅시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의 하나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의 하나님"
믿음을 고백해 보세요.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나의 하나님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나의 하나님"
그분께 경배하셔요.
"경배해요 경배해요 경배해요 나의 하나님 경배해요 경배해요 경배해요 나의 하나님"
맘껏 찬양 드리세요.
"찬양해요 찬양해요 찬양해요 나의 하나님 찬양해요 찬양해요 찬양해요 나의 하나님"
-찬송의 가사를 현장에 맞게 개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어린이부흥사의 특별한 지혜중 하나입니다-
(3) 기도 제목으로 결론을 터득하게 하는 경우
분명한 기도 제목이 어린이들에게 기도의 입을 열어 줍니다.
계절과 옷이 서로 맞아야 어울립니다. 좋은 기도 제목과 기도의 문이 열리는 일은 깊은 상관 관계가 있지요. 예전에 우린 너무 막연하게 기도를 몰아부쳤(?)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기도 제목을 제시했을 때 쉽게 기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기도 제목을 명확하게 제시했을 때 기도를 마음속 깊이 품게 되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어린이들에게 매우 긴요한 기도제목을 던져 주면 이내 어린이들은 반응하게 됩니다.
설교와 기도 후 마무리
1) 인사와 격려로 나누는 은혜 그리고 마무리
열정적인 기도가 끝나면 의외로 어린이들은 어색해 합니다.
흘렸던 눈물을 훔치고 매우 부끄러워합니다. 이때 강사는 주의해야 합니다.
우선, 잘 했다고, 새 사람이 되어 축하한다고, 이제 모든 죄를 씻어 깨끗하게 되었다고 서로 격려하며 인사하도록 해 보세요. 훨씬 분위기가 자연스러워 집니다.
▶ 인사의 예
a) 너 예수님 만났구나 축하해
b) 너 은혜 많이 받았구나 축하해
c) 알고 보니 너 참 좋은 애구나
d) 너 기도 참 잘한다.
e) 넌 참 좋겠다.
f) 넌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g) 너도 이제 새사람 됐구나
h) 이제 우리 열심히 전도하자
i) 이제 우리 열심히 기도하자.
j) 이제 우리 멋지게 믿어보자 등등
2) 간증을 통해 확신과 도전을 주고 마무리
어린이들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그냥 두면 다음 시간에 지장이 초래됩니다. ''괜히 울었어 창피하게 나만 울었잖아 다음 시간엔 울지 말아야지'' 애들이기 때문에 방해받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아예 노출시켜 버리면 담대해 집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은혜 받지 못한 어린이들이 괜히 부끄럽고 ''다음 시간엔 나도 꼭 은혜 받아야지'' 하는 도전을 줄 수 있습니다.
간증할 어린이의 선택은 기도 중에 자연스럽게 발견됩니다. 쑥스러워 하지말고 매우 큰일을 했고, 의젓한 일을 했고, 자랑스러운 일을 한 것을 확인해 주고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자부심을 갖도록 은혜롭게 질문하고 답하게 합니다.
(간증의 예)
저 쪽에 기도 잘한 친구 나와 보세요.
네, 참 얼마나 기도를 잘하는지 너무 기특해요.
이름이 뭐예요(○○○)
아 그렇군요, 오늘 은혜 많이 받았지요? (네!)
아직도 눈물이 글썽글썽한데,
왜 그렇게 울면서 기도했는지 말해볼 수 있겠어요?
(-자연스럽게 스스로 얘기한다.-)
이젠 정말 예수님만 따르겠네요.
우리 모두 이 친구를 격려해 주는 격려의 박수 쳐줄래요. (박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