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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기초와 기본 (에스라 3:1~13절)
오래 전에 한옥 전문가 목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한옥을 그릴 때 그리는 순서가 꼭 주춧돌을 그리고,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 순으로 그렸답니다. 그야말로 집을 짓는 순서대로 그렸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그림이 제대로 그려질 리 없는 데도 고집스럽게 이렇게 그린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그림조차도 주춧돌부터 그려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철저하게 집 짓는 순서에 각인이 되어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기초와 기본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집을 지을 때 지붕부터 지을 수 없고, 그냥 기둥부터 세울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주춧돌을 단단히 놓은 뒤에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나중에 지붕도 얹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초와 기본이 순서상 가장 앞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기초와 기본이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세워져야 한다는 것도 확인하게 됩니다.
교육도 그렇습니다. 기초와 기본이 중요합니다. 학생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가르쳐 갈 때 기초와 기본이 중요합니다.
우선 기초가 필요합니다. 교육에서 기초란 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기초실력이 다져져야 중학교 실력을 닦을 수 있습니다. 중학교 실력이 기초로 든든히 세워져야 고등학교 실력이 쌓여집니다. 기초실력이 잘 닦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본이 필요합니다. 교육의 기본이란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인간 됨됨이 곧 기본 성품이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정직하고, 근면하고,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기본 성품이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이런 기본 성품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실력만 쌓이면 결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기초 실력이 닦여야 합니다. 기본 성품도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그 위에 다양한 실력과 전문적인 소양이 얹혀져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기초와 기본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잘 세워지지 않으면 훌륭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신앙생활의 기초와 기본의 중요성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자 하나님께서 징계하셨습니다. 먼저 북 왕국이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남 왕국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이 때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주류 인사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기초가 무너진 것입니다. 저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줄 말씀과 영적 지도자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율례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이 엉망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 왕조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영적 지도자들이 사라질 때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는 끝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끝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들을 돌아보시고 구원 역사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가 들어서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 땅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전 537년에 1차 포로귀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이스라엘의 재건에 나섰습니다. 그 때 스룹바벨의 인도로 저들이 제일 먼저 했던 것이 바로 성전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6을 보면 포로 귀환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일단 먼저 번제단을 쌓고 초막절을 준수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13을 보면 성전 재건 공사를 위한 석수와 목수, 목재의 준비, 그리고 성전 지대를 놓음과 동시에 커다란 축제가 벌어진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무너진 신앙생활의 기초와 기본이 다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기초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귀환 후 성전을 재건하는 처음 단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들이 성전 재건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제사부터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상식적으로 성전을 짓고 난 뒤에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재건 공사 전에 제단만 만들고 제사부터 드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모든 나라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제사부터 드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공사에 나선 사람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스 2:64를 보면 포로 귀환한 사람들의 수가 불과 사만이천삼백육십 명입니다. 그 중에 이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보다 작았을테니까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을 에워싼 나라들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이 땅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 인접한 곳에 살고 있는 사마리아사람들, 주변의 암몬, 모압, 에돔, 아라비아 사람들 등등. 한 구약신학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그들의 처지는 이방이라는 대양에 둘러싸인 작은 섬 바로 그것이었다.”
저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형태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성전을 재건하겠다고 나섰지만 두렵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저들이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사부터 드렸습니다. 이것은 저들의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는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그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성전재건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제사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재건하기 전에 이미 무너진 신앙생활의 기초를 쌓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믿음을 고백하며 신앙생활의 기초를 굳건히 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으로 저들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성전재건이 대업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초는 바로 믿음입니다. 이 기초를 든든하게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놀라운 그림 두 개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화초 줄기만 잡고 화분 전체를 들고 있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화초 줄기에 맹견이 줄에 매어있는 그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화초의 뿌리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뿌리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굳건하면 우리 신앙생활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막 9:23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에스라서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믿음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었느냐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에스라에서 가장 중요한 강조점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주도하심(initiative)에 대한 믿음입니다.
스 1:1을 보면 “바사와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여기서 감동시킨다는 말은 원래 히브리어 의미로는 “잠자던 사람을 깨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자던 고레스의 마음을 깨우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유다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도 무너지고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와있고 이제 한낱 희망도 없이 이국에 동화되어 소멸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의 물꼬를 새롭게 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셔서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지금 에스라는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의 기초를 다시 든든하게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더라도 일제의 압제 속에 희망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때가 있었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3.1만세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압제는 오히려 더 거세졌습니다. 임시정부가 갖가지 독립을 위한 몸부림을 쳤습니다만 사태는 오히려 더 악화될 뿐이었습니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변절해 가고 말았고 점점 글도 잃어버리고 일본의 한 부분으로 동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각지 않게 연합군에 미군이 참전케 하시고, 전대미문의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셔서 항복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뜻하지 않게 우리 민족이 독립을 얻게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섬세한 도우심을 믿었습니다.
에스라를 읽어보면 주목할만한 동일한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입니다.(7:9, 28, 8:18, 22, 31)
한 예를 들어보면 스 7:9를 보면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가 바벨론 땅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먼 여정을 회상하면서 한 말입니다. 4달이나 걸린 긴 여정이었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손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그 긴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섬세한 도우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우리의 걸음을 섬세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기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께 제사부터 드린 뒤에 본격적으로 성전재건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7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이 말씀은 당시 사람들이 성전재건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시돈과 두로의 고급 기술자들을 많은 경비를 들여서 초청했습니다. 당시 최고 비싼 자재인 레바논의 백향목도 바다로 운송해서 수입했습니다. 이것은 첫 번째 성전이었던 솔로몬 성전 때 투입되었던 전문 기술자들과 고급 자재들을 사용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솔로몬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했던 때입니다. 재정적으로 가장 풍족했던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라가 망해서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입니다. 백성들이 지금 자기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그럴 때 이렇게 최고의 기술자, 최상의 자재로 성전을 지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자기들 살 집을 마련하는 일, 자기들 생업을 위해 터전을 닦는 일, 자기 아이들 교육을 위해 준비하는 일 등등 시급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전 재건하는 일을 최우선적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드와이트 무디는 근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역자 중 하나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분입니다. 이분은 가난한 벽돌공의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열일곱 살 때 보스턴의 구둣방에 취직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쓰임 받을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훗날 기자가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무디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려서 어머님께 받은 교훈을 그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하나님 일은 가장 먼저, 내 일은 나중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선주의”(God first!) 이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이 잘 갖춰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 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겨우 성전의 지대 곧 성전의 기초만을 놓았습니다. 어린 시절 옛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자기들 생전에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다는 감격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성전 짓는 일에 참여했다는 기쁨에 즐거이 노래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일 때문에 울고, 그리고 하나님의 일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 한 청년이 본당에서 통곡하며 기도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것을 복도에서 마주쳤습니다. 눈이 퉁퉁 부었더라구요. 기도도 해주고 위로해 주기 위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슬프게 울었느냐고...
자기가 교회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데 반 아이 하나가 학교에서 교회 다닌다고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 아이가 따돌림이 두려워서 교회 나오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 그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 때문에 통곡하며 울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일 때문에 정말 기뻐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우선주의를 지켜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에는 기초가 있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기초가 든든해야 그 위에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사상누각처럼 제대로 건물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을 때 우리 신앙에 기초가 든든히 세워지게 됩니다.
신앙에는 기본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우선주의입니다. 기본이 바로 서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지탱해 갈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 때문에 정말 기뻐할 줄 알고, 하나님 때문에 크게 슬퍼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우선주의를 철저하게 지켜갈 때 신앙생활의 기본충실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출처/박봉수 목사 설교 중에서
오래 전에 한옥 전문가 목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한옥을 그릴 때 그리는 순서가 꼭 주춧돌을 그리고,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 순으로 그렸답니다. 그야말로 집을 짓는 순서대로 그렸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그림이 제대로 그려질 리 없는 데도 고집스럽게 이렇게 그린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그림조차도 주춧돌부터 그려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철저하게 집 짓는 순서에 각인이 되어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기초와 기본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집을 지을 때 지붕부터 지을 수 없고, 그냥 기둥부터 세울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주춧돌을 단단히 놓은 뒤에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나중에 지붕도 얹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초와 기본이 순서상 가장 앞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기초와 기본이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세워져야 한다는 것도 확인하게 됩니다.
교육도 그렇습니다. 기초와 기본이 중요합니다. 학생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가르쳐 갈 때 기초와 기본이 중요합니다.
우선 기초가 필요합니다. 교육에서 기초란 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기초실력이 다져져야 중학교 실력을 닦을 수 있습니다. 중학교 실력이 기초로 든든히 세워져야 고등학교 실력이 쌓여집니다. 기초실력이 잘 닦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본이 필요합니다. 교육의 기본이란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인간 됨됨이 곧 기본 성품이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정직하고, 근면하고,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기본 성품이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이런 기본 성품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실력만 쌓이면 결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기초 실력이 닦여야 합니다. 기본 성품도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그 위에 다양한 실력과 전문적인 소양이 얹혀져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기초와 기본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잘 세워지지 않으면 훌륭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신앙생활의 기초와 기본의 중요성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자 하나님께서 징계하셨습니다. 먼저 북 왕국이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남 왕국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이 때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주류 인사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기초가 무너진 것입니다. 저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줄 말씀과 영적 지도자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율례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이 엉망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 왕조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영적 지도자들이 사라질 때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는 끝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끝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들을 돌아보시고 구원 역사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가 들어서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 땅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전 537년에 1차 포로귀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이스라엘의 재건에 나섰습니다. 그 때 스룹바벨의 인도로 저들이 제일 먼저 했던 것이 바로 성전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6을 보면 포로 귀환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일단 먼저 번제단을 쌓고 초막절을 준수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13을 보면 성전 재건 공사를 위한 석수와 목수, 목재의 준비, 그리고 성전 지대를 놓음과 동시에 커다란 축제가 벌어진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무너진 신앙생활의 기초와 기본이 다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기초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귀환 후 성전을 재건하는 처음 단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들이 성전 재건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제사부터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상식적으로 성전을 짓고 난 뒤에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재건 공사 전에 제단만 만들고 제사부터 드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모든 나라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제사부터 드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공사에 나선 사람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스 2:64를 보면 포로 귀환한 사람들의 수가 불과 사만이천삼백육십 명입니다. 그 중에 이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보다 작았을테니까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을 에워싼 나라들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이 땅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 인접한 곳에 살고 있는 사마리아사람들, 주변의 암몬, 모압, 에돔, 아라비아 사람들 등등. 한 구약신학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그들의 처지는 이방이라는 대양에 둘러싸인 작은 섬 바로 그것이었다.”
저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형태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성전을 재건하겠다고 나섰지만 두렵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저들이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사부터 드렸습니다. 이것은 저들의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는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그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성전재건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제사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재건하기 전에 이미 무너진 신앙생활의 기초를 쌓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믿음을 고백하며 신앙생활의 기초를 굳건히 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으로 저들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성전재건이 대업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초는 바로 믿음입니다. 이 기초를 든든하게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놀라운 그림 두 개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화초 줄기만 잡고 화분 전체를 들고 있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화초 줄기에 맹견이 줄에 매어있는 그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화초의 뿌리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뿌리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굳건하면 우리 신앙생활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막 9:23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에스라서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믿음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었느냐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에스라에서 가장 중요한 강조점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주도하심(initiative)에 대한 믿음입니다.
스 1:1을 보면 “바사와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여기서 감동시킨다는 말은 원래 히브리어 의미로는 “잠자던 사람을 깨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자던 고레스의 마음을 깨우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유다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도 무너지고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와있고 이제 한낱 희망도 없이 이국에 동화되어 소멸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의 물꼬를 새롭게 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셔서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지금 에스라는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의 기초를 다시 든든하게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더라도 일제의 압제 속에 희망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때가 있었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3.1만세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압제는 오히려 더 거세졌습니다. 임시정부가 갖가지 독립을 위한 몸부림을 쳤습니다만 사태는 오히려 더 악화될 뿐이었습니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변절해 가고 말았고 점점 글도 잃어버리고 일본의 한 부분으로 동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각지 않게 연합군에 미군이 참전케 하시고, 전대미문의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셔서 항복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뜻하지 않게 우리 민족이 독립을 얻게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섬세한 도우심을 믿었습니다.
에스라를 읽어보면 주목할만한 동일한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입니다.(7:9, 28, 8:18, 22, 31)
한 예를 들어보면 스 7:9를 보면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가 바벨론 땅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먼 여정을 회상하면서 한 말입니다. 4달이나 걸린 긴 여정이었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손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그 긴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섬세한 도우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우리의 걸음을 섬세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기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께 제사부터 드린 뒤에 본격적으로 성전재건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7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이 말씀은 당시 사람들이 성전재건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시돈과 두로의 고급 기술자들을 많은 경비를 들여서 초청했습니다. 당시 최고 비싼 자재인 레바논의 백향목도 바다로 운송해서 수입했습니다. 이것은 첫 번째 성전이었던 솔로몬 성전 때 투입되었던 전문 기술자들과 고급 자재들을 사용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솔로몬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했던 때입니다. 재정적으로 가장 풍족했던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라가 망해서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입니다. 백성들이 지금 자기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그럴 때 이렇게 최고의 기술자, 최상의 자재로 성전을 지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자기들 살 집을 마련하는 일, 자기들 생업을 위해 터전을 닦는 일, 자기 아이들 교육을 위해 준비하는 일 등등 시급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전 재건하는 일을 최우선적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드와이트 무디는 근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역자 중 하나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분입니다. 이분은 가난한 벽돌공의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열일곱 살 때 보스턴의 구둣방에 취직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쓰임 받을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훗날 기자가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무디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려서 어머님께 받은 교훈을 그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하나님 일은 가장 먼저, 내 일은 나중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선주의”(God first!) 이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이 잘 갖춰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 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겨우 성전의 지대 곧 성전의 기초만을 놓았습니다. 어린 시절 옛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자기들 생전에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다는 감격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성전 짓는 일에 참여했다는 기쁨에 즐거이 노래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일 때문에 울고, 그리고 하나님의 일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 한 청년이 본당에서 통곡하며 기도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것을 복도에서 마주쳤습니다. 눈이 퉁퉁 부었더라구요. 기도도 해주고 위로해 주기 위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슬프게 울었느냐고...
자기가 교회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데 반 아이 하나가 학교에서 교회 다닌다고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 아이가 따돌림이 두려워서 교회 나오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 그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 때문에 통곡하며 울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일 때문에 정말 기뻐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우선주의를 지켜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에는 기초가 있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기초가 든든해야 그 위에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사상누각처럼 제대로 건물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을 때 우리 신앙에 기초가 든든히 세워지게 됩니다.
신앙에는 기본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우선주의입니다. 기본이 바로 서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지탱해 갈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 때문에 정말 기뻐할 줄 알고, 하나님 때문에 크게 슬퍼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우선주의를 철저하게 지켜갈 때 신앙생활의 기본충실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출처/박봉수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