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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의 폭풍이 불어오게 하려면 (행 2:37-42)
오늘 1월 14일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평양 장대현교회당에 모였던 1500여 성도들 위에 부흥의 강한 바람이 크게 불었던 바로 그 날입니다. 한국교회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지금 1907년 평양대부흥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을사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통치의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백성들은 가슴을 치며 원통한 눈물을 흘릴 뿐 희망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소망을 불어넣는 대심방(great visitation)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셔서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부흥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결과 개인의 심령이 살아 일어나고, 가정들이 회복되어졌고, 교회가 크게 부흥이 되었고, 이후 수십년간의 민족의 수난을 순교적 신앙으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나라 상황은 외형적으로는 100년 전의 한반도의 상황보다 매우 좋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주권을 박탈당하는 국권의 위기는 아니지만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국체의 위기를 맞고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세계 제 2위의 이혼율, 세계 제2위의 낙태율, 세계 최저의 출산율, 세계 최고의 청소년 흡연율 등등, 개인과 가정과 나라가 윤리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처절한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절실한 필요는 신앙의 부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강력한 바람이 필요합니다.
교회 속에 어느덧 밀고 들어와 섞이어 있는 물량주의와 세속적인 가치관을 흔들어 솎아내버릴 강한 바람이 필요합니다.
부흥의 폭풍이 불어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0년 전 평양에 강력히 불었던 부흥의 바람을 다시 돌아보며, 이 중요한 주제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흥의 문을 열려면 어떤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까?
1. 죄를 지적하고 깨우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외쳐져야
부흥의 시작은 죄를 지적하고 깨우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부터입니다.
본문을 보면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단숨에 3천명의 세례 받은 제자의 수를 얻은 것은 사도 베드로의 직설적인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세계 전역에서 모여 온 디아스포라(diaspora)들에게 베드로가 전한 말씀은 저들의 죄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분은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그분을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부활하게 하셨는데, 이는 일찍이 다윗이 예언한 대로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나사렛 예수, 바로 그분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메시야입니다.“
당시 베드로의 말씀을 받은 회중들은 자신들의 죄를 지적받고 마음에 찔려 탄식했습니다.
37절,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요 16:7-11). 말씀을 통한 성령의 각성 사역(convicting work)이 강력히 일어나는 곳에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평양대부흥 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감 없이 외쳐지는 현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4개 장로교 선교회 연합사경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아침에 경건의 시간과 찬양, 그리고 3시간 동안의 성경공부가 진행되었습니다. 오후에는 노방 전도 시간이 있었고, 저녁시간은 남자만 1500명 이상 모이는 특별전도집회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집회의 말씀은 설교 제목만 보더라도 그 내용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월 6일부터 한 주간 매일 저녁 길선주 목사님에 의해 진행된 연합부흥회의 설교 제목은 “맛을 잃은 말라빠진 사람들아,”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 “지옥을 취하랴 천당을 취하랴,” “성령 앞에 숨을 자는 없다” 등이었습니다.
이 말씀들은 회중의 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회중들은 성령께서 말씀의 검으로 휘두르는 예리한 칼에 마음이 찔린 것입니다.
18세기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원동력이었습니다.
대각성운동의 주역인 Jonathan Edwards 목사님이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죄인들”이란 제목으로 설교할 때,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아서 설교 원고를 얼굴에 바짝 대고 했기 때문에 회중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에드워즈는 예배당에 가득 모인 신자들이 억제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회중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뛰어 일어나면서 “목사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좌석을 꽉 붙잡았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심판의 날이 그들에게 임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습니다.
설교자가 능력과 큰 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할 때에 성령께서 그 말씀을 가지고 회중의 마음을 찔러 쪼개는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부흥의 시발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한국교회의 설교는 회중들의 상황에 맞는(reciver-oriented) 메시지를 전한다는 미명(美名) 하에 그들의 비위에 맞추고 유행하는 사상에 맞추다가 예리한 각도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인데(엡 6:17), 설교자들은 녹슨 검, 무딘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만일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부흥이나 평양대부흥 같은 부흥을 진심으로 사모한다면, 설교자와 교인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강단의 양심을 회복해야 하고, 회중은 양심대로 외치는 설교자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부흥의 강풍이 불어오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설교자가 강단에서 외치는 말씀은 회중의 죄와 허물에 대한 지적과 깨우침에 인색지 않아야 하고, 교인들은 말씀을 겸손히 받고 말씀 앞에 겸허히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2.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성령의 바람은 오직 회개하는 회중 가운데 불어옵니다.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마음에 찔려 고민하는 회중들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직 회개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신약성경에서 회개(‘메타노이아’)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죄를 사랑하던 마음을 바꾸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회개(‘슈브’)는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입니다(대하 7:14).
그러므로 회개는 지정의(知情意)를 포괄합니다. 지성 면에서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정서 면에서 죄에 대한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 면에서 버릴 것을 버리고 갚을 것을 갚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와 마음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온 회중이 진심으로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철저한 회개가 있을 때 성령께서는 약속대로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회개는 부흥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이 약속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39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00년 전 오늘, 평양 장대현교회당에서 시작되어 전국을 강타했던 부흥의 강풍은 그곳에 모였던 성도들의 진실된 회개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1부집회가 감동과 감격으로 끝난 후 모인 회중의 3분의 2가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는데, 이 장면을 기록한 스왈런 선교사의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간증 차례를 기다리면서 여러 시간을 서 있었다. 몇몇 사람은 고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펄쩍 뛰고는 자신의 죄를 통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집회는 중단 없이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에 가장 소름끼치는 일련의 죄에 대한 고백들이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있었다. 사악하고 수치스러운 모든 죄들이 아주 깊은 죄의식 하에 고백되어졌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는 마치 가장 무시무시한 고통에 처한 것처럼 갑자기 무섭게 통회하고 애통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마치 숨을 쉬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자기 가슴을 치기도 했다. 때로 그들 중에는 갑자기 마룻바닥에 엎어져 몹시도 통회하는 가운데 손으로 바닥을 연타하기도 했다.“
너무도 분명한 한가지 사실, 즉 그 현장에 있었던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증언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를 통회하고 회개하는 회개기도가 모인 무리들 가운데 끝없이 회오리바람처럼 휩쓸고 지났다는 사실입니다. 회오리바람 앞에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놀라운 성령의 강권적인 회개의 역사 앞에 한 올의 죄악마저 숨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의식한 가운데 회개의 역사가 있었지만, 이제는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죄악을 철저하게 통회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날 밤 집회 도중 저 건너 한쪽에서 어떤 사람이 울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모든 회중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 그레함 리 선교사와 함께 있었던 매큔 선교사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아더 브라운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 이런 사실이 분명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집회는 저녁 7시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회는 새벽 2시에야 끝났습니다. 하나 둘씩 일어나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몇 사람은 믿기 전에 자기 친구를 살해했음을 고백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모조리 범했음을 고백했으며, 교회 직원들이 도둑질했음을 고백했고, 그들 가운데 있었던 질투와 미움도 고백했습니다... 상당 수가 교회 지도자들인 이들 1,000명이 집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임하겠는가! 그것은 측량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로부터 모든 영광을 받으셨다고 확신합니다...”
그 다음 날인 1월 15일에도 이와 비슷한 죄의 회개 운동이 있었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는 더욱 거세게 나타났습니다. 당시 ‘가장 은사받은 한국인 설교자’ 길선주 장로님의 설교가 있은 후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남은 600여명의 사람들에게 길선주 장로님이 회개와 고백을 촉구하자, ‘시내산의 섬광’이 그들 위에 임했습니다.
오순절 둘째날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심판 날에 심판 주 앞에 서 있는 죄인처럼 공포와 두려움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 장로와 김장로의 회개였습니다.
당시 김장로는 방위량 선교사가 운동장 사용과 관련하여 서두르라고 재촉했던 것 때문에 몹시 화가 나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이날 밤 방위량 선교사가 김장로를 위해 기도하다가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김장로가 강단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김장로는 강단을 붙잡고 절규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거슬러 싸운 죄인입니다. 교회의 장로인 나는 방선교사님을 미워한 죄를 지었습니다.”
블레어 선교사의 글에 의하면, 그는 바닥에 고꾸라져 머리를 쥐어뜯으며 죽기 직전에 투쟁하는 것처럼 온 몸을 뒤틀었습니다. 그는 강단을 붙들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흐느끼고 울부짖고 전율하고 주먹으로 강단을 내리치면서 그는 무시무시한 자신의 죄악들을 토로하였습니다.
김장로의 고백은 마치 기름에 불을 던지듯이 그곳의 집회를 회개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고꾸라지자 온 청중 가운데 갑자기 회개의 울음 바다가 되어 너나할 것 없이 그곳에 모인 모든 남자들이 울고 또 우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회개가 터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시간이 없어 평양의 오순절에 일어났던 다른 많은 간증들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의 바람은 회개하는 영 위에 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모든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철저한 회개를 경험할 때, 성령께서는 더욱 거센 폭풍으로 부흥의 바람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 각자와 우리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 위에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평양대부흥은 말씀과 회개 위에 임한 성령의 바람이었음
우리가 역사의 기록을 연구하면 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1907년 평양대부흥은 성령의 강한 역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평양의 오순절은 말씀과 회개 위에 임한 성령의 폭풍이었습니다.
모인 청중들은 성령께서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을 치심에 따라 계속해서 울부짖었고, 그것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것이었습니다. 블레어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몇 사람은 바닥 위에 몸을 던져 쭉 뻗어 있었고, 수백명이 하늘로 뻗고 서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서로 용서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이날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자기 내면에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죄악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맥큔 선교사의 보고에, “기도의 물결이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자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합류하여, 그들의 간구가 죄로 인한 탄식과 뒤섞였습니다. 그런 후 잠시의 막간에 이 사람 저 사람이 일어나 자비를 호소하며 영혼의 무거운 짐을 토로했습니다.”
15일 저녁 집회에서 선교사들은 성령 강림의 역사에 너무 놀라서, 참석한 청중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상의할 정도였습니다.
성령의 강림을 기도했던 대로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한국교회를 축복하신 것에 감사하면서, 그 강한 성령의 역사에 당황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이들은 옛 생활에서 돌아서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했고, 그들 중에 여러 사람들이 수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은혜 가운데 거했습니다.
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하여 전국 각지로 요원의 불길같이 번져 나갔고, 이로 인해 같은 해 1907년 9월에는 마침내 한국교회가 독립적으로 총회조직을 갖게 되어 명실공히 독립된 교회 정치체계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평양대부흥은 이후 각 지방으로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제주도와 중국선교를 통해 국외로 번져나갔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그후 1909-1910년 백만인 구령운동으로 확산되었고, 그리하여 일제에 짓밟힌 나라를 먼저 영적으로 살리고, 후에 육적으로 살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에 다시 한번 평양의 오순절을 경험해야겠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이 우리 시대에 다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의 부으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예리한 검으로 사용하여 설교해야 합니다. 외쳐지는 말씀을 통해 예리하게 지적된 죄악을 회개하고 청산하면서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와야 합니다.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John Stott)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실패를 양심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의 실패가 그리스도와 세상에 대한 범죄(offense)임을 인정해야 합니다.교회의 말(talk)과 교회의 삶(walk) 사이에 공신력의 갭이 있음을 보고 통곡해야 합니다. 우리의 실패에 대해 쉽게 변명하고 우리의 실패를 쉽게 묵인해버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자식을 주님보다 더 우선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는 하나님 싫어하시는 일이라도 망설이지 않거 행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교만, 탐욕, 사기, 성적 타락, 횡령, 미움, 나태, 분열, 가정 파괴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공적으로 지은 죄는 공적으로 회개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손해 끼친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갚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날마다 생명적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바로 섬겨야 합니다.
부흥의 폭풍이 불어오게 하려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죄를 지적하고 깨우치는 말씀, 그리고 그 말씀에 아멘하며 철저하게 회개하고 청산하는 실천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 개인과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 위에 성령의 폭풍, 생명의 폭풍, 기적의 폭풍, 부흥의 폭풍이 불어오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출처/박순오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오늘 1월 14일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평양 장대현교회당에 모였던 1500여 성도들 위에 부흥의 강한 바람이 크게 불었던 바로 그 날입니다. 한국교회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지금 1907년 평양대부흥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을사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통치의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백성들은 가슴을 치며 원통한 눈물을 흘릴 뿐 희망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소망을 불어넣는 대심방(great visitation)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셔서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부흥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결과 개인의 심령이 살아 일어나고, 가정들이 회복되어졌고, 교회가 크게 부흥이 되었고, 이후 수십년간의 민족의 수난을 순교적 신앙으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나라 상황은 외형적으로는 100년 전의 한반도의 상황보다 매우 좋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주권을 박탈당하는 국권의 위기는 아니지만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국체의 위기를 맞고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세계 제 2위의 이혼율, 세계 제2위의 낙태율, 세계 최저의 출산율, 세계 최고의 청소년 흡연율 등등, 개인과 가정과 나라가 윤리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처절한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절실한 필요는 신앙의 부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강력한 바람이 필요합니다.
교회 속에 어느덧 밀고 들어와 섞이어 있는 물량주의와 세속적인 가치관을 흔들어 솎아내버릴 강한 바람이 필요합니다.
부흥의 폭풍이 불어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0년 전 평양에 강력히 불었던 부흥의 바람을 다시 돌아보며, 이 중요한 주제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흥의 문을 열려면 어떤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까?
1. 죄를 지적하고 깨우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외쳐져야
부흥의 시작은 죄를 지적하고 깨우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부터입니다.
본문을 보면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단숨에 3천명의 세례 받은 제자의 수를 얻은 것은 사도 베드로의 직설적인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세계 전역에서 모여 온 디아스포라(diaspora)들에게 베드로가 전한 말씀은 저들의 죄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분은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그분을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부활하게 하셨는데, 이는 일찍이 다윗이 예언한 대로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나사렛 예수, 바로 그분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메시야입니다.“
당시 베드로의 말씀을 받은 회중들은 자신들의 죄를 지적받고 마음에 찔려 탄식했습니다.
37절,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요 16:7-11). 말씀을 통한 성령의 각성 사역(convicting work)이 강력히 일어나는 곳에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평양대부흥 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감 없이 외쳐지는 현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4개 장로교 선교회 연합사경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아침에 경건의 시간과 찬양, 그리고 3시간 동안의 성경공부가 진행되었습니다. 오후에는 노방 전도 시간이 있었고, 저녁시간은 남자만 1500명 이상 모이는 특별전도집회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집회의 말씀은 설교 제목만 보더라도 그 내용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월 6일부터 한 주간 매일 저녁 길선주 목사님에 의해 진행된 연합부흥회의 설교 제목은 “맛을 잃은 말라빠진 사람들아,”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 “지옥을 취하랴 천당을 취하랴,” “성령 앞에 숨을 자는 없다” 등이었습니다.
이 말씀들은 회중의 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회중들은 성령께서 말씀의 검으로 휘두르는 예리한 칼에 마음이 찔린 것입니다.
18세기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원동력이었습니다.
대각성운동의 주역인 Jonathan Edwards 목사님이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죄인들”이란 제목으로 설교할 때,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아서 설교 원고를 얼굴에 바짝 대고 했기 때문에 회중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에드워즈는 예배당에 가득 모인 신자들이 억제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회중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뛰어 일어나면서 “목사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좌석을 꽉 붙잡았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심판의 날이 그들에게 임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습니다.
설교자가 능력과 큰 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할 때에 성령께서 그 말씀을 가지고 회중의 마음을 찔러 쪼개는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부흥의 시발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한국교회의 설교는 회중들의 상황에 맞는(reciver-oriented) 메시지를 전한다는 미명(美名) 하에 그들의 비위에 맞추고 유행하는 사상에 맞추다가 예리한 각도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인데(엡 6:17), 설교자들은 녹슨 검, 무딘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만일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부흥이나 평양대부흥 같은 부흥을 진심으로 사모한다면, 설교자와 교인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강단의 양심을 회복해야 하고, 회중은 양심대로 외치는 설교자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부흥의 강풍이 불어오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설교자가 강단에서 외치는 말씀은 회중의 죄와 허물에 대한 지적과 깨우침에 인색지 않아야 하고, 교인들은 말씀을 겸손히 받고 말씀 앞에 겸허히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2.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성령의 바람은 오직 회개하는 회중 가운데 불어옵니다.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마음에 찔려 고민하는 회중들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직 회개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신약성경에서 회개(‘메타노이아’)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죄를 사랑하던 마음을 바꾸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회개(‘슈브’)는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입니다(대하 7:14).
그러므로 회개는 지정의(知情意)를 포괄합니다. 지성 면에서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정서 면에서 죄에 대한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 면에서 버릴 것을 버리고 갚을 것을 갚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와 마음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온 회중이 진심으로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철저한 회개가 있을 때 성령께서는 약속대로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회개는 부흥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이 약속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39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00년 전 오늘, 평양 장대현교회당에서 시작되어 전국을 강타했던 부흥의 강풍은 그곳에 모였던 성도들의 진실된 회개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1부집회가 감동과 감격으로 끝난 후 모인 회중의 3분의 2가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는데, 이 장면을 기록한 스왈런 선교사의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간증 차례를 기다리면서 여러 시간을 서 있었다. 몇몇 사람은 고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펄쩍 뛰고는 자신의 죄를 통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집회는 중단 없이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에 가장 소름끼치는 일련의 죄에 대한 고백들이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있었다. 사악하고 수치스러운 모든 죄들이 아주 깊은 죄의식 하에 고백되어졌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는 마치 가장 무시무시한 고통에 처한 것처럼 갑자기 무섭게 통회하고 애통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마치 숨을 쉬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자기 가슴을 치기도 했다. 때로 그들 중에는 갑자기 마룻바닥에 엎어져 몹시도 통회하는 가운데 손으로 바닥을 연타하기도 했다.“
너무도 분명한 한가지 사실, 즉 그 현장에 있었던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증언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를 통회하고 회개하는 회개기도가 모인 무리들 가운데 끝없이 회오리바람처럼 휩쓸고 지났다는 사실입니다. 회오리바람 앞에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놀라운 성령의 강권적인 회개의 역사 앞에 한 올의 죄악마저 숨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의식한 가운데 회개의 역사가 있었지만, 이제는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죄악을 철저하게 통회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날 밤 집회 도중 저 건너 한쪽에서 어떤 사람이 울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모든 회중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 그레함 리 선교사와 함께 있었던 매큔 선교사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아더 브라운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 이런 사실이 분명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집회는 저녁 7시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회는 새벽 2시에야 끝났습니다. 하나 둘씩 일어나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몇 사람은 믿기 전에 자기 친구를 살해했음을 고백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모조리 범했음을 고백했으며, 교회 직원들이 도둑질했음을 고백했고, 그들 가운데 있었던 질투와 미움도 고백했습니다... 상당 수가 교회 지도자들인 이들 1,000명이 집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임하겠는가! 그것은 측량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로부터 모든 영광을 받으셨다고 확신합니다...”
그 다음 날인 1월 15일에도 이와 비슷한 죄의 회개 운동이 있었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는 더욱 거세게 나타났습니다. 당시 ‘가장 은사받은 한국인 설교자’ 길선주 장로님의 설교가 있은 후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남은 600여명의 사람들에게 길선주 장로님이 회개와 고백을 촉구하자, ‘시내산의 섬광’이 그들 위에 임했습니다.
오순절 둘째날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심판 날에 심판 주 앞에 서 있는 죄인처럼 공포와 두려움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 장로와 김장로의 회개였습니다.
당시 김장로는 방위량 선교사가 운동장 사용과 관련하여 서두르라고 재촉했던 것 때문에 몹시 화가 나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이날 밤 방위량 선교사가 김장로를 위해 기도하다가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김장로가 강단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김장로는 강단을 붙잡고 절규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거슬러 싸운 죄인입니다. 교회의 장로인 나는 방선교사님을 미워한 죄를 지었습니다.”
블레어 선교사의 글에 의하면, 그는 바닥에 고꾸라져 머리를 쥐어뜯으며 죽기 직전에 투쟁하는 것처럼 온 몸을 뒤틀었습니다. 그는 강단을 붙들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흐느끼고 울부짖고 전율하고 주먹으로 강단을 내리치면서 그는 무시무시한 자신의 죄악들을 토로하였습니다.
김장로의 고백은 마치 기름에 불을 던지듯이 그곳의 집회를 회개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고꾸라지자 온 청중 가운데 갑자기 회개의 울음 바다가 되어 너나할 것 없이 그곳에 모인 모든 남자들이 울고 또 우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회개가 터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시간이 없어 평양의 오순절에 일어났던 다른 많은 간증들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의 바람은 회개하는 영 위에 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모든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철저한 회개를 경험할 때, 성령께서는 더욱 거센 폭풍으로 부흥의 바람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 각자와 우리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 위에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평양대부흥은 말씀과 회개 위에 임한 성령의 바람이었음
우리가 역사의 기록을 연구하면 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1907년 평양대부흥은 성령의 강한 역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평양의 오순절은 말씀과 회개 위에 임한 성령의 폭풍이었습니다.
모인 청중들은 성령께서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을 치심에 따라 계속해서 울부짖었고, 그것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것이었습니다. 블레어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몇 사람은 바닥 위에 몸을 던져 쭉 뻗어 있었고, 수백명이 하늘로 뻗고 서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서로 용서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이날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자기 내면에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죄악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맥큔 선교사의 보고에, “기도의 물결이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자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합류하여, 그들의 간구가 죄로 인한 탄식과 뒤섞였습니다. 그런 후 잠시의 막간에 이 사람 저 사람이 일어나 자비를 호소하며 영혼의 무거운 짐을 토로했습니다.”
15일 저녁 집회에서 선교사들은 성령 강림의 역사에 너무 놀라서, 참석한 청중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상의할 정도였습니다.
성령의 강림을 기도했던 대로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한국교회를 축복하신 것에 감사하면서, 그 강한 성령의 역사에 당황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이들은 옛 생활에서 돌아서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했고, 그들 중에 여러 사람들이 수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은혜 가운데 거했습니다.
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하여 전국 각지로 요원의 불길같이 번져 나갔고, 이로 인해 같은 해 1907년 9월에는 마침내 한국교회가 독립적으로 총회조직을 갖게 되어 명실공히 독립된 교회 정치체계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평양대부흥은 이후 각 지방으로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제주도와 중국선교를 통해 국외로 번져나갔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그후 1909-1910년 백만인 구령운동으로 확산되었고, 그리하여 일제에 짓밟힌 나라를 먼저 영적으로 살리고, 후에 육적으로 살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에 다시 한번 평양의 오순절을 경험해야겠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이 우리 시대에 다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의 부으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예리한 검으로 사용하여 설교해야 합니다. 외쳐지는 말씀을 통해 예리하게 지적된 죄악을 회개하고 청산하면서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와야 합니다.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John Stott)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실패를 양심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의 실패가 그리스도와 세상에 대한 범죄(offense)임을 인정해야 합니다.교회의 말(talk)과 교회의 삶(walk) 사이에 공신력의 갭이 있음을 보고 통곡해야 합니다. 우리의 실패에 대해 쉽게 변명하고 우리의 실패를 쉽게 묵인해버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자식을 주님보다 더 우선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는 하나님 싫어하시는 일이라도 망설이지 않거 행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교만, 탐욕, 사기, 성적 타락, 횡령, 미움, 나태, 분열, 가정 파괴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공적으로 지은 죄는 공적으로 회개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손해 끼친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갚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날마다 생명적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바로 섬겨야 합니다.
부흥의 폭풍이 불어오게 하려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죄를 지적하고 깨우치는 말씀, 그리고 그 말씀에 아멘하며 철저하게 회개하고 청산하는 실천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 개인과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 위에 성령의 폭풍, 생명의 폭풍, 기적의 폭풍, 부흥의 폭풍이 불어오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출처/박순오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