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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신목사 (영락교회)
여성과 남성은 여러 가지로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뭐가 좋다, 뭐가 나쁘다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각각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남성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특성들을 가지고 있구요, 여성들은 정서가 풍부하고 감성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물건을 하나 사러가도 물건을 사겠다 하고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정한대로 가서 자기가 원하는 목표대로 물건을 사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뭐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구요, 목표 세운 물건만 사 가지고 오면 그만이지요. 그런데 여성들은 물건을 산다는 것이, 물론 무엇을 사겠다는 목표가 있지만 그 목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산다는 쇼핑 자체를 즐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면 둘러보기도 하고 입어보기도 하고 맛보기도 하고 시간이 좀 많이 걸리지요. 옷을 하나 사기 위해서 가면 이것저것 입어보고, 흥정하고, 깎자고 한참 이야기 하다가 잘 적당하지 않으면 사지 않고 그냥 두고 나온단 말이지요. 어떻게 그렇게 입어보고 한참 이야기하다가 놓고 나올 수가 있습니까? 하지만 놓고 나옵니다.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하고 그냥 나옵니다. 둘러보고 나서, 둘러보니까 아까 본 것 만한 물건이나 값이 없다 하면 다시 또 옵니다. 얼굴 뜨뜻해서 못 갈 것 같은데도 다시 가지요. 그리고는 그 물건을 달라고 그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 더 덧붙여서 달라붙습니다. 차비라도 좀 빼 달라고. 참 끈질긴 인내와 집념을 존경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끈질기게 마치 흥정을 하듯이 집념을 가지고 달라붙어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를 멸망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너무나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연약한 사람이 있으면 강한 사람들이 도와줘서 그 연약한 사람을 잘 세워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연약한 사람 하나 놓고서는 강한 사람들이 작당을 해서 완전히 그 사람을 빼앗고 엉망을 만들어버리는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성적으로 타락한 그런 도시였습니다. 동성애나 근친상간 같은 것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사회가 타락하고 너무나 죄가 크기 때문에 탄식하고 부르짖는 얘기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고, 그 타락한 죄악상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해야 되겠다 작정을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기로 작정하신 후에 그것을 먼저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셨습니다.
18장 1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이 늘 하나님과 교제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신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있는 것,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알려주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에게 어떻게 알려주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신뢰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하려는 계획을 미리 알려주시게 된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그 역사의 진행방향 이 모든 것들을 미리 아는 통찰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위험 가운데 있는 소돔과 고모라가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할 지 거기에 대한 지혜를 또 얻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천하만민의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실 때에 아브라함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아브라함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천하만민이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특권을 가진 것입니까?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가 죄를 짓고 타락했어요. 저주받아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소돔과 고모라를 어떻게 하든지 한번 구원해 보고자 하는 그런 계획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고 그리고는 그 소돔과 고모라를 어찌하든지 좀 구원해보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지요. 아브라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성도들을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떨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가 되어 나가는 방향을 미리 알려주실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셔서 나라가 혹은 개인이 어떻게 나갈까 하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지요. 우리 집에 가족이나 친척이나 직장 친구나 동료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에, 저 사람이 저렇게 삶을 살면 필경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이 저렇게 살다 보면 필경은 지옥 갈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시기 때문에 알지요. 그래서 그 사람을 놓고 안타까워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이지요. 세계 여러 곳에 많은 선교사들이 흩어져 나가있습니다. 그 선교사들이 뭐 하러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낯설고 물 설고 음식도 잘 어울리지 않고 친구도 없는 그 곳에 가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선교사역을 합니까?
성경을 읽는 중에 기도하는 중에 그 나라 그 백성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 대해서 러시아에 대해서 혹은 일본에 대해서 여러 나라에 대해서 유독 그 나라가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부담감이 드는 것입니다. 유독 그 나라에 대해서 뜨거운 열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 나라가 저렇게 나가다가는 큰일나는데, 저 민족이 저렇게 하다가는 멸망길로 가게 되는데,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자꾸 넣어주기 때문에 뜨거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서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그 나라로 선교사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천하만민을 향한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시고 우리 마음 가운데에 안타까운 마음을 주신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어요. 저 사람들이 다 죽게 된다니, 그 마음가운데 안타까움이 생기게 되고 그 생명들을 사랑하는 불같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들 다 멸망하면 어떡하나, 그 생명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그 도시 안에 혹시 의인들도 있을텐데 죄인들 다 멸망하는 틈에 의인도 같이 멸망하면 어떡하나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 올랐습니다. 그 생명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소돔에는 자기 조카 롯의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올 때 부모 형제 친척 다 내버리고 그리고는 혼자 떠나왔는데, 그때 유일하게 데리고 나온 조카가 롯입니다. 자기 피붙이에요. 그런데 그 조카 롯, 사랑하는 조카가 소돔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 조카도 소돔이 멸망할 때에 같이 멸망하지 않겠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 사랑하는 조카의 가족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가까이 있는 사람이 더 사랑이 가고, 인간관계가 가까이 있는 사람 더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여러분 관계중심전도 이야기 할 때에 그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 대해서 그렇게 불타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저 생명을 사랑해야되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나 그런 사람들이 멸망으로 갈 때에 안타까운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오랫동안 자기 가족 식구들을 전도했는데 예수님을 잘 안 믿는단 말이예요. 그래서 그냥 심상하게 그런 말을 합니다. 언젠가는 돌아오겠지요. 오랫동안 노력했는데 예수를 안 믿는단 말이지요. 저 사람은 안되겠다 포기해버려요. 어떻게 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친척을, 친구를 포기해버릴 수 있습니까? 언젠가 돌아오겠지 남의 일처럼 밀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마음,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뜨거운 열망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죽어 가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 아는 사람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소돔에 사는 자기 조카 롯의 가족들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지금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롯의 가족들은 자기들이 멸망할 지 말 지 그런 것도 잘 몰라요. 아브라함이 자기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런 것도 잘 몰라요. 모르지만 알아주던 못 알아주던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래 중보기도라는 것은 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드러나게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야기하는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알던 모르던 혼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모든 사람들을 품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 중보기도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사람들을 품고 롯의 가족들을 품고, 그 사람들은 지금 기도하지 않지만 내가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제가 가끔 이야기하는 것이 기도의 대표선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해서 기도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아는 내가 대표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세계 각 국의 백성들과 선교사를 위해서 내 가정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그들은 다 알지 못하지만, 알지 못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내가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 잠든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겁니다. 다 잠들 시간에 밤을 새워서 하나님 앞에 대표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혹은 골방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 못하지만 내가 먼저 알았기 때문에 그들을 품고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다 기도 안해도, 혹은 나라와 민족이 다 기도를 안 해도 대표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있을 때에 그 가정과 그 교회와 그 나라 민족은 살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 기도할 책임을 맡은 겁니다. 아브라함이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중보기도 할 때에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겁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5절 말씀에는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나이다. 세상을 심판하실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의인과 악인을 똑같이 취급해 가지고 악인 멸망할 때에 의인도 같이 멸망한다는 것은 의롭지가 않습니다.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죄 가운데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그 도시 가운데 의인 50명이 있으면 그 의인을 보시고 그 도시의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한 것이지요. 50명 의인이 있으면 50명 더 추가로 구원해주십시오. 한사람에 한사람, 일대일로 뭐 그 정도면 이해가 될 텐, 소돔과 고모라에 사람이 얼마나 사는 지는 몰라도 의인 50명 가지고 다른 사람들 다 몽땅 구원해 달라, 뭔가 좀 계산이 안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의인 50명이 있어도 그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해주시리라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지, 하나님은 수학적인 계산으로 보지를 않으십니다. 소수의 의인들을 보시고 많은 사람들, 죄악된 사람들, 그 공동체를 다 용서하시기도 하고 참고 기다리시기도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소수의 우리 성도들, 의롭게 거룩하게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으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고 TV의 뉴스를 보고 그러면 얼마나 죄악 되고 타락했는지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하는 죄악 중에 있으니까 금방 멸망할 것 같이 보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의로운 성도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성도들을 보시고 또 참고, 또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저 소수의 의인들로 인해서 저 많은 사람들, 저 사회의 생명을 구원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에게 복이 미쳐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의인 50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용서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거기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장사할 때에 흥정하듯이 계속해서 깎기 시작하는 거예요. 45면 어떻습니까? 40명이면, 30명이면 이렇게 끈질기게 하나님께 달라붙어서 깎고 또 깎기를,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내 주여 노하지 마옵소서. 겸손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러나 담대하게 끈질기게 집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하나하나 의인의 숫자를 깎기 시작해서 여섯 번이나 깎아서 어쩌든지 생명을 구원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끈질기게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마치 흥정을 하듯이 의인의 숫자를 줄여나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응답과 확신이 올 때까지 끈질기게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물건 살 때에 5만원짜리 사면서, 5만원짜리 4만5천원 합시다, 4만원 합시다, 계속 깎기 시작해 가지고 나중에는 만원 합시다 그러면 파는 사람이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당신한테 안 팔아, 쫓아낼 겁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어찌나 자비로우신 분인지 아브라함이 그 뻔뻔하리만큼 끈질기게 하나님께 매달려서 기도하는 것을 다 받아주시고 깎아줬어요. 여섯 번이나 계속해서 깎아주시고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렇게 끈질기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에, 그 기도라는 것이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닙니다. 심심풀이로 잠깐 앉았다가, 눈 잠깐 감았다가 뜨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생명을 구원할 수가 없어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노력과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해야 되는 것이지요.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다같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우리교회뿐만이 아닙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같이 합심해서 기도를 합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모든 성도들이 죽어 가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회교권에 있는 죽어 가는 생명들, 공산권에 있는 죽어 가는 생명들, 이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름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는 가본적도 없는 그 나라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힘을 모아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죽어 가는 생명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지요.
전도훈련 받을 때에 현장실습을 나가요. 그러면 내가 나가서 전도하려고 할 때에 나만 기도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기도후원자가 두 명, 세 명 있어서 날 위해서 기도해주고, 내가 전도해야 할 대상자를 놓고 같이 기도를 협력해서 해 줍니다. 그리고 전도하러 나갈 때에 나와 같은 조가 된 사람들이 같이 앉아서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고야 전도하러 나가는 것이지요. 전도를 해보면, 그 전도는 기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기도를 소홀히 하고 나가면 되지를 않아요. 복음 제시 자체가 안됩니다. 여러 가지 방해가 많아 가지고 복음제시 자체가 안돼요. 그러나 간절히 기도하고, 충분히 기도하고 나가게 되면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복음을 제시하고 결실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만 한생명을 구원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금년에 우리교회의 신앙생활 표어가 ‘한 생명을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한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열망입니다.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과 열망이지요. 우리가 생명을 구원하는데, 나하고 인간관계가 가까운 사람부터 먼저 찾아서 생명을 구원해야되겠다, 그래서 관계중심전도로 관계 있는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지난주에 우리가 태신자를 작정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도대상자를 작정하고, 태신자를 작정해서 그 종이를 써서 냈어요. 그것을 전부 다 모은 명단을 제가 가지고, 제 책상에 놓고 같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태신자를 작정을 했는데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 뭡니까?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전도할 대상자를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신할 때까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그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용서를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깎아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그 저주받은 도시, 멸망 받아야 마땅할 소돔과 고모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기도하고 하나님은 응답하셨는데, 그러면 내가 한 생명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 생명을 놓고 기도할 때 충분히 구원할 수가 있을 줄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천하만민의 복의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려주시고 다른 사람을 구원할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어 가는 생명을 사랑하고 그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 낙심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태신자를 작정했는데, 작정하신 분을 놓고, 혹은 이름을 써서 내지 않았어도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 품고 있는 그 분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구원하실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의 근원으로 사용하셔서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이 기도하는 한 생명을 구원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성과 남성은 여러 가지로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뭐가 좋다, 뭐가 나쁘다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각각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남성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특성들을 가지고 있구요, 여성들은 정서가 풍부하고 감성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물건을 하나 사러가도 물건을 사겠다 하고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정한대로 가서 자기가 원하는 목표대로 물건을 사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뭐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구요, 목표 세운 물건만 사 가지고 오면 그만이지요. 그런데 여성들은 물건을 산다는 것이, 물론 무엇을 사겠다는 목표가 있지만 그 목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산다는 쇼핑 자체를 즐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면 둘러보기도 하고 입어보기도 하고 맛보기도 하고 시간이 좀 많이 걸리지요. 옷을 하나 사기 위해서 가면 이것저것 입어보고, 흥정하고, 깎자고 한참 이야기 하다가 잘 적당하지 않으면 사지 않고 그냥 두고 나온단 말이지요. 어떻게 그렇게 입어보고 한참 이야기하다가 놓고 나올 수가 있습니까? 하지만 놓고 나옵니다.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하고 그냥 나옵니다. 둘러보고 나서, 둘러보니까 아까 본 것 만한 물건이나 값이 없다 하면 다시 또 옵니다. 얼굴 뜨뜻해서 못 갈 것 같은데도 다시 가지요. 그리고는 그 물건을 달라고 그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 더 덧붙여서 달라붙습니다. 차비라도 좀 빼 달라고. 참 끈질긴 인내와 집념을 존경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끈질기게 마치 흥정을 하듯이 집념을 가지고 달라붙어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를 멸망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너무나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연약한 사람이 있으면 강한 사람들이 도와줘서 그 연약한 사람을 잘 세워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연약한 사람 하나 놓고서는 강한 사람들이 작당을 해서 완전히 그 사람을 빼앗고 엉망을 만들어버리는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성적으로 타락한 그런 도시였습니다. 동성애나 근친상간 같은 것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사회가 타락하고 너무나 죄가 크기 때문에 탄식하고 부르짖는 얘기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고, 그 타락한 죄악상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해야 되겠다 작정을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기로 작정하신 후에 그것을 먼저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셨습니다.
18장 1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이 늘 하나님과 교제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신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있는 것,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알려주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에게 어떻게 알려주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신뢰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하려는 계획을 미리 알려주시게 된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그 역사의 진행방향 이 모든 것들을 미리 아는 통찰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위험 가운데 있는 소돔과 고모라가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할 지 거기에 대한 지혜를 또 얻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천하만민의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실 때에 아브라함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아브라함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천하만민이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특권을 가진 것입니까?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가 죄를 짓고 타락했어요. 저주받아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소돔과 고모라를 어떻게 하든지 한번 구원해 보고자 하는 그런 계획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고 그리고는 그 소돔과 고모라를 어찌하든지 좀 구원해보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지요. 아브라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성도들을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떨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가 되어 나가는 방향을 미리 알려주실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셔서 나라가 혹은 개인이 어떻게 나갈까 하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지요. 우리 집에 가족이나 친척이나 직장 친구나 동료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에, 저 사람이 저렇게 삶을 살면 필경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이 저렇게 살다 보면 필경은 지옥 갈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시기 때문에 알지요. 그래서 그 사람을 놓고 안타까워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이지요. 세계 여러 곳에 많은 선교사들이 흩어져 나가있습니다. 그 선교사들이 뭐 하러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낯설고 물 설고 음식도 잘 어울리지 않고 친구도 없는 그 곳에 가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선교사역을 합니까?
성경을 읽는 중에 기도하는 중에 그 나라 그 백성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 대해서 러시아에 대해서 혹은 일본에 대해서 여러 나라에 대해서 유독 그 나라가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부담감이 드는 것입니다. 유독 그 나라에 대해서 뜨거운 열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 나라가 저렇게 나가다가는 큰일나는데, 저 민족이 저렇게 하다가는 멸망길로 가게 되는데,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자꾸 넣어주기 때문에 뜨거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서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그 나라로 선교사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천하만민을 향한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시고 우리 마음 가운데에 안타까운 마음을 주신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어요. 저 사람들이 다 죽게 된다니, 그 마음가운데 안타까움이 생기게 되고 그 생명들을 사랑하는 불같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들 다 멸망하면 어떡하나, 그 생명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그 도시 안에 혹시 의인들도 있을텐데 죄인들 다 멸망하는 틈에 의인도 같이 멸망하면 어떡하나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 올랐습니다. 그 생명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소돔에는 자기 조카 롯의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올 때 부모 형제 친척 다 내버리고 그리고는 혼자 떠나왔는데, 그때 유일하게 데리고 나온 조카가 롯입니다. 자기 피붙이에요. 그런데 그 조카 롯, 사랑하는 조카가 소돔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 조카도 소돔이 멸망할 때에 같이 멸망하지 않겠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 사랑하는 조카의 가족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가까이 있는 사람이 더 사랑이 가고, 인간관계가 가까이 있는 사람 더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여러분 관계중심전도 이야기 할 때에 그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 대해서 그렇게 불타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저 생명을 사랑해야되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나 그런 사람들이 멸망으로 갈 때에 안타까운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오랫동안 자기 가족 식구들을 전도했는데 예수님을 잘 안 믿는단 말이예요. 그래서 그냥 심상하게 그런 말을 합니다. 언젠가는 돌아오겠지요. 오랫동안 노력했는데 예수를 안 믿는단 말이지요. 저 사람은 안되겠다 포기해버려요. 어떻게 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친척을, 친구를 포기해버릴 수 있습니까? 언젠가 돌아오겠지 남의 일처럼 밀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마음,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뜨거운 열망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죽어 가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 아는 사람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소돔에 사는 자기 조카 롯의 가족들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지금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롯의 가족들은 자기들이 멸망할 지 말 지 그런 것도 잘 몰라요. 아브라함이 자기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런 것도 잘 몰라요. 모르지만 알아주던 못 알아주던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래 중보기도라는 것은 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드러나게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야기하는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알던 모르던 혼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모든 사람들을 품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 중보기도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사람들을 품고 롯의 가족들을 품고, 그 사람들은 지금 기도하지 않지만 내가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제가 가끔 이야기하는 것이 기도의 대표선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해서 기도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아는 내가 대표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세계 각 국의 백성들과 선교사를 위해서 내 가정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그들은 다 알지 못하지만, 알지 못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내가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 잠든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겁니다. 다 잠들 시간에 밤을 새워서 하나님 앞에 대표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혹은 골방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 못하지만 내가 먼저 알았기 때문에 그들을 품고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다 기도 안해도, 혹은 나라와 민족이 다 기도를 안 해도 대표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있을 때에 그 가정과 그 교회와 그 나라 민족은 살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 기도할 책임을 맡은 겁니다. 아브라함이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중보기도 할 때에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겁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5절 말씀에는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나이다. 세상을 심판하실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의인과 악인을 똑같이 취급해 가지고 악인 멸망할 때에 의인도 같이 멸망한다는 것은 의롭지가 않습니다.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죄 가운데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그 도시 가운데 의인 50명이 있으면 그 의인을 보시고 그 도시의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한 것이지요. 50명 의인이 있으면 50명 더 추가로 구원해주십시오. 한사람에 한사람, 일대일로 뭐 그 정도면 이해가 될 텐, 소돔과 고모라에 사람이 얼마나 사는 지는 몰라도 의인 50명 가지고 다른 사람들 다 몽땅 구원해 달라, 뭔가 좀 계산이 안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의인 50명이 있어도 그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해주시리라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지, 하나님은 수학적인 계산으로 보지를 않으십니다. 소수의 의인들을 보시고 많은 사람들, 죄악된 사람들, 그 공동체를 다 용서하시기도 하고 참고 기다리시기도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소수의 우리 성도들, 의롭게 거룩하게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으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고 TV의 뉴스를 보고 그러면 얼마나 죄악 되고 타락했는지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하는 죄악 중에 있으니까 금방 멸망할 것 같이 보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의로운 성도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성도들을 보시고 또 참고, 또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저 소수의 의인들로 인해서 저 많은 사람들, 저 사회의 생명을 구원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에게 복이 미쳐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의인 50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용서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거기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장사할 때에 흥정하듯이 계속해서 깎기 시작하는 거예요. 45면 어떻습니까? 40명이면, 30명이면 이렇게 끈질기게 하나님께 달라붙어서 깎고 또 깎기를,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내 주여 노하지 마옵소서. 겸손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러나 담대하게 끈질기게 집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하나하나 의인의 숫자를 깎기 시작해서 여섯 번이나 깎아서 어쩌든지 생명을 구원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끈질기게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마치 흥정을 하듯이 의인의 숫자를 줄여나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응답과 확신이 올 때까지 끈질기게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물건 살 때에 5만원짜리 사면서, 5만원짜리 4만5천원 합시다, 4만원 합시다, 계속 깎기 시작해 가지고 나중에는 만원 합시다 그러면 파는 사람이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당신한테 안 팔아, 쫓아낼 겁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어찌나 자비로우신 분인지 아브라함이 그 뻔뻔하리만큼 끈질기게 하나님께 매달려서 기도하는 것을 다 받아주시고 깎아줬어요. 여섯 번이나 계속해서 깎아주시고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렇게 끈질기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에, 그 기도라는 것이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닙니다. 심심풀이로 잠깐 앉았다가, 눈 잠깐 감았다가 뜨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생명을 구원할 수가 없어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노력과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해야 되는 것이지요.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다같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우리교회뿐만이 아닙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같이 합심해서 기도를 합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모든 성도들이 죽어 가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회교권에 있는 죽어 가는 생명들, 공산권에 있는 죽어 가는 생명들, 이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름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는 가본적도 없는 그 나라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힘을 모아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죽어 가는 생명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지요.
전도훈련 받을 때에 현장실습을 나가요. 그러면 내가 나가서 전도하려고 할 때에 나만 기도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기도후원자가 두 명, 세 명 있어서 날 위해서 기도해주고, 내가 전도해야 할 대상자를 놓고 같이 기도를 협력해서 해 줍니다. 그리고 전도하러 나갈 때에 나와 같은 조가 된 사람들이 같이 앉아서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고야 전도하러 나가는 것이지요. 전도를 해보면, 그 전도는 기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기도를 소홀히 하고 나가면 되지를 않아요. 복음 제시 자체가 안됩니다. 여러 가지 방해가 많아 가지고 복음제시 자체가 안돼요. 그러나 간절히 기도하고, 충분히 기도하고 나가게 되면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복음을 제시하고 결실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만 한생명을 구원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금년에 우리교회의 신앙생활 표어가 ‘한 생명을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한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열망입니다.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과 열망이지요. 우리가 생명을 구원하는데, 나하고 인간관계가 가까운 사람부터 먼저 찾아서 생명을 구원해야되겠다, 그래서 관계중심전도로 관계 있는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지난주에 우리가 태신자를 작정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도대상자를 작정하고, 태신자를 작정해서 그 종이를 써서 냈어요. 그것을 전부 다 모은 명단을 제가 가지고, 제 책상에 놓고 같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태신자를 작정을 했는데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 뭡니까?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전도할 대상자를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신할 때까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그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용서를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깎아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그 저주받은 도시, 멸망 받아야 마땅할 소돔과 고모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기도하고 하나님은 응답하셨는데, 그러면 내가 한 생명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 생명을 놓고 기도할 때 충분히 구원할 수가 있을 줄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천하만민의 복의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려주시고 다른 사람을 구원할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어 가는 생명을 사랑하고 그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 낙심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태신자를 작정했는데, 작정하신 분을 놓고, 혹은 이름을 써서 내지 않았어도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 품고 있는 그 분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구원하실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의 근원으로 사용하셔서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이 기도하는 한 생명을 구원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