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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도하세요 (약 5:13-18)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선교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산골 작은마을에 복음이 들어와 마을사람 거의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그들은 선교사가 가르쳐준 그대로 기도의 삶을 생활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마을사람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에 저마다 자기의 기도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거 하루에 두번이상 정기적으로 그 기도처를 찾아가 기도했습니다. 마을에서 그 기도처에 이르는 곳까지 여러개의 기도길이 생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길을 각자의 기도길(prayer path) 혹은 '나의 생명길'(My life way)이라고 불렀습니다.그런데 누군가가 기도를 게을리하고 기도처를 찾지않으면 풀이 자라납니다.그러면 신앙의 친구가 조용히 찾아가 이렇게 말해준다고 합니다.--"형제님,생명길에 풀이 많이 자랐어요."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그의 친구 몇사람이 함께 대신 그의 기도처를 찾아 가서 기도해준 다음 그들의 친구를 다시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형제님, 우리가 형제님의 생명길을 닦아놓았어요. 주님이 거기서 형제님을 기다리시는데 저희가 함께 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며칠간 그 형제와 함께 그 길을 동행하며 기도의 회복을 도왔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 입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목장교회에서 일어날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까!그래서 오늘의 성경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너희는 서로 기도하라"고.
특별히 인생의 길에 고난이 찾아올때 우리가 서로를 붙들어주며 기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본문의 시작은 "너희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가장 보편적인 인생의 고난으로 육체적인 질병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13절의 고난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인생의 장에서 경험하는 온갖 유형의 재앙이나 비극 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인생의 길에 찾아오는 온갖고난에 맞서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며 살아갈수 있을가를 가르칩니다. 과연 인생의 길에서 고난에 맞서서 기도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가는 비밀은 무엇일까요?
1.교회 공동체에 대한 소속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가르쳐 "me-generation"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시대의 영성은 교회생할에도 영향을 끼쳐 소속없이 교회를 자기 편리에 따라 오가는 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 우리교회도 조사를 해보니까 주일에 우리교회 출석하는 교인가운데 약20%가 등록없이 교회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이런 스타일의 교회생활이 오히려 편리하게 느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세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첫째 문제는, 책임지지 않는 이런 스타일의 신앙생활에서 진지한 영적 성장을 가져올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문제로는,그에게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수 있는 공동체가 없기 때문에 주변에 영향을 끼칠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더 큰 문제는, 그가 인생의 도상에서 위기를 경험할때 그를 영적으로 도울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질병의 고난을 만날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14절)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장로들은 직제로서의 장로가 아닌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소속이 없다면 어떤 지도자들을 찾아 가시겠습니까? 현대인들은 한동안 소속이 없는것을 자유로 오해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작품이 전세계에 큰 반응을 일으키며 일어난 현대적인 운동이 공동체 운동입니다. 공동체야 말로 인간영혼의 뿌리요 고향인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소속은 자유가 아닌 방황인 것입니다. 여러분,언제까지 방황을 즐기시겠습니까?
완전한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전한 교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가정이 없는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교회에 대한 분명한 소속이 없는 성도의 모습은 가정없이 표류하는 영적 나그네의 모습입니다. 이제 그만 방황을 끝내십시오. 교회에 등록하십시오. 그리고 좀더 작은 교회인 목장교회에 들어 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고난을 직면할 준비를 하십시오. 제가 요즈음 많이 아프고 힘들어요,기도해 주시겠어요--라고 말할수 있는 공동체에 소속하십시오.
2.고백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신학자들은 다른 세속 공동체와 교회를 구별하여 그 특성을 정의할때 교회를 가르켜 '고백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신앙고백위에 교회가 세워 진다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어떤 교회를 나의 교회로 선택할때 "우리 교회가 무엇을 믿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신앙고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참된 교회생활은 '삶의 고백'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어우러짐--이것이 바로 교회의 코이노니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코이노니아의 진정한 깊이는 우리들의 교제의 장에서 우리가 얼마만큼이나 자신의 삶의 실패와 허물을 진지하게 드러낼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의 삶의 상처의 드러남이 바로 치유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비로소 교회는 치유의 공동체가 되어갈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고백은 주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의 모임에서 이루어 질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바로 목장교회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12명이내의 사람들이 모여 자기 자랑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죄와 실패를 고백하는 자리--바로 거기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하고 치유의 기적이 일어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백이 이루어지기 위한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상호신뢰입니다. 내가 나자신의 삶을 열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들은 나를 비웃기보다 나와함께 아파하며 나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라는 믿음말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여는것은 언제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자기의 내면의 이야기가 동네 가십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우리들의 목장교회를 신뢰할수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갈 책임이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들의 목장교회는 '고백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렵지만 서로를 신뢰하며 우리의 죄와 실패가 고백되기 시작할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임중에 임하시며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기적을 행하시기 시작하십니다. 모든 질병이 죄로 말미암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질병은 분명히 죄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죄가 고백되는 순간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장벽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치유가 시작됩니다.본문 16절의 말씀이 바로 이 약속입니다.---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려면 고백을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잘 아시는대로 카톨릭 교회에서는 고회성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본래 이런 고백이 일상적인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서 이루어질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3.믿음의 기도를 통한 치유를 믿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우리가 서로 모여 기도할때 어떻게 기도할것인가? 라는 물음입니다.
15절에 보면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한다고 약속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딕 이스트만(Dick Eastman)은 기도를 이렇게 정의합니다."기도의 단순한 행위는 유한한 인간을 무한하신 하나님께 연결시킨다. 인간이 기도할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고난의 상황은 변화된다.그리고 설명할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인해 기뻐하십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인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본문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라는 말씀에서의 구원은 단순한 질병에서의 회복이상의 것을 약속하는 말입니다. 그다음 이어지는 약속처럼 그는 병든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사명의 인생을 살게 될것이라는 약속입니다. 19절이하의 계속되는 야고보의 권면은 그가 다시 전도하며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소명의 삶에 대한 회복을 보여 줍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속 기도할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모든성도들이 목장교회의 교제안에서 이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시 설교의 결론으로 엔젤라 헌트의 한편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우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세개의 나무 이야기"입니다. 어느 산마루에 세개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세나무가 다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나무의 꿈은 어느날 그가 금으로 입혀진 보석함이 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나무의 꿈은 바다를 여행하는 군함이 되어 왕을 태우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나무의 꿈은 이 산마루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나무가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우러러 볼때마다 하나님을 생각나게 해주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무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세나무는 함께 모여 그들의 꿈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자주 함께기도했습니다. 어느날 나무꾼들이 이 산마루에 올라 첫째나무를 짜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금으로 입혀진 보석함이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농부에게 팔려가 그의 외양간에 소나 말을 먹이는 여물통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는 실망했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나무꾼들이 둘째나무를 짜르기 시작할때 그는 이제 바다를 여행하는 군함이 되어 왕을 태우고자 하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어부에게 팔려가 작은 어선이 되어 호숫가에 띄워졌습니다. 군함이 되기에는 그는 너무 연약했던 것입니다.그는 실망했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무꾼이 세째나무를 짜르기 시작했을때 그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의 꿈은 거기에 그대로 남아 높고 아름다운 나무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 목수에게 팔려 가서 뒤뜰에 버려졌습니다. 그는 실망했지만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수년이 흐른 어느날 말구유가 된 첫째나무에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아기가 태어나 그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이 아기의 이름은 예수라고 불리웠습니다.호수에 떠다니던 둘째나무에도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의배에 어느날 한분이 오르자 그의 제자들이 함께 오르게 되었고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안심시키며 바다를 한마디로 꾸짖자 호수는 잠잠하게 되었고 제자들은 그에게 엎디어 그를 주님과 왕으로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비로소 그가 왕중의 왕을 모신 배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수에게 팔려 그의 뒤뜰에 버려졌던 셋째나무는 어느날 로마군인들의 청탁으로 십자가 나무가 되어 갈보리 높은 언덕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의 나무에는 그의 친구 첫째나무에서 태어나고 둘째나무가 태우고 다니던 갈릴리 사람 예수라는 분이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원래의 꿈처럼 하나님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세나무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은 오래전 함께 모여 기도하던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고난은 있었지만 고난의 저 건너편에서 더 아름다운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함께 주님을 섬기며 또한 주님에 의해 쓰임받는 도구가 될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버리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우리도 또한 서로 기도하며 살아가십시다
자료/처치포유넷 홈 자료 중에서