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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 하는 삶 (요한복음 14:15-20)
논 지 : 주님은 성도와 지금부터 영원까지 계신다. 성도는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므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가. 이별의 염려 – 고아상태 (18a)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모형제를 다 떠나고 자기 재산을 다 버리고 3년 동안을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기간 동안에 많은 고생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생이 고생으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왜그러냐면 예수님께서 가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눈먼 자를 뜨게 하시고, 5천명을 먹이는 등 놀라운 권능을 행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따라다니는 것이 신이 났습니다. 세상의 어느 왕도 예수님같은 권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사람들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추앙하고 높이고 매우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이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에 오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오게 되면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것이고, 제자들은 이제 우리가 예수님 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큰 출세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뛰는 일이지요. 지금 부푼 마음을 가지고 유월절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유월절 잔치를 예수님과 모든 제자들이 다 같이 앉아서 할 때에, 그 때는 큰 희망이 있는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잔치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뜻밖의 말씀이에요.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게 될 것이다. 내가 제사장에게 잡힐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을 것이다. 내가 너희들을 떠나게 될 것이다.(13: ) 전혀 의외의 말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유월절 잔치 그 식사 자리가 잔치가 아니라,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그런 서먹서먹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는다는 말씀을 계속하시니까, 베드로가 “저는 목숨을 버리기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목숨을 내놓을 비장한 결심까지 이야기했습니다.(13:31) 다른 제자들도 그 마음가운데 걱정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이 가득찼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잡혀서 십자가에 죽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이냐, 우리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이냐? 불안한 마음이 가득찼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출세하리라는 희망은 다 깨어져버리고, 자칫 잘못하면 우리도 잡힌다든지, 혹은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들을 감쌌습니다. 부모 형제 재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3년동안 따라다닌 뒤끝이 이게 뭐냐, 예수님에 대한 분노나 배신감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나. 함께 하신다는 약속
1. 예수님이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마치 고아같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18a) 마치 고아와 같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불안해 하는 제자들에게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 여러분, 고아가 뭡니까? 고아는 부모가 없는 아이입니다.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세상 속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위험이나 어려움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아이고, 그 어려움들을 극복해서 생존해 갈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바로 고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외롭고 고독합니다. 너무나 많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불신합니다. 버림받은 분노와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일시적으로 좀 사랑도 베풀고 위로도 하려고 하면 너무나 많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가 된 것이지요.
전세계는 부모없이, 아동복지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길에서 떠돌아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들입니다. 그 아이들은 집이 없습니다. 지하철 밑에서 잠을 자구요, 어떤 나라는 맨홀 속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구걸이나 도둑질로 삶을 살아갑니다. 제대로 음식도 먹지 못하고 술이나 본드나 마약이나 이런 것을 가지고 삶을 살아갑니다.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고아들입니다. 여러분 고아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뭘까요? 고아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부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잠잘 곳도 없고, 그것이 다 문제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라면 그들에게 부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있다면 먹을 것이라든지 입을 것이라든지 이런 부차적인 것들은 저절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예수님이 없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없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고 직업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생각이 될 지 모르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고,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삶을 살아가지 않고 고아같은 삶을 살아가니까 죄와 위험과 사탄의 공격에 노출되어서 스스로 그것을 방어하거나 생존할 수 없는 그런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버려진 것 같은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이렇게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하니까 제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을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요. 여러분이 큰 어려움에 닥쳤을 때에 18절 말씀을 암송해 두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한 번 우리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아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고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3) 주님께서 함께 계심 (16-17)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이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에는 두가지로 나옵니다.
1) 우선, 당장 보혜사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실 때에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게 된 것이지요.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예수님과 똑같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곁에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실 것아리고 약속을 하시는 겁니다.(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했듯이 보혜사 성령께서 똑같이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성령께서는 시간의 제약을 받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지금서부토 시작해서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계실 것이라고 약속을 합니다.
2) 그런데 그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17)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 진리를 믿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영접하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진리의 영이 그들에게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내주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의 영이 그들과 함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했을 때에 성도들은 그 진리의 영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 진리의 영이 그들 가운데 내주하시고 함께 계시고 성령충만하시고 성령께서 그들을 지배하시고 인도하시는 삶을 경험을 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삶이 얼마나 능력있는 삶인가, 얼마나 자신만만한 삶인가 하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2. 그 다음에 두번째로는 예수님께서 이제 조금 있으면 너희들이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19-20)
1) 예수님께서 지금은 십자가에 죽음으로 제자들을 떠나지만, 그러나 다시 부활하시면(19) 제자들이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같이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대중적인 사역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공생애 중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수천명 되는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그들에게 대중적인 사역을 했습니다만, 부활하신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제자들 소수의 사람만 만나서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그들에게 연합한, 예수님과 연합한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연합해서 친밀한 교제의 삶을 경험했습니다. (20)
2)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승천해서 제자들을 떠나셨습니다. 두번째로 또 떠나신 것이지요. 그렇지만 예수님과 연합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경험한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분명히 믿고, 그리고는 이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삶을 살아간 것이지요.
그전에 예수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기 스스로는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예수님과 연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경험한 제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 뒤만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세상의 고난을 당당히 이겨내는 독립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고아같이 불안해 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담대하게 세상 가운데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가운데 지금 혹은 그동안에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버림받은 인생을 살았다, 고아같은 삶을 내가 살고 있구나,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혹은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에 우리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해서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 주님과 함께 하는 방법 (15)
예수님께서 이렇게 약속을 하셨는데, 그러면 어떻게 내가 예수님의 약속을 받아들여서 우리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을 어떻게 내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1. 오늘 15절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을 하십니다. 굉장히 단순하고 짧은 말씀이지요. 그런데 요한복음 14장에는 똑같은 단순하고 간단한 말씀이 반복해서 여러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비결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입니다. 우선 먼저는 우리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15a) 우리 주님과 사랑하는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늘 만나서 교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늘 만나서 교제를 해야 사랑의 관계가 형성이 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늘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우리 주님과 대화하고, 그런 중에서 교제가 계속 되어지고, 교제가 깊어지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친해지고 정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대화를 하고 교제하고 그런 일이 없이 어떻게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과 사랑하고 교제하지 않으면, 고아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교제하고 사랑의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0장에는 우리 예수님께서 목자와 양의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목자는 양의 음성을 듣고 또 양도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씀을 해요.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요10:4)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저 음성이 내 목자의 음성이구나, 늘 듣던 음성이기 때문에 친숙하고 익숙해서 목자의 음성을 금방 압니다. 또 목자의 양의 음성을 아는 것이지요. 양이 많이 있지만, 아 이 소리가 바로 내 양의 소리다, 양의 소리를 들으면 이게 지금 불안해서 내는 소리구나, 뭐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파서 내는 소리구나, 목자가 알아 듣습니다. 늘 그 음성을 듣기 때문에 서로 잘 알고 친숙하고 익숙한 것이지요. 그 음성에 서로 응답하고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이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2. 또 사랑하면 증거가 나타나야 되는데, 그 사랑의 증거라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여 지키는 것입니다.(15b) 사랑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감상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면 헌신을 해야 하고 그 상대방의 말에 대해 순종, 서로 존중하고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불성실하고 부정직하고 그렇게 판단이 되고 신뢰관계가 깨지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면 사랑하는 증거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 증거가 바로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뜻에 민감하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과의 관계가 친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면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여러분 우리가 예배 드리러 간다든지 혹은 기도회를 하게 된다든지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될 때에는 우리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나서기 전에 기도할 때에 ‘주님 오늘 예배 드리러 갑니다, 오늘 어느 집에서 기도회 모임을 가집니다, 주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말이 되지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아니하시는 곳에 가게 될 때에 주님 계명에 불순종하고 불건전하거나 난잡한 모임에 우리가 가게 될 때에는 주님과 동행이 어렵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 ‘주님 제가 불건전한 모임에 가는데, 난잡한 모임에 가려고 하는데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말이 됩니까? 말이 안되지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험담을 한다든지 욕을 한다든지 미워한다든지 다툰다든지 그럴 때에는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그럴 때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내일서부터 우리가 한주간동안 특별새벽기도기간을 가지는데, 그것을 우리가 평상시에도 늘 그렇지만 특별한 기간을 설정해서 우리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훈련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만약에 집이 멀어서 교회까지 못오실 분들은 주보에 다 날짜에 따라서 본문제목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순종함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훈련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없이 살아가는 삶은 마치 고아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롭고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고아같은 삶을 살아가는 불안해 하는 우리들에게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진리의 영께서 함께 계신다고 약속을 합니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온 힘을 기울여 사랑하고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친밀한 교제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주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의 관계를 가지며 주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 가운데 고아같은 삶, 지독한 외로움이나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약속을 믿고 그리고는 우리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님 말씀을 들으십시요.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십시요. 그래서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논 지 : 주님은 성도와 지금부터 영원까지 계신다. 성도는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므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가. 이별의 염려 – 고아상태 (18a)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모형제를 다 떠나고 자기 재산을 다 버리고 3년 동안을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기간 동안에 많은 고생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생이 고생으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왜그러냐면 예수님께서 가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눈먼 자를 뜨게 하시고, 5천명을 먹이는 등 놀라운 권능을 행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따라다니는 것이 신이 났습니다. 세상의 어느 왕도 예수님같은 권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사람들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추앙하고 높이고 매우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이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에 오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오게 되면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것이고, 제자들은 이제 우리가 예수님 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큰 출세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뛰는 일이지요. 지금 부푼 마음을 가지고 유월절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유월절 잔치를 예수님과 모든 제자들이 다 같이 앉아서 할 때에, 그 때는 큰 희망이 있는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잔치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뜻밖의 말씀이에요.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게 될 것이다. 내가 제사장에게 잡힐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을 것이다. 내가 너희들을 떠나게 될 것이다.(13: ) 전혀 의외의 말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유월절 잔치 그 식사 자리가 잔치가 아니라,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그런 서먹서먹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는다는 말씀을 계속하시니까, 베드로가 “저는 목숨을 버리기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목숨을 내놓을 비장한 결심까지 이야기했습니다.(13:31) 다른 제자들도 그 마음가운데 걱정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이 가득찼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잡혀서 십자가에 죽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이냐, 우리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이냐? 불안한 마음이 가득찼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출세하리라는 희망은 다 깨어져버리고, 자칫 잘못하면 우리도 잡힌다든지, 혹은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들을 감쌌습니다. 부모 형제 재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3년동안 따라다닌 뒤끝이 이게 뭐냐, 예수님에 대한 분노나 배신감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나. 함께 하신다는 약속
1. 예수님이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마치 고아같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18a) 마치 고아와 같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불안해 하는 제자들에게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 여러분, 고아가 뭡니까? 고아는 부모가 없는 아이입니다.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세상 속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위험이나 어려움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아이고, 그 어려움들을 극복해서 생존해 갈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바로 고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외롭고 고독합니다. 너무나 많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불신합니다. 버림받은 분노와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일시적으로 좀 사랑도 베풀고 위로도 하려고 하면 너무나 많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가 된 것이지요.
전세계는 부모없이, 아동복지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길에서 떠돌아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들입니다. 그 아이들은 집이 없습니다. 지하철 밑에서 잠을 자구요, 어떤 나라는 맨홀 속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구걸이나 도둑질로 삶을 살아갑니다. 제대로 음식도 먹지 못하고 술이나 본드나 마약이나 이런 것을 가지고 삶을 살아갑니다.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고아들입니다. 여러분 고아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뭘까요? 고아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부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잠잘 곳도 없고, 그것이 다 문제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라면 그들에게 부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있다면 먹을 것이라든지 입을 것이라든지 이런 부차적인 것들은 저절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예수님이 없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없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고 직업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생각이 될 지 모르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고,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삶을 살아가지 않고 고아같은 삶을 살아가니까 죄와 위험과 사탄의 공격에 노출되어서 스스로 그것을 방어하거나 생존할 수 없는 그런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버려진 것 같은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이렇게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하니까 제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을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요. 여러분이 큰 어려움에 닥쳤을 때에 18절 말씀을 암송해 두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한 번 우리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아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고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3) 주님께서 함께 계심 (16-17)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이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에는 두가지로 나옵니다.
1) 우선, 당장 보혜사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실 때에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게 된 것이지요.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예수님과 똑같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곁에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실 것아리고 약속을 하시는 겁니다.(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했듯이 보혜사 성령께서 똑같이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성령께서는 시간의 제약을 받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지금서부토 시작해서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계실 것이라고 약속을 합니다.
2) 그런데 그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17)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 진리를 믿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영접하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진리의 영이 그들에게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내주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의 영이 그들과 함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했을 때에 성도들은 그 진리의 영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 진리의 영이 그들 가운데 내주하시고 함께 계시고 성령충만하시고 성령께서 그들을 지배하시고 인도하시는 삶을 경험을 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삶이 얼마나 능력있는 삶인가, 얼마나 자신만만한 삶인가 하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2. 그 다음에 두번째로는 예수님께서 이제 조금 있으면 너희들이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19-20)
1) 예수님께서 지금은 십자가에 죽음으로 제자들을 떠나지만, 그러나 다시 부활하시면(19) 제자들이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같이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대중적인 사역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공생애 중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수천명 되는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그들에게 대중적인 사역을 했습니다만, 부활하신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제자들 소수의 사람만 만나서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그들에게 연합한, 예수님과 연합한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연합해서 친밀한 교제의 삶을 경험했습니다. (20)
2)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승천해서 제자들을 떠나셨습니다. 두번째로 또 떠나신 것이지요. 그렇지만 예수님과 연합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경험한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분명히 믿고, 그리고는 이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삶을 살아간 것이지요.
그전에 예수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기 스스로는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예수님과 연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경험한 제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 뒤만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세상의 고난을 당당히 이겨내는 독립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고아같이 불안해 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담대하게 세상 가운데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가운데 지금 혹은 그동안에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버림받은 인생을 살았다, 고아같은 삶을 내가 살고 있구나,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혹은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에 우리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해서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 주님과 함께 하는 방법 (15)
예수님께서 이렇게 약속을 하셨는데, 그러면 어떻게 내가 예수님의 약속을 받아들여서 우리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을 어떻게 내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1. 오늘 15절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을 하십니다. 굉장히 단순하고 짧은 말씀이지요. 그런데 요한복음 14장에는 똑같은 단순하고 간단한 말씀이 반복해서 여러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비결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입니다. 우선 먼저는 우리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15a) 우리 주님과 사랑하는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늘 만나서 교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늘 만나서 교제를 해야 사랑의 관계가 형성이 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늘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우리 주님과 대화하고, 그런 중에서 교제가 계속 되어지고, 교제가 깊어지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친해지고 정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대화를 하고 교제하고 그런 일이 없이 어떻게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과 사랑하고 교제하지 않으면, 고아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교제하고 사랑의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0장에는 우리 예수님께서 목자와 양의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목자는 양의 음성을 듣고 또 양도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씀을 해요.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요10:4)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저 음성이 내 목자의 음성이구나, 늘 듣던 음성이기 때문에 친숙하고 익숙해서 목자의 음성을 금방 압니다. 또 목자의 양의 음성을 아는 것이지요. 양이 많이 있지만, 아 이 소리가 바로 내 양의 소리다, 양의 소리를 들으면 이게 지금 불안해서 내는 소리구나, 뭐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파서 내는 소리구나, 목자가 알아 듣습니다. 늘 그 음성을 듣기 때문에 서로 잘 알고 친숙하고 익숙한 것이지요. 그 음성에 서로 응답하고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이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2. 또 사랑하면 증거가 나타나야 되는데, 그 사랑의 증거라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여 지키는 것입니다.(15b) 사랑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감상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면 헌신을 해야 하고 그 상대방의 말에 대해 순종, 서로 존중하고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불성실하고 부정직하고 그렇게 판단이 되고 신뢰관계가 깨지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면 사랑하는 증거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 증거가 바로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뜻에 민감하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과의 관계가 친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면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여러분 우리가 예배 드리러 간다든지 혹은 기도회를 하게 된다든지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될 때에는 우리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나서기 전에 기도할 때에 ‘주님 오늘 예배 드리러 갑니다, 오늘 어느 집에서 기도회 모임을 가집니다, 주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말이 되지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아니하시는 곳에 가게 될 때에 주님 계명에 불순종하고 불건전하거나 난잡한 모임에 우리가 가게 될 때에는 주님과 동행이 어렵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 ‘주님 제가 불건전한 모임에 가는데, 난잡한 모임에 가려고 하는데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말이 됩니까? 말이 안되지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험담을 한다든지 욕을 한다든지 미워한다든지 다툰다든지 그럴 때에는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그럴 때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내일서부터 우리가 한주간동안 특별새벽기도기간을 가지는데, 그것을 우리가 평상시에도 늘 그렇지만 특별한 기간을 설정해서 우리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훈련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만약에 집이 멀어서 교회까지 못오실 분들은 주보에 다 날짜에 따라서 본문제목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순종함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훈련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없이 살아가는 삶은 마치 고아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롭고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고아같은 삶을 살아가는 불안해 하는 우리들에게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진리의 영께서 함께 계신다고 약속을 합니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온 힘을 기울여 사랑하고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친밀한 교제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주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의 관계를 가지며 주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 가운데 고아같은 삶, 지독한 외로움이나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약속을 믿고 그리고는 우리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님 말씀을 들으십시요.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십시요. 그래서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