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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시127:3-5)
자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소홀히 여길 존재가 아니며, 장차 가정의 주인이 될 복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사랑하신 것처럼 자식을 깊이 사랑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말씀대로 양육한다면 가정과 사회에서 귀중한 존재로 자라나고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명자로 그 직임을 다하는 훌륭한 인격이 될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어떤 회계사가 비록 가난하지만 아주 진실한 교인의 세금보고서를 대신 작성해주려고 찾아갔습니다. 그 회계사는 “소유하고 계신 재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하고 부탁했습니다. “글쎄요. 나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첫째, 나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 크고 아름다운 집이 천국에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평화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넷째, 말로 다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고요, 다섯째,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섯째, 현숙하고 신실한 아내가 있고 일곱째, 건강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여덟째, 진실하고 변함없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홉째, 캄캄한 밤중에도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열 번째,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열한 번째,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러자 그 회계사는 장부를 조용히 덮으면서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신 28: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시 132: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하늘의 신령한 복과 물질의 복, 그리고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창 49:25)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처음 인류에게 주셨던 번성의 복이 자녀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위한 상급입니다.
기쁨의 상급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들에게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의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지만, 아들이 정말 바보가 되기 전에는 유산을 물려줄 수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랍비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을 남겼군요. 당신의 아들이 정말 바보가 되지 않는 한 재산을 물려줄 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갈대를 입에다 물고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마루 위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자기 아들이 아이를 낳아 그 자식을 귀여워하면 자기의 전 재산을 상속시켜 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이 태어나면 인간은 바보가 된다.’는 속담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유태인에게는 자식은 매우 소중한 존재로서, 부모들은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자녀는 사랑의 열매로서 가정에서 기쁨을 심어 줍니다.
(시 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어버이를 닮은 외모, 성격 그리고 행동들은 부모를 기쁘게 합니다.
자녀를 통한 기쁨은 그의 자녀가 된 성도들로 인한 하나님의 기쁨을 추측케 합니다.
(창 21: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부모 앞에서 자녀가 기쁨의 대상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성도는 기쁨의 대상입니다.
안전한 방책이 됩니다.
성숙한 자녀는 부모를 지켜 주는 방책이 됩니다.
(시 127:5)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룻의 고백은 시어머니를 끝까지 섬기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어떠한 역경이 닥쳐도 시어머니를 섬기겠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녀는 "죽는 일 외에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그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룻은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남의 밭에서 이삭을 주웠습니다 룻은 이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으며, 또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는 아무리 괴로운 환경을 만나도 인내와 기쁨으로 전진합니다. 룻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시어머니 공경하기를 다하였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대하여 순종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또한 현숙한 여인으로서 온 동리에 소문이 났습니다. 룻은 참으로 물질로써 시어머니를 공경할 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 모자람이 없는 효부였습니다. 이것은 룻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생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며느리로서 이러한 삶을 살았다면 자녀로서 부모에게 정신적인 면은 물론 육신적인 문제까지 책임을 지는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공양합니다
(창 45: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창 45: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창 45: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창 45:17)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창 45:18)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창 45:19) 이제 명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오라
(창 46: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창 46:29) 요셉이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아비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 동안 울매
개인주의나 핵가족화 등 비인간적인 풍조가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양육된 자녀는 부모를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인격 자체이신 하나님을 중심한 자녀의 양육은 바로 이러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최선의 상태로 이끌어 줍니다.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는 전도한 자의 영적인 자녀입니다. 전도자는 회심한 자가 말씀 안에서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볼 때 큰 힘을 얻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자가 혹 낙심해 있을 때 위로와 확신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사랑의 터전이며 사랑의 열매인 자녀를 양육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귀하여 양육하는 것은 부모 된 성도의 책임입니다. 혼란한 가치관이 젊은이들을 방황하게 만드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 속에서 올바른 양육 받은 자녀는 복음을 위해, 사회를 위해 귀하게 쓰이는 자가 될 것입니다.
능력의 상급입니다.
자녀를 통해서 부모는 심신의 용기를 얻게 됩니다. 자녀를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 127: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화살은 장사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인 것입니다.
(시 120:4)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활은 쏘아서 과녁을 맞히는 도구입니다.
중국 [열자전]에 나오는 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위라는 천하의 명궁이 있었는데 활 쏘는 데는 가히 도사여서 그는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기창이라는 젊은이는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으로 독보적인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제자인 기창에게는 자기의 스승인 비위를 향하여 '저 사람만 없으면 내가 천하에 제일인데'하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위가 이웃마을에 갔다가 해질 무렵 아카시아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무장이었기 때문에 긴장을 하며 방어태세만 갖추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디선가 급하게 화살이 날라 왔습니다. 그는 재빨리 피했고 곧 누가 활을 쏘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옆의 아카시아 나무의 잎줄기로 활을 만들고. 수염을 뽑아서 시위를 만들고, 아카시아 가시로 화살을 만들었습니다. 건너편에서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왔을 때 그의 아카시아 화살도 시위를 떠나 공중에서 부딪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번, 더 이상 기창은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지쳐버린 기창은 스승 앞에 뛰어나와 엎드려 자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스승이 제자를 일으켜 세우며 “내가 네게 기술은 가르쳤지만 내면을 익히지 못했으니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말했다는 고사입니다. 제자인 기창의 궁술은 이미 노출된 기술이었고. 스승의 것은 내면에 간직된 것이었습니다. 내면에 간직된 궁술과 노출된 궁술은 견줄 수가 없습니다. 겸손과 교만의 차이입니다. 신앙은 노출된 것 뿐 아니라 오히려 간직된 깊이의 인격이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노출된 신앙, 노출된 지식은 노출되지 않은 인격과 신앙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화살은 자신 스스로 과녁을 향해 달려가지 못합니다. 화살은 사람에 의해 시위가 당겨져야만 과녁을 맞힐 수가 있습니다.
자녀의 방탕과 비행은 그 원인을 부모에게 둡니다. 부모의 손에 의해 활시위가 잘못 당겨졌기 때문에 과녁을 빚나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장사되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활시위가 당겨져야 합니다.
성령의 검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활시위에서 출발한다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악의 과녁에 명중되는 능력의 화살이 될 것입니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그러므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바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의 활시위에서 출발하도록 고집 부릴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전능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출발하는 화살이 되도록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부모에게는 바르게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향해 돌려지는 기업이므로 하나님 중심의 양육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한 부모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을 양육한 한나, 삼손을 양육한 마노아 부부, 디모데를 양육한 유니게와 로이스가 그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는 것이 가정에서 실제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며 이웃 사랑의 계명이 처음 실행되는 곳도 역시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바른 태도와 책임 있는 의식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시키는 기초가 됩니다.
스잔나 웨슬리 여사의 자녀 교육의 규칙이 있습니다.
1. 비겁한 마음을 먹거나, 벌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고치기 어려운 거짓말 하는 버릇이 생길까봐 늘 살폈다. 그래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누구든지 잘못하였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다시는 안하기로 약속하면 때려주지 않는다는 법을 세워 놓았다. 이 규칙 때문에 많은 거짓말을 방지할 수 있었다. 식구들이 이 규칙에 충실했던 만큼은 거짓말을 방지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한 아이가 그렇게 하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슬쩍 둘러대거나 얼버 무리거나 하였다. 그러나 (한명을 제외하고는) 친절하게 대해주면 모두 그런 일은 없었다. 어쨋든 대부분이 솔직하게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2. 거짓말이나, 훔치는 일이나, 교회 안에서 장난치는 일이나, 주일날 장난치는 일이나, 복종을 안하는 일이나, 싸우거나 하는 등등의 죄가 되는 일을 했을 때는 절대로 벌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일은 없었다.
3. 똑같은 잘못 때문에 두 번 야단을 치거나 매를 때리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일단 고치고 난 다음에 다시 그것을 책망해서는 안된다.
4. 특히 스스로 생각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항상 칭찬을 해주고 결과에 따라서 자주 상도 준다.
5. 어떤 아이든지 순종하는 행동을 하거나 남을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마음먹고 행동했을 때는 그것이 비록 제대로 되지는 않았어도 그것을 잘 받아들여 주고 다음에는 더욱 잘 하도록 사랑으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6. 예의범절을 바르게 하고 남의 물건이면 비록 그 값어치가 일전짜리 핀 하나라도 침해하지 말고 주인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는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 이 법칙은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가르쳐도 모자람이 없다. 선생이나 부모들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할텐데 막상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것 같이 부끄럽게도 정의를 무시하는 일들이 생겨난다.
<웨슬리의 어머니 스잔나 여사가 존 웨슬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주광조 장로님은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막내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뼈를 깎는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 떠나고 새 어머니로 들어온 오정모 사모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 목사님이 옥살이를 하는 동안 할머니와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주 장로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혹독했던 신앙훈련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주 목사님이 감옥에 끌려간 뒤로는 일본 사람들이 양식 배급도 주지 않고 성도들이 돌보는 것까지도 가로막고 감시했습니다.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해서 늘 허기진 광조는 어머니를 따라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날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씩 기도하고 이어서 30분 동안 성경을 읽었습니다. 저녁에도 예배드리고 기도를 했는데, 어쩌다가 졸기라도 하면 어머니로부터 야단을 맞고 통성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졸음을 막기 위해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서 기도했습니다. 광조에게는 이런 생활이 은혜롭고 감동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배와 기도가 지겨웠습니다. 어머니의 엄격한 신앙생활에 반발심이 일어나고 때로는 불평과 원망스러움이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을 갖게 했습니다. 1944년, 아버지가 순교의 제물이 되어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렇게 오랫동안 잠도 안자고 밥도 굶으면서 기도했건만 결과가 이렇게 비참한 것인가"" 생각할 때 억울하고 분해서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절망에 몸을 떨었습니다. 아버지를 돌박산 공동묘지에 매장했던 날""하나님이 다 뭐야? 나는 절대로 목사는 안될거야""하고 울었습니다. 큰 형 주영진 전도사도 6. 25사변 때 공산당에 의해 순교 당했습니다. 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광조는 남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에 믿는 아내를 만나서 다시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에게서 성경을 배우면서 심령의 문이 열리고, 믿음으로 살았던 부모님에 대한 경외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았던 차원 높은 신앙에 대한 존경심이었습니다.
원종수 권사는 서울대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의사고시에도 수석으로 합격했는데 지금은 미국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 월급을 받았을 때 월급봉투를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기뻐하시면서 ""이것 첫 열매 아니냐? 전부 하나님께 바쳐야한다."" 하시고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얼마 후에는 수석합격 축하금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그 때도 "이것은 너가 처음으로 받은 상금 아니냐?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셨습니다. 원종수는 그 때 어머니 앞에서 울면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철저한 신앙으로 길러주시는 어머니가 참으로 귀하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예배 시간에 찬양대로 봉사하고,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학생회 임역원으로 섬기며, 밤 예배 시간이나 기도회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하였습니다.
출처/강성찬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자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소홀히 여길 존재가 아니며, 장차 가정의 주인이 될 복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사랑하신 것처럼 자식을 깊이 사랑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말씀대로 양육한다면 가정과 사회에서 귀중한 존재로 자라나고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명자로 그 직임을 다하는 훌륭한 인격이 될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어떤 회계사가 비록 가난하지만 아주 진실한 교인의 세금보고서를 대신 작성해주려고 찾아갔습니다. 그 회계사는 “소유하고 계신 재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하고 부탁했습니다. “글쎄요. 나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첫째, 나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 크고 아름다운 집이 천국에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평화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넷째, 말로 다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고요, 다섯째,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섯째, 현숙하고 신실한 아내가 있고 일곱째, 건강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여덟째, 진실하고 변함없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홉째, 캄캄한 밤중에도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열 번째,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열한 번째,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러자 그 회계사는 장부를 조용히 덮으면서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신 28: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시 132: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하늘의 신령한 복과 물질의 복, 그리고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창 49:25)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처음 인류에게 주셨던 번성의 복이 자녀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위한 상급입니다.
기쁨의 상급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들에게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의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지만, 아들이 정말 바보가 되기 전에는 유산을 물려줄 수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랍비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을 남겼군요. 당신의 아들이 정말 바보가 되지 않는 한 재산을 물려줄 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갈대를 입에다 물고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마루 위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자기 아들이 아이를 낳아 그 자식을 귀여워하면 자기의 전 재산을 상속시켜 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이 태어나면 인간은 바보가 된다.’는 속담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유태인에게는 자식은 매우 소중한 존재로서, 부모들은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자녀는 사랑의 열매로서 가정에서 기쁨을 심어 줍니다.
(시 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어버이를 닮은 외모, 성격 그리고 행동들은 부모를 기쁘게 합니다.
자녀를 통한 기쁨은 그의 자녀가 된 성도들로 인한 하나님의 기쁨을 추측케 합니다.
(창 21: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부모 앞에서 자녀가 기쁨의 대상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성도는 기쁨의 대상입니다.
안전한 방책이 됩니다.
성숙한 자녀는 부모를 지켜 주는 방책이 됩니다.
(시 127:5)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룻의 고백은 시어머니를 끝까지 섬기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어떠한 역경이 닥쳐도 시어머니를 섬기겠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녀는 "죽는 일 외에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그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룻은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남의 밭에서 이삭을 주웠습니다 룻은 이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으며, 또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는 아무리 괴로운 환경을 만나도 인내와 기쁨으로 전진합니다. 룻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시어머니 공경하기를 다하였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대하여 순종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또한 현숙한 여인으로서 온 동리에 소문이 났습니다. 룻은 참으로 물질로써 시어머니를 공경할 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 모자람이 없는 효부였습니다. 이것은 룻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생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며느리로서 이러한 삶을 살았다면 자녀로서 부모에게 정신적인 면은 물론 육신적인 문제까지 책임을 지는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공양합니다
(창 45: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창 45: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창 45: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창 45:17)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창 45:18)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창 45:19) 이제 명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오라
(창 46: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창 46:29) 요셉이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아비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 동안 울매
개인주의나 핵가족화 등 비인간적인 풍조가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양육된 자녀는 부모를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인격 자체이신 하나님을 중심한 자녀의 양육은 바로 이러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최선의 상태로 이끌어 줍니다.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는 전도한 자의 영적인 자녀입니다. 전도자는 회심한 자가 말씀 안에서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볼 때 큰 힘을 얻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자가 혹 낙심해 있을 때 위로와 확신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사랑의 터전이며 사랑의 열매인 자녀를 양육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귀하여 양육하는 것은 부모 된 성도의 책임입니다. 혼란한 가치관이 젊은이들을 방황하게 만드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 속에서 올바른 양육 받은 자녀는 복음을 위해, 사회를 위해 귀하게 쓰이는 자가 될 것입니다.
능력의 상급입니다.
자녀를 통해서 부모는 심신의 용기를 얻게 됩니다. 자녀를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 127: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화살은 장사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인 것입니다.
(시 120:4)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활은 쏘아서 과녁을 맞히는 도구입니다.
중국 [열자전]에 나오는 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위라는 천하의 명궁이 있었는데 활 쏘는 데는 가히 도사여서 그는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기창이라는 젊은이는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으로 독보적인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제자인 기창에게는 자기의 스승인 비위를 향하여 '저 사람만 없으면 내가 천하에 제일인데'하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위가 이웃마을에 갔다가 해질 무렵 아카시아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무장이었기 때문에 긴장을 하며 방어태세만 갖추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디선가 급하게 화살이 날라 왔습니다. 그는 재빨리 피했고 곧 누가 활을 쏘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옆의 아카시아 나무의 잎줄기로 활을 만들고. 수염을 뽑아서 시위를 만들고, 아카시아 가시로 화살을 만들었습니다. 건너편에서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왔을 때 그의 아카시아 화살도 시위를 떠나 공중에서 부딪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번, 더 이상 기창은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지쳐버린 기창은 스승 앞에 뛰어나와 엎드려 자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스승이 제자를 일으켜 세우며 “내가 네게 기술은 가르쳤지만 내면을 익히지 못했으니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말했다는 고사입니다. 제자인 기창의 궁술은 이미 노출된 기술이었고. 스승의 것은 내면에 간직된 것이었습니다. 내면에 간직된 궁술과 노출된 궁술은 견줄 수가 없습니다. 겸손과 교만의 차이입니다. 신앙은 노출된 것 뿐 아니라 오히려 간직된 깊이의 인격이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노출된 신앙, 노출된 지식은 노출되지 않은 인격과 신앙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화살은 자신 스스로 과녁을 향해 달려가지 못합니다. 화살은 사람에 의해 시위가 당겨져야만 과녁을 맞힐 수가 있습니다.
자녀의 방탕과 비행은 그 원인을 부모에게 둡니다. 부모의 손에 의해 활시위가 잘못 당겨졌기 때문에 과녁을 빚나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장사되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활시위가 당겨져야 합니다.
성령의 검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활시위에서 출발한다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악의 과녁에 명중되는 능력의 화살이 될 것입니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그러므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바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의 활시위에서 출발하도록 고집 부릴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전능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출발하는 화살이 되도록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부모에게는 바르게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향해 돌려지는 기업이므로 하나님 중심의 양육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한 부모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을 양육한 한나, 삼손을 양육한 마노아 부부, 디모데를 양육한 유니게와 로이스가 그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는 것이 가정에서 실제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며 이웃 사랑의 계명이 처음 실행되는 곳도 역시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바른 태도와 책임 있는 의식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시키는 기초가 됩니다.
스잔나 웨슬리 여사의 자녀 교육의 규칙이 있습니다.
1. 비겁한 마음을 먹거나, 벌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고치기 어려운 거짓말 하는 버릇이 생길까봐 늘 살폈다. 그래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누구든지 잘못하였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다시는 안하기로 약속하면 때려주지 않는다는 법을 세워 놓았다. 이 규칙 때문에 많은 거짓말을 방지할 수 있었다. 식구들이 이 규칙에 충실했던 만큼은 거짓말을 방지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한 아이가 그렇게 하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슬쩍 둘러대거나 얼버 무리거나 하였다. 그러나 (한명을 제외하고는) 친절하게 대해주면 모두 그런 일은 없었다. 어쨋든 대부분이 솔직하게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2. 거짓말이나, 훔치는 일이나, 교회 안에서 장난치는 일이나, 주일날 장난치는 일이나, 복종을 안하는 일이나, 싸우거나 하는 등등의 죄가 되는 일을 했을 때는 절대로 벌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일은 없었다.
3. 똑같은 잘못 때문에 두 번 야단을 치거나 매를 때리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일단 고치고 난 다음에 다시 그것을 책망해서는 안된다.
4. 특히 스스로 생각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항상 칭찬을 해주고 결과에 따라서 자주 상도 준다.
5. 어떤 아이든지 순종하는 행동을 하거나 남을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마음먹고 행동했을 때는 그것이 비록 제대로 되지는 않았어도 그것을 잘 받아들여 주고 다음에는 더욱 잘 하도록 사랑으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6. 예의범절을 바르게 하고 남의 물건이면 비록 그 값어치가 일전짜리 핀 하나라도 침해하지 말고 주인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는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 이 법칙은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가르쳐도 모자람이 없다. 선생이나 부모들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할텐데 막상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것 같이 부끄럽게도 정의를 무시하는 일들이 생겨난다.
<웨슬리의 어머니 스잔나 여사가 존 웨슬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주광조 장로님은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막내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뼈를 깎는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 떠나고 새 어머니로 들어온 오정모 사모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 목사님이 옥살이를 하는 동안 할머니와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주 장로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혹독했던 신앙훈련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주 목사님이 감옥에 끌려간 뒤로는 일본 사람들이 양식 배급도 주지 않고 성도들이 돌보는 것까지도 가로막고 감시했습니다.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해서 늘 허기진 광조는 어머니를 따라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날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씩 기도하고 이어서 30분 동안 성경을 읽었습니다. 저녁에도 예배드리고 기도를 했는데, 어쩌다가 졸기라도 하면 어머니로부터 야단을 맞고 통성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졸음을 막기 위해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서 기도했습니다. 광조에게는 이런 생활이 은혜롭고 감동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배와 기도가 지겨웠습니다. 어머니의 엄격한 신앙생활에 반발심이 일어나고 때로는 불평과 원망스러움이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을 갖게 했습니다. 1944년, 아버지가 순교의 제물이 되어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렇게 오랫동안 잠도 안자고 밥도 굶으면서 기도했건만 결과가 이렇게 비참한 것인가"" 생각할 때 억울하고 분해서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절망에 몸을 떨었습니다. 아버지를 돌박산 공동묘지에 매장했던 날""하나님이 다 뭐야? 나는 절대로 목사는 안될거야""하고 울었습니다. 큰 형 주영진 전도사도 6. 25사변 때 공산당에 의해 순교 당했습니다. 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광조는 남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에 믿는 아내를 만나서 다시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에게서 성경을 배우면서 심령의 문이 열리고, 믿음으로 살았던 부모님에 대한 경외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았던 차원 높은 신앙에 대한 존경심이었습니다.
원종수 권사는 서울대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의사고시에도 수석으로 합격했는데 지금은 미국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 월급을 받았을 때 월급봉투를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기뻐하시면서 ""이것 첫 열매 아니냐? 전부 하나님께 바쳐야한다."" 하시고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얼마 후에는 수석합격 축하금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그 때도 "이것은 너가 처음으로 받은 상금 아니냐?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셨습니다. 원종수는 그 때 어머니 앞에서 울면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철저한 신앙으로 길러주시는 어머니가 참으로 귀하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예배 시간에 찬양대로 봉사하고,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학생회 임역원으로 섬기며, 밤 예배 시간이나 기도회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하였습니다.
출처/강성찬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