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일으키는 감사.  (합 3 : 16 ~19)


오늘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물질이야 있든 없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먼저 축원합니다.

오늘은 구약의 하박국서를 중심으로 감사가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 가를 살펴보면서 매일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비결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래 하박국이란 말의 뜻은 [씨름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신앙의 갈등 속에서 승리한 선지자입니다. 이름 그대로 당면한 문제를 놓고 씨름하여 야곱처럼 승리한 사람 입니다.

처음 우리들이 믿었을 때에 누구에게나 기쁨이 있었고 찬송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고 나면 마음에 갈등이 생깁니다.
이럴 때 우리가 놀라면 안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 보다 성장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꼭 한번 거쳐 가야하는 과정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갈등이 바로 이런 신앙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현실을 보면서 불평을 했던 선지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이상합니다. 선지자가 하나님께 불평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잘 안될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불평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1:1-4절에 나옵니다.

내가 그렇게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니이까? “ 왜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지 않고 그냥 내 버려두십니까?” 하는 신앙적 갈등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1장 5-11절에서 그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납고 성급한 갈대아 사람들, 즉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현실을 볼 때에 [불의가 선보다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1:12-2:1절에 나옵니다.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되 하필이면 왜 바벨론 같이 더 악한 나라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선민을 침략하고 치도록 방관하십니까? 하는 불평이요 질문이었습니다.

그 응답을 2장2-20절에서 받았습니다. “정한 때가 있다. 정녕 응하리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구절은 후에 바울을 통해서 로마서 1:17절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유명한 말씀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보여주면서 이를 해결하는 비결이 믿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마침내 하박국 선지자는 3장에 와서 감사의 기도로 그의 예언을 끝냅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오늘의 가장 큰 영적인 병인 [감사불감증]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딤후 3:2절에 보면 말세의 징조로서 “감사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1. 다시 말해서 현대의 비극은 [감사불감증]에서 시작합니다.

감사치 않는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됩니다. 데이빗 소퍼 박사가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 수도원에 있는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구했습니다.
둘 다 갇혀 있고 먹고 싶은 것 먹지 못하는 것은 같은데, 큰 차이점은 감옥에 있는 사람은 하루가 불평에서 시작하여 불평으로 계속하고 불평으로 끝나는데 비해 수도원에 있는 사람은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계속되고 감사로 끝난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현대는 옛 날에 비해 참으로 풍성한 시대입니다만, 그러나 이 시대를 지배하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삼불(三不)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삼불 시대]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감, 불신, 불화]의 시대라는 뜻입니다.

서로 불신합니다. 정부와 국민도 서로 불신하고, 이웃끼리도 서로 불신하고, 심지어 교인들끼리도 서로 불신합니다. 부끄러운 것은 목사와 교인들도 서로 불신합니다.
다음은 가는 곳마다 불화가 있습니다. 가정에도 불화, 직장에도 불화, 심지어는 교회에도 불화, 사회에도 불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불감증]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감사불감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있을 때만 감사하고 없을 때에는 감사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박국 선지자처럼 [비록 없을지라도]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점은 감사하며 사는가? 불평과 원망하면서 사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신자라도 불평하면서 산다면 형식적인 신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습니다. 밥을 달라고 하면 씨앗을 주셔서 심어 수확을 하게 합니다. 필요한 물건을 달라고 하면 완제품을 주시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자제와 기술을 주십니다.
또 필요한 만큼만 주시는데 나머지는 믿음으로 채우고 감사로 채우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풍성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17절과 18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록 없을지라도] 감사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비록 없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보기에는 고생이 되고 해가 되어도 나중에 보면 그것이 다 약이 되고 도움이 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을 믿을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도 18절에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십니까?

2.감사에서 중요한 것은 [감사는 기적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기적은 신앙의 열매입니다. 기적은 감사의 자녀입니다. 감사할 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었던 감사의 자세를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처음 이 교회 건물에 들어와서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 감사가 다시 회복되어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보너스로 새 성전까지 주셨는데 우리가 감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으로 구제불능의 사람입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처음 그저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그저 함께만 있어도 기뻤던 시절을 잊지 않을 때에 부부간에 행복이 유지됩니다.

남에게 받은 작은 선물을 감사해 보세요. 또 다른 선물이 올 것입니다. “이것을 선물이라고 주느냐”하면서 불평해 보세요. 다시는 선물도 없고 친구도 가까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스펄 존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별 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달빛을 주실 것이요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햇빛을 주실 것이요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면 햇빛이 필요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실 것이라” 믿습니까?

(예) 이 세상에서는 산의 메아리처럼 내가 한 말이 다시 울려온다.

사랑해요 하면 다시 사랑해요 하고 울려오고 미워요 하면 미워요 하고 울려오고, 감사해요 하면 감사해요 하고 울려오기 때문이다.

3. 감사하는 생활은?

(1)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시편103편 2절에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감사의 출발입니다. 그러나 감사불감증 환자의 특징은 [건망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당시만 기억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참 이상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점입니다.

(예) 예루살렘의 시외버스 정거장에 큰 돌 비가 서있고, 거기에는 히브리어로 [잊지 말라]고 써놓았습니다.

600만 살해사건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을 잊으면 또 일어난다, 그러나 이 역사를 기억하는 한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2)감사는 주님을 [찬양]하는 생활입니다. 찬양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많은 분들이 주일에만 찬양합니다. 그것도 교회에 와서 옆에서도 들리지 않는 정도의 작은 소리로 찬양을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찬양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어찌 찬양 안 할까?]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풍파 쉬지 않고 불어도 /주님 안에 보호받는 우리 마음 편하다/ 늘 깨어서 기도하고 저 천국을 바라며 주님만을 기다리니 어찌 찬양 안 할까?( 403장 3절).

(3)감사하는 사람의 세 번째 특징은 [보은] 즉, 받은바 [은혜를 갚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갚고, 또 사람들에게 갚으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윤리가 무엇입니까?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윤리입니다. 교회에서의 봉사는 바로 감사의 표현입니다.

(4)넷째로 참 감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감사의 생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첫째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둘째는 직업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이요. 셋째는 사회에서 섬기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5)끝으로 참 감사는 [헌신]입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고 내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바로 감사의 극치입니다.

맺는 말

감사불감증 시대에 우리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란 것을 확신할 때에 생겨집니다. 오직 여호와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을 때 생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회복해서 날마다의 생활에서 놀라운 기적을 이룩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신성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