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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받는 청지기 (누가복음 16:1~13)
엊그제 차 안에서 극동방송을 듣노라니까 어느 여신도가 본문 말씀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데, “어떻게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제멋대로 탕감해준 사람을 잘했다고 칭찬을 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가지고 다시 한번 설교할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비유는 비유 자체의 도덕성을 따질 것이 아니라 그 비유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가령,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도적같이 오신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도적이란 말입니까? 아니지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아무도 예기치 않은 때에 갑자기 오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에서 가장 핵심적인 교훈은 청지기가 그 직분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빼앗긴 후의 미래를 대비해서 써두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즉 우리의 재물도, 우리의 생명도, 우리의 자식도, 명예도, 다 없어질 날이 오는데 그 날이 오기 전에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늘나라를 위하여 지혜롭게 써두는 자도 지혜로운 사람이요, 안개와 같은 이 세상에 보화를 쌓아두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예수님이 강조하신 말씀 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언제 죽을 런지 알지도 못하는 세상에서 죽을 때 안고가거나 지고 갈 수도 없는 재물인데 미래를 위해 선하게 사용할 줄 모르고 죽을 때까지 붙들고 있다가 죽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도 대부분 그렇게 사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1. 인간은 모두 청지기입니다
“청지기”(steward)란 말은 “주인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자”란 뜻입니다. 헬라어로 “짐”(ocko)이란 말과 “관리하다”(vouos)란 말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인데 경제(economy)란 말이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짐”이란 말이 있듯이 재물이 많을수록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청지기가 가져야 할 첫째 마음의 자세는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이 따로 있고 나는 그 분의 것을 맡아 관리할 뿐이라는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벌었다고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므로 주인을 기쁘게 하고 주인의 유익을 위해서 써야지 내가 소유주인 양 내 멋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내가 청지기로서 내가 맡아 두는 동안 주인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바르게 사용하면 그것은 영원히 내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 아닙니다. 언제 주인이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고 언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7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이 영원히 내 것이 될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기도 하고 선한 사업에 투자해야 할 때 투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하게 바로 쓰는 것을 보면 주인이 더 큰 것을 맡기실 터인데 바로 쓰지 못하고 움켜쥐려고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큰 것을 맡겨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2. 빼앗길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재물도, 건강도, 생명도, 다 거두어 가시는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장 2절에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라고 주인이 명령을 내린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 다 버리고 주님 앞에 서서 일생 행한 일을 셈하고 심판 받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히 세상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재물을 소유할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Ⅱ는 이상한 종을 두고 있었는데 아침마다 인사할 때 “대왕이여,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member that you must die)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죽어 하나님 앞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로마서 14장 10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서 바른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having”, 가지는 것보다 “being” 즉 존재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물질의 속박에서 떠나 자유하라는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신 것도, 독자 이삭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도, 창조주가 되시고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편안히 잘 살게 될 때 우상숭배에 빠지고 애굽의 종이 되어갈 때 바로 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주어서 애굽을 떠나 광야로 내모신 것도 세상 것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광야는 자유의 상징(symbol of liberation)이었습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은 집이나 토지도 없고 도시도 돈을 저축하는 은행도 없는 곳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곳입니다. 소유할 것도 없고 소유에는 관심도 없는 곳입니다.
천막은 쉽게 세울 수 있고 쉽게 헐 수 있는 텐트입니다. 어느 곳에 고정된 삶(fixed life)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이리저리 다니며 목축업을 하는 유목민인데 이것 역시 한 곳에 집착하지 않는 생활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착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기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심령이 바로 이런 자유의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주인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용감히 투자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
주인에게서 청지기 직분을 사표 내라고 하는 명령을 들은 이 청지기는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사표를 낸 다음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 아직 청지기로 있는 동안에 인심을 써두려고 작정했습니다. 기름 100말 빚진 자에게는 50말로 탕감해주고, 밀 백 석 빚진 자에게는 80석으로 탕감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자기를 영접해주리라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했다는 것은 죽은 후에 영원한 세계를 위해서 재물을 투자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일이며 하나님께 칭찬 받을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이 청지기는 과거를 고칠 수는 없지만 미래를 준비할 줄은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는 재물을 가져갈 수는 없지만 미리 보내둘 수는 있다는 말대로 미래의 영원한 천국을 위해 기왕에 없어질 물질을 투자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세상에만 재물을 쌓아두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여 곡식을 다 쌓아둘 곳이 없으니까 곡간을 다시 짓고 곡식을 쌓아두며 말하기를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12:19)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세상에만 쌓아두고 죽음을 준비할 줄 모르는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0-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세상에만 재물을 쌓아 두는 자를 어리석은 바보라고 말씀하셨고, 이 청지기와 같이 빼앗길 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영원한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사람을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20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해 써 둔 물질은 도적맞는 법도 없고 부도나는 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돈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지혜롭게 투자할 줄을 모르고 자기 육신을 위해 세상에만 쌓다가 죽고 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물질을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유익을 위해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면 돈이 좋은 종이 될 것이고 우리의 자원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지 않으면 우리가 돈의 종이 될 것이며 돈은 무서운 주인이 될 것입니다. Henry Fielding은 말하기를 “돈을 당신의 신으로 말들라. 그러면 그것이 마귀와 같이 너를 괴롭히는 존재가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돈이란 전 세계 어디나 갈 수 있는 패스포트와 같은 것이며 천국만 제외하고, 행복만 제외하고, 무엇이나 준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4.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만들라
예수님은 돈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 이유는 돈이란 중성(neutral)이 아니라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돈을 성별시킬 수가 있으며 선을 위해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돈은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딤전3:3?8, 딛1:7?11, 벧전5:2).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재물을 불의의 재물(the mammon of unrighteousness)이라고 했습니다. 이 불의의 재물도 주님의 친구를 만드는데 쓰라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주님의 원수가 된 인간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주님의 친구로 만들면 이다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우리를 반갑게 영접해 줄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하셨고, 4절에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영혼구원을 위해 투자해두면 언젠가는 천국에서 우리를 환영할 것이며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출처/김홍도 목사 설교 중에서
엊그제 차 안에서 극동방송을 듣노라니까 어느 여신도가 본문 말씀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데, “어떻게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제멋대로 탕감해준 사람을 잘했다고 칭찬을 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가지고 다시 한번 설교할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비유는 비유 자체의 도덕성을 따질 것이 아니라 그 비유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가령,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도적같이 오신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도적이란 말입니까? 아니지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아무도 예기치 않은 때에 갑자기 오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에서 가장 핵심적인 교훈은 청지기가 그 직분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빼앗긴 후의 미래를 대비해서 써두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즉 우리의 재물도, 우리의 생명도, 우리의 자식도, 명예도, 다 없어질 날이 오는데 그 날이 오기 전에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늘나라를 위하여 지혜롭게 써두는 자도 지혜로운 사람이요, 안개와 같은 이 세상에 보화를 쌓아두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예수님이 강조하신 말씀 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언제 죽을 런지 알지도 못하는 세상에서 죽을 때 안고가거나 지고 갈 수도 없는 재물인데 미래를 위해 선하게 사용할 줄 모르고 죽을 때까지 붙들고 있다가 죽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도 대부분 그렇게 사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1. 인간은 모두 청지기입니다
“청지기”(steward)란 말은 “주인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자”란 뜻입니다. 헬라어로 “짐”(ocko)이란 말과 “관리하다”(vouos)란 말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인데 경제(economy)란 말이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짐”이란 말이 있듯이 재물이 많을수록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청지기가 가져야 할 첫째 마음의 자세는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이 따로 있고 나는 그 분의 것을 맡아 관리할 뿐이라는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벌었다고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므로 주인을 기쁘게 하고 주인의 유익을 위해서 써야지 내가 소유주인 양 내 멋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내가 청지기로서 내가 맡아 두는 동안 주인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바르게 사용하면 그것은 영원히 내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 아닙니다. 언제 주인이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고 언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7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이 영원히 내 것이 될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기도 하고 선한 사업에 투자해야 할 때 투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하게 바로 쓰는 것을 보면 주인이 더 큰 것을 맡기실 터인데 바로 쓰지 못하고 움켜쥐려고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큰 것을 맡겨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2. 빼앗길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재물도, 건강도, 생명도, 다 거두어 가시는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장 2절에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라고 주인이 명령을 내린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 다 버리고 주님 앞에 서서 일생 행한 일을 셈하고 심판 받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히 세상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재물을 소유할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Ⅱ는 이상한 종을 두고 있었는데 아침마다 인사할 때 “대왕이여,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member that you must die)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죽어 하나님 앞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로마서 14장 10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서 바른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having”, 가지는 것보다 “being” 즉 존재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물질의 속박에서 떠나 자유하라는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신 것도, 독자 이삭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도, 창조주가 되시고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편안히 잘 살게 될 때 우상숭배에 빠지고 애굽의 종이 되어갈 때 바로 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주어서 애굽을 떠나 광야로 내모신 것도 세상 것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광야는 자유의 상징(symbol of liberation)이었습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은 집이나 토지도 없고 도시도 돈을 저축하는 은행도 없는 곳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곳입니다. 소유할 것도 없고 소유에는 관심도 없는 곳입니다.
천막은 쉽게 세울 수 있고 쉽게 헐 수 있는 텐트입니다. 어느 곳에 고정된 삶(fixed life)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이리저리 다니며 목축업을 하는 유목민인데 이것 역시 한 곳에 집착하지 않는 생활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착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기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심령이 바로 이런 자유의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주인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용감히 투자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
주인에게서 청지기 직분을 사표 내라고 하는 명령을 들은 이 청지기는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사표를 낸 다음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 아직 청지기로 있는 동안에 인심을 써두려고 작정했습니다. 기름 100말 빚진 자에게는 50말로 탕감해주고, 밀 백 석 빚진 자에게는 80석으로 탕감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자기를 영접해주리라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했다는 것은 죽은 후에 영원한 세계를 위해서 재물을 투자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일이며 하나님께 칭찬 받을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이 청지기는 과거를 고칠 수는 없지만 미래를 준비할 줄은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는 재물을 가져갈 수는 없지만 미리 보내둘 수는 있다는 말대로 미래의 영원한 천국을 위해 기왕에 없어질 물질을 투자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세상에만 재물을 쌓아두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여 곡식을 다 쌓아둘 곳이 없으니까 곡간을 다시 짓고 곡식을 쌓아두며 말하기를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12:19)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세상에만 쌓아두고 죽음을 준비할 줄 모르는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0-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세상에만 재물을 쌓아 두는 자를 어리석은 바보라고 말씀하셨고, 이 청지기와 같이 빼앗길 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영원한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사람을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20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해 써 둔 물질은 도적맞는 법도 없고 부도나는 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돈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지혜롭게 투자할 줄을 모르고 자기 육신을 위해 세상에만 쌓다가 죽고 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물질을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유익을 위해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면 돈이 좋은 종이 될 것이고 우리의 자원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지 않으면 우리가 돈의 종이 될 것이며 돈은 무서운 주인이 될 것입니다. Henry Fielding은 말하기를 “돈을 당신의 신으로 말들라. 그러면 그것이 마귀와 같이 너를 괴롭히는 존재가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돈이란 전 세계 어디나 갈 수 있는 패스포트와 같은 것이며 천국만 제외하고, 행복만 제외하고, 무엇이나 준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4.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만들라
예수님은 돈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 이유는 돈이란 중성(neutral)이 아니라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돈을 성별시킬 수가 있으며 선을 위해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돈은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딤전3:3?8, 딛1:7?11, 벧전5:2).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재물을 불의의 재물(the mammon of unrighteousness)이라고 했습니다. 이 불의의 재물도 주님의 친구를 만드는데 쓰라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주님의 원수가 된 인간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주님의 친구로 만들면 이다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우리를 반갑게 영접해 줄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하셨고, 4절에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영혼구원을 위해 투자해두면 언젠가는 천국에서 우리를 환영할 것이며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출처/김홍도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