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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인생 투자법 (마25:14-30)
또 어떤 사람이 타국(他國)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 그 재능(才能)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會計)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로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忠誠)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對答)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豊足)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IMF를 거치면서 우리 국민들이 한가지 눈을 떤 것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투자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 IMF동안 어떤 사람들은 투자를 잘못해서 평생 모은 재산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조금 더 높은 이자를 받기 위해서 안전하지 못한 금융기관에 자기의 퇴직금과 모든 것을 다 맡겼다가 한순간에 이자는 물론 원금도 찾지 못해 그 자리에서 실신한 사람들! 나아가 그 일로 말미암아 가정이 파탄되고 또한 신문에서 이미 보도되었듯이 자기의 인생이 완전히 끝난 걸로 생각해서 자살을 행했던 사람들! 우리는 그들의 소식을 뉴스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접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들은 주식에 투자하여 IMF 기간동안 단 몇 개월 동안 10배의 이윤을 남겼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민입니다. 돈이 조금 생기면 신탁예금에 맡겨야 하는지, 정기예금에 맡겨야 하는지, 우체국이 안전할까, 농협이 안전할까,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는가, 주식에 투자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날 유행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투자 설명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재산을 올바로 투자하기 위해 이 투자 설명회를 찾아다닙니다.
오늘 저 역시 투자에 관한 얘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돈에 관한 투자가 아닙니다. 오늘 아침 저는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투자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의 인생의 투자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이 귀한 인생의 투자, 그것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통해 두 가지 중 한 가지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낭비하는 것이요, 하나는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주 다양한 것 같아도 성경은 그 인생을 명확하게 둘로 나눕니다. 하나는 낭비하는 인생이요, 다른 하나는 투자하는 인생입니다.
낭비하는 인생은 그저 이 땅에 있는 시간만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이에요. 이 세상의 인생이 전부인 줄 알고 자기에게 주어진 생애동안 즐기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 이 세상의 무엇을 가지기 위해, 자기의 모든 인생을 다 소비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낭비하는 인생이라 지적해 줍니다. 투자하는 인생은 그와는 다르게 영원한 세계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오늘 나의 삶을 헌신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투자하는 삶이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낭비자가 아닌 헌신자로 이 땅에 부름 받았습니다. 그저 대충 살기 위해 이 땅에 보내진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받은 자들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지혜로운 인생의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인생을 투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오늘 이 유명한 달란트 비유를 통해 그 비결을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몇 푼의 돈이 아닌, 이 귀한 인생을 어디에, 어떤 원리를 따라 투자해야 한단 말인가? 여러분, 우리가 단돈 몇 억원을 투자하고서도 그 투자가 잘못되어 자기의 목숨을 끊거나, 우리의 애를 태우거든, 하물며 인생의 투자를 잘못 했다면 그 결과는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 말씀을 통해, 남은 인생의 투자 비결을 배우고 돌아가시는, 우리 사랑하는 영안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 소유주를 올바로 알자
먼저 우리가 지혜롭게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소유주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서적 인생 투자법에 기본원리입니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것!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가지고 있던 그 모든 물건들은 당신이 이 땅에서 그것을 소유하기 전부터 존재해 있었습니다. 또한 당신이 이 땅을 떠난 후에도 그것은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내 것을 소유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가만히 성격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땅에서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70년, 80년, 혹은 90년 동안 빌려쓸 뿐이에요. 언젠가는 돌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날에 만물을 다스리기 위해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 인간은 만물의 소유자로 지음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다만 이 만물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하나님에 의해 부름 받고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관리자로 부름 받았을 뿐, 소유자로 부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몰라 인생의 투자에 실패합니다. 내 인생을 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시간을 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건강을 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자식을 내 것이라 생각해요. 여러분, 아닙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잘못된 투자예요. 여러분이 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면 평생을 신앙생활하면서도 잘못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한번 이런 생각을 해보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저 송정 바닷가에 아주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 있다고 합시다. 저는 우리 교인 가운데 그런 분이 나오기를 기도하는데 아직은 안 생겼어요. 그런데, 그 분이 바빠서 1년간 해외에 출장가게 되었어요. 그분이 저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1년간 출장을 가는데 이 별장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목사님 마음대로 쓰십시오. 단 두 가지만 해주세요." "뭡니까?" "화초에 물 좀 주시고 그 다음에 우편물이 오면 좀 받아주세요." "그것 못하겠습니까?" 드디어 그 별장은 1년 동안 제 것이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가보니 얼마나 좋던지!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잔디밭이 쫘악 깔려있고 별장이 있습니다. 큰 목욕탕도 있고, 계절마다 그 별장에 있으면 바다의 색깔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합니다. 얼마나 좋은지요! 아무도 저를 간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그곳에 1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1년 후에 그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이 별장이 분명히 제 것이 아닌데 돌려주고 싶지 않은 거예요. "아! 나도 할 만큼 했어! 나도 이 집 잔디를 가꾸었고, 내가 저 화초에 물을 줬어! 내가 침대에서 1년이나 지냈는데 이곳을 떠나라고?" 여러분, 이것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에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잠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빌려쓰는 것인데도,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생활 속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내 것으로 삼고 싶은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내 것이라고 고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내 소유가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 잠시동안 관리를 맡았을 뿐이에요.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25장 14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他國)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중요한 두 단어가 나오는데 동그라미를 쳐주십시오. 하나는 '맡김'이라는 단어입니다. 맡겼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소유를 맡겼어요? '자기 소유'에서 자기는 누굽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의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것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원리를 알게 되면 얼마나 많은 염려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몰라요. IMF 기간 동안 저는 사업하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도가 날까봐 얼마나 두려워하며 고민하는지. "목사님, 기도해주세요! 이 IMF만 무사히 지난다면 제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겠습니다." 라고 다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얼마나 고민하는지요!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만일, 여러분이 모는 차가 고장이 났어요. 신호등에 딱 서기만 하면 이게 자꾸만 서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요? 운전할 때 굉장히 고민합니다. "이 차가 어디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염려합니다. 그건 당연해요. 여러분의 차가 말썽을 일으키면 염려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차 타고 지나가다가 옆 사람의 차가 신호등에 서서 시동이 안 걸려요. 그러면 여러분 염려합니까? 아니면 허허 웃고 지나갑니까? "시동 꺼졌어!" 대분분의 사람은 웃고 지나가더라구요. 집에 돌아와서 "그 사람의 차가 신호등에서 서다니!" 하고 머리를 앓고 누운 사람 봤습니까?
이 원리를 아셔야 돼요, 여러분! 이 건강, 내가 고칠 수 없어요. 내 것이 아니에요. 자녀 문제, 자녀가 어릴 때는 여러분의 것인 것 같죠. 그러나 자녀가 자라보십시오. 전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맏아들을 미국으로 떠나 보냈습니다. 미국에서 5학년까지 마치고 와서 여기서 잘 적응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놈은 미국에서 자라야 할 아이예요. 성격이나 모든 걸 봐서... 그래서 어느 날 제가 물었어요. "너 미국 가고 싶니?" 말을 잘 안 하는데 "예. 아빠, 할 수만 있으면 가고 싶어요." "그래, 내가 보내 주마!"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떠나 보냈습니다. 김포 공항에서 바이 바이하고 돌아오면서 제 집사람에게 "여보, 이제 저놈은 떠난거야! 생각해 봐! 이제 고등학교를 거기서 다니고, 대학을 거기서 다니고, 돌아와서 군대 가고, 장가가고 그러면 끝이지 뭐!" 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돌아와서 그 아이의 방을 싹 정리를 해 버렸습니다. "이젠 떠난거야!" 아이가 우리 것입니까? 제가 떠나 보내고 요사이 생각하는 게 뭔지 알아요? '내 것인줄 알았는데, 내가 17년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맡았을 뿐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이었어요.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여러분의 사업, 여러분의 것인 줄 압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내가 너에게 맡겼다." 사업 때문에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인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관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지혜롭게 투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먼저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너희가 진정 인생을 올바른 일에, 올바른 방법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투자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먼저 이것을 기억해라! 소유주는 네가 아니야! 네 가정의 주인, 네 직장, 네 자녀, 네 재물, 그 모든 것의 주인은 네가 아니다. 나야! 나!" 소유주를 올바로 깨달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활용법을 올바로 알자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활용법을 올바로 알아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활용법을 세 가지로 말씀해 주십니다. 어떻게 우리에게 맡기신 이 모든 것들을 활용해야 되는가? 첫 번째는 맡은 것에 대해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1) 불평하지 말라
불평하지 말아야 돼요. 아주 재미있는 말씀이 거기에 등장하는데 15절을 보십시오.
각각 그 재능(才能)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오늘 여기에서 말하는 '달란트' 그것은 문자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첫 번째는 1000불 정도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화폐 단위예요. 당시 유대라는 나라의 화폐단위예요. 지금 우리 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120만원. 그 당시에는 굉장히 큰 돈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달란트라는 의미가 있어요. 한국말로 달란트 하면 잘 모르지만, 여러분 '텔런트' 라고 하면 잘 알죠? TV에서 텔런트 누구누구라고 하잖아요. 그 '텔런트' 라는 말이 성경에서 나왔어요. 그게 바로 달란트예요. 왜 우리가 TV에 나오는 배우를 텔런트 라고 부르는 이유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얼굴이 예뻐서 텔런트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요새는 어글리(ugly) 모델, 아주 못생긴 모델이 유행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배추장사'아시죠? 앞으로 그런 모델이 많이 등장할 거예요. 잘 생겼느냐 못생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능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을 텔런트 라고 합니다. 이 재능이 바로 달란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물질만 주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가진 재능을 비롯한 모든 것을 주셨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뭔지 아세요? 오늘 말씀을 보면, 맡긴 액수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해요. 그래야 활용을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문자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그 가치는 평등하게 창조되었을지 몰라도 재능이나 소유에 있어서는 다르게 지음 받았습니다. 여러분 주위를 보세요. 여러분에 비해 얼마나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유학 가서 공부하면서 그것을 느꼈어요. 제가 며칠동안 밤을 세워서 책을 달달 외우며 갔는데 어떤 천재는 그저 한시간 정도 콧구멍 후비면서 책을 보았습니다.그런데 저는 90점 맞는데 그 친구는 100점 맞아요. 억울하더라구요. "하나님 이거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어떡합니까? 재능인데...
여러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창조된 게 아니에요. 보세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셨어요. 많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적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를 잘 만나 많은 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적은 돈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다섯, 둘, 한 달란트 각각 다르게 받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받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한 달란트건, 두 달란트건, 반 달란트건 분명히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 재능을 받았어요. 무엇을 위한 재능입니까? 돈벌기 위한 재능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역을 할, 봉사를 할 재능을 받았어요.
그런데 오늘 이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마음속에 불평이 있었어요. 왜 한 달란트 가지고 열심히 일하지 않았나요? 왜 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받고 나는 하나만 주셨는가 하는 불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나요? 로마서 12장 6절에 우리가 받은 은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上)
여러분, 중요한 것은 여기 '은혜대로' 라는 단어예요. 은혜대로! 받은 달란트가 각각 달라요.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바울은 로마서에서 한 달란트조차도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다섯 달란트만 은혜 받은 자가 아니요, 한 달란트도 은혜입니다.
여러분, 사실 오늘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한 달란트 받았는가, 두 달란트 받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적게 맡은 자에게는 적은 것을 요구하느니라'고 재능이 많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많은 것을 찾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이윤이 얼마나 남았고, 얼마를 받았는가가 본문의 주제가 아니에요. 여러분,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면 이 본문을 잘못 보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관심은 다섯이냐, 둘이냐, 하나에 있지 않습니다. 다섯을 남겼느냐, 둘을 남겼느냐에 있지 않아요.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하는 칭찬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忠誠)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다섯 달란트 맡겼는데 무슨 일에 충성하였다고 말씀하세요? '작은 일에' 하나님은 그것을 작은 일이라고 표현하세요.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두 달란트 남겼습니다. 그런데 칭찬 하신 말씀이 23절에 있어요. 저 같으면 이렇게 기록했을 거예요. 이미 21절에 다 했으니까 23절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똑 같이 칭찬하더라!"고 기록하고 지나갔을 텐데 하나님은 이 귀한 성경 말씀에 똑같은 문장을 반복하셨어요. 2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어떤 일에 충성했다고 말씀합니까? 작은 일! 다섯 달란트도 작은 거요, 두 달란트도 작은 거예요. 무슨 뜻입니까? 이 땅에서의 재능은 다 작은 일이에요.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60평 아파트에 사는가, 전세에 사는가는 작은 일입니다. 문제는 내가 1000만원을 가지고 있는가, 100억을 가지고 사느냐에 있지 아니하고, 내가 맡은 것, 그것이 얼마였던 간에 하나님 앞에 내가 얼마나 충성했느냐에 있는 줄 믿습니다. 그것이 심판의 잣대예요. 그런데 오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어요. 왜 땅에 파묻었나요? 불평이 있었어요. "하나님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왜 맨날 13평입니까?" "왜 저는 교회에서 대접 못 받습니까?" "안수집사, 장로가 못되는 겁니까?" 라는 불평이 있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 인생을 올바로 투자할 수 있는가 말씀하십니다. 올바른 활용법을 알아야 하는데, 첫째로 우리는 불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두려움을 극복하라
두 번째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라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주신 이 '리소스(resources), 자원'을 올바로 활용할 수 있는가? 첫 번째 불평하지 말아야 되고, 그 다음 두려움을 극복해야 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왜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었는가? 25절 보면 이렇게 이유를 설명합니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上)
'두려워하여'에 동그라미를 치고 '감추어 두었나이다'에 동그라미를 쳐주세요. 여러분, 이 "두려움"과 "감추는 것"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같이 따라다닙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려움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갖고 삽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는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 돼요. 저의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중학교 때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게 뭐였는지 아세요? 사람 앞에 서는 거였어요. 어느 날 중학교 2학년 때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저에게 시(詩)를 낭독하라고 했는데, 제가 너무 너무 당황해서 시를 읽다가 우느라 다 못 읽고 들어왔어요. 그리고 나서, 저는 문학의 밤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나는 안돼!" 믿어지세요? 제가 지금 여러분을 두려워합니까? 몇 만명 앞에서도 저는 두렵지 않아요. 그러나 제가 이전엔 그런 사람이었어요.
우리 모두에게 두려움이 있어요. 그 두려움의 원인이 뭘까? 여러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천성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또 어떤 심리학자들은 얘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두려움의 원인은 과거의 실패라고 합니다. 과거에 사람앞에 서서 당황한 경험이 있어요. 사업을 해 보니 안됐어요. 연애를 해 보니 실패했어요. 이런 사람들은 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거예요. 알게 모르게 어릴 때부터 받은 부모의 상처, "너는 안돼!"라는 친구들의 놀림. 그런 경험들로 인해 그 실패감이 자리에 꽉 잡고 있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두려워한다는 거죠.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 불평이 있었을 뿐 아니라, 불안했습니다. 저 사람은 다섯 개 받았으니까 하나 가지고 장사하다가 까먹어도 네 개가 남아 있지만, 나는 하나뿐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부들부들 떨며 바치지 못합니다. 주일날 문 닫고 와서 사업하라고 해도 "하나님, 안됩니다." "목사님 안됩니다." "나는 가진 것도 없는데 주일날마저 문닫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두려워 주일날 문을 닫지 못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돕고 하나님을 위해 바치라고 하면 "제가 이것 다 모아도 안 되는데, 어떻게 이것을 바치라고 하십니까? 못 바칩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과거에 어떤 두려움이 있든, 그 마음 안에 있는 두려움을 극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떤 사람에게는 교회에 와서 봉사를 하도록 권면합니다. 그러면 안 하겠다고 합니다. 성가대 대원이라도 하라고 해도 안 하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한 1년정도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한 후 물어보면, 과거의 교회에서 성가대 하다가 상처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다른 교회에서 교사하다가 상처받은 사람은 절대 교사 안 하려고 해요. 상처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봉사를 하지 않는 교인들! 그래서 교회를 옮겨가서도 멀찍이서 구경만 하는 교인들! 그래서 큰 교회를 찾는 교인들이 오늘날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모두는 다 실패자들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께서 쓰신 모든 사람들은 과거에 모두 실패자들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것이 복음이라고 생각해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두 사람이 있었어요. 똑같이 실패한 사람이에요. 지은 죄의 크기도 비슷해요. 그러나 한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았고 한 사람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습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얘깁니다. 유다의 죄가 더 컸던가요? 그는 잠시 돈에 눈이 멀어 예수님의 3년 제자를 뿌리치고 팔았어요. 그러다가 돌아가서 후회하고 다시 안 팔겠다고 제사장들에게 그 돈을 갖다 준 사람이에요. 여러분, 베드로가 한 실수는 무엇이 틀린가요?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어요. 그것도 세 번씩이나! 나중에는 예수님을 저주했어요. 예수님을 판 것과 예수님을 저주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요? 그런데 왜 한 사람은 자살로 끝내고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나요? 문제는 한 사람은 두려움과 과거를 극복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고 나서 후회에 사로 잡혀 제사장을 찾아가 물려달라고 했지만 물려주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는 나가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기의 목을 메달아 버렸습니다. 베드로도 똑같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나서 자기가 그 사실을 깨닫고 나가 밖에 나가 통곡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는 돌이켰습니다. 그가 사역을 할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이 사탄이 그의 마음을 찔렀을까요? "네가 무슨 예수님의 제자라고! 너 예수님 세 번 부인했잖아! 저주했잖아!" 목회를 할 때마다, 성경을 쓰려고 펜을 들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 사탄이 속삭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두려움을 극복한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세를 아십니까? 그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은 살인과 간음을 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인 용서받을 수 없는 불효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과거 실패한 두려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당신에게 주신 그 텔런트, 그것이 적건 많건 간에 "사람들이 웃으면 어떡할까?" 그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주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 달란트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법은 불평하지 말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 세 번째는 다른 이를 비난하지 말아야 됩니다.
3) 다른 이를 비난하지 말라
오늘 한 달란트 받은 자를 보십시오. 24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누구를 비난하는 거죠? 주인을 비난하는 거예요. 가만히 보세요. 말은 점잖게 하지만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이 아주 구두쇠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오늘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을 놓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목회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을 거예요." "제가 좀 더 나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나도 저 사람과 같이 자식 복이 있었더라면요." "목사님, 제가 교회 복이 있었더라면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이유가, 내 신앙이 자라나지 않은 이유가, 내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지 않은 이유가, 주위에 있는 그 누군가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하며, 비난하며 우리의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 때문에, 불평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를 비난하는 마음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받은 재능을 땅 속에 파묻어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올바로 투자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올바른 활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불평하지 마십시다. 두려움을 극복하십시다. 그리고 남을 비난하는데서 탈출하십시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에요. 하나를 받았는가, 둘을 받았는가가 아닙니다. 내 부모가 문제가 아니에요. 내 남편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게 맡겨주신 일을, 내가 있는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지혜롭게 투자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유주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활용법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계산법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계산법을 올바로 알자
제가 28절을 읽고 여러분들이 29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 (豊足)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 계산법이에요. 여러분, 그런데 이 본문을 읽으면 궁금증이 생기지 않나요? 저는 이 본문 때문에 시험에 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야! 이거 말이 안 된다. 없는 자에게 하나 더 줘야지." 여러분,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있는 자는 받아 더 풍족(豊足)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것마저도 빼앗기리라' 이런 말씀이 있으니 공산당들이 기독교인들을 싫어할 수밖에 없죠. 성경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없는 자에게 조금 더 주고 평균화 시켜야지... 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법이에요. 재능에 관한 한, 우리에게 맡긴 자원에 관한 한,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법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뜻 보면 이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몰라도 조금만 눈을 떠보면, 사실 이것이 우주적 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로 생각하지 마시고 근육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근육은 어떻습니까? 사용하면 할수록 강해지고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져요. 아무리 달리기를 잘하는 육상 선수도 1년 정도만 병원에 입원해서 걷지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누워서 한 1년 있다가 일어나서 걸어라고 해 보세요. 그 사람 다리는 아주 팔처럼 가늘어져 있어서 제대로 걷지를 못합니다. 물리적인 훈련을 받아야 돼요.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원리가 이와 같습니다. 지식적인 부분도 그래요. 요즘 전자 수첩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외우기를 싫어합니다. 과거에는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도 전화번호 3,40개를 외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도 약 100개 정도 웬만한 건 다 외웠어요. 그런데 요사이 전자 수첩 때문에 10개를 못 외워요. 뭐든지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하는 거예요. 우주에 이런 원리들을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에게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이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기쁨이 필요하시나요? 행복이 필요하신가요? 돈이 필요하신가요? 아름다운 관계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이 하나님의 계산법에 따라 여러분이 그 부분들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관계를 원하신다면 먼저 그 관계를 위해 노력해 보십시오. 저는 목회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봤어요. 아!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사람들을 만나면 상대방을 비방합니다. 그리고 관계맺는 것을 꺼려해요. 왜냐하면 관계를 맺으려다가 상처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만나기를 꺼려해요. 그런 사람들은 있는 것까지 빼앗기더라구요. 결국은 혼자 고립돼요. 그런데 이 사람도 부부관계가 안 좋아요. 그러나 말씀으로 그걸 이깁니다. 관계를 좋게 하려고 마악~ 힘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비록 부부관계는 안 좋을지 몰라도 성도들간의 관계가 좋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자녀간의 관계가 좋아지더라고요. 마지막에 가서는 부부간의 관계도 회복되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예요. 십일조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하나님께서 왜 십일조 바치라고 하십니까? "너의 모든 수입의 온전한 10분의 1을 내게 드리라" 하나님이 돈이 없으신가요? 아닙니다, 여러분. 이 원리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IMF, 이 불경기에....'하며 여기까지 입이 나와요. 저는 1년에 한 두번 헌금자 명단을 쭈욱 봅니다. 왜냐구요? 헌금과 신앙은 관계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분들 보면 정말 먹고 살 것도 없는데 십일조와 감사 헌금을 아낌없이 드려요. 그러면 제가 심방 가서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집사님, 집사님은 안 바쳐도 돼!' 정말 인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들어요. 우리의 생각에 '이걸 다 모아도 집을 못 살텐데, 10분의 1을 드리고 어떻게 집을 살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법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전부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고 90%만 가지고 살아가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100% 가지고 사는 사람들보다 얼마든지 더 넉넉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많은 것을 맡기는 거예요. 많이 바치는 자에게, 하나님이 많이 바칠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 한번 주위를 보십시오. 설교 시간이 좀 더 길게 주어진다면 몇몇 형제들에게 간증을 부탁하고 싶어요. 정말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던 사람들, 그러나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궁핍한 거 보셨나요? 없습니다. 바로 이 계산법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이 진정 행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기 위해 여러분을 헌신하십시오. 주님 앞에 바치십시오.
어떤 사람은 성경공부 같이하자고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교회 봉사하라고 하면 역시 시간이 없다고 그래요. "계속 나중에, 나중에 하지요."라고 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지켜보니까 평생 가도 하나님 위해 시간 못 냅니다. 그리고 바쁘게 일에 쫓기며 살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바쁜 가운데서 주일예배에 참석합니다. 수요예배에도 참석합니다. 은혜 받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시간이 없어도 하나님앞에 시간을 드립니다. 그런 사람들의 삶을 제가 가만히 보면 그들의 삶이 점점 여유로워지고 시간이 많아집디다. 다른 사람들을 섬깁디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예요. 여러분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을 위해 드리면 드릴수록 풍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끼면 아낄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마저 우리는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날에 있을 한 장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날 어떤 일이 있는 줄 아십니까? 믿는 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하나님께서 장부책을 하나 내어 미십니다. "얘야 천국에 들어왔으니 이제 우리 셈하자!" "어~ 천국엔 기쁜 곳인 줄 알았는데 계산하자고 하시네요!" 어떻게 계산합니까? "내가 70년의 세월을 너에게 주었는데 그 70년의 세월 동안 그 시간을 어디다 썼니?" "내가 10억의 제물을 너에게 관리하도록 맡겼는데 너 그 10억을 어디다 어떻게 썼니?"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깐입니다. 일장춘몽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보십시오. 이 땅을 지으신 그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가르치신 말씀이라고요. 그날 어떤 자들에게는 이런 평가가 있을 겁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을 밖에 내어다 쫓으라!" 그러나 어떤 자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이 땅에서의 지나갈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마." 다른 성경에서는 이것을 한 고을,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엄청난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들은 여러분들은 저와 천국에서 만났을 때, 모두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을 얻는 아름다운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박정근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